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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장. 병원장 한번 해보시죠?(3) (1,175/1,284)

1200장. 병원장 한번 해보시죠?(3)

‘벼, 병원장 교체!!!’

순간 오동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잠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센터장을 갈궜을 뿐이다.

비단 오늘만이 아니고 지금껏 쭉 그래왔다.

병원장이라고 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이사들 앞에서는 철저하게 을이 됐다.

그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으레 아랫사람들을 통해 해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게 병원에 별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응급센터였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인식하에 매번 경영합리화에 반발했다.

한두 번 갈구다 보니 습관이 됐다.

지금만 해도 장태산이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아차 싶은 순간 사건이 커져 버렸다.

기자 하나 품어 주려다가 자신의 목이 잘리게 생겼다.

‘그런데 회장이 누구야?’

문득 오동수는 의문이 들었다.

아웅대 병원은 아웅대 학교법인 산하기관이다.

독립적이지 않기에 학교법인 이사들에 의해 병원장이 선임된다.

한마디로 회장과는 상관이 없다.

한때는 대웅그룹과 연관이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분리됐다.

현재 학교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사장은 자신과 친분이 두텁다.

같이 골프도 치고 좋은 곳에서 술도 마시는 사이다.

지금 역임하고 있는 병원장 자리도 이사장이 힘쓴 덕에 차지했다.

‘이 새끼 어디서 구라질이야!’

또 아웅대 이사회는 기업들과 딱히 연관되어 있지 않다.

대웅이 망하면서 완벽한 독립체가 됐다.

‘그깟 1000억 날려! 씨발!’

오동수는 오기가 생기자 독하게 마음먹었다.

1000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존심과 밥줄이 더 중요했다.

차라리 장태산을 버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기다리겠습니다.”

마저 통화를 끝낸 장태산.

“회장님하고 통화는 끝내셨어?”

오동수의 목소리 톤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고개 숙이던 모습이 아니다.

평소 수하에 둔 사람들을 대하듯 장태산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네.”

장태산이 짧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사회 소집해서 나 자르겠대?”

“아마도 그럴 겁니다.”

담백하게 대답하는 장태산.

“풋…….”

오동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비웃음을 터트렸다.

“어이. 장태산 씨.”

오동수의 말투가 불량스럽게 변했다.

평소 병원장실에서 마음에 안 드는 의사나 직원을 대할 때 나오는 호칭 변화였다.

“말씀하십시오.”

장태산은 여전히 빙긋 웃는 얼굴이다.

도리어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어린 나이에 투기로 돈 좀 번 것 같은데 사람이 그러는 거 아냐. 병원은 기업과 달라. 기부 좀 한다고 해서 띄워줬더니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네? 사회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내가 병원장 그냥 딴 줄 알아?”

씨익.

장태산은 미소 지으며 오동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 새끼 봐라?’

이 정도 말투면 당연히 반응이 와야 정상인데 장태산은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나이가 어린 졸부들일수록 감정 조절에 무척 미숙했다.

그런데 장태산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오동수가 정신을 집중했다.

“내 뒤를 봐주는 여러분들이 계셔. 이사장님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정관계나 법조계 인사들이 많아.”

오동수가 어깨에 힘을 팍 줬다.

그동안 인맥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은 덕을 볼 타이밍이었다.

중앙 일간지 선임 기자들을 직접 관리해 왔을 만큼 부지런을 떨어온 오동수였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넌 나를 못 자른다고!!!”

오동수가 답답하다는 듯 화를 버럭 냈다.

“내기할까요?”

“내기? 무슨 내기?”

“며칠 안으로 병원장 자리 주인 못 바꾸면 기부하기로 약속한 금액 입금해 드릴 테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

오동수는 깜짝 놀라 귀를 의심했다.

1000억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닌데 장태산은 마치 껌값 정도 던지는 것처럼 말했다.

‘흐흐흐흐. 기회다!’

오동수는 속으로 희열을 느꼈다.

입이 멋대로 길게 찢어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 말 진심이야?”

“공증해 드릴까요? 구두 계약도 계약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이 증인이 될 겁니다.”

“푸하하하하하하. 어린 친구가 통이 커.”

오동수가 내심 흡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물론 반대급부도 존재했다.

“참고로 난 돈 없다.”

오동수는 장태산처럼 돈을 걸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모은 비자금으로 평생 먹고 살 정도의 기반은 마련해 놨지만 어리석은 내기에 판돈으로 쓸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사과하십시오.”

“???”

“병원장 퇴임식에서 여기 계시는 센터장님을 비롯해 지금까지 괴롭혀 온 모든 아웅대 병원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속죄를 구하시면 됩니다.”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오동수가 웃음기를 지우며 장태산을 노려봤다.

이미 퇴임을 기정사실로 바닥에 깔고 사과를 요구했다.

“싫습니까?”

