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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7장. 그들만의 세상(3) (1,133/1,284)

1157장. 그들만의 세상(3)

‘갑자기 표정이…….’

장립만 바라보고 있던 류미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중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능구렁이로 평가받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너스레를 떠는 장립.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편안하게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인사였다면 중난하이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긴장감으로 어깨가 굳어 버렸을 것이다.

자금성은 과거부터 기가 남다른 곳.

황제나 그에 준하는 권력자들만이 자금성 주변에 모여 살 수 있었다.

기가 약한 자는 애초 중난하이에 거주할 수가 없다.

도리어 장립은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준비해 온 선물 빙골옥수액으로 엄마의 경계심을 푸는 동시에 큰 환심을 샀다.

아버지 류평은 평소에도 아내의 말에 꼼짝 못 했다.

빙골옥수액으로 진짜 효과를 본다면 그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질 게 확실했다.

이번에 장립은 큰마음 먹고 중국에 들어온 게 분명했다.

홍콩에서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어도 지금의 판은 결국 펼쳐졌을 것이다.

편안해 보였던 장립이 부엌 쪽을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 있어?”

류미가 장립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조용히 물었다.

평소처럼 행동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가문 차원의 일을 하는 자리.

그런 데다 장립에 대한 호감도는 극상으로 치달았다.

최대한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류미의 물음에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장립.

‘뭔가 있는데?’

하지만 촉이 곤두선 류미로서는 계속 의심이 가는 그 무엇.

지금 부엌에는 집에 거주하는 전속 요리사 외에 세 명의 외부 요리사들이 와 있었다.

북경에서 소문이 자자한 출장 요리사들.

일주일에 딱 하루만 요리했다.

저들 중 누구도 함부로 모실 수 없었다.

철저한 예약제로만 초빙 가능했다.

억만금을 줘도 예약이 되어있지 않으면 꿈적하지 않는 요리사들이다.

권력을 사용해서 강제할 수도 없다.

필요하다면 슈건핑조차 예약을 하고 순번을 기다렸다.

우연인지 다행히 오늘 날짜로 완진바오가 예약을 해놓아 출장 요리가 가능했다.

요리 재료도 직접 그들이 필요한 만큼 공수해 왔다.

특정한 요리도 정해져 있지 않다.

제철에 나오는 가장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그날그날의 요리.

차박차박.

부엌에서 요리들이 하나씩 서빙되기 시작했다.

다들 명문대에서 교육받은 집사와 도우미들이 깔끔한 복장으로 요리를 내왔다.

본래는 오늘 다른 이들과의 파티가 예정되어 있기도 해서 모두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모습이었다.

전복과 해삼, 새우가 들어간 시원한 냉채탕이 첫 번째 요리로 등장했다.

“들어보게.”

“요리사 솜씨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돋습니다.”

“그런가?”

“요리에서 기가 느껴집니다.”

장립이 앞에 놓인 음식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리삼신(料理三神)의 솜씨라네.”

류평이 흐뭇한 표정으로 설명을 더했다.

“요리삼신요?”

장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몇 년 전에 등장한 중화요리의 대가들이야. 요리삼신이라 불리는 세 명의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이지.”

류미가 추가 설명을 곁들였다.

“그래?”

두 눈 가득 호기심을 보이는 장립.

“직접 먹어보면 알아.”

“먼저 먹어보게.”

모두가 장립에게 먼저 요리를 맛보기를 권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맛이 궁금한 듯 장립이 거절하지 않고 스푼으로 탕국물을 떠먹었다.

“!!!”

예상했던 대로 깜짝 놀라는 장립.

“어떤가?”

완진바오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물었다.

“……대단합니다! 가히 신선이 만든 요리가 맞습니다!”

장립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극찬했다.

“하하.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군.”

완진바오가 흡족한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집에 찾아온 손님을 만족시켜야 체면이 사는 중국인의 문화.

장립의 표정을 보고 완진바오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흐뭇했다.

“귀한 요리를 대접해 주신 각하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회.

마오타이주가 개봉되고 호탕한 웃음소리와 요리 냄새가 섞여 분위기를 띄웠다.

짧은 시간에 달콤한 주향이 저택 곳곳으로 진하게 퍼져 나갔다.

***

- 카르마 포인트가 차감됐습니다.

- 악신들의 조미료에 중독됐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가 연속 차감됩니다.

카르마 포인트가 빠져나가는 알림음이 귓가에 울렸다.

어이가 없다.

저녁식사에 초대된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악신과 조우했다.

- 세상에……. 악신 요리사라니…….

귀신이 원형 탁자에 차려진 요리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부엌 쪽에서 느껴졌던 찝찝함의 정체가 확인됐다.

요리는 겉으로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대장금 누님이 봐도 감탄할 정도였다.

문제는 요리에 담겨 있는 기운이 무척 불순하다는 것.

이상하게 먹으면 먹을수록 식탐이 강해지는 마약식 요리들이었다.

맛으로 승부를 보면 좋겠지만 문제는 알림음이 통보한 대로 악성 조미료가 사용되었다는 사실.

자연산 대형 전복을 비롯해 상어지느러미 그리고 세상 귀하다는 제비집까지 나왔다.

그야말로 최고급 재료를 지향했다.

솜씨도 좋았다.

중독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수히 젓가락을 놀렸다.

- 형님. 상황을 알면서도 그 독이 입에 들어가십니까?

귀신은 기를 먹고 살기에 나보다 더 기겁했다.

인간과 달리 귀신에게는 지금 차려진 요리가 온통 독 범벅으로 보일 것이다.

