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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장. 전설의 악녀(2) (1,135/1,284)

1159장. 전설의 악녀(2)

“날 알아?”

말희가 웃으며 묻는다.

중국사 최초로 알려진 전설의 하나라, 그 마지막 왕조인 걸왕의 애첩 말희.

가히 외모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불릴 만했다.

하나라의 걸왕은 천하를 통일하고자 주변국을 수시로 침공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애첩 말희.

걸왕은 말희를 만난 후 전쟁을 접고 온전히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말희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육향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애첩 말희를 위해 경궁이라는 궁궐도 지었다.

그곳에서 비단을 찢고 연못에 술을 채웠으며 나무에 고기를 매달고 무수히 많은 연회를 즐겼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특별한 존재였던 말희.

기어코 악신이 되었다.

“명성이 자자한 분을 이제야 봅니다. 하하하.”

최근 들어 본 적 없는 밝은 웃음을 터트리는 인간.

‘인간이야 신선이야?’

말희는 복잡한 심사로 눈앞의 인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살아있는 인간이 확실했다.

빙의되거나 신을 받은 자도 아니다.

자신이 수하로 데리고 다니는 하급 신선들을 간단하게 누를 만큼 신력이 강했다.

중급 신선에 드는 자신도 눈앞의 인간 신선이 부리는 힘을 파악 못 할 정도다.

흠뻑 요기를 뿌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잡귀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야?’

도리어 눈이 반쯤 풀린 잡귀가 자신을 보고 침을 흘렸다.

저승에서도 하품 취급받는 덜떨어진 잡귀가 확실해 보였다.

신선이라면 저런 잡귀 옆에 가는 일조차 꺼릴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벗을 대하듯 자연스레 잡귀를 옆에 끼고 있는 인간 신선.

“이름 말 안 해 줄 거야?”

말희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시 이름을 물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일단 최대한 모아야 했다.

선한 쪽에 가까워 보였지만 선신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악신의 기운이 강하지도 않았다.

아직 미완의 중립신 정도로 파악됐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인간은 선신과 악신 어느 쪽도 될 수 있었다.

‘꼬셔야 돼!’

악신 말희는 제대로 끓어오르는 탐욕을 느꼈다.

명부에 이름을 올린 법사도 아니건만 마(魔)에 대해서 일정 깨달음을 얻은 자다.

눈앞의 인간 신선과 친분을 다지면 얻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하왕조 멸망 후 악신이 된 말희.

길고 긴 세월 동안 악신으로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억울한 점이 많았다.

자신은 그저 아름다웠을 뿐이다.

남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녀를 취하고 뇌물을 바쳤다.

오로지 말희는 주어진 운명대로 살았을 뿐이다.

모두들 자신을 꽃으로 추앙하고 받들어 주었기에 그저 한 송이 꽃으로 살아남아 버텼을 뿐이다.

누가 봐도 연약한 여자였을 뿐이다.

걸왕이 원하고 바랐기에 주지육림 연회에서 춤을 추고 웃음을 팔았다.

자신은 그동안 전투에 지친 왕에게 휴식을 선물로 주었다.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가진 자들의 횡포로 보였겠지만 궁궐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평범한 백성을 짓밟고 그 위에 서서 마음껏 권력을 누리고 싶기에 고관대작도 왕도 되는 것이다.

조금 과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고대 4대 악녀로 취급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악신들처럼 피를 부르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오로지 식탐을 부리는 자에게 마음껏 먹을 것을 허락했을 뿐이다.

몇 세대를 악신으로 살아오면서 인간들이 원할 때 연회의 흥을 돋우는 요리사가 됐다.

수많은 왕조를 거쳐오며 요리를 통해 카르마를 획득했다.

분류상 악신은 분명하지만 결코 악한 짓을 했다고 볼 수 없었다.

빙의를 원하는 자에게 돈과 명예를 주어 보상을 했다.

맛있다기에 더 먹고 욕망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악신의 조미료를 조금 사용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악신의 조미료 효과 또한 악하다고만 볼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카르마가 미친 듯 쌓였다.

식탐은 인간 본성이 갖는 욕망 중 가장 강했다.

카르마 정산 비율이 그만큼 남다르다.

그렇게 힘들여 카르마를 모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청조가 망하고 난 뒤에 세상은 작금의 세상으로 요지경이 됐다.

영웅과 배신자, 효웅이 들끓었다.

혼란한 와중에도 인간들은 본능에 충실했다.

권력의 핵심 심처에서 모든 걸 지켜봐 왔던 말희.

자금성에 공산당이라는 권력 집단이 등장했음에도 일거리는 줄지 않았다.

밝은 낮에는 인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지껄여댔지만 밤이 되면 실상은 달랐다.

백성들이 굶주려도 이곳 중난하이에서는 매일 밤 술과 고기가 넘쳐나는 연회가 베풀어졌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위정자들의 진면목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말희.

결코 양심에 찔릴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장태산.”

“장태산? 한족은 아닌 것 같은데…….”

“그쪽도 엄밀히 말해 한족은 아니지 않나?”

