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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장. 마법의 성(2) (1,187/1,284)

1212장. 마법의 성(2)

번쩍!

지하 수련실에서 수련하던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눈을 번쩍 떴다.

미세하게 감지된 낯선 마나의 힘.

“침입자?”

의심은 들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별장으로 사용하는 성 주변에는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첨단 과학 기구들이 동원돼 감시되고 있다.

충실한 기사들도 호위 중이다.

겉모습만 보기에 아르노 발루아 백작은 완벽했다.

과거와 달리 표정이나 행동이 다소 냉랭했지만 다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아사신은 갈수록 강해졌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사단장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또 클라라의 출산이 임박한 시점이다.

기사단은 미래 기사단장의 탄생에 최선을 다했다.

백작의 몸을 취한 멀린 또한 못지않게 여러 방비에 철저히 준비 중이다.

아사신 놈들은 흑마법사다.

놈들과는 과거부터 관계가 좋지 않았다.

사실 지구로 넘어온 이유도 놈들과 연관이 있었다.

충돌만 없었다면 마탑에서 탑주로 수월하게 올랐을 멀린.

“흐흐흐. 그럴 리가 없지. 다른 건 몰라도 7서클 마법진이야.”

아직 전성기 시절의 마법은 펼칠 수 없지만 마법진은 사정이 달랐다.

한 번 각성한 깨달음은 시간이 흘러도 어디 가지 않았다.

이미 습득한 마법 지식으로 고급 방어와 경계 마법진을 펼쳤다.

멀린은 태생부터 의심이 많았다.

제아무리 가까운 측근이라 해도 쉽게 믿지 않았다.

주변에 마법진을 다량 설치했다.

마력석이 충분하지 않아 성능이 다소 떨어졌지만 지구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두 발로 걸어서 이곳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자는 없어.”

멀린이 깔아 놓은 마법진은 수준이 꽤 높았다.

“와도 상관없다. 마법진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절대 성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흐흐흐.”

멀린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게다가 지금 만들어 놓은 마법진은 마탑에서 즐겨 사용하던 것들이다.

복잡한 마법진인 만큼 멀린만이 해제 가능했다.

“변수는 남아 있는데……. 아직 살아있나 모르겠군.”

멀린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서왕의 아버지로부터 협박받으며 생존을 위협받던 시절.

제자를 수하에 들였다.

눈에 확 띌 정도의 마법사 자질을 보였던 소녀.

여자라는 게 좀 아쉬웠다.

마나의 완벽하고 무결한 길을 걷기 위해서 멀린은 지금까지도 여자를 멀리했다.

색욕이 마법사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 요소이기 때문이다.

마탑에서 수련하는 마법사들 대부분이 동정남이다.

길고 긴 세월, 마법에 미쳐 살기 위해서는 세속적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기본이다.

넘치는 욕망의 기운은 모조리 마법 하나에 집중되어야 했다.

물욕 또한 마법을 위한 재료로 사용됐다.

욕망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자들은 귀족들의 사병이 되거나 용병이 되어 살아갔다.

지구라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멀린은 소녀를 아내로 삼았다.

외톨이나 마찬가지였던 소녀는 멀린을 진심으로 따랐다.

서로 간의 믿음을 쌓기 위해 부부라는 주문을 걸었다.

호수에서 살아가는 미모의 요정이라는 소문도 냈다.

아서 왕을 위한 계획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잘 따르던 아내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심했다.

멀린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반항하던 아내를 멀린은 겁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내가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엄청나게 뛰어났다는 것이다.

멀린이 건네준 마법 지식을 상당한 수준까지 흡수한 아내를 쉽게 제거할 수 없었다.

상처를 치료해주던 멀린이 도리어 밀리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잔머리에서 멀린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앞날을 위해 계략을 사용해 마나의 계약으로 철저하게 결박해 버렸다.

그리고는 제자이자 아내였던 소녀는 호수에 유폐됐다.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멀린은 끝내 육신을 회복하지 못하고 엑스칼리버에 갇혀버렸다.

“생존은 불가능할 것이야. 인간의 몸으로 그렇게 오래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흐흐.”

멀린은 떠올렸던 아내의 생존을 의심하다 이내 부정했다.

자신을 저주하던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보면 알겠지.”

호수에 감춰 둔 자신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라도 영국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점찍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걸 확인해야 한다.

마법사의 낙인을 남기기만 하면 된다.

여차하면 아이를 납치해 도망갈 생각도 갖고 있다.

아비인 루이스에게는 속성 마법 독약을 먹였다.

단시간에 실력은 끌어올리는 반면 부작용이 컸다.

백작가의 모든 걸 빼앗기 위해 멀린은 철저하게 음모를 꾸몄다.

아서에게 힘과 영광, 그리고 파멸을 선물한 마법사는 어디 가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백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양심과는 상관없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서클을 높이기 위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마법사들이 차갑고 냉혈한 자들로 불리는 이유가 선택받은 순간부터 오감 단절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찌릿.

