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8장. 끝나지 않는 전쟁(6)
- !!!
두 황제의 눈에 깃드는 은근한 쫄림.
가볍게 던지는 농담이나 어설픈 경고가 아님을 느꼈을 것이다.
말로 해서는 안 될 족속들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전 인류를 멸망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조상과 후손이다.
욕망의 화신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들.
윗물이나 아랫물이나 똑같다.
- 폐하!!! 장군들을 불러들여 저자를 소멸시키소서!
- 후손들을 위해 신벌을 내려주시옵소서!
- 어명을 내려주시옵소서!
태화전에 모여 있던 대신들이 계단 아래쪽에서 일제히 분노를 일으키며 악을 써댔다.
악귀들처럼 푸른 안광을 번뜩였다.
각자의 관을 봐야 그때나 눈물을 흘릴 놈들이다.
하는 짓거리가 가소로웠다.
그리고.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참다못해 자금성이 떠나가라 광소를 터트렸다.
세상에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 놈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필요에 따라 피붙이도 눈 딱 감고 팔아먹을 자들이다.
두 황제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려봐 어명.”
다시 자극했다.
파르르르르르.
불끈 주먹을 움켜쥐는 두 황제.
내적 분노에 용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누가 보면 대단한 무림고수나 되는 줄 알 판이다.
“과거 고려와 조선은 잊어. 너희들이 추억하는 그런 나라는 이제 없어.”
시민이 주인이 된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게 될 대한민국.
전제 황권에 이어 일당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물질이 넘쳐나도 정신이 개벽하지 못하면 영원한 이류 국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권력이 분산되고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룰 때 사회는 성장한다.
그 진실을 확인하고자 수많은 대한민국의 인생 선배들이 이 땅을 위해 피를 흘렸다.
그런 나의 위대한 조국과 저만 살기 급급한 졸부들만 넘치는 중국은 달랐다.
머저리같이 국가에 순종하는 이웃집 섬 머슴들과도 달랐다.
- 황제께서 네놈을…….
그놈의 고대시대 중국 조상신인 황제를 쉴 새 없이 팔아먹는 자금성의 두 귀신.
이대로 나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스윽.
고개를 돌려 다시 태화전을 오연하게 바라봤다.
- 어명을 내려주시옵소서!!!
- 저 천박한 자에게 천벌을…….
파바바밧!
나를 향해 분노하는 고관대작 귀신들.
스으윽.
유유히 손을 들어올려 하늘을 가리켰다.
“후우우우.”
그리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위이이이이잉.
손에 응집되는 엄청난 카르마의 힘.
가족과 나의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에 이로움을 주며 습득한 온전히 스스로 축적해 온 카르마.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카르마의 힘.
죽어서 추앙의 힘으로 자리를 유지해 온 저 늙은 귀신들의 것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나의 이름으로 너희들에게 어명을 내리겠노라!”
늙은 두 황제 귀신에 존속되어 있는 독충과 사나운 짐승 같은 고관대작 귀신들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쿠우우우웅!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누군가 나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의 후손을 응징하려는 나에게 중국 조상신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인 셈이다.
그래도 난 멈추지 않는다.
이 정도에 쫄았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
“너희들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촤아아앗.
힘 있게 뻗은 손이 정확하게 고관대작 귀신들을 가리켰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콰과과과과과과과광!
푸른빛을 띤 벼락 수백 개가 지상에 내리꽂혔다.
- 크아아아아아아!
- 아아아아아악!
귀신들이 벼락에 정통으로 맞으며 비명을 토했다.
파스스스스스스슷!
거짓말처럼 재가 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촤아아아아아앗.
더 강하게 쏟아지는 진짜 빗줄기.
쾅! 콰아앙! 콰과광!
분노한 중국 조상신의 벼락이 애꿎은 태화전 바닥에 내리꽂혔다.
상황 확인차 뒤를 돌아봤다.
스으으읏.
얼굴이 일그러진 채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지는 두 황제.
자신들을 따르던 병사들과 대신들이 제거되자 허상마저도 유지하지 못했다.
