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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장. 물주(5)

“김 교수!!!”

유한동이 놀라 소리쳤다.

센터장은 1000억이란 액수를 바로 앞에서 직접 들었다.

오동수를 겁박해 상당액을 응급센터로 밀어줄 주인공 장태산을 두고 대놓고 호구 물주라며 저급한 발언을 내뱉는 김국조.

의대를 졸업하고 매일같이 피 튀기는 현장에서 일만 해오다 보니 눈치가 아주 제로였다.

‘아이고 내가 미쳐!’

유한동은 김국조를 죽일 듯 노려봤다.

“맞습니다. 호구 물주.”

씨익.

장태산이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시원하게 웃으며 응대했다.

“아니 그게…… 우리 김 교수가 피곤해서…….”

유한동이 애써 변명했다.

“괜찮습니다. 누가 봐도 호구죠.”

“미안해요. 내가 속마음을 잘 감추지 못해서.”

“야! 김 교수!!!”

꺼지려는 불에 다시 한 번 기름을 붓는 김국조에게 유한동이 버럭 소리 질렀다.

“선배, 아니 센터장님. 손님도 계시는데 야는 아니죠.”

김국조는 그런 와중에도 따질 건 따졌다.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병원장들과 수시로 부딪쳤다.

천덕꾸러기 응급센터를 맡은 교수라면 알아서 기는 맛이라도 있어야 했지만 김국조는 그러지 못했다.

병원 측에서도 김국조를 대신할 만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마땅히 자르지 못하고 있었다.

김국조 교수를 해고하면 최소 3명 이상의 대체 인력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야근과 숙직을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외과 의사를 구하기 일은 요즘 같은 세상에 하늘의 별 따기였다.

거기에 어려운 흉부외과 수술도 가능했다.

아웅대가 그나마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이유도 김국조가 버티고 있는 응급센터 덕분이었다.

병원장 오동수가 내쫓으려 해도 쉽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그건 미안한데. 찾아온 손님에게 호…… 는 아니지.”

차마 호구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는 유한동.

“쏜대요?”

“뭘?”

“병원장실에 돈 받으러 간 거 아니에요?”

“그게…….”

유한동이 장태산의 눈치를 봤다.

“응급센터 김국조요.”

김국조가 장태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쏠 거요?”

김국조가 장태산의 손을 잡은 채 대놓고 물었다.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일단 급한 불을 끄려면 1년에 20억 정도. 의사들보다 숙련된 간호사가 필요해요. 좀 쓸만하면 박봉에 험한 수술에 결국 다들 나가떨어져요. 인센티브가 필요한데 이 병원이 좀 짜요.”

김국조는 장태산의 실제 기부금 액수를 몰랐다.

잘해봐야 몇억 던져 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 그의 입장에서 딴에는 크게 부른 금액이었다.

“싸네요.”

“20억이 싸요? 아버님이 누구신데 돈을 그렇게 막 써요? 로또 1등 돼도 어림없는데.”

“아버님은 시골에서 농사지으십니다. 로또는 운이 없어 당첨 안 됐습니다.”

“인상을 보아하니 사채업은 아닌 것 같고……. 설마 기업 인수합병으로 멀쩡한 회사 뒤통수쳐서 뜯어내는 신종 사기꾼은 아니죠?”

김국조는 말을 하는 데 있어 거침이 없었다.

더러운 돈으로 응급센터를 운용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사악한 자금임을 알고도 목숨을 살리는 데 사용하면 양심에 걸릴 게 분명했다.

“기업들 뒤통수는 칩니다.”

장태산도 거침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아오! 저 고지식한 놈을 봤나!’

유한동은 김국조를 보고 쓴 미소를 지었다.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 보는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았다.

과감한 외과수술에 적합한 성격이긴 하지만 사회성은 아주 꽝이었다.

“…….”

김국조가 조용히 장태산을 바라봤다.

‘얘는 뭐야?’

전문구 회장이 물주 기부자라기에 솔직한 마음으로는 기대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여 기부 금액 액수가 적을 것이라 판단했다.

잔돈푼이나 던지고 기부자라고 목에 힘을 주면 바로 쫓아내 버리겠다고도 마음먹었다.

전문구 회장이 중간에 꼈다지만 딱히 신뢰는 가지 않았다.

가끔 응급센터에 라면박스나 마스크 정도를 던지고는 기부자라며 생색내고 사진 찍고 가는 국회의원들이 아직도 있었다.

“김 교수! 사과드려!”

“사과요? 왜요?”

“20억이 아니라 1000억이라고!!!”

“허엇!!!”

유한동의 말에 김국조의 얼굴이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하얗게 굳었다.

수십억만 돼도 감지덕지할 판에 1000억이 터졌다.

이건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끌어와야만 했다.

“교수님.”

장태산이 김국조를 조용히 불렀다.

턱이 빠진 듯 입을 다물지 못하는 김국조.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 제대로 세금 내고 정직하게 사업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에게 삥 좀 뜯어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꼭 지탄받아야 할 일인가요?”

