1228장. 시원하고 뜨거운 맛.
화르르르르릇.
붉은 화염이 넘실대는 지하 공간.
빨갛게 달궈진 거대하고 새카만 화로에서 검은 연기가 연신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그 너머로 보이는 맞은편.
벽면에는 지옥에나 있을 법한 악마들의 형상이 각인되어 있다.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인간들을 집어삼킬 듯 쳐다보는 악마들.
그리고 그 앞.
“나후노 아루바아 툰다……. 사아비라 아비노…….”
흑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치료 주문을 중얼거리는 남자.
바로 차일드 가문을 떠받치던 마가 장로였다.
악독한 무함마드 압둘 하리스라 불리는 흑마법사에게 몸을 빼앗긴 처지다.
그런 그가 치료 중이다.
다니엘에게 당한 공격에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요즘 들어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는 어둠의 힘.
회복되는 속도 역시 배는 빨라졌다.
사정이 그런 만큼 무함마드는 쉬지 않았다.
IS를 통해 공급받고 있는 재물들의 상태도 싱싱했다.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통에 아랍 쪽에는 재물로 쓸 만한 물건들이 넘쳐났다.
사실 누가 사라져도 알지 못했고 찾지도 못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의 납치와 살인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토록 악마들이 원하는 세계이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이 기세를 전 세계로 몰아 거침없이 확대하고 싶었지만 아직 무리였다.
번쩍!
마가 장로가 눈을 떴다.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흐흐흐흐흐흐흐.”
만족스러운 듯 그의 입에서 괴소가 새어 나왔다.
“더 강해졌다! 이 정도라면…….”
온몸에 넘쳐나는 강력한 마나.
무함마드는 악마의 조각상을 똑바로 쳐다봤다.
위잉위잉.
오망성의 새카만 마법진이 진동하며 어둠의 오라를 뿜어냈다.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진.
진득한 어둠의 힘이 오롯이 담겼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수준의 마기 농도다.
“설마…… 결계가!!!”
무함마드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파르르 몸을 떨었다.
콰득!
다급하게 중지를 이로 깨무는 무함마드.
촤아앗.
터져 나온 새카만 피가 마법진 위로 떨어졌다.
농축된 어둠의 힘이 가미된 무함마드의 피.
파아아앗!
마법진은 더욱더 강한 어둠의 오라를 뿜어냈다.
그리고.
“어둠의 존재여……. 맹약의 계약자가 강림을 원하노라!!!”
맹약을 언급하며 소환주문술을 펼쳤다.
과거에도 수없이 펼쳐보았기에 다른 행동은 필요 없었다.
“…….”
그러나 마함마드의 기대와는 달리 소환마법진은 조용하기만 했다.
“하아.”
금세 그의 입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터졌다.
그런데 그 순간.
파아아아아앗!
엄청난 마나가 한 방에 터졌다.
동시에.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들려오는 낯설고 횡포한 포효.
“허억!”
무함마드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절대 열리지 않았던 자신의 소환수.
체구는 작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피를 갈구하는 핏빛 가득한 눈동자는 분명 그놈이 맞았다.
“코즈바르!”
“쿠아아아아아!”
무함마드의 부름에 소환수가 사나운 울음을 토했다.
소환수 코즈바르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무함마드를 응시했다.
“지, 진짜 결계가 뚫렸다!”
무함마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동에 휩싸였다.
흑마법사는 어둠의 힘뿐만 아니라 소환수에 의해 능력이 결정됐다.
과거 지구로 같이 이동했던 마법사들에게 패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소환수가 없는 흑마법사는 그야말로 반쪽짜리.
그런데 이 자리에 소환수가 결계를 뚫고 임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환희에 차 광소를 터트리는 무함마드.
“다 죽었어! 이 지구에 지옥을 선물하겠노라! 크하하하하하하하!”
***
- 어둠의 힘이 결계를 돌파했습니다.
어둠의 힘? 돌파?
갑자기 들린 알림음 내용이다.
요즘 들어 알림음 상태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다.
계속 언급되고 있는 결계라는 말.
들을 때마다 몹시 섬뜩한 기분이 든다.
무엇인가 내가 전혀 모르는 어떤 사건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한 기분.
“……네놈이 그걸 어떻게…….”
목덜미가 붙잡힌 마법사가 벌벌 떨었다.
일단 멀린을 처리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다.
“뭔지 알지?”
살랑살랑 병을 흔들어 보였다.
파르르 파르르.
멀린이 사정없이 몸을 떤다.
다른 이들은 못 구해서 안달이지만 마법사에게는 독과 다름없는 액체.
“내가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이 방법밖에 없더라고.”
클라라와 아이를 해치지 않고 멀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고심한 끝에 찾아낸 방법이다.
