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장.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퍼엉! 퍼버버버벙!
아르노 발루아 백작의 별장 성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렸다.
슈슈슈슈슈슛,
수십 개가 넘는 불똥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아래로 떨어졌다.
장관이다.
마치 거대한 축제 속 폭죽처럼 화려하게 터지며 산화된 불꽃들.
화르르르르르르.
성 주변으로 깔린 잔디와 조경수가 불길에 휩싸이며 타올랐다.
“부, 불이야!!!”
“기습이다!!!”
경호를 서던 기사단원들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때르르르르르르르릉.
거친 신호음이 별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타다다다다닥.
총과 검 등 각종 무기를 든 성전 기사단 기사들이 일시에 튀어나왔다.
아사신 때문에 언제나 긴장 상태를 유지했던 그들도 크게 당황했다.
이스라엘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아사신의 공격 이후 전방위적으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야훼바트처럼 자신들도 어느 틈에 당할지 몰랐다.
빈틈없이 경계를 서고 있던 중에 발생한 한바탕 불꽃 쇼.
“어!”
“다, 단장님이다!!!”
“마……법!”
마침 자신들의 주군인 기사단장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기사들 모두 동작을 멈추고 어리둥절해했다.
지금 상황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주군은 기사다.
얼마 전 수련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그사이 저 정도의 마법을 펼칠 만큼 대단한 능력자는 아니었다.
“……다니엘이다!”
“으음.”
기사단장 맞은편에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로브를 착용한 자는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다니엘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 기사들 대부분 그를 알고 있다.
그에게 목숨을 빚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전투와 이스라엘에서 다니엘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사신이 조종하는 괴물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적이 아닌,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동료였다.
“…….”
불꽃이 터지는 주변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사들은 뭣들 하는가! 적이 기습해왔다! 죽여라!!!”
기사단장이 머뭇거리는 기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단원들이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봤다.
단장의 명령은 지엄했지만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명령이라고 해도 다짜고짜 다니엘을 죽일 수는 없었다.
“불복종인가!”
기사단장인 백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기사들은 여전히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내적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파아앗!
갑자기 한 차례 강한 빛이 터졌다.
“헛!”
“저 갑옷은!!!”
***
“와, 왔어! 그가 왔어!”
클라라는 소란한 바깥 소음에 벅찬 감정을 느꼈다.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그녀의 감정이 심하게 동요했다.
“엄마, 누가 왔는데?”
똑똑한 딸이 클라라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어른들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린 딸은 손에 곰 인형을 쥐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띠었다.
“……아벨린과 엄마 그리고 동생을 괴물로부터 지켜줄 용감한 분이 오셨어.”
“정말? 기사님이야?”
아벨린이 바로 흥미를 보였다.
“그래. 기사님.”
클라라에게 다니엘은 진짜 기사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곁에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게 없을 만큼 든든했다.
“보고 싶어! 기사님 어딨어?”
아벨린이 창가로 다가갔다.
태교를 위해 삼면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창문 있는 방으로 배정됐다.
당연히 유리창은 모두 방탄 처리되어 있다.
클라라가 아벨린의 손을 잡고 창가에 함께 섰다.
밖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경고 사이렌 소리는 멈춘 상황이다.
방음이 잘 되는 방탄 3중창 구조였지만 꽤 소란스러웠던 바깥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괴물이 다니엘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소리였다.
기사단원들이 곧바로 명령을 따르지 않고 주저했다.
남편 루이스도 인정했던 다니엘의 능력.
기사단원들 대부분이 그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했다.
파아아앗!
그때 백색에 가까운 은빛 광채가 성 위쪽에서 번쩍였다.
기역자로 꺾인 구조를 한 클라라의 방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중앙 성벽 위쪽.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한 남자가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기사님이다!!!”
아벨린이 그를 보고 외쳤다.
“???”
클라라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 찼다.
분명 다니엘은 기사 옆에 서 있었다.
청바지에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누가 봐도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누구…….’
다니엘과 동행한 듯한 사람은 처음 보는 자다.
클라라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가득 들어차던 그때.
“신께 충성하는 성전 기사단의 기사들이여! 난 신께 목숨을 맡긴 백색 기사단의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백색 기사단!”
“백색 기사단을 상징하는 성령의 갑옷이다!”
성전 기사단원들이 갑옷의 실체를 알아봤다.
성령의 축복을 받아 특수 제작되었다는 갑옷은 백색 기사단의 상징과도 같았다.
“저기 저자는 그대들이 따르는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아닙니다!”
가브리엘이 백작을 가리키며 외쳤다.
“뭐라고?”
“그게 무슨…….”
성전 기사단원들이 크게 당황했다.
누가 봐도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맞았다.
마법 능력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했지만 모습은 분명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었다.
“단장님이 아사신에 의해 오염됐다는 말입니까!”
기사들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야훼를 섬기는 차일드 가문의 장로들 중에도 오염된 자가 있었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주군이 아니라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재차 확인하듯 묻는 기사.