장태산이 오동수의 자존심을 툭툭 건드렸다.

“한다! 내가 정말 병원장에서 짤리면 네가 원하는 대로 퇴임식에서 전 직원에게 큰절하고 석고대죄한다고!”

오동수가 큰소리를 빵빵 쳤다.

“오늘 제가 증인은 확실하게 서겠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조인봉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이거 재밌겠는데?’

장태산이 진짜 위험한 놈이라는 걸 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오동수 병원장에게 비장의 한 수가 준비되어 있는 듯했다.

잘만 하면 쓸 만한 기사를 건질 수 있을 게 확실했다.

바로 그때.

띠리리리리리리.

오동수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사장님이 왜?’

액정 화면에 보이는 ‘존경하는 이사장님’이라는 이름이 떴다.

“오동수입니다!”

오동수는 군기가 바짝 든 군인처럼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 야! 오동수!!!

순간 쩌렁쩌렁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이, 이사장님…….”

순간 오동수는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사장과 사석에서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남자들끼리 할 수 있는 의리도 충분히 다져놨다.

절대 자신에게 농담으로라도 막말을 뱉지 않던 이사장이 ‘야’라고 소리쳤다.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 너 도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누구를 건드렸냐고!!!

이사장이 잔뜩 분개한 채 사자처럼 포효했다.

“제가 누구를…….”

말을 뱉다 말고 오동수는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꿀꺽.

마른침이 목울대를 타고 억지로 넘어갔다.

장태산의 협박은 농담이 아니었다.

- 너 때문에 나까지 잘리게 생겼잖아!

‘누가 이사장을?’

학교법인 이사장은 누가 함부로 자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비영리 재단법인 이사장은 보장 임기가 정해져 있었다.

독립 법인체였기에 과거 대웅그룹이 파산할 당시에도 큰 영향받지 않고 무사했다.

자신이 아는 한 설립 당시 이사장이었던 대웅의 도운중 회장도 관여할 수 없었던 영역이다.

그런데 지금 이사장이 자신도 잘릴 처지라고 따졌다.

‘그럼 그 회장이……!’

오동수는 그제야 장태산이 통화한 회장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챘다.

장태산도 병원장실에서 도운중 회장과 인연이 깊다고 말했었다.

학교 이사회와 도운중 회장 사이에 알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하는 게 확실했다.

- 당장 사표 가져와! 당장!!!

어찌해 볼 수도 없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강력한 의중이 담겨 있었다.

띠릭.

통화가 종료됐다.

“아시죠? 요즘 유행대로 퇴임식은 간단하고 심플하게.”

장태산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아무 말도 잇지 못하는 오동수.

영혼이 반쯤 나간 좀비처럼 터덜터덜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야?’

센터장 유한동은 눈만 껌벅거렸다.

병원장의 습관성 갑질과 개 같은 행동에 오늘도 제대로 터졌다.

자신이 맡고 있는 센터에 들어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패턴대로 응급센터의 영웅 김국조를 갈궜다.

사표 쓸 각오로 물러서지 않고 대차게 부딪쳤다.

다른 병원도 응급의가 귀한 건 마찬가지여서 잘려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차라리 타 병원이라면 이렇게 빡세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졌다.

기부자 장태산이 병원장의 목을 잡고 흔들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사장과 사석에서 형님 동생 하는 병원장은 누구도 터치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전화 한 통으로 단박에 날려버렸다.

확실한 결과는 모르지만 오동수가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응급실을 나갔다.

그 뒤를 기자가 뒤따랐다.

순식간에 평화를 되찾은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을 비롯해 아이들과 부모들이 일제히 장태산을 바라봤다.

“치료 중인데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장태산이 환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병원장과 달리 정중하고 진심이 묻어나는 모습이다.

“오늘 다친 아이들의 비용은 전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장태산의 통 큰 제안.

사고 가해자인 음주 운전자는 사망했다.

트럭 공제회는 버스 공제회와 더불어 악명이 자자했다.

치료비를 받기 위해서는 지루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게 뻔했다.

그런데 그 난제 앞에서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말해 주는 장태산.

‘도대체 정체가 뭐야?’

유한동과 김국조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문에 빠졌다.

1000억을 가볍게 기부하고 병원장을 단박에 자를 정도의 돈과 권력을 쥔 남자.

아무리 봐도 너무 어렸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엄마들이 진심으로 화답했다.

연예인 같이 잘생긴 남자가 갑질하는 병원장을 혼내주고 병원비도 해결해 줬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현실에서 마주했다.

스윽.

장태산이 센터장을 바로 보며 고개를 돌렸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유한동은 뜬금없는 장태산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을 표했다.

씨익 입술을 양옆으로 길게 만들며 장태산이 웃는다.

그리고.

“아웅대 병원 발전을 위해…… 병원장 한번 해보시죠?”

“!!!”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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