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7장. 끝나지 않는 전쟁(5)
- 나도 소개하지. 대한제국의 사신 동생 장립이라 하오. 움하하하하.
귀신이 무슨 생각인지 큰소리로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어른들 노는 데 애가 끼어든 꼴이었다.
- 갈!!!
영락제가 보다못해 버럭 호통 쳤다.
퍼엉!
- 으아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귀신이 쌍코피를 터트리며 비명을 토했다.
진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영락제는 죽어서도 여전히 무서운 황제로 군림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무한 존경받는 명나라 황제다웠다.
지신급의 신령한 존재다.
그런 자 앞에 짬밥도 안 되는 귀신이 끼어들었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나.
뭣도 모르는 잡귀한테 대신 화풀이를 했다.
- 형님! 황제가 때렸어요! 우아아아앙.
귀신이 진짜로 운다.
하지만 가끔 기회가 닿았을 때 이런 참교육도 필요했다.
“빗소리가 좋소이다.”
상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색달랐다.
무수했던 호위병들은 전멸했다.
반면 고관대작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석상처럼 서 있다.
솔로몬 왕의 궁전에 들어 목격했던 광경이 떠올랐다.
살아서 한 가닥 한 인물들이나 황제로 군림했던 자들은 죽어서도 레벨이 남달랐다.
- 인간이 어찌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 이는 하늘이 정해놓은 법칙에 어긋난다!
탕!
강희제가 의자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리치며 몸을 부르르 떨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그대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죽었으면 저승에 들어가 이승의 일을 심판받고 윤회함이 그 법칙 아닌가?”
담담하고 의연하게 물었다.
- 난! 이 땅을 수호하는 조상신이다!!!
쌍둥이처럼 두 황제가 동시에 외쳤다.
사이도 안 좋은 황제 둘이 이럴 때만 한목소리다.
“족보도 다른데 수호신? 강희제 씨는 만주가 고향 아닌가?”
- 닥쳐라! 감히 일개 조선의…….
강희제라는 소리에 청나라 황제가 말을 끊고 호통을 쳤다.
“대한제국이라니까!!!”
나도 맞받아쳤다.
여전히 주제 파악을 못 했다.
현재 자신들보다 내가 레벨이 높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 솔직히 대한제국은 아니지. 통일도 못 한 반쪽짜리 국가가 아닌가.
영락제가 그나마 아는 체를 한다.
딱 걸려들었다.
지신이지만 현상 세계 돌아가는 판을 모를 리 없었다.
자금성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자금성을 돌면서 내뱉은 대화에서 실시간 정보를 얻어왔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나를 조선의 사신이라 깔아놓고 하대한 두 황제.
음흉한 중국의 정치인 조상다웠다.
통일이 될 뻔한 기회를 여러 차례 잡았지만 매번 중국의 개입으로 한반도는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되지 못했다.
“알면서 조선의 사신이라 말한 거야? 락제 형님. 그러는 거 아냐. 조카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했잖아. 아버지 이름에 그렇게 먹칠을 해 놓고 누구한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잖아?”
- 다, 닥치거라! 이방원도 내 앞에서 감히 그런 망발을 내뱉지 못하였거늘!!!
“방원이 형님께서 죽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이름을 언급하고 그래. 뭐 두 사람이 여러모로 비슷하기는 하네. 적통을 제거하고 스스로 권좌에 올랐으니. 이런 걸 끼리끼리라고 하지?”
차원을 뛰어넘어 영락제를 은근히 자극했다.
죽어서도 중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는 조상신이라 목소리를 높이는 두 황제.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근본이 바로 서지 않은 허접한 지신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호위병들처럼 간단하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약간이라도 제거하기 위한 액션이 보이기라도 하면.
- 경고! 경고! 이 땅의 조상신들입니다!
- 신들의 전쟁이 발발할 수 있습니다!
- 자손들 간에 보이지 않는 적대감이 증폭됩니다.
경고 방송이 연속 들렸다.
짬밥 자체가 안 되는 하위 귀신들은 잡아도 별 탈이 없었다.
하지만 일정 이상의 레벨을 가진 신들을 응징하려고 하면 여지없이 경고성 알림음이 전달됐다.
- 배은망덕하구나! 일찍이 선왕의 군대에 의해 왕성이 짓밟히고 목숨을 구걸하며 고개를 조아리던 조선의 후손 놈이!
강희제가 병자호란을 염두한 발언을 내뱉었다.
만주에서 말 타고 노략질이나 벌이던 깡패 두목이 뱉을 만한 말은 아니었다.
왕조 시절 내내 반란이 무서워 성에 갇혀 살던 만주족의 왕.
- 선왕께서 불충한 고려를 멸하고자 했을 때 동의했어야 했거늘…….
영락제도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명나라 건국 시절 일개 도적의 두목에 지나지 않았다가 후에 왕이 되었던 주원장의 아들인 주제에 말이 많았다.
아직도 고려와 조선을 논하며 무시하려 드는 중국의 황제들.
갑자기 어떤 훈장님이 남겼던 시조 하나가 떠올랐다.
“송고려송목(松高麗松木), 이 소나무가 고려시대 소나무냐. 조선송목야(朝鮮松木也), 조선의 소나무더냐.”
낭랑한 목소리로 한 수 읊어내었다.
