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3장. 변수(3)
“정 계장. 피의자 어딨어?”
“지금 수원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상태는?”
“생각보다 경상입니다. 에어백 덕에 어깨 탈골과 부분 염좌 말고는 별 이상 없습니다.”
“이렇게 세게 박았는데?”
경기도 남부경찰청 교통과 과장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SUV형 승합차가 버스전용차로에서 돌격하듯 두 개 차로를 가로질러 앞서가는 자가용의 뒤를 받았다.
반파될 정도로 크게 찌그러진 승용차는 설치된 난간을 뚫고 즉시 추락했다.
운전자를 비롯해 동승자가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피의자는 경상에 그쳤다.
“운이 좋았나 봅니다.”
“운은 개뿔! 시발! 하필 우리가 담당이라니…….”
과장의 입에서 욕설이 터졌다.
보통 교통사고는 관할 경찰서에서 담당했다.
하지만 여러 특수 사항이 겹쳐진 이번 건은 얘기가 달랐다.
대형 사고로 처리되면서 경찰청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전 대선주자이자 다음 대 야당 대선주자로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는 김현재 전 대표가 관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탓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차량에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어 사고 관계가 명확했다.
고의나 중대 과실로 인한 사망 사고가 아니라면 종합 보험으로 형사처벌이 면책되거나 벌금형에서 끝났다.
평소라면 느긋하게 일을 처리하겠지만 김현재라는 이름이 갖는 파괴력과 수상한 사고 정황에 과장은 날이 잔뜩 곤두섰다.
사건 처리를 잘해도 본전이고 못하면 사달이 날 게 확실했다.
상부의 지시로 남부경찰청 교통과가 직접 수사를 맡았다.
과장 강운태 총경은 신경이 바짝 섰다.
3월에 경기지방경찰청이 남부와 북부로 분리됐다.
여러 인사이동 가운데 승진 기회가 잡혔다.
경찰의 꽃이라는 경무관 승진을 앞두고 있기에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정치권 풍향이 요상했지만 승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잡고 있는 줄이 그만큼 튼튼했다.
눈에 띄는 대형 사고만 아니면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발생한 악재.
“수상합니다.”
경찰대 출신은 아니지만 베테랑 수사관 출신인 담당 계장이 사고에 대해 의구심을 내비쳤다.
“그렇지? 정 계장이 봐도 수상하지?”
“고의성이 다분합니다.”
“피의자는 뭐라고 그래?”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다 실수했다고 합니다.”
“버스전용차로에서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미친 새끼…….”
제 사무실인 만큼 거침없이 욕을 내뱉는 강운태.
“운전 경력이 20년이 넘어갑니다. 전직 트럭 운전기사라 어지간한 도로는 내비게이션이 필요치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새끼 뭔가 있는데…….”
강운태가 의심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현 대통령과 여당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김현재 대표다.
반대로 미래 권력에 한 발자국 다가간 존재이기도 했다.
줄을 잘 잡는다면 땅 짚고 헤엄치듯 승승장구할 수 있다.
“김현재 대표 상태는 그대로야?”
“……회복에 상당한 시일이 걸린답니다. 거기에 후유증도 있을 거라고 합니다.”
병원에 정보과 직원이 파견됐다.
사방에서 정보를 캐 물어왔다.
대한민국 미래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된 셈이다.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벌집을 쑤셔놓은 판이 됐다.
똑똑.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차례 두들겼다.
강운태는 고민에 빠졌다.
“과장님, 영장 칠까요?”
“영장? 그건 오버 아냐? 고의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잖아. 중상이지만 사망한 것도 아니고 종합보험도 가입되어 있다면서?”
교통사고로 구속영장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음주운전 사망 사고를 내도 합의가 되고 전관을 고용하면 집행유예로 빠져나왔다.
너무나 허술한 대한민국 교통사고 법체계.
“그래도 너무 찝찝합니다.”
수사 경력이 풍부한 계장은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범죄 냄새를 지울 수 없었다.
“참아. 윗선에서 반응이 오거나 여론이 나빠지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아.”
