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7장. 사악한 마법사의 계략(3) (1,192/1,284)

1217장. 사악한 마법사의 계략(3)

“하아.”

가브리엘은 참았던 숨을 짧게 뱉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연이어 벌어졌다.

중세 마녀사냥 이후 이렇게 강력한 마법사의 등장은 처음이다.

사냥에서 어쩌다 살아남아 가끔 나타났던 마법사들도 백색 기사단이 처리했다.

그 경위와 결과는 비밀리에 따로 기록됐다.

마법사들은 마나 폐쇄 과정을 거친 후 수도원으로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때 회수된 마법서와 물품은 교황청 지하에 보관됐다.

과거 마법사들의 능력과 처분 과정은 가브리엘도 익히 알고 있다.

물론 기록으로 남은 내용은 화염구와 날벼락 마나 화살을 쓰는 정도가 전부였다.

각종 시약 사용과 그 밖의 여러 가지 마법 지식은 현대의 과학 기술에 한참 뒤떨어졌다.

총과 대포 등 여러 살상 무기의 등장으로 마법사들은 더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전설로만 전해져 오던 마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플라잉 마법만으로도 이미 놀랄 만한데 이동 마법까지 등장했다.

방금 전 멀린으로 추측되었던 마법사가 눈앞에서 여인들과 사라졌다.

그 순간 발산된 강력한 마나의 기운.

충격인 동시에 공포가 밀려왔다.

‘이걸 지금 보고해야 한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아사신의 흑마법도 대처하기 벅찼다.

흑마법사들 때문에 지금 백색 기사단 몇몇은 파견 나가 있는 상황.

그나마 쉬운 일에 속한 것으로 평가됐던 아르노 발루아 백작의 변절 건.

막상 직면하니 상상 이상의 사건이다.

마법사 멀린이 백작의 몸을 차지했다.

임신한 백작의 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교황 성하도 믿지 못할 사건이 분명했다.

“으으으…….”

으음.

멀린이 사라지자 성전 기사단원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단장님은!”

“사악한 마법사는?”

“헛!”

“비비안 님!!!”

기사단원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이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마법사의 한마디에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가브리엘에게 누군가 물었다.

“……이동 마법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져요?”

“누가 말입니까?”

기사단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총구를 겨냥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는 사악한 마법사.

“마법사와 백작님의 임신한 며느님, 그리고 비비안 님입니다.”

가브리엘이 정확히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답했다.

“오! 세상에!”

“클라라 님과 비비안 님이……. 크으윽.”

“마……법으로 말입니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신이시여!”

기사들은 하나같이 패닉에 빠졌다.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분노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기사단의 수치였다.

자신들이 섬기던 단장이 사악한 마법사에게 오염된 사실도 몰랐다.

과거라면 기사직을 내려놓고 자결을 해야만 겨우 용서받을 수 있는 실책이다.

“…….”

가브리엘은 마음이 쓰라렸다.

기사들의 분노와 절망에 동감했다.

자신도 교황님이 마법사에게 당했다면 죽어 신을 뵐 면목이 없었을 입장이다.

그럼에도 가브리엘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 아벨린 님은!”

“설마 아벨린 님도!!!”

성전 기사단의 마스코트로 여겨지고 있던 아벨린.

귀염성과 예의 바름으로 기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소녀였다.

저벅저벅.

그때 클라라가 머물고 있던 방의 창가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다니엘!”

다니엘이 아벨린을 안고 있었다.

울다 잠든 듯 아벨린의 눈가 주위로 마른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스윽.

자신을 쳐다보는 성전 기사단원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다니엘.

“아벨린은 내가 데려간다.”

생각지 못한 다니엘의 선언.

“아, 안 됩니다! 아벨린 님은 발루아 가문의 자손입니다!”

선임 기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경들은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면 아벨린을 지켜낼 수 있나?”

차가운 질문이 돌아왔다.

“크으…….”

기사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켜내지 못할 게 자명했다.

“아벨린과 약조했다. 클라라와 비비안을 다시 이곳으로 대려다 놓겠다고.”

다니엘은 강자다.

이곳에 있는 모든 성전 기사단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다니엘밖에 없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디로 데려가신단 말입니까!”

“신이 있는 곳으로.”

말과 함께 가브리엘을 바라보는 다니엘.

‘신? 설마!!!’

가브리엘의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

“이곳은…….”

가브리엘은 비행기의 문이 열리면서 밀려드는 마른 공기 냄새에 할 말을 잃었다.

신이 있는 곳으로 아벨린을 데려가겠다는 말에 내심 기대가 컸다.

상부에도 그렇게 보고했다.

신비한 마법사 다니엘이 교황이 계시는 로마로 간다고 말이다.

그런데 착륙해 보니 전혀 다른 곳이다.

오래된 도시와 성벽, 그리고 전쟁의 기운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

“문제 있습니까?”

“로마가 아니지 않습니까!”

“로마로 간다고 했습니까?”

“신이 계신 곳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이곳에는 신이 안 계십니다!”

“그분이 섭섭하다 하시겠습니다.”

“누구 말입니까?”

“알면서 모르는 척 묻는 것도 죄입니다.”

“…….”

가브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연속되는 악재에 피곤했고 다니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 떴을 뿐인데 도착해 보니 이스라엘이었다.

“다니엘 아저씨 여기가 어디예요?”

