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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9장. 병원장 한번 해보시죠?(2) (1,174/1,284)

1199장. 병원장 한번 해보시죠?(2)

‘JS로펌 수석 변호사 장태산?’

조인봉의 눈이 가늘어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변호사 때문에 순간 쫄았다.

천천히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겉보기엔 잘생긴 20대 초반의 청년에 불과하다.

‘장태산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기도 했다.

JS로펌도 마찬가지.

그러나 쉽게 연관 관계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수석 변호사라면 로펌 수준 알만하네. 로스쿨 졸업해서 지들끼리 하나 차린 모양이지.’

짧은 순간 청년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조인봉은 이내 변호사란 자를 무시하기로 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로스쿨에서 대규모로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성골, 진골이라 불리는 사법시험 합격생들과 태생이 달랐다.

웬만한 수도권 로스쿨생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지 않으면 대형 로펌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전관도 아니고 사법연수원 인맥도 없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아직 변호사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대형 로펌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사법시험 출신들과 임금 체계도 달랐다.

또한 체계적으로 연수받은 연수원생들과 달리 로스쿨생들은 따로 교육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인봉의 목소리가 삐딱해졌다.

한강일보가 중앙 메이저급은 아니었지만 중견급 정도는 된다.

요즘 들어 기자들 전체가 기레기라 무시당했지만 과거에는 중앙 일간지 기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디서든 떵떵거리며 고개 들었다.

조인봉은 그 시절을 맛보며 온 기자였다.

신입 기자 시설에는 수석 기자를 따라 맛집 투어를 다녔다.

수석 기자는 핸드폰과 수첩에 기록된 전화번호에서 그날의 물주를 골랐다.

그런 날이면 밥과 술이 무한정 공짜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여성을 끼고 술을 마셨다.

월급은 손대지도 않았다.

만날 때마다 따로 봉투가 쥐어졌으니까.

기자들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선배들은 뇌물로도 집과 차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한 수 더 떠 간간이 제법 큰 투자 정보도 획득했다.

주식을 비롯해 부동산 투기 정보가 은밀하게 전달됐다.

메이저급 중앙 일간지 기자들에게는 액수 자체가 달랐다.

잘나가는 경제, 정치 담당 기자들은 수입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언론 고시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다.

기자가 되는 순간 엄청난 부와 명예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그들을 모셔가기 위해 난리였다.

하지만 최근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오영란법으로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과거 그 시절처럼 대놓고 아무거나 받아먹지 못했다.

물론 악습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기름칠이 되지 않으면 기자들의 펜촉은 어느 순간 악랄한 독침이 되었다.

바뀐 것은 현찰 대신 투기 정보가 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웅대 병원장 같은 인간들과 골프를 치고 밥 먹으며 용돈도 벌고 투기로 대박을 쳤다.

어리숙하게 본인 명의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부분 친인척의 명의를 사용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온 조인봉에게 어설픈 로펌 수석 변호사 따위는 애송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 조 기자!!!”

병원장 오동수가 놀란 얼굴로 조인봉을 불렀다.

‘이 양반 간 참 작네. 쯧쯧.’

상황을 알 리 없는 조인봉은 잔뜩 긴장한 병원장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병원장의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나타난 게 곤란할 수 있지만 조인봉은 상관없었다.

신문사와 연결된 법조계 라인이 빵빵하게 버티고 있었다.

애송이 변호사 하나 엿 먹이는 건 일도 아니다.

“책임지겠다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장태산이 물었다.

“그래. 내가 책임져! 그러니까 고소를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 난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취재할 테니까!”

어차피 검찰에 고소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검찰이 신문사를 건들 리 없다.

서로 물고 빨며 밀어주기를 수십 년째 유지해 온 관계였다.

사건 접수를 받는다 해도 차일피일 미루다 불기소로 때리면 그만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만의 특권이다.

“알 권리라…… 그 말 재밌군요.”

장태산이 차가운 시선으로 비웃었다.

‘제비 같은 새끼가 재수 없게 어디서 실실 쪼개!’

키가 작고 평범한 얼굴의 조인봉은 잘생긴 남자를 은근히 질투했다.

“조 기자 왜 그래! 어서 사과드려! 여기 계시는 분이 누군 줄 알고!”

‘사과?’

조인봉은 오동수 병원장의 말에 그제야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눈빛을 보니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오동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장태산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구신데요?”

금세 조인봉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몰라?”

오동수가 어이없는 듯 다시 물었다.

“…….”

조인봉이 대답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심상찮은 분위기다.

“TS그룹!”

조인봉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하는 오동수 병원장.

“TS라면…… 안아그룹…… 그리고 장태산……. 헛!!!”

조인봉은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헛바람을 막지 못했다.

잘나가는 정치, 경제부 기자가 아닌 사회부 담당 조인봉.

그런 그도 그 이름을 들어봤다.

재계의 저승사자이자 정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 평가받고 있는 장태산.

이렇게 젊은 청년일 줄은 몰랐다.

그 많은 언론사에 사진 한 장 돌지 않았다.

무수한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을 뿐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철저하게 본인의 사생활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있을 뿐.

한국에서 그 정도로 사생활이 관리되려면 3대 재벌급 직계나 가능한 일이었다.

파르르르.

온몸이 멋대로 파르르 떨렸다.

오늘 하루 잘나가다 제대로 똥 밟은 심정이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한강일보 누구라고요?”

***

- 크큿.

윤 차사가 이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토했다.

