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장. 나 좀 도와줘!!!
- 속보입니다. 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김현재 대표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다고 합니다. 아웅대 병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의학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맞이한 신이 주신 행운이라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진 연결해 보겠습니다…….
“역시 운이 좋은 놈이야. 뇌수술을 받고도 깨어나다니……. 거 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실.
사건의 배후자가 TV를 보며 못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다시 깨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소견이 지배적이었다.
몇 번씩이나 확인했던 사항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하고 정신을 차린 김현재 대표.
이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사고가 나자마자 당장 줄을 갈아타고 외면하던 의원들이 꽃과 과일바구니를 들고 아웅대가 있는 수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현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는 김현재다.
현 여당에서는 유력한 대권후보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키워 놓은 잠룡이 없는 여당은 자중지란에 빠진 형국이다.
청와대와 기득권이 맞붙자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견이 갈렸다.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들과 반대편에 선 의원들이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사이 대통령과 주순자에 대한 외부 공격은 강도가 더 심각해졌다.
레임덕은 기정사실화됐다.
대통령의 명령이 공무원은 물론 여당 의원들에게도 먹히지 않는다.
은밀히 조기 퇴진 얘기가 흘러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대선.
의원들을 뽑는 총선보다 훨씬 비중이 컸다.
삼권분립을 취하고 있지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 행정 국가여서 그 가진 바 힘이 막강했다.
- ……취재한 바에 따르면 다음 달이면 퇴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다음 달이라……. ”
다른 사건을 꾸미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주변 경비도 삼엄하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이 연달아 터지게 되면 당연히 의심을 받게 된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여러모로 행동을 조심해야만 했다.
수십 년 전 일도 어제 일처럼 까발려지는 시대가 오고 있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실수가 생길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다니는 음모자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만사 완벽하지 않으면 함부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면 안 된다.
삐이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 의원님 차량 대기시켰습니다.
비서관의 목소리였다.
“과일바구니는?”
- 준비해뒀습니다.
“그래 알았어. 바로 나갈게.”
- 넵!
다른 의원들처럼 평범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깨어난 잠룡은 아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실한 대선주자다.
눈도장 찍어 둬서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스윽.
음모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뭔가 대단히 찝찝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김현재는 뇌를 비롯해 여러 중요 장기에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신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개입한 것 같은 아주 엿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차차 알게 되겠지…….”
음모자는 인내를 발휘했다.
정치에 들어선 지 어언 20년.
오늘날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인내와 끈질김 덕분이었다.
아직은 설익은 밥.
음모자는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빈틈이 생길 것이고 그 순간을 노려 숨통을 끊어도 늦지 않다.
***
“병원 관계자들의 협조를 받아 병실 앞에 경호원들을 배치했습니다.”
아웅대를 접수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치원생의 교통사고 건은 김현재 대표가 깨어나면서 없는 듯 묻혔다.
도운중 회장의 힘을 빌려 병원장을 박살냈다.
벌써 소문이 쫙 돌았다.
병원장 오동수가 사표를 들고 이사장실로 찾아갔다는 소식이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 전부 퍼졌다.
그리고 응급센터에 있던 이들 중심으로 병원 네트워크를 타고 차후의 변화에 대한 소문도 쫙 퍼졌다.
오동수 병원장의 후임으로 응급센터장 유한동이 임명될 게 기정사실화됐다.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 보스.”
한진웅 대표가 직접 내려왔다.
아웅대 병원 뒤편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서울 도심에 있는 병원과 달리 공간적 여유가 넘쳤다.
나무와 중간중간 놓인 벤치가 조화를 이루며 기분 좋은 운치를 만들어 냈다.
“앞으로 김현재 대표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집니다.”
“넵! 보스!”
“경호팀은 믿을 만한 자들입니까?”
“애국심이 남다른 특전사 전역자들입니다.”
“주지했듯이 비밀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넵!”
김현재 대표를 노리는 사건이 앞으로도 자주 시도될 것이다.
알림음은 이런 중차대한 일을 두고도 아직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이웃집 개들은 아닌 게 확실하다.
일송회를 비롯해 국가 기관까지 의심해 보았지만 딱히 짚이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자꾸 떠오르는 김현재 대표의 주변 인물들.
대부분이 정치인이다.
진보주의를 표방하지만 알고 보면 잡종들이 많이 섞였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었던 인연으로 영입된 프로 잡초들이 많다.
올해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부분의 짝퉁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아직도 김현재 대표가 몸 담고 있는 야당에는 추려내야 할 쓰레기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나라와 민족보다 자신과 주변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를 하는 그야말로 정치꾼들.
그들의 행동을 국민들이 싸늘하고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누가 참된 정치인이고 거짓 정치꾼인지 주인의 눈으로 지켜봤다.
아무리 진실인 양 포장해도 길고 긴 의정 생활을 지내다 보면 얼마 못 가 속내가 드러난다.
과거처럼 언론을 동원해 얼렁뚱땅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과 거짓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도덕적 흠결이 없는 자들 중심으로 미래의 정치가 펼쳐질 것이다.
앞서 유럽 정치 선진국들이 대부분 그러한 과정을 걸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IT 선두주자답게 머지않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철저하게 감별해 낸다.
이 점이 대한민국의 강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몹시 불안한 과도기적 시기.
김현재 대표는 주변에 위험한 간세들이 포진해 있다는 걸 아직 몰랐다.