카르마로 만들어 냈던 귀신들의 형체가 사라지자 힘이 빠진 것이다.
- 네놈과 조선에 피의 저주를…….
마지막까지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
“저주? 너희들이나 잘하세요.”
피식.
내리는 비보다 차갑게 비웃음을 날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쏟아진 빗줄기는 연신 다시 튀어올랐다.
한바탕 시원한 살풀이가 끝난 태화전의 기운은 깨끗하게 청소된 듯 개운했다.
***
타다다다다닥.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자금성에 울렸다.
촤아아아앗.
비는 그칠지 모르고 쏟아져 내렸다.
우르르르르릉! 콰아아아아앙!
비바람에 이어 천둥과 벼락까지 동반됐다.
마치 신이 노한 듯 요란했다.
치이익.
곳곳에서 무전기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 찾았나?
“이쪽에는 없습니다!”
- 찾아! 놈이 숨을 만한 곳은 샅샅이 뒤져!
조장의 성난 목소리가 날카롭게 빗속으로 울려 퍼졌다.
“알겠습니다!”
중난하이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경호팀들이 자금성에 투입됐다.
성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폐쇄됐다.
대신 무장 공안들이 쫙 깔렸다.
주석궁에서 긴급 명령이 하달됐다.
자금성에서 실종된 장립을 찾으라는 긴급 명령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도 장립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갑급 경호 요원인 시오중은 내심 짜증이 올랐다.
우비를 착용했지만 거센 비바람에 속옷까지 다 젖어 버렸다.
장립이라는 인물 하나 때문에 어제부터 1급 경호령이 떨어졌다.
일개 화교 출신 주제에 가리지 않고 윗선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경호원들 사이에도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이 쫙 돌았다.
현 주석을 비롯해 고위 권력층이 덮어놓고 감싸고 돈다며 불만이 많았다.
긴장 상태에서 경호를 하던 중 일이 터졌다.
홀로 자금성을 산책하던 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호원들의 눈을 피하고 CCTV에서도 모습을 감췄다.
한밤의 술래잡기가 따로 없었다.
파아아앗.
강력한 플래시로 태화전을 샅샅이 살폈다.
흔적이 없어 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조상들 중에 영성이 뛰어난 영매가 한 분 있었다.
집안 내력이어서인지 다른 이들보다 기에 더 민감한 시오중.
찝찝한 상태에서 한곳에 플래시를 비췄다.
그때.
“헛!”
시오중이 그만 비명을 터트렸다.
태화전에 오르는 계단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발자국.
타다다닥.
크게 놀란 상태에서 빠르게 발자국을 따라 다가갔다.
중국 특급 문화보호유산인 자금성에 이 같은 흔적을 남기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그 사실을 알 텐데 누군가 이렇게 발자국을 남겼다.
“미친!”
최근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은 또렷하고 선명했다.
한 계단 한 계단에 모두 흔적을 남겼다.
치이잇.
“시오중입니다!”
- 무슨 일이야? 찾았나?
까칠한 상사의 목소리가 채근하듯 터져 나왔다.
“그게 아니라……. 태화전에 발자국이 찍혔습니다!”
- 뭐라고? 발자국이 찍혀?
상사도 믿지 못하고 되물었다.
“누군가 모든 계단에…….”
- 무슨 헛소리야!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계단에 누가 발자국을 남겨!!!
“…….”
시오중은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절대 있을 수 없는 기사.
삐이이이이잇!
그때 밖에서 울리는 요란한 호각소리.
“모두 자리로 돌아가! 대상을 찾았다!”
사방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장님……. 도대체 어디에…….”
시오중은 장립을 찾았다는 말에 조장에게 다시 한 번 다급하게 물었다.
- ……연락이 왔다.
무전기를 통해 조장의 맥 빠진 목소리가 전해졌다.
- 각하 저택에 나타났다고 한다.
“네? 방태민 각하 말씀이십니까?”
시오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 샐 틈 없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자금성과 중난하이.
