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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장. 이단 심판관(2) (1,184/1,284)

1209장. 이단 심판관(2)

“그렇군요.”

상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가브리엘은 말을 하고도 이상함을 느꼈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이단 심판관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믿는 남자.

‘다니엘 장이라고 했지.’

가브리엘은 진심으로 호기심이 일었다.

그에 대한 정보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성전 기사단이 아사신과의 전투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눈앞의 다니엘 덕분이라고 했다.

기사단장의 딸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동계 올림픽은 물론 야훼바트까지 위기에서 건져냈다.

비밀에 부쳐진 마법 실력까지 탁월하다는 21세기 마법사.

다니엘에 대해 백색기사단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마법사다.

중세라면 마녀라는 미명하에 처단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었다.

더욱이 다니엘은 야훼바트를 비롯해 세계 권력자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중국과 일본과는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지만 러시아의 차르까지 그와 친분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백색기사단을 비롯해 교황청까지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결국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상황을 지켜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결정적으로 가장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아사신과 적대관계였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공식이 통했다.

성전 기사단과도 공존 관계에 있었다.

“왜 이상합니까?”

다니엘이 웃으며 묻는다.

미소가 깔끔했다.

신을 신실하게 믿는 가브리엘은 그에게서 성스러운 기운을 감지했다.

곤혹스러웠다.

과거 성령의 은총에 휩싸여 기사로 점지 될 때의 그 느낌과 흡사했다.

다니엘은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신을 알현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흑마법 매혹술과는 결이 달랐다.

백색기사단에게 흑마법이 절대 상극인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랬다.

“이단 심판관을 믿습니까?”

가브리엘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눈앞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뭘 더 믿어야 할까요?”

“……당신의 신을 믿습니까?”

중요한 질문이다.

가브리엘에게 진짜 친구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물론입니다. 가브리엘 님이 믿는 신을 저도 믿습니다.”

“!!!”

가브리엘은 진심으로 놀랐다.

같은 신을 섬기는 자라 여기지 않았건만 당당히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나 선한 가르침을 펼치는 다른 신들도 믿습니다. 차별 없이.”

해괴한 답변이다.

가브리엘이 믿는 신은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세상은 2천 년이 넘도록 전쟁에 휘말려 평화와 등졌다.

“물론 가브리엘 님에게는 제가 이교도나 이단으로 보이시겠지만 제 솔직한 답변입니다. 세상에 신은 존재합니다. 이 모든 만물이 신의 피조물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보고도 믿지 않는 인간들이 문제지요.”

다니엘은 명쾌하게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다만 전 신보다 인간의 보편적 양심을 우선합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진실함이 바로 신을 향해 나아가는 첫 번째 길이라 생각합니다.”

유일신보다 폭넓은 개념의 신을 설명하는 다니엘이다.

가브리엘도 그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성령의 은총을 맛보았던 존재다.

누구보다 더 그분을 따르고 섬기는 신실한 종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믿지 못할 양심보다 신이 우선이다.

“…….”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조용히 바라봤다.

잠시간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교황청에서도 아르노 발루아 백작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다니엘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어차피 동행이 결정된 마당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비밀을 풀어놔도 무방했다.

“백작과의 비밀 연락이 끊겼습니다.”

“비밀 연락요?”

“그분을 믿는 자에게만 허락된 비밀 연락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끊겼습니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소통 방식이다.

교황청의 비밀 창고를 개방한 뒤 맺었던 약속.

아무리 성전 기사단 단장이라고 해도 별도의 감시가 필요했다.

세상에 알려져 좋을 게 없는 마법서와 무기들.

중세시대 마녀들을 죽이고 빼앗은 것들이 다수였다.

삼신기라 불리는 엄청난 보물들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런 만큼 안전장치를 가동했다.

백작도 동의했다.

특별한 의식으로 완성된 연락 방법.

얼마 전부터 불통이 됐다.

“그랬군요.”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같이 동행하고자 합니까? 백색기사단 전력이라면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습니까?”

뼈를 때리는 질문이다.

가브리엘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교황청을 수호하는 백색기사단은 극소수다.

전부 해봐야 열두 명의 기사들뿐.

충원이 쉽지 않았다.

진실로 신을 믿는가 하는 게 첫 번째 기준이다.

성령의 선택도 받아야만 했다.

육체와 정신도 건강해야 했으며 인내와 끈기도 대단하게 요구됐다.

결정적으로 가족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단절해야만 한다.

중세 수사들처럼 연애나 혼인도 할 수 없다.

교황과 교황청을 경호하고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신의 일을 처리한다.

긴긴 세월 동안 온전하게 생을 마감한 기사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죽음을 맞으면 신의 품에 갈 수 있다는 소망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

가브리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40대 중반이 넘어선 나이다.

서열은 제 7기사.

교황청의 비호 아래 각국 비밀 조직의 도움을 받는다.

백색기사단이 지금껏 세상을 위기에서 구한 일이 수없이 많다.

그렇기에 프랑스 정부도 다니엘의 자가용 비행기를 따로 격납고로 이동시켜 준 것이다.

유럽에서 백색기사단은 성전 기사단보다 위다.

“안타깝게도 백색기사단은 소수 정예입니다. 더 이상 빼낼 전력이 없습니다.”

가브리엘은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다니엘이 알고 물어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저도 소수 정예입니다.”

