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장. 다 너 때문이야!
“헛!!!”
가브리엘은 믿기지 않는 모습에 신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정령과 키스라니!
절대 지구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전직 마녀 유령으로 짐작되는 신의 피조물.
다니엘은 정령이라고 말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요정 같은 존재도 부정하는 신실한 신의 종이 바로 가브리엘이었다.
그런 그가 물의 유령과 다니엘이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눈으로 봤다.
“으으으.”
짧은 신음이 가브리엘의 입술을 열고 흘러나왔다.
초승달 아래 푸른빛에 온전히 휩싸인 두 존재.
그들의 입술이 닿는 순간 푸른빛이 먼 우주를 향해 뻗어나갔다.
괴사의 연속이었다.
마치 판타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인간 마법사와 유령이나 진배없는 정령의 사랑 이야기.
그런데 사랑?
가브리엘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죽이려던 공격을 퍼붓던 사이다.
남녀 간의 애정은 무의미하다 여기며 살아왔던 신의 종에게 둘의 키스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하지만.
“……하아.”
절로 부러움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조절할 수 없는 감정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술이 난 것처럼 볼이 부풀어 올랐다.
둘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불쑥 심장이 뜨거워지며 분노가 일었다.
전에는 쉽게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었다.
“주여…….”
가브리엘은 습관처럼 신을 찾았다.
교황청 소속 백색 기사단은 절대 파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사제 서품 회수는 교황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리고 성령의 선택을 받은 백색 기사단을 교황 성하가 놓아줄 리 없었다.
교황청 비밀 법규에서 백색 기사단은 서품 회수 불가능자로 명시되어 있다.
죽어서야 끝나는 기사단원으로서의 삶인 것이다.
파아아앗!
그사이 갑자기 둘 사이에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임했다.
한층 더 신비로운 하늘색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신이 축복하는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서…… 성령?”
가브리엘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적 있는 눈앞의 빛에 깜짝 놀랐다.
분명 성령이 임하는 기적의 순간에 나타나는 빛의 파장이었다.
눈을 비비며 아무리 다시 살펴봐도 성령이었다.
“신이 허락했던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과거라면 저 둘은 이단 심판을 받고 화염에 불태워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분명 신의 가피가 임하고 있다.
가브리엘은 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다.
그저 오로지 한 분만을 주신으로 모시는 신실한 종일 뿐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거야? 난 안 보여?”
가브리엘은 둘을 지켜보다 어이가 없었다.
고결한 성기사가 버젓이 앞에 있는데 저렇듯 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두 존재.
진흙 범벅이 된 가브리엘의 입술이 불만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러나 함부로 항의할 수도 없었다.
괜히 한 마디 던졌다가 둘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엄두나지 않는 초월적 존재들에게 반항과 질투는 무의미했다.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고서클 마법! 반드시 배우고 말겠어!”
***
정령왕이 왜 나와?
신들이 축복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구 최초 정령 계약을 맺은 존재라는 타이틀에 대한 값이라 받아들였다.
문제는 물의 정령왕이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지구에서 존재 유무를 떠나 아예 불리지 않는 이름이다.
이계에서도 그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던 물의 정령왕이다.
그런데 그가 나를 축복했다.
내가 아는 한 정령들은 차원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령왕도 같은 제약이 적용될 것이다.
“음…….”
눈을 감고 있던 비비안이 뭔가에 놀란 듯 신음을 흘리며 입술을 뗐다.
“이게……. 뭐죠?”
그녀가 뜬금없이 묻는다.
“네?”
“갑자기 몸에 이상한 기운이 가득 찼어요.”
비비안이 많이 당황했다.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혹시 무슨 소리 듣지 않았어요? 정령왕이라든가…….”
“맞아요! 물의 정령왕이라는 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셨어요.”
비비안이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모든 정령들은 정령왕들의 자식과 같다.
“으음.”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새로운 일이 발생한 게 확실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어요.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에…… 마치 그때 안겨본 엄마 품처럼 따뜻했어요.”
“다른 말은 없던가요?”
“……오라고 했어요.”
“???”
“정령계로 당장 오라고…….”
“저, 정령계요?”
비비안과의 달달했던 키스는 한순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정령계로 어떻게…….
“다니엘 님.”
갑자기 비비안이 심각한 눈빛으로 날 부른다.
“기다릴게요.”
“그게 무슨…….”
“보여요, 가는 길이.”
“길요? 설마!”
“그분이 절 부르고 있어요.”
