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2장. 천하를 논하다(3). (1,128/1,284)

1152장. 천하를 논하다(3).

“웨신타오…….”

바로 주석궁으로 돌아온 슈건핑.

장립은 물론 주변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그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아니나 다를까 웨신타오가 장립을 찾아갔다.

당연히 슈건핑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웨신타오가 한때 자신이 섬기던 주인이었다는 것이다.

태자당 출신인 자신을 부주석과 주석으로 끌어줬던 웨신타오.

상해방의 방태민에 대한 원한으로 당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직과 같은 실권을 하루아침에 넘겨줬다.

슈건핑은 권력을 이양받은 즉시 과감하게 그 권한을 휘둘렀다.

웨신타오처럼 이것저것 잘게 계산하지 않았다.

방태민과 웨신타오의 뒤가 돼 주는 배경을 과감하게 베었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있었다.

웨신타오 주석직 말년에 벌어졌던 상해방의 내란전복 음모.

당시 주석인 웨신타오와 부주석이었던 슈건핑을 방태민과 그 일파가 노렸다.

태자당 출신이면서 방태민과 손을 잡은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무경 수장인 자오융캉이 중난하이를 포위했다.

몇 시간만 더 지체하면 웨신타오와 슈건핑은 실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태민은 그 사실을 몰랐다.

미국 측에서 반란 정보를 빼돌려 슈건핑에게 전달했다.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웨신타오.

직속 부하인 베이징 군구 수장에게 명령을 내려 무경들을 제압했다.

그렇게 끝난 반란 음모.

비공식적으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무경은 정규 군대를 상대할 수 없었다.

특히 북경 군구 소속 부대들은 모두 다 최신 장비와 특수 훈련을 받았다.

웨신타오와 슈건핑은 군부의 힘을 빌려 상해방 인사들을 제거했다.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겠지.”

슈건핑은 비정했다.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웨신타오까지 날렸다.

상황 노릇을 하려던 웨신타오의 꿈을 산산조각냈다.

권력은 본래 그렇게 비정한 것이었다.

피를 먹어야 단단해지는 속성이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앙판공청주임이자 슈건핑의 심복인 방창걸이 물어왔다.

언제가 되었건 명령만 떨어지면 웨신타오는 바로 제압 가능했다.

현재 웨신타오의 뒤를 받쳐줄 만한 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이 나눌 만한 대화가 뭐라 생각하나?”

슈건핑이 방창걸에게 물었다.

“글쎄요…….”

비서실장 격인 참모 방청걸은 슈건핑이 인정하는 꾀주머니였다.

그런 방창걸도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낚시나 하던 웨신타오가 장립에게 내걸 만한 게 있을까?”

슈건핑은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르자마자 북경 군구를 비롯해 중요 군부 인사들의 수장을 교체했다.

공산당 총서기를 겸했던 만큼 슈건핑의 권력은 무소불위로 행사됐다.

반항하거나 의심이 가는 자들은 모조리 부패혐의와 기율 위반으로 가차 없이 끌어내렸다.

각 군부 파벌들은 대다수가 족벌체제였음에도 슈건핑을 두려워했다.

군벌들은 앞다투어 혈서를 통해 충성을 맹세했다.

“뭔가 밑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밑밥이 궁금해…….”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웨신타오에게는 그럴 만한 역량이 없습니다.”

방창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 정도로 웨신타오의 세력은 철저하게 궤멸했다.

총리인 리장창 한 명이 남았지만 그에게는 실권이 없었다.

명목상 중국의 2인자에 불과했다.

“웨신타오가 문제가 아니야.”

“그럼…… 역시.”

무언가를 짐작해 보는 방창걸.

“장립 그 녀석이 문제야.”

“으음…….”

방창걸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쓸모없는 원소들도 잘만 배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물이 되는 법이야.”

“각하 말씀이 맞습니다. 장립이 문제입니다.”

“대놓고 녀석을 끌고 올 수도 없고…….”

이번 경매를 통해 장립의 위상은 또 한 단계 더 격상됐다.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소리소문없이 처리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미국 측도 장립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장립은 화교인 동시에 미국 시민권자였다.

괜히 섣불리 건드려 좋을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겠지?”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아쉬워……. 웨신타오를 날려버렸어야 했는데.”

“일개 태공 따위는 무시해도 됩니다.”

슈건핑을 지지하는 태자당과 천지회의 힘이 아주 막강했다.

연임이 가능한 국가주석.

슈건핑이 실각할 일은 없었다.

인민들의 지지율이 매우 높은 것도 이점이다.

“기다려봐야지. 웨신타오가 꾸밀 계책이야 거기서 거기니까……. 후훗.”

낮게 비웃음을 흘리는 슈건핑.

“맞습니다. 각하의 상대는 보잘것없는 자들이 아니라 위대한 대제국 건설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미국과 유럽뿐입니다!”

음성에 힘을 가득 담는 방창걸.

“대제국…….”

슈건핑이 완전히 여명이 찾아온 창밖을 바라봤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위대한 제국의 부활.

점점 눈앞에 꿈이 아닌 현실로 실현되고 있었다.

거침없이 성장하는 국력 덕분에 그만큼 앞당겨질 중화인민공화제국.

“각하는 그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실 것입니다!”

방창걸이 주인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 숙였다.

