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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장. 이단 심판관(3) (1,185/1,284)

1210장. 이단 심판관(3)

휘릭 휘이이이익!

기운을 머금은 새파란 검이 공간을 가른다.

“타앗!”

경쾌한 기합이 이어서 터졌다.

카가가가가강!

무쇠 덩어리로 제작된 형상에서 불꽃이 튀었다.

“허어업!!!”

인간 형상을 한 무쇠 덩어리를 공격하는 루이스의 이마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크드드드득.

놀랍게도 단단한 무쇠 덩어리 신형을 검이 가르며 파고든다.

무를 자르는 것처럼 가볍지는 않지만 한 자루의 검이 쇳덩어리를 벤다는 게 예사롭지는 않았다.

“!!!”

루이스의 이마 위로 굵은 힘줄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공들인 악착같은 수련이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요란한 불꽃만 튀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그리고 뱃속의 태아를 놔두고 수련에만 매진했다.

가정보다는 가문이 우선이었고 가문보다는 기사단이 또 먼저였다.

대대로 내려오는 기사단장의 책무가 그만큼 무거웠다.

지금까지 기사단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쳤다.

루이스 또한 그 길을 숙명으로 알고 걸어야만 한다.

오로지 고독과 싸우며 힘을 냈다.

성과를 얻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사단장의 냉정한 명령이다.

눈으로 직접 아이가 태어나는 걸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강했던 만큼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던 루이스.

‘조금만 더!’

형상의 목이 반절쯤 잘려나갔다.

여기서 멈추면 쇳덩어리에 박힌 검날이 상할 수 있다.

마법검은 아니지만 루이스에게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과거 아버지가 기사단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인정하며 처음 하사한 검이다.

몇 번의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다.

“타아아아아아앗!”

마지막 남은 힘을 짜냈다.

그 순간.

카가가가강!

쇳덩어리 형상의 목이 비명을 지르며 잘려나갔다.

콰다다다당.

바닥에 떨어지는 엄청난 무게의 쇳덩어리 형상의 목.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루이스가 억눌렸던 흥분을 폭발시키며 광소를 터트렸다.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아사신의 목을 따는 일도 가능했다.

“이게 다 아버지가 주신 마법약 덕분이야!”

루이스는 아버지를 향해 진한 신뢰를 보였다.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영국 어딘가의 수련장.

이곳에 올 때 아버지가 마법약을 건넸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마법약은 마나를 대폭 증대시켜 준다고 했다.

아버지를 믿어온 만큼 루이스는 한 치의 의심 없이 약을 복용했다.

그 결과 이렇게 마나가 증폭됐다.

다만.

두근두근두근.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크으으으.”

무리하게 힘을 사용하고 나면 근육의 결을 따라 핏줄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

덩달아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됐다.

마치 루이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직 모자라!!!”

동시에 치솟는 기이한 열감.

특정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루이스는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즐겼다.

감각기관을 통해 무언가를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고 뒤이어 쾌감이 보상처럼 느껴졌다.

마법약을 복용하고 난 후 소소한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주의를 듣긴 했다.

루이스는 요동치는 감정과 예민해진 감각 등이 부작용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수련실에는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거울 하나 없었다.

“다시 시작해 볼까!”

루이스는 다시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목만 잘린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쇳덩어리 형상.

오늘은 이 쇳덩어리를 다 처리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아앗.

검에서 다시 일렁이며 피어나는 파란빛.

루이스는 정작 몸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가 놓치고 있는 외관상의 변화.

특히 그의 등.

본 적 없는 괴물처럼 굵은 근육이 울퉁불퉁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

“…….”

가브리엘이 아무런 말도 없다.

밥값은 하냐는 물음에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나를 보던 성기사님.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고 차갑게 대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햄버거는 꾸역꾸역 잘도 씹어 먹었다.

감자튀김과 콜라도 깔끔하게 비웠다.

서비스로 받은 소스까지 완벽하게 처리했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해소하는 스타일인 듯하다.

부우우우웅.

차는 거침없이 달려 파리 시내를 벗어났다.

과거 비비안과 가족들은 보통 파리 16구에 위치한 대저택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곽에 위치한 가문의 별장으로 사용하는 성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성은 파리 시내와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르노 발루아 백작이 왜 변심했을까요?”

정보는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필요했다.

백색기사단은 다른 루트를 통해 쓸 만한 정보를 찾아냈을 수 있었다.

“여러 정보에 의하면 변심이 아니라 정신이 오염이 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정신 오염요?”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물었다.