순간 멀린은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전달됐다.

오랜만에 감지하는 경고.

“뭐야?”

멀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정도 경고라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스윽.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멀린.

“설마…… 아사신?”

***

“!!!”

가브리엘은 눈을 부릅떴다.

말로만 듣던 비행 마법.

몸이 허공에 붕 떠서 새처럼 하늘을 날았다.

매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느리지도 않았다.

파라라랏.

로브 자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마법이 펼쳐진 성을 향해 높게 날아갔다.

꿈만 같았다.

과거 재능이 뛰어난 사제 마법사들 중 몇몇이 몸을 공중에 띄운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했다.

사제들은 고서클 마법 습득이 불가능했다.

설령 가능해도 마나가 부족해 비행 마법은 누구도 펼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가브리엘은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다니엘…….’

자신의 손을 잡고 앞서 늠름하게 하늘을 날아가는 동양인 다니엘.

혼자도 아니고 무려 티타늄 쇠사슬 갑옷을 착용한 자신을 데리고 함께 날았다.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마나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진의 영향을 최대한 받지 않는 높이로 날았다.

착!

어느새 성의 최상부에 도달했다.

“음…….”

가브리엘의 입에서 뒤늦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만약 기사단이 플라이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면!’

상상만 해봐도 엄청난 이득이다.

신의 일을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설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전설로 내려오는 또 다른 마법이 떠올랐다.

“혹시…….”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것도 가능하냐고 묻는 겁니까?”

독심술이라도 수련한 듯 빙긋 웃는 다니엘.

파앗!

그의 몸이 투명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

가브리엘의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꿀꺽.

마른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심장이 미친 듯 방망이질해댔다.

플라이 마법과 비교할 수 없는 투명 마법을 눈으로 직접 봤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경지다.

‘어떻게!!!’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다니엘의 목소리.

만약 암습 상황이었다면 가브리엘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두려움과 경외심이 동시에 담겼다.

“쉿! 놈이 뭔가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

가브리엘은 전혀 기척도 못 느꼈다.

‘이곳에 혼자 왔다면…….’

소리도 없이 처리됐을 게 확실했다.

교황청의 지하 비밀 석실 묘비석에 백색 기사단의 누구로 기록될 터였다.

“제법인데. 고서클 마법사라 기감이 발달한 건가?”

가브리엘과 달리 다니엘은 흥미를 드러냈다.

‘백작의 정체를 알고 있단 말인가?’

다니엘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상대에 대해 정체를 파악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놈의 정체가 궁금하십니까?”

다니엘이 가브리엘을 자극했다.

반드시 알고 싶은 가브리엘.

“다니엘 님…….”

조심스럽게 다니엘의 이름을 불렀다.

처음 마주할 때 비행기 안에 허락 없이 들어섰던 패기는 진작 사라졌다.

“백작은 진짜 오염됐습니까?”

“방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누구에게 말입니까? 악령입니까?”

가브리엘이 기회를 포착하고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직접 물어보십시오.”

“???”

“저기 당사자가 나타났으니까요.”

다니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가브리엘.

“헛!!!”

다시 한 번 격한 신음을 흘렸다.

***

“그가 왔어!!!”

자신의 방에서 숨죽이며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던 비비.

확실히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껏 몇 번이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왕자님.

오늘도 먼 거리를 날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타닥.

창가로 걸음을 옮기는 비비.

보안 조치를 핑계로 어제 스마트폰을 빼앗겼다.

저항하지 못했다.

눈치를 챈 것만 같아 심장이 뛰고 조마조마했다.

가끔 보안 조치 때문에 기사들도 스마트폰을 압수당하는 일이 잦았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

아빠의 몸을 차지한 사악한 자에게 계획을 들켜선 안 된다.

그렇게 숨을 죽이며 다니엘을 기다렸다.

초침이 한없이 느리게 움직인다고 착각될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코린 경은 사경을 헤맸고 에두아르는 임무를 받고 사라졌다.

오빠는 수련을 핑계로 멀리 떠났다.

성에 갇힌 새언니를 지켜야 했다.

클라라도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서로 내색하지 않았다.

입 밖에 냈다가는 다칠 수 있다는 걸 둘 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다니엘…….”

비비는 눈을 감았다.

다니엘을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발휘하려는 것이다.

스스슷.

비비의 머릿속에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미래의 상황.

분노한 다니엘의 모습이 나타났다.

간악한 모습으로 광소를 터트리는 아빠도 보였다.

어딘지 모를 호수가 펼쳐진 곳이다.

뭔가 사건이 터진 게 확실한 분위기.

꾸욱.

이마에 힘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더욱 집중하는 비비.

순간 그녀는 보았다.

다니엘을 매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

“마……녀???”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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