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6장. 일어나십시오!(2)
- 병원장님,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 우리 조 기자 갑자기 왜 그러나. 뭐가 그렇게 서운해서 그래?”
아웅대병원 병원장 오동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앙 일간지 한강일보 조인봉의 전화에 살짝 긴장했다.
병원장의 중요 일 중 하나가 대관업무다.
짬밥 떨어지는 신입 기자들은 비서들이 담당했지만 경력 있는 선임 기자는 병원장이 직접 책임졌다.
대학병원도 아웅대 학교 법인의 중요한 영리사업 중 하나였다.
기사 하나 잘못 나가면 수입에 타격이 컸다.
아무래도 병원이다 보니 간간이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각종 인맥이 다발적으로 작동한다.
예민할 수 있는 기사가 단어 몇 개의 수정으로 완벽하게 다른 기사가 된다.
지금까지 잘 막아왔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 자식 벌써 용돈 떨어진 거야?’
불과 한 달 전에 접대 골프를 통해 두둑하게 봉투를 챙겨 용돈을 몰아줬다.
그런데 다짜고짜 전화로 너무하다며 말문을 여는 조인봉.
- 방금 전 유치원 버스하고 트럭 사고 난 거 아시죠?
“알고 있지. 지금 그것 때문에 병원이 난리야.”
코드 제로까지 떨어진 일인데 병원장이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민감한 대형 교통사고여서 직접 코드 제로를 허락했다.
- 취재 좀 하려고 갔더니 절 막았어요! 이거 잘만 주무르면 병원 홍보에 엄청나게 도움될 일인데…….
조인봉이 전화 용건에 대한 운을 뗐다.
“누가 막아? 조 기자는 프리패스라는 거 다들 알 텐데?”
- 거 있잖아요. 응급센터 깡패!
“유한동 센터장?”
금방 떠오르는 이름.
- 아니요! 비쩍 마른 깡패요!
조인봉이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김국조?”
- 그 자식이 저한테 지랄한다고 쌍욕도 했다니까요. 의사가 그래도 됩니까? 메스라도 손에 들고 있었으면 아주 죽이겠더라고요.
조인봉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김국조! 이 개놈 새끼!’
오동수 병원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욕을 꾹 참았다.
불만을 토로하는 조인봉보다 김국조를 더 싫어했다.
하지만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병원장이 같은 병원 동료를 욕할 수는 없었다.
기자들한테는 나중에 이 일도 빌미가 될 수 있다.
당장은 서로 이해관계로 도우며 살지만 결코 믿을 수 없는 관계였다.
“아직 응급센터 앞이지?”
- 네.
“내가 직접 내려갈 테니까 같이 들어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접 달래야 했다.
오늘 사건의 뒤처리만 잘된다면 조인봉의 말대로 이만한 홍보가 없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아이들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가해 운전자만 사망한 상태.
이 정도 상황이면 기자만 살살 달래 얼마든지 좋은 기사를 뽑을 수 있었다.
-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아니나 다를까 조인봉이 꼬리를 말았다.
어차피 건수가 생겨 전화는 했지만 적당히 협박하고 말 생각이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 오동수 병원장 같은 물주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앞서 인터넷 판에는 속보로 띄워놓은 상태다.
따끈따끈한 방금 찍은 사진을 곁들이자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합동민주당 전 대표이자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점쳐지던 김현재까지 외과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이것저것 엮으면 이번 달 기사 마감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저녁에 시간 비워놔요. 내가 좋은 곳에서 술 한 잔 살 테니까.”
게다가 보너스는 덤.
- 하하. 병원장님은 화끈해서 내가 싫어할 수가 없다니까요.
조인봉이 금세 저자세를 취하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철저하게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
서로 이득이 되면 한몸처럼 붙어 곧바로 서운함이 청산됐다.
띠릭.
통화가 끝났다.
“개썅! 김국조 너 오늘 죽었어!”
화가 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오동수.
병원장 오동수라는 이름이 박힌 새하얀 가운을 거칠게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원장실을 벗어났다.
현재 응급센터에 누가 있는지 그새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
“???”
머리가 많이 어지러웠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 모두가 낯설었다.
띠띠띠띠.
규칙적인 전자 신호음도 들렸다.
새하얀 천장, 코와 입을 덮고 있는 부드러운 플라스틱 마스크.
‘병원?’
김현재는 그제야 이곳이 병원임을 알아챘다.
‘내가 왜?’
웬일인지 기억이 연결되지 않았다.
지지하는 의원의 지역 행사 요청에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
보좌관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강한 충격을 받은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운전기사의 격한 비명과 함께 이후 기억이 암전됐다.
그리고 깨어나니 병원이다.
“일어나십시오.”
마치 무슨 주문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귀에 익은 목소리에 따라 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초점을 맞췄다.
안경을 쓰지 않아 눈앞이 온통 흐릿하게 보였다.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자신을 향해 무한히 전해지는 진한 격려의 기운이 그가 선한 사람임을 말해줬다.