더욱이 이런 궂은 날씨에 빠져나갈 만한 곳은…….
시오중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말도 안 돼…….”
***
“장립…….”
방태민은 눈앞에 나타난 장립을 향해 다시 확인하듯 이름을 불렀다.
비에 쫄딱 젖은 채로 저택 앞에 나타났다.
자금성 산책 중에 실종됐다는 보고를 받은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귀신처럼 떡하니 저택에 등장했다.
‘도대체 어떻게?’
중난하이와 자금성 경호는 세계 최강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지도자보다 더 강력한 경호를 받았다.
이곳을 벗어나서는 누구도 믿지 못했다.
암중 쿠데타도 몇 번 일어났기에 그만큼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그런 경호라인을 뚫고 귀신처럼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난 장립.
방태민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건네준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닦으며 장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아닐세……. 비가 와서 나도 잠을 설치고 있었네.”
방태민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정체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와 잠들지 못하게 했다.
“비가 차갑습니다. 벌써 가을이 오나 봅니다.”
장립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겠지. 귀를 기울이면 하늘이 들려주는 자연의 이치를 알아들을 수 있네.”
방태민은 놀라 당황한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응대했다.
이 시간 장립의 방문은 의외였다.
내일쯤 만나게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밤을 넘기기 전에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 장립.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
묘한 표정으로 웃는 장립.
“오늘 각하를 만나 담판을 지으라는 하늘의 소리가 조금 전 저에게 들렸거든요.”
“담판???”
회귀의 전설 3부
1169장. 담판
쏴아아아아아아앗!
요란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때앵.
늦은 밤, 마지막 기도 시간을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높은 관에 새까만 도복을 착용한 남자가 눈을 감고 좌정하고 있다.
하얀 수염이 배꼽까지 늘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신선을 연상하게 했다.
사르르르르.
기다란 향이 타오르는 황금빛 향로에서는 은은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며 위로 퍼졌다.
좌정한 남자 앞의 커다란 신상이 그를 지그시 굽어보고 있다.
보통의 도관에서 모시는 삼청이나 삼관대제와 모습이 달랐다.
커다란 황금용 위에 용포를 착용하고 황관까지 쓰고 있는 신상.
보는 것만으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급급여울 화방신상 천제왕도…….”
도사가 주문을 외웠다.
대대로 내려오는 이곳 도관에서만 읊어지는 주문이다.
다른 도관처럼 일반 신도들을 받지 않는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들도 극소수이다.
허락된 자만 이곳에 들어와 기도드릴 수 있다.
문화혁명 때도 이곳 도관만은 누구도 건들지 못했다.
여기는 지상의 귀신을 부려 한족의 시조가 된 황제 공손훤원을 모시는 도관이다.
많은 귀신을 부려 사물의 법칙을 만들고 의학과 화폐, 도량과 음율, 문자 규칙을 정했다고 알려진 황제 공손훤원.
신농씨의 통치력이 약해질 때 세상 각지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 때에는 특이한 무기와 귀신을 이용해 승승장구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호족들이 무릎을 꿇었다.
다만 치우만이 황제에게 대적했다.
전쟁의 신 치우는 정령을 이용해 막판까지 황제를 몰아붙였다.
결국 황제는 연전연패에 몰렸다.
하지만 패배하려던 순간 서왕모와 계략을 짰고 계획대로 치우를 물리쳐 한족의 뼈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설의 삼황오제 중 첫 번째 자리를 꿰찼다.
그 이후 모든 중국의 한족들은 그를 시조로 모시게 됐다.
그랬던 황제는 신단을 만들고 용을 타고 등선했다.
때애애애앵.
맑은 종이 다시 한 번 울렸다.
“……후손들을 굽어살피소서.”
정성이 가득한 기도가 끝났다.
도사가 가만히 눈을 떴다.
오늘도 흡족하게 기도를 받아 널리 자손들을 보살피게 될 황제가 짓는 따뜻한 미소…….
“헛!!!”
눈을 뜬 도사가 깜짝 놀랐다.