잠에서 깬 아벨린이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광경을 보고 묻는다.

“엄마와 이모를 나쁜 마법사에게서 구출할 동안 아벨린을 보호해 줄 예쁜 언니가 있는 곳이야.”

“예쁜 언니요? 정말요???”

‘예쁜 언니?’

가브리엘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오는 동안 다니엘은 침묵에 잠겨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당연히 로마로 향하는 줄 알았고 그래서 가브리엘 역시 덩달아 침묵했다.

사실 다니엘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았다.

마법 실력은 물론 어떻게 사악한 마법사를 찾아낼지도 말이다.

무엇보다 상부 보고가 우선이었다.

간략한 보고에도 교황청은 난리가 났다.

강력하고 사악한 마법사의 등장은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수호하는 교황청에 있어 재난과 같았다.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아사신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군이라 여겼던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마법사에 오염됐다.

이보다 중대한 변수가 없을 정도다.

“다니엘 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로마로 가시지요. 그곳에는 신께서 축복하신 교황 성하와 정의롭고 강력한 백색 기사단이…….”

“강력한 누구요?”

다니엘이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반문했다.

“끄응.”

가브리엘이 신음을 삼켰다.

그저 부끄러웠다.

하늘을 훨훨 나는 마법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격 마법에 통구이가 되어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자신보다 강한 기사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그들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교황 성하도 위험했다.

사악한 마법사가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가 마음먹고 교황 성하를 습격한다면…….

부르르르.

상상만으로도 가브리엘의 몸이 떨렸다.

기록되지 않은 과거 사실에도 교황에 대한 공격은 빈번했다.

내부 갈등에 의한 암습 말고도 외부 공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각또각.

계단을 오르는 가벼운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자가용 비행기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누구?’

가브리엘의 시선이 입구를 향했다.

다니엘이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기에 여성이라는 정도는 짐작했다.

먼저 내부로 퍼져 들어오는 은은한 향기가 코를 상쾌하게 만들었다.

말할 수 없는 신비로운 향.

“왔어요!”

엄마를 잃은 충격에도 아벨린은 씩씩했다.

엄마가 말한 기사 아저씨가 모두를 구해 줄 거라 확신하는 눈치다.

잠깐 사이 아벨린은 기분이 좋아졌다.

다니엘 아저씨와 있으면서 심적 평안을 느꼈다.

마치 아빠와 있는 것처럼 마음에 안정감이 들었다.

“???”

가브리엘은 들어서는 여인을 보며 의구심을 가졌다.

얼굴은 기도용 숄로 가린 채다.

풍성한 황금빛이 도는 갈색 머리칼은 일부 감춰지지 않았다.

몸짓 하나하나에서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교황 성하를 볼 때 느꼈던 그 기운과 비슷했다.

“미안해요. 로리아나.”

다니엘이 들어서는 여인을 보고 먼저 사과했다.

“괜찮아요. 다니엘.”

차분하게 대답하는 여인.

‘로리아나……. 어디서 많이 듣던……. 허! 설마 그 로리아나?’

가브리엘은 여인의 이름을 곱씹다 이내 깜짝 놀랐다.

백색 기사단원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중요 인물 정보에 익숙했다.

그중에 로리아나라는 이름도 있었다.

“야훼바트…….”

부지불식간에 가브리엘의 입이 열렸다.

“절 아시나요?”

기도용 숄을 벗으며 가브리엘을 바라보는 로리아나.

“!!!”

가브리엘은 진심으로 놀랐다.

미녀다.

이탈리아에도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들은 많았다.

다만 야훼바트인 로리아나의 외모는 확실히 어딘가 달랐다.

그건 바로.

‘성력이라니……!’

신을 섬기는 자에게서만 풍기고 느껴지는 성력.

약한 수준의 감흥이 아니다.

절로 고개 숙이고 싶은 데서 오는 내적 갈등이 생겼다.

야훼바트의 진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가브리엘은 감히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백색 기사단의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우선 소속을 밝혔다.

같은 신을 섬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과거에는 신에 대한 문제로 수시로 전쟁까지 벌였다.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는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관계가 편하지 않았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선에서 멈췄다.

야훼바트의 또 다른 신분은 차일드 가문의 수장.

아무리 교황청이라 해도 돈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가브리엘 님이셨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로리아나라고 합니다.”

만나기 어렵고 신비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야훼바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다니엘……. 도대체 당신 정체가…….’

야훼바트는 교황 성하보다 더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다.

차라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라는 말이 더 맞았다.

일반인은 아예 알지도 못하는 야훼의 진정한 자녀.

그런 야훼바트를 다니엘이 비행기로 불러들였다.

“아벨린 인사드려. 아저씨가 말했던 분이야.”

“헤에……. 아저씨 말대로 엄청 예뻐요. 우리 엄마보다는 못하지만.”

아벨린이 로리아나를 보며 웃는다.

사르르.

예쁘다는 말에 로리아나가 미소 짓는다.

다니엘의 입으로 직접 듣는 말보다 기분이 좋았다.

“로리아나, 아벨린의 안전을 부탁드립니다.”

“바로 떠나실 건가요?”

“네.”

“……어디로 가시나요?”

로리아나는 서운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다니엘.

그의 몸에서 뜨거운 분노가 느껴졌다.

“영국으로 갑니다.”

“여, 영국요???”

가브리엘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회귀의 전설 3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