저승사자들도 오욕칠정의 작용이 여전하다.

이럴 때 귀신이 옆에 있었다면 팝콘 각이라며 아주 재미있어했을 거다.

-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사이다 각이라…….

윤 차사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호기심 많은 저승사자 팀장.

- 하는 일이 매일 죽음을 다루다 보니 업무 스트레스가 큽니다. 이것도 직업병이라고 생각보다 이직률도 높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해결해 줄 방도가 없습니다. 전생에 쌓은 업이 많아서 받는 참회와 형벌이라지만…….

윤 차사가 말끝을 흐렸다.

저승사자라는 직업이 임종을 앞둔 인간들에게나 갑이지, 저승에서는 3D 업종 중 하나다.

눈물 콧물 빼야 할 안타까운 상황에서 영혼을 회수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대부분 전생의 업이 강한 이들로 업장 소멸의 기회로 이 일이 주어진다.

그건 그렇고…….

병원장을 빽으로 믿고 응급실에 난입한 기레기.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고 들었다.

김현재 대표가 깨어난 뒤 주무형 대통령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진정한 국민 대통령을 독대했다.

금강산에서 만나 막걸리 들고 다시 회포를 풀자며 미래의 그 날을 기약했다.

다시 평온으로 돌아온 응급실.

마법 덕분에 아이들 모두 무사했다.

쓸모없는 인간 하나 저승에 넘기고 다수가 생명을 얻었다.

카르마 포인트를 좀 소모했지만 몇 배로 더 벌었다.

그러고 난 뒤 마주한 병원의 적폐.

시장 경제 원리가 중심축이 되어버린 병원의 운영 방식은 보기에 매우 나빴다.

인술은 어디로 가고 돈과 비리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저…… 장 대표님. 우리 조인봉 기자가 몰라뵙고 말을 뱉은 것 같은데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오늘 사과의 의미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오동수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사건에 개입했다.

이런 식의 개입이라면 조인봉 기레기와 커넥션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는 의미였다.

“싫습니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이런 인간들과 같이 겸상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돈과 권력에서 자유로워지자 생각보다 이점이 많았다.

보고 싶지 않은 자들을 선별해 만나지 않아도 됐다.

“끄응…….”

오동수가 불편해진 얼굴로 신음을 뱉었다.

단박에 거절을 당할 줄은 예상 못 했던 눈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게 잔뜩 화가 난 게 확실했다.

“죄송합니다. 장 대표님!”

간을 보던 조인봉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다.

허리를 그럴싸하게 90도로 꺾었다.

조금 전 고소하라고 소리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표정은 비굴함이 넘치다 못해 처량했다.

누가 보면 선량한 시민을 내가 추궁하는 줄 알 정도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여기 계시는 센터장님을 비롯해 여러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와 부모님들에게 하십시오.”

모두가 말없이 조인봉과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물며 아이들도 칭얼거리지 않았다.

“……음.”

조인봉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갈등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취재 욕심에 여기 계시는 분들의 심려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꼴에 기자라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도 깔끔했다.

“…….”

그러나 누구 하나 용서하겠다는 말을 선뜻 내뱉지 않았다.

병원장과 함께 들어와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고 취재하던 모습이 그만큼 불쾌했을 것이다.

“유 센터장 뭐 해! 조 기자가 사과하잖아!”

만만한 게 유한동 센터장이다.

병원장이 버럭 호통을 치며 그를 채근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아니 평생 인간 되기는 그른 것 같다.

“왜 그래야 합니까?”

유한동 센터장이 반문했다.

“왜? 병원장이 까라면 까야지 뭔 말이 그리 많아! 그렇게 아니꼬우면 당신이 병원장 해!”

오동수 병원장이 본심을 감추지 않고 여지없이 드러냈다.

저열하고 치사한 심사였다.

꼰대도 이런 상 꼰대가 없다.

지금껏 유한동 센터장과 김국조 교수가 어떤 대우를 받으며 병원에서 근무해 왔는지 단박에 짐작이 갔다.

“병원장님!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열혈의사 김국조 교수가 따졌다.

“심해? 그래서 어쩔 건데! 아니꼬우면 사표 써!!!”

오동수가 엄한 데 화풀이했다.

지금 또 내가 바로 앞에 있다는 걸 망각한 듯했다.

“니미럴 더럽고 치사해서!”

김국조 교수가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다.

“니미럴?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병원장한테 감히 욕을 해!”

자신이 먼저 반말하고 사표 쓰라고 소리친 건 인식하지도 못했다.

병원장이 아니라 여의도 막말 정치인 같은 모습이다.

“그만하십시오. 환자들 치료해야 합니다. 나가주십시오.”

김국조 교수가 나서자 유한동 센터장이 짧게 한숨 쉬며 축객령을 내렸다.

“어디서 병원장한테 나가라 마라야! 일개 센터장 주제에!”

오동수의 갑질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보고 있는 게 곤욕이다.

“나가시죠.”

오동수 병원장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장 대표님은 관여치 마십시오. 이번 일은 병원 기강 문제입니다.”

오동수가 의외로 강하게 나왔다.

피식 실소가 터져 나왔다.

“관여할 생각입니다.”

“네? 무슨 권한으로…….”

“권한요?”

스윽.

스마트폰을 꺼냈다.

티디딕.

거침없이 번호를 눌렀다.

띠이이이잇.

신호가 울렸다.

- 오랜만이다.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 부탁? 나한테? 뭐?

오동수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아웅대 병원장 교체 건으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주십시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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