진짜 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다.
내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던 친인들이 더 잔인하게 배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보다 잘나가면 질투에 사로잡히다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악의 길로 들어선다.
특히 권력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예사로 아는 자들도 허다하다.
“그런데 결혼 생활은 어떻습니까?”
진지한 얘기 끝에 가벼운 대화로 주제를 돌렸다.
“…….”
한진웅 대표가 방금 전과 달리 입을 굳게 닫았다.
암암리에 들리는 소문이 있었다.
한진웅 대표가 덩치와 다르게 부인한테 꽉 잡혀 산다는 얘기들이 주였다.
“러시아 별장에 조만간 교체 인력을…….”
툭 미끼를 한 번 던져봤다.
“보스! 제가 꼭 가고 싶습니다!!!”
갑자기 목소리에 생동감이 넘치는 한진웅 대표.
“한 대표님이 가면 회사는 누가 운영합니까?”
“제가 없어도 잘 굴러갑니다. 그리고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러시아는 겨울처럼 추울 텐데요?”
“괜찮습니다! 그깟 추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혜린 누님이 저 미워하면 어떡합니까? 아직 신혼인데…….”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신혼요? 보스가 아직 장가를 안 가서 모르셔서 그런 말 하시는 겁니다. 신혼의 밀월은 진작 끝났습니다.”
한진웅 대표가 신혼이라는 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까놓고 말해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눈치로 봐서 그렇게까지 화기애애한 부부의 모습은 아닌 모양이다.
“힘드세요?”
직접적으로 물었다.
“……휴우.”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는 한진웅 대표.
그 한숨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었다.
“힘내세요. 다 지나갈 겁니다.”
“보스……. 일찍 결혼하지 마십시오.”
“???”
“이게 참 말로 표현하기 묘한데……. 결혼이란 그렇게 행복한 것도 또한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닌 이상한 경계 선상에 놓여 있는…….”
감이 오는 멘트다.
모른 척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때.
띠리리리리릿 띠리리리리릿 띠리리리리릿.
한진웅 대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몇 번이 울릴 때까지 전화기를 쳐다만 보고 있던 한진웅 대표.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한진웅 대표의 목소리가 떨렸다.
- 여보세요가 아니라 여보잖아!
괄괄한 누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드워프 사장님 따님 아니랄까 봐 목소리 한번 화통했다.
대학교도 공대를 나왔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도 남자들만 득실대는 과를 졸업했으니 성격도 남달랐다.
“여보 맞습니다. 맞고요…….”
한진웅 대표가 이상한 말투로 대꾸했다.
어쩐지 잔뜩 주눅 든 모습이다.
- 퇴근 안 해?
혜린 누나는 과거 동해파와도 맞짱을 떴던 여장부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그게…… 지금 보스하고…….”
- 태산이 옆에 있어?
“네.”
한진웅 대표가 내 눈치를 봤다.
- 안부나 전하게 바꿔줘.
스윽.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이 전해졌다.
“전화 바꿨습니다. 누님.”
- 장 회장. 잘 지냈어?
한진웅 대표와의 통화와 달리 나에게는 부드럽고 사근사근 말투로 안부를 물어오는 혜린 누나다.
과거 공장과 목숨을 구해줬다.
지금도 내 덕분에 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럼요. 누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 호호. 말이라도 고마워.
누님이 여성스럽게 웃는다.
이런 누님이 한진웅 대표에게 사납게 행동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한진웅 대표님 바로 퇴근시켜드리겠습니다.”
베테랑 팀원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사삭.
말이 떨어지자 다급히 손을 흔들며 손사래를 치는 한진웅 대표.
- 고마워. 집에 전등이 나갔는데 애 아빠가 필요해.
“그럼요. 그런 일은 남자가 해야죠.”
퇴근은 정해졌다.
- 언제 놀러와. 누님이 없는 요리 솜씨 좀 발휘해 볼게.
“조만간 날짜 잡겠습니다.”
과거 운명처럼 맺어졌던 인연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현재의 장태산 회장이 아닌 과거의 순수했던 나를 기억해 주었다.
- 그래. 수고해.
남편에게 인사도 안 하고 통화를 끝내 버린 혜린 누님.
“휴우…….”
한진웅 대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쭉 늘어진 게 보기 안타까웠다.
“한 대표님…….”
고개 숙이고 있는 한진웅 대표를 바라보며 조용히 아공간에서 목함 하나를 꺼냈다.
“이거 받으십시오.”
“이게 뭡니까?”
“가정화평단요.”
“네???”
“제가 장가는 안 갔어도 알 건 다 압니다. 차에 가서 이거 꼭꼭 씹어 드시고 집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내일은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오십시오.”
“…….”
한진웅 대표가 큰 눈을 껌벅였다.
흐뭇하게 씨익 웃었다.
더 이상 해줄 것은 없다.
“알겠습니다! 보스!”
뭔가를 눈치 챈 한진웅 대표가 힘차게 답했다.
“힘내십시오. 한 집안을 이끄는 가장으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역시 보스는 사랑이십니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자 눈물을 내비치는 덩치 큰 곰.
톡톡.
팔을 가볍게 두들겨줬다.
그때.
띠리리리리리릿.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 제한이 걸린 전화다.
띠릭.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 다니엘……. 나 좀 도와줘!!!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