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1장. 응급실의 마법사(2)
- 알려드립니다. 현재 응급센터에서 코드 블루, 코드 오렌지, 코드 핑크 상황이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이에 코드 제로를 통보하오니 중요한 수술이 아니면 각 외과와 소아과 의국에서는 모든 가용 의사들을 파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응급센터에서 코드 블루, 코드 오렌지, 코드 핑크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평온했던 아웅대 병원 모든 병동에 다급하게 울리는 긴급 호출 메시지.
“코드 블루, 코드 오렌지, 코드 핑크라고?”
“미친!!!”
“헛!”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코드 블루와 코드 오렌지, 코드 핑크까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코드 블루는 CPR이 요구되는 긴급 상황이다.
코드 오렌지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코드 핑크는 산부인과나 소아과에 관련된 특수 코드다.
그리고 마지막에 통보된 코드 제로.
진행 중이거나 중요한 수술이 아니면 가용 가능한 외과와 소아과 인원들 모두 응급센터로 호출하는 긴급 명령이다.
“뭣들 해! 응급센터로 달려!”
“젠장. 오늘따라 조용하다 싶더니…….”
타다다다다닥.
외과와 소아과에 속해 있던 의사들이 가운을 펄럭이며 달렸다.
모두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몇 년에 한 번 접할까 말까 한 힘든 대사건이었다.
“간호사님, 저게 무슨 소리래요?”
대기 중이던 환자가 궁금한 듯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기들이 다친 것 같아요…….”
“아기들?”
“네. 게다가 모두 중상인 것 같은데.”
간호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형 병원이다 보니 하루에도 열 명 정도씩은 평균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응급센터를 끼고 있어 보통은 보기 힘든 처참한 죽음을 맞는 사망자도 많았다.
죽음에 어느 정도 무감각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이지만 소아 환자 사망사고는 얘기가 좀 달랐다.
아무리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삶을 시작도 못 한 어린 생명들이 꺼져갈 때마다 느끼는 슬픔은 성인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애기들이 다친 거예요?”
“응급센터 호출이니까 교통사고 아니겠어요?”
“이를 어쩌나!”
사방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드르르르륵.
그사이 응급실은 전쟁터가 되었다.
“비켜요!!!”
단단하게 닫혀 있던 응급센터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밀고 들어오는 119 대원들과 이동 카트.
“우아아아아아앙!”
“어, 엄마……. 엄마…….”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고 있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
“4번 배드! 저혈량성 쇼크 가능성이 있으니까 일단 피 달아!”
“넵!”
“5번……. 좌측 상복부 자상! 응급 수술!”
“넵!!!”
“6번. CT 찍고 심장내과 컨설트!”
“7번! 갈비뼈 골절로 인한 기흉! 천자!!!”
금세 김국조의 가운이 피범벅으로 변했다.
긴급 상황이니만큼 이름을 대신해 아이들에게 순번을 먹였다.
평생 몇 번 겪지 못할 응급 상황이 터진 것만은 분명했다.
전시 상황에 버금갔다.
25인승 유치원 통학버스의 옆구리를 들이받은 음주 트럭.
브레이크를 밟았다지만 술 취한 운전기사의 순발력이 제대로 작동했을 리 만무했다.
짐까지 가득 실려 있었던 상황.
버스가 밀리며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했지만 이미 늦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안전벨트를 맸음에도 상당수 아이들의 충격이 컸다.
특히 버스 중간 자리에 타고 있던 아이들 대부분은 심각한 중상.
피가 난무하고 신음과 울음소리,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가득 채웠다.
“8번……. 개방형 골절! 뭣들 해! 식염수!!!”
김국조는 기계적으로 지시 내리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맡을 수 있는 환자 수도 한계가 있었다.
각 외과를 비롯해 소아과 의사들이 여기저기 달려들었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응급센터에서 이루어지는 빠른 결정과 그에 따른 처치는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드르르르르르륵.
그사이에도 119 앰뷸런스에서 옮겨진 아이들이 응급실로 속속 들어왔다.
모두가 집단 멘붕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아닌 두 존재도 응급실 상황에 정신이 멍해졌다.
***
- 신선을 뵈옵니다.
저승사자 두 명이 공손하게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
당황스러웠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다.
병원 응급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존재는 인간의 탈을 쓴 신선이었다.
만만한 지신(地神) 급이 아니다.
하늘의 천계에서 이름깨나 날릴 법한 상급 신이다.
저승사자가 아무리 저승에 속한 존재라지만 선신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상급 신은 가진 카르마 포인트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살아생전 쌓은 업보가 많은 저승사자들에게는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인 셈이다.
- 수고들 많아요.
입도 달싹이지 않고 의식으로 대답하는 신선.
부드럽게 웃고 있지만 긴장을 풀지 않았다.
- 아닙니다. 당연한 업무일 뿐입니다.
