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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장. 진정한 중국몽(5) (1,151/1,284)

1176장. 진정한 중국몽(5)

하나 받고 하나 더?

이거 땡긴다.

여기 있는 신들 상당수가 고 레벨인 것만은 확실하다.

한 번 말로 뱉으면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조건이나 내걸 수도 없다.

잘못하다가는 후손들을 볼모로 삥 뜯는 양아치라고 신계에 소문 쫙 날 것이다.

물론 그게 무서워 눈 감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고 이미 벌어진 판이다.

이들만이 중국의 조상신이 아니다.

머릿수로 따지자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쳐날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양심이라도 있는 자들이 찾아온 상황이다.

양심은 있어도 자존심이 강한 자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내가 아는 영웅호걸만 해도 셀 수 없이 많고, 중국 곳곳에서 묵묵히 수행정진하던 기인이사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다.

정작 그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 뭘 받아야 하죠? 다들 카르마 부자이신 거 같은데 한밑천 확 땡겨요? 흐흐흐.

귀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음흉한 웃음을 흘린다.

하지만 지금 카르마는 문제가 아니다.

신들 간 자존심 경쟁을 넘어 한민족 조상과 중국 조상의 승부가 걸린 문제로 커지고 있다.

짭짤한 카르마 몇 푼에 이런 기회를 날릴 수 없다.

-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그러고 보니 공자의 표정이 많이 다급해 보였다.

- 깊이 묻지는 마십시오. 천기누설에 해당합니다.

공자님, 말을 나눌수록 참 예의가 바르다.

예가 아니라 생각하면 포권을 쥐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천기누설?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아직도 많다.

- 장 도우. 조건을 말해보게.

장자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술병 옆에 끼고 풍진 세상을 유람하는 진정한 자유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술 한잔하고 싶은 신선이다.

“이런 일은 저도 처음이라…….”

솔직히 처음은 아니다.

신들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도리어 사기를 치기도 해봤다.

인간들이나 신들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매한가지였다.

그만큼 밀당은 필수다.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했지만 조건을 쉽게 내걸 수 없는 입장이다.

한둘 상대하는 문제도 아니고 자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신선계에 속하는 신들의 방문이다.

숙고했다 해도 얼토당토않는 제안일 경우 한반도 조상님들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거래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 형님! 흐흐. 인구도 많으니 중국 미녀 선녀분들도 신계에 많지 않겠습니까? 포인트와 미녀! 남자에게 그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습니까!

마치 본인 일처럼 상상의 나래를 펴는 귀신이 침을 튀겨가며 추천 목록을 날렸다.

귀신의 그런 모습을 보며 분명하게 하나는 결정했다.

- 장 공에게 후손들이 못 할 짓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총대를 멘 것으로 보이는 공자님이 속 얘기를 하라며 재촉했다.

뒤에 선 병풍 신선들도 못지않게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흐음.”

고민이 안 될 수가 없다.

포인트와 미녀 신선은 각기 다른 이유로 필요 없다.

사실 넘쳐나는 게 포인트고 현실에서도 주변에 넘치는 게 미녀다.

“그런데 굳이 절 찾아와 이렇게 청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게 무슨 힘이 있다고.”

궁금한 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 ……장 공께서는 저희가 모시는 분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에휴.

공자가 말을 잇다 말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손? 내가?

역사가 기록되지 못한 고대 어느 시점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여러 민족들이 뒤섞여 사이좋게 돌도끼 들고 대륙에서 사냥하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공자가 모시는 분은 또 누구야?

복잡하기만한 신계도(神系圖).

- 장 도우. 차차 알게 될 걸세.

장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술을 벌컥 마셨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흘러 흘러 평안히 살고 있었을 신선의 표정에 답답함이 어렸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천기누설이라는데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이제는 내 입장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날 찾아와 대답을 기다리는 중국 조상신들을 바라봤다.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는 신들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후손들이 쌓은 업과 앞으로 쌓아갈 업을 조금이라도 선한 포인트로 청산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다들 바빴다.