다니엘이 씨익 웃는다.

장난스런 웃음기가 담겼지만 폄하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자다!’

처음 볼 때부터 확실히 알아챘다.

가브리엘의 실력으로도 상대를 낱낱이 파악할 수 없었다.

도리어 경외심과 함께 은은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갈수록 강해지는 아사신의 괴물들도 홀로 처단했다는 다니엘.

“동행에 조건이 있습니다.”

“???”

다니엘이 조건을 언급했다.

의아한 눈으로 가브리엘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껏 백색기사단의 활동에 조건을 건 이들은 거의 없었다.

“저녁 먹었습니까?”

“네???”

“한국에서는 동지가 되면 일단 밥부터 먹습니다.”

갑자기 먹을 것 얘기를 꺼내는 다니엘.

“그게 조건입니까?”

“네.”

받아들이기 힘든 거창한 조건도 아니다.

단지 밥을 먹는 게 조건이라면…….

“승락하…….”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다니엘이 갑자기 하나 더를 외쳤다.

환하게 미소를 짓는 다니엘.

“처음 만날 때 우리 동네에서는 대부분 형이 밥을 삽니다.”

가브리엘은 어이없는 시선으로 다니엘을 바라봤다.

다니엘은 죽을 수 있는 위험한 거사를 합의하는 자리에서 고작 밥과 밥값을 논했다.

쪼잔한 것 같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제법 센 연봉을 받는 가브리엘.

따로 돈 쓸 일이 없어 통장에 넉넉하게 예탁되어 있다.

형이 된 기념으로 통 크게 저녁을 대접할 의향은 있다.

아니 내심 좋았다.

기사가 된 뒤에도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가브리엘의 세상 취미 한 가지.

그게 바로 미식이었다.

***

“먹어요.”

“아니 이게…….”

“햄버거 처음 봐요?”

“…….”

“신을 섬기는 분이 음식 차별하면 안 됩니다. 몸 쓰는 야근할 때 열량이 중요합니다. 큼지막한 더블 패티가 들어갔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킹 버거가 패티 하나는 끝내줍니다.”

스윽.

햄버거 세트가 들어 있는 큼지막한 종이봉투를 건넸다.

눌러쓴 모자 사이로 보이는 가브리엘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잔돈은 용돈으로 잘 사용하겠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형들이 심부름 값을 팁처럼 줍니다.”

식사비를 요구했다.

100유로 지폐 다섯 장을 받았다.

대체로 형이 밥을 쏜다는 말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기사 가브리엘.

준비성이 철저했다.

공항에 차도 대기시켜놨다.

B사에서 제조한 대형 승용차.

방탄차다.

운전하며 가다 햄버거 체인점 킹버거에 들렀다.

설마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가브리엘.

기대에 철저하게 부응했다.

두툼한 종이봉투를 들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대로 감동을 먹은 듯하다.

“콜라도 점보 사이즈입니다. 감자튀김도 물론 좋아하겠죠? 직원이 케첩과 소스 몇 개를 서비스로 줬습니다. 아낌없이 드십시오.”

운전석에서 햄버거를 꺼내 한입 크게 물었다.

와작.

입안에 확 풍기는 두툼한 패티의 육즙과 상큼하고 달콤한 소스맛.

미식가들이 넘쳐나는 프랑스답게 정크 푸드도 남달랐다.

싱싱한 양파를 비롯해 토마토와 양상추가 제대도 곁들어졌다.

소고기 패티 맛도 훌륭했다.

육질이 부드러웠다.

“…….”

아직도 햄버거를 들고 고민하고 있는 성기사 가브리엘.

“비건이세요?”

꿀꺽 씹던 것을 넘기고 뒤늦게 물었다.

“아……닙니다.”

성기사가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뭔가 대단한 식사를 잔뜩 기대한 것 같다.

놀리는 맛이 쏠쏠했다.

솔직히 낯선 사내와 같이 프랑스식 정찬을 먹는 건 피하고 싶었다.

오늘 처음 본 사내와 2시간이 넘도록 먹게 될지도 모를 저녁 만찬.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아무리 성직자라고 해도 사양하고 싶다.

와사삭.

야채 맛이 끝내줬다.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일이 워낙 많았다.

비비와 클라라와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다.

준비를 거의 마칠 무렵 낯선 이방인이 등장했다.

변수가 발생한 순간이었다.

교황청을 수호하는 비밀의 성기사.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상대해야 할 존재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마법사다.

그렇다면 고서클이 확실하다.

물체를 통해 영혼을 전이시킬 수 있는 자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드물었다.

수준이 아사신 흑마법사만큼은 될 것이다.

은근히 받고 있던 스트레스를 가브리엘을 통해 풀었다.

“휴우.”

짧은 한숨을 내쉬는 성기사.

포기한 듯 종이봉투를 열고 햄버거를 꺼냈다.

그리고 와삭.

배가 고픈 듯 크게 한입을 베어 물었다.

그 와중에도 먹으면서 입을 벌리거나 쩝쩝 소리는 내지 않았다.

교황청의 비밀 기사답게 식사 예절이 깔끔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장난기가 확 돌았다.

“가브리엘 님.”

그를 불렀다.

햄버거를 씹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성기사.

씨익.

활짝 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평소에 밥값은 하시죠?”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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