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5장. 진정한 중국몽(4)
- 진심으로 사과드리오.
공자가 먼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공손하고 극진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척 당황스럽다.
- 장 도우께 심심한 위로를 드리는 바이오.
- 장 신선께 아량을 구하나이다.
- 손에 사정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오.
존경받아 마땅한 중국 조상들이 일제히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해왔다.
“아니 다들 이러시면…….”
나도 황급히 그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보이는 행동에 거짓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 오메! 다 뭣이다요!
상황에 맞지 않은 귀신의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렸다.
한국에서 매일 TV 드라마를 보더니 제대로 습득했다.
“…….”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했으니……. 이로써 성인은 말하지 아니하고서 가르친다…… 도의 길은 어렵도다 어려워.
장자가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들은 지금 현세의 후손들을 대신해 나에게 사과하고 있다.
그 느낌은 진작 알아차렸다.
어리석은 후손들 때문에 잘난 조상신들이 곤혹스러운 것이다.
신선으로서 하늘에서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혼탁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후손이 살고 있는 중국을 지켜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이민족 신들은 하나같이 난처한 표정에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중국이라는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소수민족이 되어버린 후손들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 되어버린 이민족의 신들.
저들도 마음 같아서는 깔끔하게 독립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민족 용광로 앞에서 녹아버린 민족정신을 분리해 내기란 쉽지 않다.
- 요즘 세상에 군자(君子)가 드물다는 걸 압니다. 그렇지만 장 공은 정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의로써 행동하며 겸손함으로 뜻을 나타냈으며 신의로써 이로움을 달성하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부디 군자의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공자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나도 다시 맞절.
- 다들 예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임금은 정의롭게 명령하고 신하는 충의로써 복종하며 아버지는 자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식들은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며 형제들은 서로 우애하며 남편 된 자는 온화하며 아내는 유순하고 시어머니는 인자하고 며느리는 순종하는 예도가 무너졌습니다. 진정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 안 공의 말이 옳습니다. 가정에 예가 있으므로 장유가 변별되고 집안에 예가 넘쳐 가족이 평안하며, 조종에 예가 있어야 관직에 법도가 깃드는데 다들 그걸 모릅니다.
- 진정한 법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법도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아야 부강하고 위아래로 예가 번성하는 법인데…….
- 본래 인간이 선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악함을 가지고 태어난 자를 여러 학문으로 엄히 가르쳐 그 근본을 바로 세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 아닙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입니다. 다만 세상이 어지럽고 악함에 빠져서 그렇습니다. 이를 깨우칠 만한 스승들이 세상에 없어서 이리된 겁니다.
- 고귀한 자는 스스로 귀한 것이 아니라 미천한 자가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니 높은 권력자도 스스로 높은 것이 아니라 낮은 자가 근본이 됨인데 그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쯧쯧쯧.
- 인간으로 지켜야 할 도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고 편안하게 지내도 교육이 없으면 짐승과 다르지 않다는 걸 후손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안타까워요.
자기네끼리 난리가 났다.
누가 제자백가의 스승들 아니랄까 봐 다들 자신들 의견을 피력하며 토론장을 만들었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다른 자들도 아니고 한 가닥 하는 신들이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만만치가 않다.
- 와아아아……. 시장통이 따로 없습니다.
귀신도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두고 보기만 했다가는 밤을 샐 것 같다.
“큼큼.”
적당한 순간에 헛기침을 냈다.
- 맹도우의 말이 맞습니다. 배우지 않고 도과를 얻으려 하는 이 세상이…….
- 학문의 뜻을 모르고 버려두었기에 이런 사달이 난 겁니다. 이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 가짜 선비들이 많아서 이리된 겁니다. 인의와 예가 부족한 세상이니…….
다들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학문을 자랑하는 시장통이 된 것 같다.
- 다들 왜 이러신답니까? 형님께는 왜 사과를 했답니까?
귀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상황은 더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선이 되어서도 전생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지식을 논하느라 바빴다.
이마에 눈에 띄게 힘줄이 돋았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상황이다.
카르마를 끌어왔다.
그리고.
“갈!!!!”
앞서 중재가 먹히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다시 큰 소리로 내 존재를 알렸다.
- …….
그제야 입을 다무는 이민족들의 신.
“이제 그만들 하십시오. 제가 그렇게 한가한 자가 아닙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엄중한 표정을 지었다.
- 오늘 결례가 많습니다.
대표격인 공자가 포권을 쥐었다.
“됐습니다. 다들 무슨 말씀들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이제는 공적인 자리의 성격을 띠었다.
- 저희들의 뜻은…….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긴 도(道)를 바로 세워 배우고 익혀 행하지 못하고 물질만으로 배부른 돼지들이 넘쳐납니다.”
준엄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현실을 짚었다.
“임금과 신하라는 자들은 인의예지를 잊어버리고 부와 권력, 여색을 탐하기에만 바쁩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은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서양에서 들어온 요상한 도에 심취해 국가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건…….”
말을 잠시 멈추고 중국 조상들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탓입니다!”
냉정하게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 …….
신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신이니 원인과 결과에 의한 업보를 낱낱이 아시겠지요.”
귀를 기울이고 있는 좌중을 쫙 한 번 훑었다.