“제 조건은…….”

- 포인트와 미녀 신선 소개팅요!!! 움하하하하하! 원 플러스 원으로 한 번 훅 땡깁시다!

귀신이 광소를 터트리며 혼자 지껄여 댔다.

“지지입니다.”

- 지지요? 혀, 형님 갑자기 그 무슨 해괴한 말씀입니까. 지지라니요!!!

귀신이 기대하던 대답과 다른 말에 놀라 되물었다.

물론 조건이 하나 남아 있긴 하다.

- 장 공, 지지라 함은…….

공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뛰어난 현자라 해도 나의 말에 담긴 의미를 단숨에 파악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 호오!

장자가 뭔가 눈치를 챘는지 이내 감탄사를 터트렸다.

다른 신들의 눈빛은 의혹이나 반문이 강한 빛을 띠었다.

물론 몇몇은 ‘지지’라는 의미를 곧 깨닫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도 했다.

신이어도 모두 수준이 달랐고 또 아는 것도 달랐다.

각자 전생에 쌓은 업과도 다르고 또 신선계에서 깨달은 도도 달랐기 때문이리라.

- 형님! 지지라니요! 형이상학적인 조건 말고 확실하게 돈하고 미녀요!

귀신이 아주 자지러진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절 찾아오신 신선분들은 모두 다 후손들을 애민하는 분들이 아닙니까. 그런 분들께 어찌 상스러운 조건을 걸 수 있겠습니까.”

당당하면서 예에 부족함이 없도록 말을 건넸다.

- 으음…….

- 아!

신선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태백산 할배가 패버리라고 한 이웃집 개들에 이분들은 해당사항 없다.

인의예지와 염치라는 걸 아는 이들을 어찌 핍박하겠는가.

“후에 여러 신들과 만날 날이 올 거라 생각됩니다. 그때 저와 조상신님들을 지지해 주시면 됩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치우침 없이 예와 도에 알맞게 행동해 주시면 됩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심플한 조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척 소화하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했다.

중국신들도 자신들끼리 활발한 네트워크가 존재할 것이다.

날 지지하는 순간 그들 중국신들끼리 안면을 붉혀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 형님! 이건 아니잖아요! 겨우 이 조건으로 넘겨주기에는 너무 손해입니다! 도저히 이 동생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무척 실망했다.

장립아!

귀신을 조용히 불렀다.

- 왜요…….

돌아가는 판이 맘에 들지 않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귀신.

실망하지 마라. 조건이 하나 더 있다.

- 그렇죠? 으흐흐흐흐. 역시 우리 형님이십니다!

귀신이 바로 만족했는지 웃는다.

그의 모자란 이런 모습이 무척 안타깝다.

“그리고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직 답변하지 않은 공자에게 청이 있음을 밝혔다.

- 말씀하십시오.

공자 뒤에 있던 이가 대답했다.

“누구십니까?”

- 맹자입니다.

중년의 기품이 넘치는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유순한 음성.

학식과 연륜이 목소리에서부터 물씬 묻어났다.

“맹 공께 특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내건 조건은 맹자와 연관이 깊었다.

- 귀를 열고 경청하겠습니다.

유가의 대표 주자답게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맹공의 어머님께서 교육을 위해 삼천지교를 실행하셨다 들었습니다.”

-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맹자는 지극히 겸손했다.

그 점은 태도에서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공자보다 한층 더 부드러운 여유가 묻어났다.

생각하고 있는 조건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귀신을 돌아보고 씨익 웃었다.

- 뭐, 뭐죠 그 사악한 웃음은…….

뭔가를 직감하고 바짝 쫄아버린 귀신.

“제 아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우라 하심은…….

말을 줄이며 곁에 붙어 있는 귀신을 천천히 바라보는 맹자.

