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9장. 대비하다. (1,154/1,284)

1179장. 대비하다.

“떠났다고?”

“새벽 일찍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슈건핑은 잠자리에서 깨자마자 장립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장마처럼 줄기차게 퍼붓던 비는 어느새 개인 후였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깨끗하게 걷힌 북경의 아침 하늘.

다른 날보다 더 맑고 깨끗했다.

“흐음.”

슈건핑은 멀리 창밖을 바라보며 미국으로 떠난 장립을 떠올렸다.

단 며칠 만에 북경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켜 버린 인물.

대범하게도 고위 정치가들을 한데 모아놓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경매를 추진했다.

대단한 부를 거머쥔 동시에 독특한 형태의 꽌시도 형성했다.

여러 거물들과 환담을 나누는가 하면 자신의 제안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생각할수록 그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역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약은 쥐 새끼가 따로 없어.’

며칠 더 머물겠지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착각이었다.

장립은 거센 폭풍을 일으킨 후 유유히 사라졌다.

“……류미 양이 아침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같이 밤을 보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제는 몰려오는 피로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장립이 일으킨 후폭풍은 엄청난 정신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류미와 장립이 바에서 함께 술을 마신다는 보고가 잠들기 전 들은 마지막 정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자리가 함께 밤을 보내는 시간으로 이어진 듯했다.

“방에서?”

“네.”

“그렇단 말이지…….”

젊은 청춘 남녀가 하룻밤 같이 보내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로라하는 이들의 시선이 그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완진바오가 승부수를?’

슈건핑은 아침부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능구렁이 완진바오가 이 같은 상황을 연출해 냈다고 판단하기에는 그 파장이 크다.

장립은 현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감히 누가 먼저 나서서 손댈 수 없는 틈에 류미가 끼어들었다.

완진바오의 묵시적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일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류미의 혼처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룻밤 일탈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너무 많은 이목이 집중된 터였다.

소문은 무섭게 몸집을 불릴 게 빤하다.

그걸 감내하겠다는 암묵적 의사를 내비친 류미와 완진바오.

“왕정의 뒤처리는?”

“지시하신 대로 깔끔하게 마무리됐습니다.”

왕정의 자살이 있은 직후 방태민의 전화를 받았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방태민이 직접 소란에 대한 사과와 양해를 구해왔다.

모르는 척 받아줬다.

인사치레에 불과하지만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나중에 그에 준하는 대가를 슈건핑에게 지불해야만 한다.

동시에 절호의 기회로 작용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상무위원 선출 문제로 상해방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공석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왕정의 후임 선택에 슈건핑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단은?”

“아직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장립은 특별 입국자로 선정됐다.

출입국 시 고위 외교관처럼 그에 대한 검색이 면제된다.

조달할 환단의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슈건핑이 특별히 배려했다.

“전달받은 자들의 명단과 환단 개수를 최대한 파악해 놓도록.”

“알겠습니다.”

슈건핑은 장립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모종의 술수를 쓸 거라 예상했다.

‘장립 네가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뭔가를 계획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함부로 경거망동한다면…….’

슈건핑의 인자함 뒤에 감춰진 잔혹한 손속은 따라올 자가 없다.

한 번 마음 먹으면 피도 눈물도 없이 처리했다.

천안문을 쓸어버린 방태민이 괜히 슈건핑을 사냥개로 낙점한 게 아니었다.

티베트를 비롯해 몇 번의 소수민족 반란 사건을 소리 없이 진압한 공로가 적지 않았다.

‘떠난 놈은 떠난 놈이고 이제부터는…….’

슈건핑은 벌써 마음이 바빴다.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일대일로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연결될 중국의 힘.

슈건핑은 과감한 권력 사용으로 제국의 기틀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미국! 조금만 기다려라!’

장립과 비교할 수 없는 전투 상대.

슈건핑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의 강대국을 건설하고 싶었다.

곧 찾아올 진정한 제국.

위상을 떨칠 제국의 초대 황제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게 일생의 소망이다.

***

“그 녀석은?”

“갔습니다.”

“어디를 말인가?”

“참교육을 위해 여러 좋은 스승들께 보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 잘했어. 아주 마음에 들어!”

임성철 회장이 듣는 사람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죽어서도 눈치가 모자라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벌써 몇 차례 임성철 회장의 눈밖에 났다.

미국에 있는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LA 국제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다른 비행기를 이용해 도착한 와이너리.

파티는 진작 끝난 듯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유일하게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임성철 회장.

본래의 모습으로 서로 바꿨다.

“파티는 어땠습니까?”

“……장 회장. 취미가 고약스럽더군.”

임성철 회장이 불만부터 쏟아냈다.

보지 않아도 상황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가정 있는 분은 지조를 지키셔야죠.”

“자네는?”

“전 총각이지 않습니까.”

