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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장. 나 좀 도와줘!!!(6) (1,182/1,284)

1207장. 나 좀 도와줘!!!(6)

파르르르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여인의 손이 몹시 떨린다.

한때 폭풍처럼 몰아치던 과거의 인연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절대 통화 같은 것을 하면 안 되는 사이였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명망 있는 가문의 여성으로 신분이 달라졌다.

더욱이 그는 자신 때문에 몇 번씩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게다가 아빠와는 적이다.

사적인 관계를 떠나 국가와 국가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의 선봉장들이었다.

죽음 직전에 내몰렸던 아빠를 살리기 위해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천성 자체가 모질지 못한 남자는 그녀의 바람대로 아빠를 살려줬다.

죽는 순간까지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이제는 무의미해졌다.

클라라는 왼손으로 불룩한 배를 쓰다듬었다.

쿵! 쿵!

막달이 다가오자 태동이 더 힘찼다.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듯 신호가 오늘따라 더 강했다.

- ……클라라.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울컥,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 잊은 줄 알았건만 그의 목소리는 지난날의 추억을 바로 소환했다.

결코 그가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었다.

아빠와 가문, 중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결혼 생활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왕족 출신 명문가답게 가문 사람들은 품격이 넘쳤다.

남편도 클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물론 가문 사람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과거의 추억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 무슨 일 있어?

남자가 특유의 자상한 목소리로 묻는다.

언제나 한결같은 음색이다.

꾸욱.

클라라는 입술을 힘주어 깨물었다.

여인으로서의 클라라는 마음이 무척 여렸다.

사실 이렇게 과거의 남자와 통화할 만한 배짱도 없다.

그러나 엄마 클라라는 달랐다.

한참 사랑스러운 나이의 뛰어노는 아이와 뱃속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부끄러움은 감수할 수 있었다.

“미안해 갑자기 전화해서.”

남자의 번호는 예전 그대로였다.

몇 번이나 번호를 바꿔 온 클라라와는 달랐다.

- 둘째 소식은 들었어. 잘 크고 있지?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물어오는 남자.

“어……. 무럭무럭 크고 있어.”

중국어로 대화가 오갔다.

클라라도 오랜만에 프랑스어가 아닌 광동어를 사용했다.

- 다행이네.

남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클라라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쉽지 않은 결심으로 이루어진 통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고작 안부나 묻기 위해 옛 남자에게 전화를 한 게 아니다.

“응…….”

클라라는 어렵게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도와달라는 말을 뱉고 싶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 클라라.

그가 다시 또 그녀를 다정한 목소리로 부른다.

- 말해봐. 괜찮으니까.

짧은 단어들이지만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의도를 속일 수 없는 그의 배려.

“흐으윽……. 다니엘…….”

클라라가 꾹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 좀 도와줘! 우리 아이들을 구해줘!!!”

클라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 일에 남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 나타난 기사단장이자 시아버지 아르노 발루아 백작의 명을 받고 수련의 길을 떠난 상태다.

그가 있는 장소도 몰랐다.

따로 연락도 없었다.

가혹하고 냉정한 시아버지의 명령.

남편이 아이 출산 때까지만이라도 옆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단박에 거절했다.

기사에게는 가정보다 기사단이 먼저라고 선언했다.

남편이 떠난 뒤 클라라는 보호자를 잃은 것과 매한가지인 처지가 됐다.

엄마가 프랑스에 와 있었지만 만남이 제한됐다.

함께 머물고 있는 시누이 비비안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보였지만 다른 행동은 없었다.

그사이 시아버지는 노골적으로 클라라를 노렸다.

정확히 말하면 클라라의 뱃속 아이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내비쳤다.

손자를 기다리는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배를 볼 때마다 눈빛 속에 담겨 있는 이해하기 힘든 탐욕스러움이 엿보였다.

클라라가 본 건 사람의 눈빛이 아닌 악마의 그것이었다.

홍콩에 있는 아빠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누구 봐도 멀쩡한 시아버지의 행동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자칫 중국과 유럽 문제로 비하 될 우려가 있었다.

방법을 찾던 클라라로서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에서부터 목격해 왔던 다니엘의 신비한 능력.

몇 달 전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남편도 그녀의 생각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다니엘은 절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 알았어. 갈게.

“!!!”

두 번도 묻지 않고 원하던 대답을 해 준 다니엘.

클라라는 깜짝 놀랐다.

그녀였다면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쉽게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그에게 있어 원수의 딸이다.

그럼에도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단번에 와주겠다고 말한 다니엘.

- 그전에 명심해. 절대……. 내색하지 마. 누구에게도 내가 간다는 사실을 말이야.