그건 바로.
“서, 성수가 어찌 네놈 손에…….”
“오! 단박에 알아보네? 보면 알겠지만 최고급이야. 신의 은총을 듬뿍 받은 사제가 100일 동안 찬물로 목욕재계하며 기도해서 제조한 성수니까 효과는 직빵이지.”
내가 보유하고 있는 성수 중에 가장 좋은 녀석으로 골랐다.
약간 희석해 중국에 팔아먹어도 엄청나게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물건이다.
그 귀한 걸 아낌없이 투입할 생각이다.
악독한 마법사에게 선사할 시원하고 뜨거운 맛.
뿅!
성수병 마개를 이로 열었다.
툭!
마개는 바닥에 버렸다.
강화 처리된 유리병 속의 투명한 성수.
시원한 향기가 순식간에 공간으로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신선한 성수의 향이 퍼지자마자 멀린이 진저리를 쳤다.
남들에게는 보약이고 성수이지만 마법사에게는 독약이다.
신에 의해 정화되어 창조되는 완벽한 성수와 신성과 반대되는 성질로 탄생한 마법사의 역천의 마나는 상극이다.
양과 음처럼 둘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성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과거부터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어도 성수를 뿌리거나 힐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도 독약으로 작용했다.
“마셔봐. 정신이 번쩍 들 거야.”
성수를 들어 멀린의 입으로 가져갔다.
“싫어! 싫다고!!!”
멀린이 어린아이처럼 도리질했다.
귀엽다.
허세 부리며 갑질하던 마법사는 어디 가고 떼쓰는 아이만 남았다.
“크, 클라라가 죽을 수 있다!”
놈이 마지막까지 구라를 친다.
“거짓말도 적당히 해라. 이걸 네가 마시는 순간 클라라는 마법의 저주에서 풀린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고심했다.
모든 마법적 지식을 다 훑었다.
그리고 찾아낸 최선의 방법이 이거다.
성수는 일반인의 몸에 깃든 저주를 풀어내는 데 특효약이다.
멀린이 흑마법사는 아니었지만 저주 술법의 원리는 동일했다.
“……포기하겠다! 그러니 날 놓아줘!”
멀린이 바로 꼬리를 말았다.
“싫어.”
“……뭐라고?”
“갑자기 궁금해졌어. 네놈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씨이익.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고통을 남겨주고 싶었다.
이 사악한 마법사 놈의 영혼에 새길 신의 흔적 같은 것이다.
“악독한 놈! 네놈을…….”
멀린이 날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나를 죽이려 했던 자신의 행동은 이미 잊은 듯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툭!
멀린의 입에 성수병을 댔다.
목덜미를 강하게 움켜잡힌 탓에 도망가지도 못하는 신세의 멀린.
공포로 눈동자가 까뒤집어졌다.
“지옥에 가면 아서 왕과 사이좋게 지내.”
목을 뒤로 꺾고 성수를 멀린의 입에 부었다.
꿀꺽꿀꺽.
사악한 마법사는 눈을 부릅뜬 채 성수를 잘도 삼켰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성수를 다 마신 뒤 곧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마법사를 고문할 때 성수를 즐겨 사용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크아아아아아! 커어어어억!”
비명이 서라운드로 재생됐다.
쿵!
게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멀린을 바닥에 내던졌다.
콰당 콰다다당.
바닥을 뒹구는 사악한 마법사의 최후.
속이 다 후련하다.
파르르르.
그러다 어느 순간 발작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맥없이 풀리는 몸뚱이.
서서히 감기는 눈동자로 나를 마지막까지 노려보는 멀린.
“네놈을…… 저주하겠……다.”
마지막까지 반성이라고는 조금도 할 줄 모르는 자다.
투욱.
고개가 꺾였다.
슈르릇.
사악한 마법사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잡아채지 못했다.
저승사자들도 멀린을 데려가지 못할 것이다.
차원이 다른 영혼체다.
“으으으으으…….”
작은 신음이 들렸다.
멀린에게 육체를 강탈당했던 진짜 기사 단장이 힘겹게 눈을 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인가 하는 의문 띤 눈빛이다.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르노 발루아 백작님.”
본래의 나의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니엘 장 공작이라고 합니다.”
“???”
***
“컥!”
멀쩡히 검을 휘두르던 한 남자.
갑자기 심장을 움켜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구해줄 자가 아무도 없는 수련실.
“크아아아아아아아!”
콰당 콰당!
목젖을 부여잡고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사방을 굴렀다.
독약이라도 마신 듯 그의 몸부림은 처절하고 애처로웠다.
파르르르르르르르.
그러다 어느 순간 기괴한 발작을 멈췄다.
온몸의 힘이 풀린 듯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스르릇.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다니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네놈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이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