총경이 지방 경찰서에서는 먹혀줄지 모르지만 정치권까지 연관되면 파리 목숨이나 진배없다.
여당 다선 의원에게라도 찍히면 당장 옷을 벗어야 하는 애매한 위치인 것이다.
“그래도 액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기다려봐……. 연락이 올 거니까.”
강운태 과장은 조급함 속에서도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이런 사건은 반드시 윗선들의 조율이 필요했다.
그게 악이든 선이든 말이다.
승진하고 싶다면 그들의 의중에 따라 그대로 움직이면 됐다.
남부지방경찰청장도 입을 다물었다.
최소 민정수석실이나 여당 최고위원, 그것도 아니면 경찰 총장급의 지시가 필요했다.
띠르르르르르르르.
그때 과장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민원인들은 알 수 없는 번호다.
“후우.”
짧게 숨을 들이쉬며 전화기를 드는 강운태 과장.
기다리던 윗선 전화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경기남부경찰청 교통계 강운태 과장입니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댔다.
그 순간.
- 수고가 많아. 나 황병서 대검차장이야.
“네? 대검 황병서 차장님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였다.
- 이번 사건. 검찰로 이첩하기로 결정했으니 그리 알아.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회를 받는 수사 보조 관계였다.
알려지기는 하급 직급에 한정된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경찰서장인 총경급도 검사의 명령에 암묵적으로 따라야 했다.
찍히면 경찰서가 돌아가지 않았다.
영장 반려 및 수시로 떨어지는 수사 지휘와 보충 수사로 골머리를 앓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수원 지검장도 아니고 무려 검찰 2인자인 대검 차장의 직접 명령이다.
총장까지 엮여 있다는 의미였다.
“아, 알겠습니다.”
강운태는 크게 놀라며 대답했다.
- 입에 지퍼 꽉 채워.
“충성!”
띠이이이.
경례가 끝나기도 전에 상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우우우! 시발!”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당겨 풀며 강운태가 다시 한 번 진한 욕설을 뱉었다.
“과장님…….”
“정 계장, 우리 살았다.”
“네?”
“검찰에서 바로 사건 이송해 간다니까 준비해놔.”
“검찰요? 지금요?”
검찰은 대부분 초동수사에 관여하지 않았다.
머리에 앉아 지시하기를 좋아하는 조직의 생리다.
“권력이 깡패라고 기분 더럽지만 똥은 치웠다.”
강운태의 기분은 시원함과 분노가 반반 섞여 묘한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다.
“대검 차장검사가 나설 정도라면 도대체 뒤에 누가…….”
정 계장은 가장 윗선이 궁금한 듯 중얼거렸다.
“승진하고 싶으면 넘어가자. 이런 건 안다고 해도 의미 없어,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인 거 몰라?”
씁쓸한 강운태의 말투.
“…….”
정 계장은 입을 다물었다.
국민들은 모르는 형사 사건의 처리 과정.
대부분의 사법 체계가 돈 많은 자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찰과 법원 조직 모두 전관예우라는 개떡 같은 자신들만의 계산법으로 대한민국을 어둠 속에서 통치하고 있었다.
***
“좌우측 갈비뼈 12개 골절에 폐와 위를 비롯한 장기 다발손상 및 충격으로 인한 급성 경막외혈종으로 인한 개두술 시행……. 으음.”
휴대폰을 통해 전해진 최종 결과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었다.
지체없이 아웅대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중환자실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향냄새를 맡고 있을 게 확실했다.
조금 더 내려가 지방에서 사고가 났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응급 종합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들이 갈수록 드물어졌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흉부외과를 비롯해 중요 외과 설치를 대형 병원들이 기피했다.
“회장님……. 대표님 어떻게 될까요.”
양우석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아웅대로 이동했다.
병실에 AT씨큐리티 특급 경호원들이 배치됐다.
경찰도 심각성을 인지한 듯 아웅대 주변에 병력을 파견했다.
철통같이 경호를 하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이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만 믿고 안일했다.
“살아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목소리가 냉정하게 나왔다.
죽지 않았으면 됐다.
“하아아아아.”