“전생에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긴 윤회 시간 동안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해 언행이 천박하고 사상이 불순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이 모두 제 불찰이라 여기며 견디었으나 오늘 귀한 스승님들을 뵙게 되니 이 또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염치없지만 제 아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거절하지 마시고 맹 공을 비롯해 여러 스승들께서 부족한 제 아우를 회초리로 엄히 다스려 인의와 예의 근본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옵니다.”

청탁과 함께 고개를 최대한 깊숙이 숙였다.

그것도 90도로 허리를 접는 것을 넘어 아주 깊숙이!

- 으아아아아아아! 혀, 형님! 이 무슨 망발입니까! 다 죽어서 교, 교육이라니!!! 

귀신이 펄쩍펄쩍 뛰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갑자기 찾아온 날벼락에 환장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귀신은 사회화를 위한 재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노바 형님 쪽은 아닌 듯했다.

이제 필요한 건 동양적 윤리의식과 예의범절의 회복이다.

- 그건 걱정 마십시오! 조금 전부터 지켜보았는데 법도가 많이 무너져 내린 상태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그 가르침에 합류하겠습니다!

- 저도 교육에 나서겠습니다.

- 마침 한가하던 참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엄격한 법가의 수장부터 시작해 여러 신선들이 눈빛을 차갑게 빛내며 귀신을 쳐다봤다.

멍청한 귀신이 미래를 생각지 못하고 신들 앞에서 까불었다.

일개 잡귀에 지나지 않은 주제에 감히 포인트와 선녀들을 논했다.

귀신이 속삭이듯 작게 말했지만 거리가 있어도 레벨이 높아 다들 귀로 똑똑히 듣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귀신을 내던졌다.

- 형님!!! 이건 배신입니다! 배신!!!

귀신이 억울한 듯 소리쳤다.

배신?

귀신아, 이런 걸 참교육이라고 한단다.

- 장 공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공자가 어렵게 입을 뗐다.

이걸로 계약이 완성됐다.

신들의 말이었기에 함부로 어길 수도 없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포권을 취했다.

- 후손들에게 엄히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진정한 중국몽은 패도(霸道)가 아니라 인의(仁義)임을 각성시켜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읍할 것입니다.

공자가 다시 한 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명성을 날리던 성자의 부탁이었다.

“후손들의 정신에 내재된 포악하고 사나운 성정을 고쳐놓겠습니다!”

확답이 돌아왔다.

태백산 할배가 내건 조건과도 부합했다.

성질 더럽고 욕심 많은 이웃집 개들을 몽둥이로 패서 교육시키라 했었다.

- 장 공……. 계약 성사를 위해 한 가지 이행해 주실 게 있습니다.

그때 공자가 조심스럽게 약속을 청했다.

“그게 무슨…….”

- 계약서 비슷한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계약서?

어딘가 이상하다.

- 시간이 늦어 오늘은 이만 물러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계약서는 보는 순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나쁜 일도 아니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그리고 동생분도 완벽하게 교육시켜 보내드리겠습니다!

공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강하게 뇌리를 스쳤다.

- 형니이이이이임! 이 동생을 진정 버리시나이까!!!

귀신이 바락바락 악을 썼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귀신 하나 구제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다.

- 장 도우, 이만 물러나겠네. 이 술병은 내 마음의 증표이니 잘 보관하고 있게.

유난히 친밀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장자가 다가오며 술병을 건넸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그 순간.

- 황제를 조심하게…….

다른 신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신의 음성으로 짧은 한마디를 전하는 장자.

- 그럼.

파아아아앗!

그러고는 뭔가에 쫓기듯 신들은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으아아아아아아아!

귀신도 함께.

“흐음…….”

거짓말처럼 처음 앉아 있던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호텔 스카이라운지 바.

공자가 짤막하게 던지고 간 한마디 속 계약서의 내용이 괜히 신경 쓰였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 순간.

“립…….”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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