비비안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시선으로 호수를 바라보는 비비안.
위이잉 위잉.
순간 그녀의 발밑으로 무수히 많은 동심원이 만들어지며 파장을 일으켰다.
“!!!”
나도 처음 보는 장면이다.
스르릇.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내 의지가 담긴 행동이 아니었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정령사님…….”
비비안이 나의 뺨을 오른손으로 쓸어 만졌다.
동시에 촉촉해지는 그녀의 눈동자.
그 순간!
파아아앗!
갑자기 호수에서 엄청난 빛이 터졌다.
“!!!”
순식간에 빛과 함께 사라져 가는 비비안.
“비비……안?”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정령은 정령사의 부름에 반드시 응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비비안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갑작스럽게 물의 정령왕의 부름을 받았다며 사라져 버린 인간 정령 비비안.
알고 있는 정령에 대한 상식에 이런 경우는 없었다.
“진짜 정령계로 간 거야?”
호수 주변 어디에서도 비비안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다니엘 님!!! 무슨 일 있습니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가브리엘이 나를 불렀다.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감춰진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 결계가 제거됐습니다.
뜬금없이 알림음이 들렸다.
“결계?”
알림음은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이후 입을 닫았다.
상황의 심각성 때문인지 인상이 굳어졌다.
“마녀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리고 사악한 마법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여기서 이동해야 했다.
우선 멀린을 제거하고 난 뒤 차차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멀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
“???”
멀린은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밖에서 강렬한 마나 파장이 전해져 왔다.
계획대로 비비안이 다니엘이라는 놈과 전투를 시작했음이 확실했다.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비비안의 마법 실력은 자신을 뛰어넘는다.
과거의 자신이 구현했던 마법 능력을 회복해도 그녀를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더욱이 물의 정령이 되었으니 호수에서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 마나 파장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건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된 거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노련한 마법사의 준비라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멀린은 초조해졌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비비안이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패배한 건 아니겠지?”
애써 고개를 드는 부정적 의식을 외면했다.
“흐흐흐. 상관없어. 나에게는 인질이 있으니.”
다니엘과 두 계집이 상당히 인연이 깊은 사이라는 걸 확신했다.
단장의 딸이 보이는 절대적 신념은 평범한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신한 클라라도 마찬가지.
배를 두 손으로 보호하면서 다니엘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흐흐흐. 다들 꿈 깨. 놈은 너희들을 구할 수 없어.”
“다니엘은…… 반드시 올 거야!”
비비안의 기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멀린에게 맞아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리면서도 두 눈으로 사납게 노려봤다.
그 와중에도 클라라를 보호하기 위해 앞에 섰다.
“안타깝지만 불가능해. 알다시피 저년과 난 마법으로 연결되어 있어.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바로 전달이 돼.”
멀린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멀린은 과거 감춰놨던 마법 무구들을 장착했다.
특별히 제작한 은빛 마법 망토와 손에 들린 진짜 마법 지팡이.
아쉽게도 마력석의 양이 부족했지만 인간을 상대하는 데 사용하기에는 충분했다.
“다니엘은 너 같은 사악한 마법사 따위에게 절대 패하지 않아!”
비비안은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맞섰다.
“아직 덜 맞은 것 같구나. 흐흐흐. 기다려라. 놈이 죽으면……. 널 아사신 놈들에게 팔아먹을 것이야.”
“!!!”
아사신이라는 말에 비비안이 입을 다물었다.
아사신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그녀를 데려갈 게 빤했다.
그때!
쿠우웅!
멀린의 동굴에 충격이 가해졌다.
퍼어어엉!
뭔가가 부서지는 소음도 이어 들렸다.
“젠장! 실패한 것 같군!”
멀린이 잔뜩 인상을 썼다.
1차 방어 마법진이 붕괴되었음을 알았다.
‘생각보다 더 강한 놈이야!’
멀린은 마법 지팡이를 움켜잡았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정면 승부가 남아 있었다.
“사악한 마법사여! 어디 있는가!”
교황청에서 보낸 기사의 목소리였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고 있었다.
“신의 뜻을 거역한 네놈을 뜨거운 장작불에 태워 죽을 것이다!”
멀린을 자극했다.
“그래. 네놈부터 죽여주지! 흐흐흐.”
멀린의 눈빛이 사악한 빛을 띠었다.
사락.
망토를 잡고 몸을 감싸는 멀린.
“하이드!”
그 순간.
팟!
짧은 빛과 함께 멀린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