후손들을 잘못 제도한 조상신들이 피할 수 없는 업풍 앞에 쓴 입맛을 다셨다.
“지금이야 부가 넘쳐 주변을 힘으로 핍박하고 영토를 강탈하는 패악을 저지르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들의 눈이 바로 하늘의 눈입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빠져 사는 후손들은 그만큼 냉혹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친김에 몰아붙였다.
아무리 죽었다 해도 그 땅의 조상신들과 후손들은 한몸과 같다.
그만큼 후손들이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죽은 조상신들의 책임이기도 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서로의 관계가 이와 잇몸 같은 것이다.
“다들 카르마가 넉넉하신 것 같습니다. 후손들이 잘나가니 사당에서 끊이지 않고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까?”
시린 미소를 띠고 그들을 바라봤다.
움찔.
신선들이 시선을 피했다.
“비단옷과 옥관자에 비싼 신선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을 때가 좋은 때입니다.”
후손들이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그들을 기리면 그 모든 행위들이 다 포인트로 환산된다.
워낙 뿌린 씨앗들이 많으니 거두어들이는 포인트 역시 장난 아닐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다소 포인트가 부족해 보이는 조상신들도 몇 보였다.
공산당 장난질에 후손들이 조상들을 대놓고 모시지 못한 데다 그마저도 서서히 잊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중국 후손들만 신의 자식들이 아닙니다. 해가 갈수록 중국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할 겁니다. 인의예지를 모르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곳곳을 누비며 돈과 힘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왕과 그 휘하 고위 관료들이라는 작자들도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같은 국가 안에서도 파벌을 나누고 수가 적은 소수민족을 핍박하고 심지어 멸족 계획까지 준비 중입니다. 그런 자들이 계속 복을 누린다면 그건 천도(天道)가 아닙니다!”
한 번 터진 말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가슴에 쌓인 울분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떠도는 중국으로부터 억압받은 이들의 한이기도 했다.
- 하아아아. 이 모든 게 우리들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 부끄럽습니다.
신들이 얘기를 듣다 한탄했다.
감정적으로 그들의 심기에 동요되지 않았다.
“곧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세상의 황제를 꿈꾸는 타락한 민족은 갈가리 영토가 찢길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며 심장에 칼을 꽂을 것입니다! 조상을 원망하고 후손들에게 타락과 업을 유산으로 넘기게 될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두려운 예언들이 터졌다.
입을 틀어막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덩달아 가슴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 이들이 보인 조상신들 모습에서 왜 중국이 이 꼴이 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죽어서 신선이 되었음에도 다들 제 명성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진실로 참회하는 자세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인들의 속을 알 수 없는 그 태도는 여기 조상들 탓이었다.
아직도 옛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여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 신들도 개화되어야 하건만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형이상학적인 말들뿐이다.
“그리고 심판의 선봉에 제가 설 겁니다! 따끔한 훈육을 넘어 피가 철철 나게 매와 채찍을 휘두를 것입니다!”
지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번 중국행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중국 위정자들은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량한 시민들은 죄가 없지만 집단 정신교육을 위해서는 피를 쏟는 교훈이 필요했다.
- 자, 장 공. 노여움을 푸십시오.
공자가 사색이 되어 만류했다.
지금 내가 뱉은 말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리 신언(神言)이었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 화가 도리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노여움을 푸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후손이 갈수록 천태만상으로 짓는 죄의 무게가 엄청납니다. 그 모든 걸 누가 대신할 생각이십니까?”
내친김에 질문했다.
- …….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도 하늘이 내리는 신벌을 짐작할 것이다.
뭐든 넘치면 터지는 게 하늘이 정한 이치다.
“곧 때가 임할 것입니다. 단단히 마음들 먹으십시오. 피고름을 짜내야 새살이 돋습니다. 감추려 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사과한 쪽이 이들이지만 내가 받아줄 상황이 아니다.
거침없이 순간순간 다시 짜여지고 흘러가는 인과의 결과일 뿐이다.
밀려오는 미래를 스스로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자들의 운명은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구원할 수 없다.
모든 선과 악의 결과는 스스로 선택한 몫이다.
마땅히 그 결과를 책임지면 된다.
그게 바로 업이고 카르마이고 법칙이다.
- 장 도우……. 모두 다 도가 부족한 내 탓이오. 책임질 수 있다면 결코 변명하거나 도망치지 않겠소.
이번에는 장자가 나섰다.
말로만 군자를 찾는 유가와는 달랐다.
그때.
- 후손들을 살려만 주시오 그럼……. 장 공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들어 드리겠소이다.
공자가 진중한 얼굴로 딜을 해왔다.
잠시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봤다.
- 도우가 원하는 바를 말해 주게. 가장 큰 피해를 본 도우 조상님들과 후손들에게 사죄를 청하고 배상을 하고 싶네.
노자도 나섰다.
파바밧.
약속이나 한 듯 사방에서 나에게 꽂히는 시선.
이건 생각지도 못한 딜이다.
- 형님! 뭐 하십니까! 형님 잘하시는 거 있지 않습니까!
귀신이 뒤에서 속삭였다.
내가 잘하는 거? 뭐?
- 하나 받고 하나 더요!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