“확인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때 옆에 있던 다니엘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간단?’
가브리엘이 그런 다니엘을 보며 의문의 눈빛을 보였다.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백작이 가짜라는 걸 증명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누가 봐도 상대는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었다.
하지만 뭔가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한 다니엘.
“뭣들 하는가! 경들은 자신들의 단장인 나를 진정 몰라보는가! 그러고도 어찌 성전 기사단의 기사들이라 하겠는가!”
백작이 준엄하게 꾸짖었다.
기사들이 다니엘을 빤히 바라봤다.
“백작님 주기도문 아시죠?”
갑자기 주기도문을 언급하는 다니엘.
“물론이다!”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당당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외워보십시오.”
“감히 날 희롱하는가!!!”
백작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신을 믿는 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주기도문.
‘흐흐. 멍청한 새끼. 그걸 지금 증명할 방법이라고 꺼내놓은 건가?’
멀린은 속으로 한껏 비웃음을 날렸다.
기사들과 식사하거나 모임을 가질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웠다.
아르노 발루아 백작의 기억을 흡수한 만큼 성경 내용도 깊게 파악하고 있다.
“외워보시라니까요.”
다니엘이 채근했다.
“주기도문으로 날 증명한 뒤에 너희들을 기사단 능멸죄로 처단하겠다!”
멀린이 기회를 잡고 준엄하게 외쳤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멀린이 신심 가득한 목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잠깐!”
그때 끼어드는 다니엘.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 주십시오.”
“뭘 말인가!!!”
“아주 간단합니다.”
멀린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하는 다니엘에게 짜증이 났다.
조금 전 다니엘의 마법을 보고 사실 크게 놀랐다.
아직 회복 단계지만 분명히 5서클 정도의 마나가 담겨 있는 파이어 볼이었다.
그걸 파이어 미사일로 간단하게 제거해 버린 다니엘.
분명 저서클이 아닌 게 확실하다.
이럴 때일수록 기사단이 필요했다.
그들이 소유한 총기를 사용해 난사하면 마법사라 해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틈을 노리고 공격하리라 계획을 수정한 터였다.
“말하라!”
기사단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큼 최대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마나의 이름으로 약속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주기도문 앞에 아주 간단하게.”
“!!!”
‘마나의 이름’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멀린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냥 뱉는 말과 ‘마나의 이름’으로 약속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부정하려 했지만 멀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파바바밧.
기사들의 시선이 백작에게 집중됐다.
“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마나의 이름으로 난 멀린이 아니다’ 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헉!!!”
자신의 이름이 발설되자 멀린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자신의 비밀.
놀랍게도 다니엘이라는 자가 정황을 꿰뚫고 있었다.
쉽지만 가장 어려운 맹약이 바로 마나의 이름으로 맺는 것이다.
마나의 이름으로 뱉어진 맹약은 마법사라면 누구도 파훼할 수 없다.
마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언령은 마나와의 절대 약속인 것이다.
‘이놈은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파르르 몸을 떨며 다니엘을 악독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멀린.
“멀린? 그 전설의 마법사 멀린?”
“설마…….”
기사들이 얘기를 듣고 있다 크게 동요했다.
“아르노 발루아 백작은 스스로를 증명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단 심판관의 이름으로……. 당신을 처단하겠다!”
가브리엘이 검을 들고 멀린을 재촉했다.
으드득.
입술을 피가 나도록 강하게 깨무는 멀린.
모든 게 들통나기 일보 직전이다.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아직 난 이 몸뚱이가 필요해!’
멀린은 사악한 눈빛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려 계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답을 금세 찾아냈다.
“어찌 신 앞에 다른 것들을 입에 담고 맹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멀린은 다시 당당하게 외쳤다.
“너희들을 잡아 신 앞에 불경한 죄를 묻겠다! 기사들은 뭣들 하는가! 신을 모욕한 저자들을 속히 제압하라!”
교활한 멀린의 이간질에 기사들은 또다시 당황했다.
이들의 말도 맞고 백작의 말도 맞았다.
상황이 자꾸 꼬이고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누군가 나서서 이 상황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진짜 뻔뻔하구나!”
그 순간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비비안 님이시다!”
기사단장의 딸이자 미래를 보는 능력자인 비비안이었다.
기사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봤다.
비비안은 멀린과 다니엘, 그리고 가브리엘을 번갈아 바라봤다.
“오! 나의 사랑하는 딸아, 속히 아버지의 무죄를 밝혀주거라!”
멀린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반색했다.
백작의 딸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너희들은 다 죽었어!’
비비안이 아버지임을 인정하면 모든 위험 요소는 사라진다.
“사악한 마법사 놈!”
순간 비비안의 비수 같은 말과 시선이 멀린에게 향했다.
냉기가 잔뜩 서려 있는 한마디.
“뭐라고? 지금 나에게…….”
“멀린!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