아직 공식적으로 미혼인 신분을 팔았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류미와의 시간.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어쩔 수 없이 계약은 뜨겁게 이뤄졌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쉬이 꺼지지 않는 법이다.

전생의 인과가 결실을 맺은 격이다.

“쯧쯧.”

임성철 회장이 혀를 찼다.

귀신같이 뭔가를 눈치챘다.

“큼큼.”

노련한 너구리 회장님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대충 헛기침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중국에서 사고 쳤나?”

임성철 회장은 나의 행보에 관한 한 자세한 상황을 몰랐다.

그렇다고 알려줄 수는 없다.

차라리 모르는 게 피차 속 편할 거다.

자신의 이름과 모습으로 내가 중국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면 놀라 잠도 제대로 못 잘 것이다.

“사업하다 보면 사고는 항상 벌어집니다.”

담담한 척 행동했다.

실눈을 뜨고 유심히 나를 살피는 임성철 회장.

세계적 기업을 이끈 오너답게 눈길이 꽤 매서웠다.

“어차피 자네가 알아서 잘했겠지. 설마 나와 내 가족을 생각하지 않고 대형 사고를 치지는 않았겠지.”

“그, 그럼요. 하하하하.”

목소리가 살짝 떨리며 새어나왔다.

양심이라는 놈이 멋대로 작동했다.

중국 고위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판승부를 봤다는 사실을 어떻게 밝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립의 몸으로…….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임성철 회장이 다음 노선을 물어왔다.

“국내외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국내외적? 미국이야 대통령 선거 때문에 그렇다지만 국내는 왜?”

임성철 회장은 아직 눈치를 못 챘다.

과거와 달리 오정의 정보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없었다.

“한국 소식 못 들었습니까?”

“이렇다 할 뉴스는 없었네. 주순자가 단단히 언론에 찍힌 것 말고 말이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2016년 가을, 메가톤급 핵폭탄이 찾아온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뭐? 주순자가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네.”

“……주순자가? 기껏해야 뇌물 정도 좋아하는 그 아줌마가?”

임성철 회장이 나의 말을 믿지 못했다.

어느 정도 주순자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몰랐다.

“가을 태풍이 닥칠 겁니다.”

“태풍이라……. 청와대도 연결됐다는 의미인데……. 설마 멍청한 자들이 자신들이 지지한 VIP까지 타깃으로 노리는 건 아니지?”

“…….”

대답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것도 천기누설이다.

“뭔가 있군.”

“파장이 오정에도 튈 겁니다.”

“어느 정돈가?”

“후계자가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은어를 사용해 심각성을 전했다.

“헛!”

임성철 회장이 크게 놀랐다.

“그 정도인가?”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으음…….”

오정 장학생들도 이건 못 막아 낸다.

촛불이 횃불을 넘어서 용암 수준이 된다.

대통령도 끌어내리는 마당에 그룹 총수가 무사할 리 없다.

“아직도 그 수준이라면……. 교육을 받아야지.”

역시 사자다웠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죄송합니다.”

막아 줄 수 없음을 먼저 사과했다.

내가 개입해도 큰 물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몇 차례에 걸쳐 경고했지만 오정의 후계자가 고집을 부렸다.

오정의 힘으로 못 할 게 없다고 믿고 있었다.

세상 무서운 줄을 아직 몰랐다.

누구나 착각 속에 있다가 큰 코를 다쳐봐야 뜨거운 맛을 알게 되는 법이다.

“오정에 타격은?”

오정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냈다.

미국에서 아내와 쌍둥이를 키우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오정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가문이 힘을 쏟아 키워낸 가업이다.

공식적으로는 식물인간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오정의 회장이다.

“잠시 시끄럽겠지만 오정이 쉽게 무너질 나무는 아니죠.”

“……그래야지. 오정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두워.”

맞는 말이다.

멋 모르는 이상주의 정치꾼들이 오정 해체를 주장하지만 개소리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중국이나 인도도 대형 기업들이 국가를 떠받쳤다.

과거처럼 맨땅에 삽질해서 일궈낼 수 있는 규모의 기업이 아니다.

하나의 대기업이 쓰러지면 다시 본래 상태로 재건하기 힘든 세상이다.

특히 반도체 같은 분야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다.

오정이 무너지면 그 여파는 국가 부도급에 준할 것이다.

가장 쌍수 들고 환영할 자들은 당연히 이웃집 개들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맙군…….”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만족해하는 임성철 회장.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임준형은 밉지만 그 감정은 오정과는 별개다.

“필요하면 말하게.”

“네?”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 계좌가 빵빵해.”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임성철 회장의 주머니가 빵빵해도 내 쌈짓돈만큼은 못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막둥이 지참금이니까 편하게 생각해.”

“…….”

임성철 회장은 역시 고수다.

부드러운 미소로 빙그레 웃는 임성철 회장.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대비할 생각입니다.”

“대비? 뭘?”

“……몇 년 안에 대공황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뭐라! 대공황!!!”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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