양우석 의원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개두술까지 시행됐다면 앞으로 김현재 대표의 미래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뭐? 대검찰청 지시로 수원지검에서 채갔다고?”
아웅대 인근에 위치한 호텔.
옆에서 통화 중이던 조윤태 변호사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초동수사부터 지들이 맡겠다는 거야? 언제부터 그랬다고!”
조윤태 변호사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대검찰청 지시라면 검찰총장 명령이라는 의미였다.
대검찰청은 총장의 직속 부대다.
짙은 음모의 냄새가 풍겼다.
“알았어. 상황 더 알아보고 보고해.”
조윤태 변호사의 목소리가 한층 더 예민했다.
차장검사 출신이다 보니 직감적으로 숨겨진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장 회장님. 이거 생각보다 더 복잡한 거 같아요.”
양우석 의원이 동석해 있다보니 평소 말투와 달라졌다.
“총장 지시입니까?”
“얼마 전에 임명된 황병서 대검차장이 경찰청에 직접 연락했답니다. 내가 그 자식 아는데 여당 의원들하고 짝짝쿵이 잘 맞아요. 완전 정치적인 새끼에요.”
조근영이 올 초에 임명한 총장과 검찰 고위직들.
정권 말기를 책임질 사냥개로 임명됐다.
정치적으로 가장 믿을 만한 자들로 채워진 것이다.
물론 그들 또한 지금껏 검찰이 그러했듯 주인이 바뀌는 걸 알면 바로 물어뜯을 것이다.
“그래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검찰이 나섰다는 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거나 아니면 묻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껏 검찰 생태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론이 떠들썩하지만 곧 잠잠해질 걸 안다.
과거부터 그랬다.
국민들은 친일파들이나 독재 정권 인사들에 대해 생각보다 관대했다.
반면 독일이나 유럽은 나치 정권에 충성한 이들을 공소시효 없이 처단했다.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민족의 업보일 것이다.
친일파나 독재 정권 부역자들이 입으로는 반성한다 말하고 눈물 몇 방울 찔끔 흘리면 다들 용서해준다.
주요 언론도 소설을 써가며 그들이 용서받도록 도움을 준다.
회귀하기 전인 2020년에도 여전했다.
촛불을 들며 분개하던 이들이 몇 년 만에 활화산처럼 터져나오던 분노를 다 잊어버렸다.
나라를 팔아먹은 전직 쥐새끼 대통령을 상대로도 연민을 품었다.
국정 운영은 뒷전이고 청와대에서 필러 주사나 맞으며 일개 아줌마에게 국정을 맡긴 공주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득권에 의해 세뇌된 이들이 공주님을 복권시키라 하루가 멀다 하고 난리를 쳤다.
살아온 지혜와 쌓아온 지식이 충분한 이들이라면 평생 몸서리칠 만한 사건이었지만 쉽게 잊어버렸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장점이자 치명적 단점이 아닐 수 없었다.
기득권은 그 국민성을 진작 파악하고 곳곳에서 이용했다.
지금 이 사건도 진상 규명을 위한 여론이 들끓지만 연예계 뉴스 한 방이면 잠잠해질 것이다.
“장 회장. 이거 뭔가 있어요. 보이지 않는 손이 분명 작동합니다.”
검찰 출신답게 조윤태 변호사가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보이지 않는 손요? 누가요?”
양우석 의원은 이런 감각이 부족했다.
“찾아내야죠.”
차라리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띠링.
그때 양우석 의원의 스마트폰 문자 알림음이 들렸다.
“국회에 가봐야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당 대표를 비롯해 핵심 의원들이 모이는 회의가 있답니다.”
차기 대선주자가 당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시점.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다만.
“사고 후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네?”
“병원에 제일 먼저 달려온 이들이 있습니까?”
“그야…….”
대답하려다 말고 입을 다무는 양우석 의원.
“인심 참 야박하네……. 쯧.”
조윤태 변호사가 상황을 눈치채고 혀를 찼다.
“양 의원님.”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말을 아끼십시오.”
“그 말씀은…….”
“인생 선배들이 예로부터 한 말이 있습니다. ‘적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