팀장급 저승사자가 황송하다는 듯 답했다.
아무리 저승사자라 해도 상급 신선은 아무 때나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저승에서도 저 급수면 각 대왕급 밑에 있는 수석비서관들 수준 정도 됐다.
인간계 공무원들에 비유하면 6급에서 9급 말단 수준인 현장 출동 차사들에게 있어서는 하늘 같은 계급이다.
- 오늘 일이 많나 봅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선이 물었다.
명부는 다른 영적 존재에게 함부로 보여선 안 됐지만 상급신에게는 보고가 가능했다.
- 전생 업보들이 얽혔습니다. 앞으로 1시간 안에 두 명 이상의 명부를 채워 데려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 알려주지는 않았다.
인간 세상에서의 사망은 저세상에서의 출생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저승 생명의 탄생은 일정한 법칙에 의해 굴러갔다.
- 저 애들 중에 말입니까?
신선이 묻는다.
- 그렇습니다.
신선이 묻는 이유를 사자들은 몰랐다.
그러나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쯤은 확실히 알았다.
‘설마?’
아웅대 병원 담당인 윤 차사가 눈치를 봤다.
하급 신선들은 운명 개입이 불가능하지만 상급 정도 되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간혹 신선들이 인간계 후손들을 위해 법칙을 어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저승사자들은 곤혹을 치렀다.
감히 급이 다른 신들과 현장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윗선에 보고해봤자 그것도 못 처리하냐는 핀잔만 들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선배들이 종종 충고했다.
신선을 만나면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말이다.
저승사자들의 최종 목표 역시 신계 진출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괜히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 가련한지고……. 쯧쯧.
신음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선이 혀를 찼다.
저승사자들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드물었다.
그들 모두의 사정을 봐주다 보면 윤회를 비롯해 여러 인과법칙들이 어긋나게 된다.
- 신선께서도 아시겠지만 삶과 죽음은 정해져 있는 천도의 법칙 중 하나입니다. 이를 어긋나게 하면 그 후환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승사자가 천도 법칙을 거론하며 나름의 경고성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느낌이 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눈앞의 인간 신선은 감을 잡기가 모호한 이상한 존재였다.
- 후환이라…….
신선이 저승사자가 한 말을 곱씹었다.
삐이이이이잇.
그때 한쪽 배드에 누워 입에서 피를 게워내고 있던 남자아이의 몸에 부착된 심장 체크기가 일자로 파동이 바뀌며 요란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CPR 준비해!!!”
담당하고 있던 의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Primary MOF로 인한 MODS 상태입니다…….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옆에서 돕고 있던 중년의 간호사가 냉정하게 상황을 체크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은 쉽게 치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갈비뼈가 함몰된 상태였기에 제세동기도 사용 불가능했다.
인공호흡 또한 무의미했다.
응급실에 오자마자 자가 호흡이 거의 정지된 상태.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은 아이가 확실했다.
찢어진 유치원복은 피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혈액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뇌 역시 죽어 가고 있어서 의식이 없었다.
그때 남자 저승사자가 신입 사자를 바라봤다.
- 남섬부주 대한민국 수원시 영통동 아름아파트 305동 207호 거주자. 올해 나이 5세. 남아. 송…… 우 진.
신입 여자 저승사자가 입술을 깨물고 명부를 보며 주소와 이름을 읊었다.
스으읏.
그 순간 아이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려 움직였다.
저승사자가 아이의 이름을 세 번을 부르면 영혼은 육신에서 완벽하게 분리된다.
그 이후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송 우 진…….
두 번째 이름이 불려졌다.
꿀럭.
아이의 새하얀 영혼이 몸에서 반쯤 빠져나왔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손발이 낯선 허공을 붙잡으려 허우적거렸다.
마치 나비를 잡으려는 듯한 손짓이다.
누가 봐도 아이다운 행동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 송…….
여자 저승사자가 입술을 더 강하게 깨물며 아이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호명해갔다.
그 순간.
- 멈춰.
인간 신선이 개입했다.
‘젠장!’
윤 차사의 인상이 굳어졌다.
상급 신이 이 상황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려 함이 확실했다.
- 무슨 일이신지요?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천연스레 물었다.
- 잠깐만 기다려.
신선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시선이 응급실 입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이동식 배드에 책상다리로 앉은 40대 초반 중년 남성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가 응급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응급실에 퍼진 피 냄새 사이로 진한 알코올 향이 퍼졌다.
“…….”
바쁘게 움직이던 모든 이들의 표정이 차갑게 식으며 냉랭한 시선이 응급실로 들어서는 남자에게 쏠렸다.
그 순간.
“뭘 쳐다봐 새끼들아! 아파 죽겠다는데 다들 보릿자루처럼 서 있을 거야! 나부터 빨리 치료하라고!!!”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