장태산이 묵직한 음성으로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꿀꺽.

김국조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침만 삼켰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대어였던 장태산.

“되, 됩니다! 당연히 그런 싸가지 없는 기업들의 목을 졸라서 빨아들인 기부금은 언제나 쌍수 들고 환영입니다!”

재빨리 꼬리를 내리고 격하게 환영 의사를 밝히는 김국조.

그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1000억이라면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안정적으로 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거금이다.

김국조에게 장태산은 이 순간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황금동산 물주가 분명했다.

“그럼 부탁 하나 하죠.”

“???”

“응급실 구경 좀 시켜주시죠.”

***

띠띠띠.

응급실이다.

예상보다 넓고 조용하다.

돌아다니는 환자는 없었다.

커튼이 쳐진 칸막이 병상 몇 개가 먼저 보였다.

주기적으로 바이탈 체크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주로 들렸다.

“3번 환자 어때요?”

“체온은 37도. 혈압이 최대 140 정도로 살짝 높지만 심박수는 정상입니다.”

“그럼 병실로 트랜스퍼 요청하세요.”

“……아직 자리가 없다고.”

“자리요? 긴급 수술 끝나고 바이탈도 안정적인데 응급실에 계속 놔둘 수는 없어요. 이러다 저녁에 환자들 몰리면 큰일이에요.”

“배정 배드가 꽉 찬 상태라고…….”

“아니 외과 병상 여유분이 10개나 남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래요?”

응급실 당직 의사와 간호사가 차트를 보며 짜증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

말로만 듣던 병상 배정 문제.

대형 병원의 고질적인 병패 중 하나다.

특진이 필수인 암 센터처럼 돈이 잘 벌리는 과 중심으로 병상이 집중 배정됐다.

돈도 안 되고 책임이 막중한 과에는 배드 배정이 그만큼 박했다.

주희를 대신한 의대 실습기간에 확실히 경험했다.

그렇다고 딱히 좋은 대안은 없었다.

특히 현대에는 병원도 큰 영리 산업에 속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자본과 힘이 집중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이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닌 영역인 것이다.

국가에서 그나마 조절한다고 어느 정도 개입한 덕에 이 정도다.

만약 미국처럼 의료 민영화가 시행된다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지옥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야?”

김국조 교수가 나섰다.

“교수님…….”

레지던트를 갓 벗은 듯한 젊은 의사가 김국조를 보고 말끝을 흐렸다.

“이요한 환자 병상 배정을 외과에서 받아주지 않아요.”

20대 후반의 간호사가 씁쓸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이요한 환자라면 어제 수술 끝났잖아. 그런데 아직도 배정이 안 됐어?”

김국조 교수가 인상을 쓰며 되묻는다.

“그게…….”

젊은 의사가 끝내 답을 못했다.

“하아. 권 과장 그 자식이 또 야료를 부리네.”

김국조가 응급실 데스크 전화기를 들었다.

티디딕.

바로 직통 번호를 눌렀다.

“권 과장 나야.”

-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너 이렇게 나올래? 응급실에서 수술 끝나면 외과에서 바로 받아줘야지. 왜 질질 끌어!”

- 그게…… 병상이 부족해서.

“지랄하고 있네. 10개나 비었는데 병상이 부족해? 내 눈깔이 빙신이냐? 아니면 날 핫바지로 보는 거야!”

김국조가 버럭버럭 화를 냈다.

눈치 빠른 간호사가 모니터를 통해 병상 상황을 확인시켜 주었다.

- 선배님. 저도 드리고 싶지만 위에서 뭐라고 하잖아요. 응급실에서 3일 동안 12개나 사용했어요. 우리 과에 찾아온 환자들도 타 병원으로 보내는데 선배님도 트랜스퍼 시키세요.

전화기 너머의 외과 과장이 우는 소리를 뱉었다.

“개소리 말고 받아. 내가 환자 직접 끌고 가기 전에!”

결국 김국조의 입에서 큰소리가 났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는 듯 다른 의사나 간호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그럼 이번 한 번만입니다. 이번 주는 더 이상 안 됩니다. 저희도 수술 잡혀 있는 환자들이 10명이나 됩니다.

“알았어. 최대한 협조할게.”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 투의 대답이다.

- 선배님 제발 환자들 좀 다른 병원으로 보내주십시오. 끝까지 우리가 다 책임을…….

딸깍.

외과 과장의 하소연을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김국조 교수.

포스가 장난 아니다.

“들었지?”

“네? 넵!”

“빨리 보내. 오늘 느낌 안 좋아.”

응급실 입구를 보며 오늘 일진을 예견하는 듯한 김국조 교수의 말.

그에게서 프로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세요?”

간호사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김국조에게 묻는다.

어느 순간 응급실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김국조 교수가 그제야 나를 본다.

씨익 웃는 김국조.

그리고 이어지는 묵직한 한마디.

“착한 물주.”

“???”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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