복어를 사용한 요리가 술국에 최고인 것처럼.

- 형님? 그건 복어고 쟤들은…….

귀신이 입을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악신들의 레벨이 제법 높았다.

괜히 입 함부로 놀리다 얻어터질까 봐 말을 참는 것이다.

“오늘따라 삼신의 솜씨가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입이 호강하는군.”

“귀한 손님이 온 걸 아는가 봐요.”

류평과 완진바오, 류미가 젓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술병은 벌써 몇 병째 비워졌다.

요리들도 스무 종류가 넘게 차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했다.

- 저렇게 먹어도 배가 안 나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허기를 먹어서 그렇다.

- 허기요???

인간들이 많은 요리를 먹어야 악신들이 그에 상응하는 포인트를 벌어가는 이치이다.

선신들의 요리들이 생기를 불어넣는다면 악신들은 허기를 담는다.

음식점에 갔을 때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고 나면 순간은 배부른 것 같지만 돌아서면 바로 허기지는 집이 있다.

그런 집을 두고 허기를 파는 음식점이라 한다.

잠깐 배는 불리지만 건강에는 별 득이 안 된다.

하지만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배가 든든하고 긴 시간 포만감이 드는 곳도 있다.

요리하는 주인장이 간식에 가까운 라면에 생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 아하! 그런 깊은 뜻이 있군요.

아직 세상 이치를 배워가는 중인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깍.

그때 새로운 요리가 또 나왔다.

표고버섯으로 만든 어향동고.

- 헛! 혀, 형님!

귀신이 요리를 보고 아까보다 더 깜짝 놀랐다.

“후훗.”

급기야 참았던 비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삼선이라는 놈들이 이제는 도발을 해왔다.

“립? 무슨 일이야???”

정신없이 식사에 집중하던 중에도 살뜰이 나를 챙기는 류미.

음식을 먹으면서 기를 상당히 빼앗긴 듯 눈 밑이 처음보다 어두워져 있다.

더 이상 악신들의 행태를 봐주기는 힘들 것 같다.

“어이.”

부엌을 향해 차갑게 한마디 외쳤다.

그리고 뒤이어 쏘아보낸 강력한 카르마 기파.

“??”

요리에 심취해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그 순간.

파아아앗.

시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인간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신들에게만 적용되는 시간의 법칙.

집안에 있던 이들 모두 시간과 함께 그대로 몸이 굳었다.

아직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고도의 기술이다.

- 혀, 형님! 나와요!!!

귀신이 벌벌 떨며 내 뒤에 숨는다.

차박차박.

드디어 부엌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내는 세 명의 남녀.

나이는 모두 삼십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몇 시간째 요리를 하고 있지만 양념 한 방울 튀지 않은 깨끗한 복장.

- ……오! 대단한 미녀네요!

등 뒤에 숨어서도 귀신은 정신을 못 차렸다.

중식도를 들고 있는 통통한 체격의 남자 하나와 장대 크기의 또 다른 남자.

그들과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미녀 악신.

미녀 악신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주 외모가 출중했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균형 잡힌 몸매가 아주 최상이다.

피부는 또 얼마나 깨끗한지 눈이 부셨다.

콧날은 오똑하고 립스틱도 칠하지 않았는데 입술이 새빨갛다.

“넌 뭐니?”

웃음을 띠고 반달 모양의 눈으로 묻는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산들바람처럼 들려왔다.

- 엘프 여신급입니다!

귀신은 벌벌 떠느라 옷자락을 붙잡은 와중에도 미녀 악신을 엘프급이라 칭찬했다.

“적당히 하시죠.”

악신 미모에 흔들리지 않고 대꾸했다.

과거 화타에게서 악신들을 치료할 때 저런 미모의 악신들을 많이 봤다.

구미호급에 속할 정도로 대부분 악신의 미모가 대단했다.

그러나 여성체 악신들이 남성체 악신보다 더 손이 악랄하다는 건 잘 안다.

옆에 있는 두 남성 악신은 여성 악신의 조수임이 분명했다.

“흐흐흐. 인간도 아니고 신선도 아니고……. 너 정체가 뭐냐?”

식도를 든 키 작은 남성 악신이 물었다.

스윽.

주방장 모자를 벗자 드러난 대머리.

칼침 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협박하는 겁니까?”

“우리 정체가 뭔 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이번에는 꺽다리 악신이 묻는다.

“응.”

짧은 대답.

“응? 푸하하하하하하. 덜떨어진 잡귀 하나 데리고 다니는 박수무당 같은데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대머리 악신이 공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광소를 터트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 덜떨어진 잡귀라니!!! 악신들 주제에 어디서 평가질이야!

귀신이 듣고 있다 씩씩거렸다.

“야! 너 이쪽으로 와봐!”

대머리 악신이 귀신을 향해 중식도를 들고 까닥거렸다.

- 누, 누구보고 오라 가라야! 너희들 여기 계시는 형님이 누군 줄 알고 협박질하는 거야!

벌벌 떠는 와중에도 귀신의 목소리가 기세등등했다.

“그러니까 묻잖아. 동생 정체가 뭐야?”

사박사박.

가까이 다가오는 여성 악신.

촤라라랏.

요리사의 모자를 벗는 순간 기다란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살아생전 남자께나 홀렸을 것 같은 여성 악신.

파아아아앗.

강렬한 요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 으읏…….

귀신이 오금이 저린 듯 신음을 흘렸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 치명적 요기.

“그러는 당신은 뭡니까?”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정체를 물었다.

그 순간.

- 전설의 주지…….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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