마법적 지식이 부족한 성기사들의 능력도 제법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서에 의하면 마녀들은 매혹 마법을 자주 펼쳤습니다. 정신계 마법을 전문으로 다룬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여성들에 대한 억압 장치로 사용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또 다른 실상이 존재했다.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평범한 여인들이 마녀로 매도돼 희생됐지만 진짜 마녀들도 섞여 있긴 했습니다. 마녀라 통칭됐지만 남자 마법사들도 포함된 말입니다.”

가브리엘의 입에서 흥미로운 비사가 흘러나왔다.

“그들 모두 처단됐습니까?”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사신을 비롯해 숨어 있기 쉽지 않은 흑마법사 계열들은 아랍이나 아프리카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은 유럽 곳곳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럼…….”

“계속된 마녀사냥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마법서를 불태우고 마법 무구들을 부셨습니다. 자신들의 후손들이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다만…… 강하고 은밀했던 자들은 숨어 있을 겁니다.”

“지금도 사냥 중입니까?”

스윽.

나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가브리엘.

“그랬다면 당신 옆에 제가 있을 수 없었겠죠.”

많은 의미가 함축된 답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바짝 쫄았을 것이다.

“다행입니다.”

“뭐가 말입니까?”

“가브리엘 님이 제 옆에 있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이런 건 받아쳐야 제맛.

“…….”

“보기보다 제가 성격이 안 좋습니다.”

허튼짓하면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대한민국 조상신들이 분명히 말했다.

건들 때 입 닥치고 있으면 호구 된다고 말이다.

몇 배로 갚아줘야 다시는 물지 않는 법이다.

그 점에서 교황청도 마찬가지다.

정당한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면 그때는 맞짱뜨는 거다.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췄다.

도로 옆 외진 숲속 빈자리에 차를 세웠다.

“왜 갑자기…….”

가브리엘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거의요? 아직…….”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표시된 거리가 상당했다.

대충 잡아도 10킬로 정도.

일반적으로 ‘거의 다’라고 말할 만한 거리는 아니다.

“저기 보이십니까?”

먼 도로 위에 설치된 CCTV를 가리켰다.

“네.”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저곳부터 아르노 백작령에서 관리하는 CCTV입니다. 괜히 포착돼서 좋을 건 없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성전 기사단이다.

그들의 통제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그렇군요…….”

가브리엘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력이 나보다 세심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딸깍.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가브리엘도 조수석 문을 열고 나왔다.

늦은 저녁의 도로는 한산했다.

유럽인들에게 저녁은 안식의 시간이다.

“준비됐습니까?”

“네?”

가브리엘이 많이 당황했다.

밑도 끝도 없는 ‘준비됐냐’는 말에 의문을 표했다.

“햄버거 칼로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죠?”

“…….”

알 리가 없다.

바쁜 성기사가 그런 것까지 계산하며 먹었을 리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찬양하고 성경 필사하고 수련하기에도 바쁠 거다.

“제가 존경하는 한 분이 그러셨습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는 무조건 달리라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유명한 영화에 나온 명대사다.

힘들 때마다 무조건 달리면 웬만한 건 다 해결이 됐다.

오늘도 그렇다.

사악한 마법사가 거주하는 성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놈을 속이기 위해서는 어둠 속을 달려야 한다.

“내기하시죠.”

그냥 달리면 섭섭하다.

한국인 특유의 기질을 확실히 발휘했다.

“???”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햄버거 쏘는 걸로 말입니다.”

파바밧.

가브리엘의 눈빛을 빛났다.

햄버거를 떠나 사나이의 자존심 대결이다.

신의 아들이고 손자고 상관없는 남자들의 사소한 승부욕.

“준비됐습니다!”

가브리엘이 달리기 자세를 취했다.

온몸에서 나를 이기고자 하는 기세가 활활 뿜어져 나왔다.

“땅!”

타다다닥.

신호와 함께 몸을 바람처럼 날렸다.

“이, 이건 반칙이죠!!!”

뒤에서 들려오는 가브리엘의 당황한 목소리.

멈추지 않았다.

“반칙 조항은 없습니다! 이기는 자가 승자일 뿐입니다!”

큰소리로 외쳤다.

“으아아아아아아!”

파라라라랏.

뒤이어 성난 사자의 외침과 함께 로브 휘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닷 탓!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뿐하게 몸을 날렸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연약한 그녀들.

오빠가 지금 온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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