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4장. 진정한 중국몽(3)
- 공자님이시잖아요!
헛! 공자?
내가 아는 그 공자님?
얼마나 놀랐는지 눈이 확 커졌다.
이제야 정확히 생각나는 공자님의 이름과 중니라는 자.
동양 정신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유가사상을 세웠던 분이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황급히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유교가 21세기에 와서는 옛 관습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동양권에서는 인간 생활의 근본 뿌리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仁)을 내세워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사람답게 행동하는 인간다운 사회를 꿈꿨다.
시대가 비웃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굴하지 않고 예(禮)를 설파했다.
당시에는 귀족들에게 한정됐던 배움의 기회를 모든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자가 3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상대국은 공자의 가르침으로 중국이 부강해질 것을 걱정해 공자가 가는 곳마다 쫓아가 훼방을 놓았다.
여러 시대적인 이유로 공자는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공자의 드높은 이상을 실천하기에는 무척 어수선했던 춘추전국시대.
하지만 그 결과 중국의 사상은 절정의 꽃을 피웠다.
제자백가라는 여러 사상가들이 중국 문화의 기틀이 되면서 후대의 정신적 바탕이 됐다.
- 장 공. 다시 인사 올립니다.
공자도 다시 마주보며 고개를 숙였다.
전혀 거만하다는 인상이 보이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넘쳤다.
예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는 평소 그의 소신과 같아 보였다.
- 장 도우. 날 모르지는 않겠지요?
노자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물론입니다.”
후대에 도덕경을 저술한 이로 알려져 있는 노자.
‘무위(無爲)함이 무위함이 아니다’라는 역설을 경에서 설했다.
유가의 인의예악(仁義禮樂)이나 복잡한 예법과 금령을 배척하기도 했다.
특히 단순함에서 세상의 이상을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위라는 가르침 속에서 세속적 성공을 추구했다.
역설과 반어에 감춰진 심오한 도덕경의 내용을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도 많이 곡해했다.
노자는 일을 함에 있어 핵심을 깨달아 단순하게 일을 처리하고 대성하라 가르쳤다.
- 형님도 아직 멀었소이다. 허허허.
그때 한 신선이 날아와 합류했다.
낡은 짚신과 해진 베옷을 입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막 합류한 시선이 노자를 바라보며 아직 멀었다고 잔소리를 뱉었다.
- 그런가? 동생이 그렇다면 그런 게지.
노자도 신선의 말에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대신 정이 흐르는 눈으로 아우라 칭한 신선을 바라봤다.
- 장 도우는 황새인가 뱁새인가?
세 번째로 합류한 신선이 뜬금없이 나에게 황새인지 뱁새인지를 물었다.
순간 한 남자의 이름이 퍼뜩 떠올랐다.
얼굴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다.
후대에 그를 기리기 위해 남긴 초상화는 그 모습이 다양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장만은 세상에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었다.
“아직 붕(鵬)이 되지 못한 곤(鯤)입니다.”
빙그레 웃으며 나로서는 꽤 만족스러운 대꾸를 했다.
- 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신선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듣는 사람도 속이 시원해지는 박장대소다.
- 형님 이분은…….
귀신은 아직 눈치를 못 챘다.
공자는 알아도 비루한 옷차림의 신선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똑똑한 척하더니 넌 이분도 몰라?
- 제가 어찌 압니까. 갑자기 황새와 뱁새는 뭐고 붕과 곤은……. 허엇! 설마 이분이 장자님이세요?
혼자 말하다 스스로 답을 찾은 귀신이 깜짝 놀랐다.
맞다 장자.
노자와 함께 도가를 설파한 장자다.
노장사상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지만 추구하는 바가 좀 달랐다.
노자가 세상 정치와 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장자는 속세 초탈과 유유자적에 삶의 목적이 있었다.
노자의 도덕경이 철학적 경향이 넘쳤다면 장자의 남화경은 우화로 멋을 낸 문학작품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장자에 관한 일화가 노자보다 많았다.
삶과 죽음을 일체화했던 만큼 아내가 죽었을 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고 전해진다.
- 다들 여기 보십시오. 진짜 곤이 있었습니다. 곤이! 하하하하하.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에 다른 생각이 일절 담겨 있지 않아 담백했다.
- 다들 너무 큰 걱정들 하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장 도우가 추구하는 도는 너무나 커서 우리 같은 뱁새들은 감히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기껏 드러난 현상에 이렇게들 새가슴이 되어 우르르 몰려다니니 과보호한 후손들의 정신 상태가 엉망이 된 겁니다.
그 한마디를 하고 웃음을 뚝 그친 장자.
주변 신선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후손들?
신선들이 몰려온 이유가 얼핏 짐작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현 중국인들의 중요 조상줄이 확실했다.
내가 중국에 대해 위해를 가한다 여기고 몰려온 듯하다.
- 캬아! 좋다! 신선이 되어 좋은 점이 있으니 돈이 없어도 마음대로 신선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인간으로 살 때는 부귀와 멀었으나 내 허명을 밝혀주는 이들이 있어 신선되어 마음껏 노니는구나. 이 또한 어찌 억지로 이뤄진 도라 하겠나. 모두 다 스스로 그러하였으니……. 다들 무거운 짐들 그만 좀 내려놓으소서.