“맞아.”

한족이라고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민족의 피가 뒤섞인 인종이다.

진짜 순수한 한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이민족의 피가 골고루 뒤섞였다.

“선신은 아니지?”

“왜? 선신 싫어?”

“딱히.”

악신 부류에 속했지만 말희는 선신과도 친분이 깊었다.

특히 익명의 요리 신선들 게시판에서 선신들과 친분을 다졌다.

“그런데 왜 묻지?”

인간 신선이 대놓고 반말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세계로 굴러가는 악신계에서는 강한 자가 곧 법이었다.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말희는 장태산이라는 인간 신선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아!”

금세 이해됐다.

“하는 일 방해할 생각 없어.”

“고마워.”

“단, 여기 이 여인의 포인트는 안 돼.”

“알았어.”

말희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는 일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이번 일은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다.

“말이 통하네.”

“내가 눈치가 빨라.”

“앞으로 친하게 지내.”

인간 신선이 악수를 청해왔다.

“그래. 친하게 지내.”

친하게 지내자면서 오월동주를 언급하는 인간 신선 장태산.

손을 잡으며 어둠의 카르마를 불어넣었다.

스르르릇.

놀랍게도 자신의 카르마가 그대로 장태산에게 흡수됐다.

“뭐, 뭐야?”

“포인트 선물 고마워.”

장태산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어둠의 카르마를 날름 흡수해버렸다.

레벨이 낮으면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이 꺾여야 정상이었다.

또 선신에 가깝다면 반탄력으로 튕겨져 나와야 했다.

하지만 전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말희는 당혹스러웠다.

수천 년 악신으로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악신임을 알고도 부탁을 해오는 장태산.

눈가에 스치는 장난스러움과 서늘함이 예사롭지 않다.

“요리 솜씨를 더 개발해. 그래서…… 여기에 사는 돼지들을 더 배불리 먹여줘.”

말리지 않고 후원을 하는 장태산.

“고마워. 잘되면 한턱 쏠게.”

“레시피 필요하면 말해. 내가 아는 신선 누님 솜씨가 장난 아니야.”

“정말?”

레시피라는 말에 호기심이 강하게 동하는 말희.

오래 살아온 신선답게 모든 언어에 능숙하게 반응했다.

요리를 다루는 신들에게 레시피는 포인트와 직결되는 기술이었다.

특히 악신들에게 선신들의 레시피는 보물과 같았다.

악신계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선신들의 음식.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다음에 시간 나면 초대해. 내가 알려줄 수도 있어.”

겁 없이 초대하라고 말하는 용감한 장태산.

“……자기 완전 내 스타일이야.”

말희의 붉은 입술이 멋대로 나풀거렸다.

그리고 요기 가득한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갔다.

***

- 형니이이이이이님! 진짜 존경합니데이!!!

귀신이 음성이 평소 존경한다는 목소리 톤보다 한 옥타브 올라갔다.

- 세상에…… 전설의 요녀 악신과 친구 먹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으흐흐.

말희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인간들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흥겨운 연회가 계속됐다.

“크으! 이 요리는 처음 먹어 봅니다.”

“마라탕 같은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사천요리 계열 같습니다. 매콤한 고춧가루에 새우와 전복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이 풍부합니다.”

“하아아아. 매워요……. 그런데 끊을 수가 없어요.”

스푼으로 건더기와 국물을 떠먹으며 손으로 연신 입을 부채질하는 류미.

말희에게 레시피 하나를 넘겼다.

나도 신선 요리사다.

나만의 레시피가 엄연히 존재했다.

지금 막 만들어서 나온 신선짬뽕탕.

그 화끈한 불맛에 다들 눈물 콧물 흘리며 감탄을 터트렸다.

후루룻.

국물을 떠먹었다.

악신의 조미료가 가미되어 중독성이 한층 더 탁월해졌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맛이다.

술국으로 단연 최고다.

“안 매워?”

류미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물었다.

“적당한데.”

“적당하다고???”

한국인에는 살짝 매콤한 정도의 맛이다.

중국인들이 의외로 매운맛에 약했다.

“하하하. 립은 대단한 미식가야.”

류평이 손을 치켜세웠다.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될 것 같은 국면.

“이렇게 귀한 저녁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드릴 것도 없는데 황송할 뿐입니다.”

겸손을 떨며 의중을 떠보았다.

본격적으로 서로가 원하는 판을 깔자는 신호를 보냈다.

스슷.

류평과 완진바오가 눈빛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우리가 고맙지. 바쁜 와중에도 초대에 응해줘서 말이야.”

완진바오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섰다.

“각하께서 부르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고맙네.”

“제가 더 고마울 따름입니다.”

고개 숙여 최대한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갚을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혹시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없는지요?”

먼저 한 장의 패를 오픈했다.

“……사실 자네를 만난 후부터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생각해 봤네.”

완진바오도 패를 까기 시작했다.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판돈이 올라갔다.

그 순간.

“립……. 혹시 대학원에 다닐 생각 없나?”

“대학원요???”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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