시대와 문명을 거스르는 대제국의 부활.

쿵쿵!

슈건핑의 강단 있는 심장이 힘 있게 뛰었다.

***

-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귀신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살피더니 물어왔다.

“흐음.”

짧은 신음이 부지불식간에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파격 그 자체다.

웨신타오의 말처럼 전혀 짐작 못 한 내용이다.

- 지금 중국을 세 조각으로 나눈다는 말입니까?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말하던 그 계책 맞죠???

오~ 귀신 삼국지는 읽어 본 거야?

- 누굴 바보로 아십니까! 형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가방끈 깁니다!

가방끈 길어서 졸업 후에 갱단에 투신한 거야?

와아아! 진짜 존경스럽다.

- ……막상 살아보니 가방끈 긴 거 하고 세상 사는 지혜가 좀 달랐을 뿐입니다.

귀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인생 공부를 교과서로 배운 자들의 전형적인 폐해다.

귀신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웨신타오를 바라봤다.

씨이익.

두툼한 안경 너머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은둔의 거인.

솔직히 감탄했다.

지금까지 중국 측 인사 중에서 내 의도를 파악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나 돈, 권력 같은 즉, 자신들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 위주로 나를 평가하기 바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의중에 가장 가깝게 근접한 인사가 나타났다.

물론.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속을 훤히 내보일 바보는 아니다.

“적혀 있는 그대로네. 중국을 세 조각으로 나누자는 의미지.”

“그러니 묻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걸 볼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 저에게 제시한 이유가 짐작되지 않습니다.”

시치미를 뚝 뗐다.

천하삼분지계?

누구 좋으라고???

“립. 내 나름대로 자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네. 특이하게 돈도 권력도 자네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더군.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지.”

웨신타오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귀를 열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세월을 낚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군. 죽고 나면 부질없을 허명뿐인 세상이라지만 살아있다는 건 증명해야지 않겠나.”

웨신타오의 깨달음이 소리의 형태를 띠고 전해졌다.

가만히 그리고 묵묵히 들었다.

“죽어도 여한은 남기지 말아야겠더군. 방태민에 대한 복수는 완성됐지만 배신자에 대한 원망이 생각보다 강하게 남았네.”

슈건핑에 대한 복수심을 은근히 꺼내놓는 웨신타오.

“방태민에게 당했던 서러움 때문에 후계자로 낙점한 슈건핑에게 힘을 주고 싶었지. 녀석도 피붙이보다 더 나를 챙겼고. 사실 내 형제들보다 난 슈건핑을 더 신뢰했네. 듬직한 체격에 어울리게 입도 무거웠거든.”

웨신타오가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 쯧쯧. 세상에 믿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세상에 믿을 귀신은 있고?

- 형님! 저는 꼭 믿으셔야 됩니다! 세상에 귀신이 많고 많지만 삼인행으로 엮인 귀신은 없지 않습니까?

귀신이 큰소리 빵빵 쳤다.

물론 나는 안 믿는다.

신들도 사기 치는 세상에 귀신이 대수인가.

“그래서 복수를 꿈꿨네. 하지만 방법이 거의 없었어. 슈건핑 그 녀석 뒤에 있는 천지회와 악당 무리는 생각보다 더 고약하네. 내 손발을 거의 다 잘라냈어.”

웨신타오의 입에서 천지회가 언급됐다.

중국 수뇌부들 사이에서는 이제 비밀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난 전직 국가주석이네. 놈들이 모르는 비밀들이 제법 있지.”

비밀?

입맛이 확 당긴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하긴 중국을 10년이나 통치한 자가 빈털터리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경매장에서 뿌린 돈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내 말이 귀에 들어오나?”

웨신타오가 묘한 표정으로 웃는다.

“…….”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슈건핑을 괴롭힐 방법은 딱 하나야.”

웨신타오의 눈동자에 기이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녀석이 꾸는 꿈에 똥물을 확 끼얹으면 돼.”

- 똥물? 전직 주석이라는 분의 표현이 너무 저속한 거 아닙니까?

저속은 무슨! 

속이 다 시원한 발언이다.

“슈 주석의 꿈이 뭡니까?”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황제(皇帝).”

짧게 돌아온 답변.

- 황제요? 진짜요? 요즘 같은 세상에요???

귀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슈건핑은 조조 같은 야망가야. 천하를 일통하고 대제국을 세워 다스리기를 원했지.”

“재임 당시 발톱을 드러냈습니까?”

“아니. 전혀.”

웨신타오는 솔직하게 답했다.

“슈건핑은 나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했네. 상해방을 척결하고 내 의견을 존중해 중국을 통치하기로 했지.”

“그 말을 믿으셨습니까?”

“물론 다 믿지는 않았지. 하지만 우리 둘은 얽혀 있는 게 많았어. 상해방이 시도한 내란 때 슈건핑이 중요한 정보를 미국에서 물어왔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자네와 얘기도 나누지 못했을 것이야.”

중요한 정보?

내가 모르는 야사가 따로 존재했다.

웨신타오의 입에 집중했다.

“어때? 구미가 좀 당기나?”

웨신타오의 밑밥 까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낚시꾼이 되더니 낚는 기술이 수준급이다.

하지만.

씨익, 입가에 해석하기 난해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미끼가 너무 빈약한 거 아닙니까?”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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