주르르룩!
기도를 끝내고 나면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로 그를 맞이해주던 신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화, 황제시여…….”
도사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000년 넘는 도관 역사상 이런 괴사는 흔치 않았다.
과거 이민족의 침범으로 한족 왕조가 멸망하기 전 나타났던 신상의 피눈물.
파르르르 파르르르르.
도사의 몸뚱이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 무슨 변괴란 말인가!!!”
도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중국을 보살피는 황제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다.
그뿐만 아니었다.
황제 신상 주변에 있는 팔선 신상들의 눈에서도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에 찬 신상들의 모습은 더 참담했다.
“노, 노여움을 푸소서!!!”
쿵!
도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중국을 보호하는 신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무언가 큰일이 터질 징조가 분명했다.
‘도대체 누가 신들을 분노케 한단 말인가!’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려가고 있었다.
청 제국 멸망 후 어려움을 이겨낸 중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상신의 가호 덕분에 더 이상 배고픈 자가 없을 정도다.
세계 각국을 모아 놓고 큰소리 칠 수 있을 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15억이 넘어가는 중국 인구는 그 자체로 무기가 돼 주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공산당 정권은 안정을 찾았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의 눈치를 봤다.
도광양회의 숨죽이던 시대가 다 지나갔다.
슈건핑 주석의 영도 아래 대국의 위상을 자랑하던 이때 신상이 피눈물을 흘렸다.
원통함과 분함이 신상의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그때 도관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이십대 중반의 무척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내다.
무언가를 느끼고 황급히 도관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
“헛!!!”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신상을 보고 그 역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게 무슨…….”
“스승님! 이걸 어찌한단 말입니까.”
노도사가 미소년에 가까운 청년을 보며 말했다.
뒤바뀐 듯한 그들의 태도는 누가 봐도 이상한 모양새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사제지간이 바뀐 듯하다.
“스승님…….”
노도사가 스승의 답을 기다렸다.
노도사가 어렸을 때부터 스승은 저 모습이었다.
현묘한 능력을 소유한 스승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답을 찾아줄 것이다.
“황제께서…… 분노하신다!”
젊은 도사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100년 세월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음이 확실했다.
“누구냐……. 누가 감히 신들을 분노케 한단 말인가!”
도사의 눈에서 베일 듯한 새파란 한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
- 이 땅의 큰 조상신이 후손신들의 억울함을 듣고 당신을 저주하였습니다.
- 끝나지 않는 전쟁이 소환되었습니다.
- 생존을 위해 카르마 포인트를 적립하십시오!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두 황제가 윗선한테 가서 울고 짜고 한 모양이다.
억울했을 것이다.
레벨이 낮다보니 나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황제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부하들에게 벼락을 내렸다.
자신들이 관할하던 영역에서 벌어진 참사.
그들의 위선 넘치는 조상신들이 날 저주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땡큐다!
끝나지 않는 전쟁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조상신들의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한 셈이다.
상급 신들을 넘어 후손을 보호하기 위한 조상신들이 본격 개입됐다.
이제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2016년을 시발점으로 한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파상 공격.
어차피 한판 붙어야 할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였다.
스스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이 땅의 조상과 후손들은 철면피다.
오직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습성이 영혼과 몸에 진득하게 배었다.
전혀 두렵지 않다.
이미 나를 회귀시켰던 할배 조상신이 언급하셨다.
이웃집 욕심 많고 사나운 개새끼에게 몽둥이를 휘둘러 단단히 교육하라고 말이다.
“으음…….”
방태민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뜬금없이 비에 젖은 꼴로 나타나 담판을 짓자는 내 수를 읽어내지 못했다.
곧 100세가 가까운 정치인에게 지금 같은 변수는 괴로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보고를 계속 받고 있었을 방태민.
그의 두상에 열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앞서 내가 접촉한 이들과의 거래 내용이 어떤 건지 상상하느라 무척 바빴다.
- 어르신 놀리는 거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흐흐흐.