장자가 옆에 끼고 있던 술 담긴 호로병을 입에 대고 쭉 들이켜며 노래 한 가락을 뽑았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입가에 버들잎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 장 공의 천하태평은 가히 제일이오.
공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 동생의 허풍은 이제 완벽한 도가 되었다. 장 도우를 청하여 뵙고자 설치던 이가 동생이 아니던가. 그런데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고 우리보고 새가슴이라 하니……. 에잉. 몹쓸 장자의 도 같으니라고.
노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
- 장 공. 갑작스레 이리 청한 것은 장 공께서 오해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풀어 주려 함입니다. 그러니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전설의 공자가 포권을 취하며 나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오해라 하심은…….”
알고도 시치미를 뗐다.
- 형님. 여기서도 밀당이 필요합니까?
귀신이 나의 태도를 보며 의아한 듯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이건 밀당이 아니라 예(禮)다.
상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주고받는 언어의 기술편이다.
- 오! 이것도 예다! 좋은 말씀입니다.
귀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납득했다.
- 옆에 있는 도가의 노 공과 장 공, 그리고 뒤에 서 있는 법가의 상 공, 한 공, 이 공, 묵가의 묵 공…….
춘추전국시대 학파와 학자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호명된 이들은 본인 차례에 맞춰 포권을 취했다.
한비자를 비롯해 묵자, 손자 등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중국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신선이 되어 있었다.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달랐지만 세상의 이로움을 위해 사상을 폈던 공통점이 있는 이들이다.
그리스 시대 사상을 꽃피워냈던 서양 철학자들과 쌍벽을 이뤘던 동양의 위대한 철학가들.
그들과 인사할 때마다 진심으로 존경을 표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들로 인해 동양 철학은 뿌리를 다졌다.
삶과 사회를 규율하고 통치와 생활의 규범이 됐다.
사상의 근본이 없어 자유에 방종한 아메리카 대륙과 태생이 달랐다.
- 그리고 그 옆으로 계시는 분들이 장족의 태고 족장이신 후루준, 이족의 이 공, 납서족의 야율 공, 백족의…….
공자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사상가들 옆에 서 있는 여러 이민족 복장의 신선들이 호명됐다.
과거와 달리 중국이라는 용광로 안에 녹아 있는 이민족들의 선조들이 호명될 때마다 자신들 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사해왔다.
눈을 맞춰가며 일일이 응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이라는 국가에 혼합되어 있지만 한때는 각자의 민족으로 존재했던 이들이다.
- 와아아아아아…….
귀신이 경탄을 터트렸다.
지금 이곳에 모인 신선들이 대부분 조상신인 동시에 중국 뼈대를 이루는 문화와 사상의 신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나에게 어떤 해명을 하기 위해 모였다는 뜻이었다.
“한민족의 후손 장태산이 여러 신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긴 소개가 끝나고 난 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예를 다했다.
지금 이 순간 인간 장태산은 개인의 신분이 아니었다.
한민족을 대표하는 후손이자 장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자칫 행동 하나 말 한마디 잘못하면 조상님들 얼굴에 똥칠하는 꼴이 된다.
귀신도 분위기를 알고 한쪽으로 찌그러졌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을 확실히 인지한 것이다.
- 장 신선님께 인사 올립니다.
- 장 공께 인사드립니다.
- 장 도우님을 뵙습니다.
그들도 맞절을 해왔다.
대단한 신선들이었지만 날 무시하지 못했다.
분명 살아 있는 인간임은 틀림이 없지만 스스로 쌓은 카르마 포인트로 신선계에 자동 등록되어 있다.
게다가 무시 못 할 상급 신이다.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사이인 것이다.
- 다들 뭐 이렇게 예법이 복잡한지……. 장 도우.
장자가 상황을 지켜보다 날 불렀다.
“네. 장자님.”
- 고리타분하게 장자님은 무슨……. 성도 같은데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시게.
장자가 훅 미끼를 던졌다.
정신 바짝 차렸다.
여기서 형님이라고 불렀다가는…….
“마음이야 그러고 싶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완곡하게 거절했다.
조상과 후손들 문제가 걸려 있다.
지금 내가 중국이라면 치를 떨고 있는 것을 이들이 모를 리 없다.
조상 대 조상, 후손 대 후손 사이에 싸움이 발발했다.
이번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어느 정도 정해져야 끝날 것이다.
장자 밑으로 들어가 동생으로 시작하면 첫 단추부터 꼬이게 된다.
- 흐흐흐. 동생. 내가 안 통한다고 하지 않았나.
노자가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는다.
나를 호출하기 전에 그들끼리 말을 나눈 것 같다.
- 거 참. 장 도우. 보기보다 눈치가 빠르네.
장자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살아생전 세상을 초탈한 사상가였다 해도 죽어서까지 그 의식 수준이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후손들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신선들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저에게 하실 말씀들이 있으신지요.”
대표격인 공자를 보며 물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공자.
그가 나의 물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장 공께 먼저 진심으로…….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