다니엘이 강한 어조로 당부를 해왔다.

“응……. 알았어.”

클라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뱃속에서 아이가 발길질을 멈췄다.

다니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평안을 찾은 것처럼 느껴졌다.

- 조심해. 위험은 항상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어.

마치 그녀도 모르는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다니엘.

끄덕.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클라라는 그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똑똑.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

띠릭.

통화는 끝났다.

“아가야. 들어가도 되느냐?”

양의 탈을 쓴 악마의 목소리였다.

으득.

입술을 강하게 한 번 깨무는 클라라.

“네. 아버님. 들어오세요.”

클라라는 요동치는 감정을 빠르게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곧 찾아온다고 말한 다니엘.

그가 올 때까지 악마와 거리를 유지하며 치밀한 심리전을 펼쳐야 했다.

***

- 수상하다는 정보를 들었어요.

“그래요?”

로리아나의 정보력은 누구보다 앞섰다.

쇄애애애애앳.

대기를 빠르게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 소음이 들렸다.

김포 공항에서 바로 프랑스로 이동했다.

비비에 이어 클라라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변수의 등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상대는 고대 마법사 멀린으로 추정된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수집해서 나쁠 건 없다.

로리아나와 통화를 했다.

차일드 가문의 배신자들은 대부분 처리된 상태였다.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든 로리아나는 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줬다.

- 기사단장은 특별한 수련을 마쳤어요. 그 이후로 기운과 행동에 변화가 있다고 해요.

유럽을 수호하는 성전 기사단은 차일드 가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난 아사신의 습격 당시에 성전 기사단이 도움을 준 이유이기도 했다.

큰 조력은 아니지만 그렇게 기사단과 차일드 가문은 보이지 않는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협력해 싸우며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

“그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마법이라고 하더군요.”

- 잠자던 마법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야훼께서 말씀하시던 아마겟돈의 등장처럼 말이에요.

로리아나의 목소리에 근심이 서려 있었다.

아사신에 포섭된 장로를 비롯해 배신자들을 처리하긴 했지만 차일드 가문은 그 전과 같은 온전한 힘을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흑마법사의 힘은 강력했다.

신 야훼가 저주를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치밀했다.

특히 수천 년 세월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흑마법사의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죽지 않고 도망쳤다.

그런 놈이 꾸미는 흉계가 언제 또 세상에 악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한 수 더 떠 이번에는 마법사 멀린도 출현했다.

솔로몬 대왕의 어머니도 이계 출신 마법사였다.

내가 이계로 이동할 수 있다면 다른 마법사들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아직도 알다가도 모를 비밀들이 무척 많다.

“경호는 어떻습니까?”

로리아나 쪽도 걱정됐다.

- 야훼의 보호와 다니엘의 마법 무구로 단단히 경비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로리아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따뜻했다.

그녀와의 마지막 키스가 문득 떠오른다.

야훼도 못 본 척했을 정도로 달콤하고 진했던 키스.

빙그레, 어제 일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조심해요. 당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 네…….

로리아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상상됐다.

- 보스. 곧 샤를 드골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기장의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도착한 파리.

파리 시내 야경이 창문 밖으로 펼쳐졌다.

- 도와줄까요?

로리아나가 묻는다.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닙니다. 조용히 처리할 일입니다.”

- 그래도…….

걱정과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부드러운 목소리.

“집에 가는 길에 보러 가겠습니다.”

- 정말요?

로리아나가 깜짝 놀라며 흥분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촤아아아아앗.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엔진 출력을 줄였다.

그리고 이내.

쿵! 쿠르르르르르르르.

가벼운 진동과 함께 활주로에 착륙했다.

“신들은 믿은 자에게 언제나 축복을 허락합니다.”

- 기다릴게요. 당신의 안녕을 기도하면서.

똑똑한 로리아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끼이이이이이이.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동했다.

- 보스. 새로운 주기장으로 안내를 받고 있습니다!

그때 기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

창밖을 내다봤다.

착륙한 다른 비행기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전혀 통보되지 않는 상황 전개였다.

의문이 들었다.

그사이 비행기가 멈췄다.

- 보스 어떻게 할까요?

기장이 묻는다.

“괜찮습니다.”

통화가 가능한 인터폰으로 답했다.

현재로서는 공항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

끼리리릭.

뒤쪽 문이 열렸다.

그 순간.

휘릭.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는 한 존재.

착륙 발판도 없이 점프를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회색 로브를 착용하고 깊게 눌러쓴 일체형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가슴에 큼지막한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파앗!

낯선 침입자의 몸에서 풍기는 신비한 기운.

“성기사?”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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