죽은 귀신들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아직도 꽤 어리숙한 면이 남아 있지만 과거보다 눈치가 많이 좋아졌다.
이대로 쭉 열과 성의를 다해 배우면 신계에 가서도 눈치로 밥 먹고 살 만한 신은 될 것 같다.
“담판이라…….”
방태민이 입맛을 다셨다.
세수 90을 넘기는 나이임에도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보기에도 깔끔했다.
늦은 밤임에도 머리칼이 단정했다.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냈다.
트레이드 마크인 큼지막한 검정 안경테 너머에서 반짝이는 눈동자.
본래 커다란 귀와 귓불은 장수와 명예를 상징한다.
도톰한 콧볼은 복의 집합체다.
하관도 널찍하니 죽을 때까지 부와 권력을 누릴 최고의 관상을 가졌다.
중국의 다스리는 황제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건 분명하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쾅! 쾅!
요란하게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멈추지 않고 몰아쳤다.
중국신 성질머리가 그만큼 더럽다는 소리일 것이다.
“내일이면 늦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나?”
내일쯤 나와 만나려 했을 방태민.
“오늘 여러 대인들의 제안을 받아 내일 확답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내친김에 밀어붙였다.
본격적으로 패를 까고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방태민은 그만큼 고민스러울 것이다.
내 쪽 바닥에 깔린 카드 패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오고 갔던 제안들은 보이지 않는 패가 돼 주었다.
방태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가늘게 뜬 눈으로 지그시 날 봤다.
- 레이저 나오는데요?
과거였다면 나 같은 건 말 한마디로 당장 처리 가능한 권력자다.
사실 지금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
조용히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수처럼 상대의 대답이 나오기를 압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태민이 선택할 경우의 수는 몹시 적었다.
슈건핑이라는 대적을 눈앞에 두고 나와 적이 될 수는 없다.
“립 자네는……. 고약한 친구야.”
“친절한 후배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만한 낯빛을 보이지도 않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무엇을 원하나.”
판돈이 던져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배팅이 시작됐다.
세상에서 가장 음흉하고 노회한 이무기급 정치인을 상대하고 있다.
어설프게 판돈을 흥정하고 패를 보이면 바로 뒤통수를 맞는다.
“그 녀석이 뭘 준다고 하던가?”
딱히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그 녀석이라는 호칭.
넌지시 내가 가진 패에 대해 물어왔다.
약았다.
충분히 보여주어도 무방한 패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글쎄요……. 하도 많은 백지수표를 받아서…….”
지금은 전투 중이다.
상대의 전력이 파악된 만큼 공세는 내 뜻대로다.
“녀석들이 제시한 수표. 다 부도수표야.”
“네?”
놀라는 척했다.
“낚시꾼 녀석은 복수에 눈이 멀었지만 가진 미끼가 거의 없어. 날 따라 하는 다른 놈은 너무 포부가 작아. 그리고 덩치 큰 곰은……. 욕심이 너무 많아. 가까이했다가는 나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야.”
- 오! 역시!!!
귀신이 지켜보고 있다 엄지척을 내밀었다.
간단하게 내가 만났던 중국 최고 권력자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자신을 비하하며 충고를 가장한 채 접근하는 방법도 꽤 괜찮다.
문제는 그 모든 게 뻔히 보인다는 것.
“낚시꾼의 남아 있는 미끼가 제법 실하던데요? 포부가 작은 대인은 감춰진 큰 판돈을 쥐고 있는 것 같고……. 욕심 많은 큰 곰은 주변에 먹을 게 많습니다. 그러나…….”
굳이 뒷말을 잇지 않았다.
당신이 가진 미끼는 어떤 건지 물었다.
담판이라 이름 붙였지만 이 자리는 협박장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가진 것 다 내놓으라고 칼을 들이밀었다.
“역시 고약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방태민.
씨이익.
그가 웃는다.
그리고.
“말해보게. 내가 내밀 백지수표에 무얼 적고 싶나?”
제법 센 반격이다.
이제 하나의 패를 오픈할 때다.
“제가 원하는 건…….”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