“아직…… 평안히 쉬실 때가 아닙니다.”
“!!!”
귓속을 파고드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안히 쉬실 때가 아니라는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누, 누구…….”
목에 잔뜩 가래가 낀 것처럼 목소리가 탁하게 흘러나왔다.
산소마스크 때문에 겨우 뱉은 목소리도 작았다.
애써 고개를 들기 위해 힘을 줬다.
“윽.”
전신에서 둔통이 느껴졌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세포에 후유증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무척 듣기 좋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간헐적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마치 뇌세포들의 연결이 다 끊어진 듯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기억 어느 구석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남자의 목소리.
“앞으로도 대표님 인생에 이런 시련이 자주 찾아올 겁니다. 그때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가 하는 말들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한마디 말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이 찾아왔다.
“많은 시련이 찾아올 겁니다. 하시고 싶은 일들이 많겠지만 빨리 처리하려 하지 마십시오. 썩은 뿌리가 깊습니다.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밝히고 알리는 데에 5년이라는 시간은 무척 짧습니다. 인내하고 버티십시오……. 주무형 대통령처럼 부딪치지 마십시오. 놈들은 인간의 탈을 쓴 욕망의 화신이자 악마들입니다.”
주무형이라는 이름에 김현재는 심장이 쥐어짜듯 아파오고 울컥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듣기만 해도 사무치도록 그립고 미안해지는 친구의 이름.
또로록.
금세 김현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억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친구가 옆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보고 들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친구 주무형.
그를 위해서라도 김현재는 버텨야 했다.
대한민국의 완벽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했다.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욕망에 물든 악마들은 상상 이상으로 교활하고 비겁했다.
정정당당함의 의미를 몰랐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자리 잡은 탐욕은 아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끝까지 인간 대접을 했던 친구 주무형.
적들이 꾸민 비열한 계략을 알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나아갈 방향으로 나아갔다.
등신불처럼 자신을 던져 잠자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심을 깨웠다.
이제 그가 가다 멈춘 길을 김현재가 걸어야 했다.
“쉬십시오……. 곧 찾아뵙겠습니다.”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남자의 목소리.
“누구…….”
눈의 흐릿한 초점으로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른거리는 희미한 형태만 보였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그럼.”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주무십시오.”
그리고 또 건네지는 말.
그 순간 김현재는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로가 계속 몰아쳐 왔던 지난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찾아온 꿀잠의 순간.
김현재는 더없이 평안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시, 신선님들을 뵈옵니다!!!
김현재 대표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를 보자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그의 주변에는 믿을 만한 인재가 거의 없었다.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동지들 상당수는 시간이 흐른 만큼 오염됐다.
돈과 명예를 좇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살면 살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법이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모르게 된다.
아무리 김현재 대표가 깨끗하고자 발버둥 쳐도 동지들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가 없다.
비단 이대로 대통령이 되어도 문제다.
명령을 따라야 할 공무원들 다수가 부정부패로 꾸려진 10년 가까운 세월을 제대로 반기도 들지 않고 그에 동조하며 밥그릇을 지켜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굴을 바꾸는 그들의 깜찍한 속임수를 모두 다 파악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미 부정부패가 익숙해진 조직에 물 든 공무원들이 온전히 김현재를 따를 리 만무하다.
우선 치료를 마치고 다시 한숨 재웠다.
자고 나면 대부분의 병은 자연히 치료될 것이다.
배드에서 일어나는 순간 앞으로는 자고 싶어도 잘 시간이 부족했다.
곧 불어닥칠 태풍의 시간.
그것까지 뒤틀려 바뀐다면 정말 큰일이다.
순리대로 흘러가야 할 역사의 흐름을 누군가 임의로 틀어서 바꿔버린다면 그건 재앙이다.
고심에 찬 시선으로 김현재를 바라보는 사이 공손하기 그지없는 윤 차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
진심 깜짝 놀랐다.
어느새 나타난 수십여 명의 신선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눈부신 백의를 입고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 한민족을 수호하는 민족신들과 조우했습니다.
알림음이 다른 때 같지 않게 경건한 음성으로 상황을 알려왔다.
“조상님들을 뵈옵니다.”
나 역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레벨은 무의미했다.
한민족을 수호하는 민족신 앞에 감히 고개를 들 수는 없었다.
- 수고했노라. 아들아…….
귓속을 파고드는 수고했다는 말.
울컥 가슴이 먼저 반응하며 먹먹해졌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수시로 죽음이 나와 가족, 주변인들을 위협했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아들의 길.
“아……닙니다.”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 미안하다……. 그래도 꿋꿋하게 걸어가라……. 오직 너만이 이 길을 갈 수 있노라.
주르르륵.
급기야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하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됐다.
억누르며 감춰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오직 나만이 갈 수 있다는 이 길.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아들이 죽을힘을 다해 걸어가겠사옵니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