두 황제의 얼굴이 뭐 씹은 듯 떨떠름하게 변했다.
“걸인부유(乞人富裕) 일시불급(一匙不給)이라. 밥 빌어먹던 거지가 어쩌다 부자가 되니 배가 고파 찾아온 옛 동료에게 밥 한술 주지 않는구나!”
- 네이노오오오오오오옴!
- 이 방약무도한 자를 봤나! 감히 우리를 거지에 비유하다니!
터어엉!
두 황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 이 땅의 조상신들과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 외나무다리 원수급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성질머리 한 번 더럽다.
자신들이 내뱉은 망발에는 무한히 관대하고, 힘없는 이웃 핍박하기를 즐겨 하는 일에는 양심도 없는 자들의 조상다웠다.
“앉아. 그래도 안 쫄려.”
어차피 올해를 기점으로 중국과는 사이가 영 좋아지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내며 주변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무도한 중국.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돈과 권력을 사용해 가차 없이 공격한다.
그 어떤 나라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인의예지를 하수구에 처넣어 버리고 산다.
사람의 목숨 알기를 키우는 반려동물만도 못하게 취급한다.
제아무리 자국민이라 해도 저항하거나 자유를 외치면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홍콩과 티베트를 비롯해 소수민족에 가한 천인공노할 박해를 생각하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 모든 작태가 여기 있는 조상신들 때부터 내려오는 악습이니 쉽게 변할 리 만무하다.
민족성 자체가 권력을 쥐면 다른 사람 알기를 개똥보다 못하게 취급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고귀한 진리를 결코 몰랐다.
애초 살아 있을 때도 자신들 역시 죽으면 차별 없는 저승 시민이 된다는 걸 일생 동안 모르고 산 것이다.
- 장태산! 네놈은 아직 신이 아니다! 일개 조선의 후손 놈이 어찌 이곳에서 짐을 능멸하려 하느냐!
영락제의 눈동자가 악귀의 것처럼 변했다.
양쪽 귓구멍에서는 연기가 풀풀 났다.
- 한 번 종놈은 영원히 종이다! 이제 좀 먹고살 만하다고 감히 대국에 반기를 들다니! 그러고도 네놈들이 온전히 살아남기를 바란단 말이냐?
강희제가 냉소를 터트리며 말을 보탰다.
- 맞소! 저놈들은 은혜도 모르는 짐승들이오! 왜놈들의 침공에서 목숨을 구해 주었건만 이리 오만방자하다니!
- 우리 후손들의 말발굽에 다시 짓밟힐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두 황제가 짝짝꿍이 되어 예사롭지 않은 말들을 내뱉었다.
우르르르릉.
꽈아아아앙!
때맞춰 하늘에서 벼락도 쳤다.
꼴에 신이라고 자연을 이용해 조화도 부릴 줄 안다.
“형씨들 앉아. 화 내봐야 당신들 손해야.”
물론 그들의 행패가 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
이 동네 신들의 경고 따위는 처음부터 무섭지도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제아무리 내로라하는 신들이라 해도 자신들 후손이 먼저다.
- 앞으로 벌어질 대국 후손들의 분노는 다 네놈이 지은 업의 과보이다!
영락제가 싸늘하게 식은 음성으로 경고했다.
- 네놈도 잘 알지 않더냐. 우리 후손들의 기세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만큼 커졌다. 상황이 그러한데 감히 그 앞에서 고개를 들고 같이 놀려 하다니!
강희제의 눈동자가 연신 희번덕거렸다.
재물과 힘만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믿음이 깔려 있었다.
“쯧쯧.”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두 황제는 이미 죽은 지도 오래고 또 잘못된 의식체로 묵힌 세월이 길어 개화시키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썩어빠진 자금성의 옛 주인들에 불과했다.
스윽.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말을 해봐야 입만 아픈 상황.
어리석은 황제들의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노하게 하고 있었다.
휘적.
미련 없이 돌아서서 뒷짐을 지고 태화전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국가는 이득으로써 이로움을 삼지 말고 정의로움으로써 이로움을 삼아야 한다고 지들 조상들이 그렇게 가르쳤건만 그것도 못 알아처듣는 자들과 내가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 형님, 이대로 가시게요?
그럼?
- 형님 성격 많이 죽으셨습니다! 확! 뺨이라도 한 번 갈기셔야죠!
귀신이 두 황제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불만을 터트렸다.
“놔둬라. 쥐꼬리만 한 자금성에서 지옥에 갈 때까지 황제 노릇 하다 가라고.”
솔직히 불쌍하다.
이곳에서는 조상 황제신으로 대접받고 있을지 몰라도 저들이 쌓은 악업의 크기가 장난 아니다.
조카뿐만 아니라 정권을 위해 엄청난 이들의 목숨을 앗았다.
후에 저승에 입소한다면 이자까지 계산해 지옥 영구 입주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본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죽어 혼령이 된 상황에서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 네이노오옴! 어디를 가려 하느냐!!!
- 황제께서 네놈의 그 도깨비 뿔을 또 뽑아버릴 것이야!!!
중국을 수호하는 진짜 조상신인 황제가 언급됐다.
마저 발을 내려놓으려다 말고 둘을 돌아봤다.
“형씨들. 그 반대는 생각 안 해봤지?”
- …….
“황제고 나발이고……. 나한테 걸리면 옥수수 털린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