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1장. 천하를 논하다(2)
“장립…….”
미국 정치계의 중심인 수도 워싱턴.
그 워싱턴 중에서도 가장 중심인 백악관의 당대 주인 오바마가 긴급하게 올라온 보고서를 살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북경에서 들어온 소식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중국의 고위 공산당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북경에 모였다.
장소는 호텔.
왜 한자리에 모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베이다이허 같은 중국 지도자들의 비밀 정치모임도 아니었다.
해마다 연초에 전국에서 모여드는 인민대회 같은 공식적인 모임도 아니다.
한 인물이 모든 중국 지도자들을 북경 팰튼 호텔에 초대했다.
그들을 소집한 이는 놀랍게도 미국 시민권자 장립이다.
베일에 싸여 있는 자였다.
2년 전 중국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적잖은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정보기관을 모조리 동원해 겨우 알아낸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그 정도 영향력을 일으킨 미국 시민권자는 한 명도 없었다.
프랑스 화교 출신에 미국 명문대에서 유학한 재원.
졸업 후에 갱단에 입단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갱단 두목의 여인과 도주하다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거짓으로 판명났다.
갱단 두목의 입을 통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장립이 진짜 그임을 확인했다.
찝찝한 마음에 보다 상세히 파악하고자 했지만 미로 속에 갇힌 것처럼 더 이상의 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중국에서의 활동 이후 행방은 꽤 뚜렷했다.
한국 여인과 결혼한 뒤 미국 거주지에 은둔하며 몸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홍콩과 미국에 투자회사를 차려 운영했다.
그가 굴리는 자금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누군가의 비자금을 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니엘 장…….”
오바마는 장립에 관한 보고서에 다니엘 장이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한국명 장태산.
두 사람이 한 차례 만남을 가진 뒤 장립이 홍콩으로 떠났다.
그 시각 장태산은 오바마도 방문한 적이 있는 로버트 라이언 소유 와이너리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두 사람은 교집합이 거의 없는 듯 보였지만 생각보다 접점이 꽤 많았다.
특히 두 사람은 한국에서 만남을 가진 이후 사이가 돈독해졌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비밀 이야기를 나눴음이 분명했다.
다니엘 장은 현 중국 지도부와 사이가 좋지 않다.
몇 번의 암살시도까지 있었으니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에 반해 장립은 중국 측 인사들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관계가 좋다.
“뭔가 있는데……. 그게 뭘까?”
오바마는 회오리치듯 몰려오는 생각에 심기가 불편했다.
다니엘 장은 힐러리를 암암리에 무시했다.
로버트 라이언의 태도도 마찬가지.
괴짜 트럼프 진형에 선거 자금을 제공했다.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여론 조사에서는 힐러리가 우세한 것으로 나왔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공화당에 대해 보이지 않는 지지자들의 표가 많았다.
본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미국 시민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 굴러가고 이유가 세상 거의 모든 국가에 빨대를 꽂은 덕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국가가 부유해도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 모두를 구제할 수는 없다.
백인이라는 특권에 사로잡혀 수십 년 동안 부를 누려온 대다수 미국 시민권자들은 게으름과 무지로 이미 오염됐다.
미국 시민만이 세상 최고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혔다.
그만큼 성격도 고약해졌다.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쪽에 자본과 부가 몰리기 시작하자 심술이 났다.
자신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지는데 아시아인들이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오랜 세월 동안 아시아인들이 푼돈을 얻기 위해 흘린 그들의 노동력을 무시할 수 없다.
저임금 고노동을 통해 얻어낸 자금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워냈다.
그러는 사이 미국 기업들은 방향을 바꿔 새로운 시장에 투자했다.
고인물을 넘어 썩은 물이 되어가고 있는 미국 시장.
점점 더 깊이 망국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오바마 정부를 비롯해 미국의 싱크 탱크들은 영원한 제국을 위해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공작과 트집을 잡아 세계를 쥐어짜고 권력을 재편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쳤다.
유럽을 제패했던 거대 로마 제국도 시민권자들이 게으름에 빠지면서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스로 흘린 피와 땀만이 조국을 지킬 수 있다는 걸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최대한 망국을 늦추는 게 대통령의 의무.
오바마는 오늘도 오직 미국만을 위해 고심했다.
“경매에 얼마나 대단한 약을 내놨기에 그들 모두가 모인단 말인가.”
미국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동양인들의 생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침술과 같은 동양 의학은 신비로 포장한 거짓이라 생각할 정도다.
겨우 빼돌린 정보에 의하면 장립이 경매를 통해 환단이라는 약을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약을 얻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다 모여들었다는 중국 권력자들.
“웨신타오가 끼어들면……. 재밌는 판이 돌아가겠어.”
지금의 슈건핑과 그 일당의 약진에는 오바마 정부의 도움이 있었다.
비밀 정보를 캐내 슈건핑 쪽에 제공했다.
그걸 이용해 권좌에 오른 슈건핑.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방태민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슈건핑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
오바마와 미국 행정부가 만만해하며 평가 절하했던 슈건핑.
그를 통해 중국 정치에 개입하려던 계획을 갖고 있던 오바마는 도리어 뒤통수를 맞았다.
비밀 거래 때문에 마음대로 역공할 수도 없었다.
세상에 치졸한 거래에 대한 치부가 알려지면 오바마의 명예에 흠집이 생길 것이다.
“미국에 돌아오면 만나봐야겠어.”
아직 몇 달이나 남은 대통령의 소중한 임기.
오바마는 보고서 앞장 장립이라는 이름에 몇 번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반드시 포섭해야 할 중요 인사.
다니엘 장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
- 천하를 논해요? 웨신타오가요?
어이가 없는지 귀신이 묻는다.
정치 기반이 뿌리째 뽑혀버린 중국 전 국가주석.
경매장에서 본 웨신타오는 공청단에서도 위치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완진바오가 웨신타오의 빈자리를 꿰찼다.
또 방태민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신이 키운 슈건핑으로부터 토사구팽도 당했다.
공청단에서는 암암리에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웨신타오가 천하를 논했다.
- 논하지 마세요. 괜히 꼬투리 잡혀 생고생 길 열립니다. 제가 관상 좀 볼 줄 아는데 웨신타오는 인복이 박한 편입니다. 특히 눈빛이 맑지가 않아요. 인상도 굳어 있어 앞으로 환란이 닥칠 운명입니다.
귀신이 다다다 되는 대로 내뱉었다.
귀신도 신이라고 관상을 떠벌렸다.
선무당에게 강림하면 여럿 인생 망칠 잡신이 될 판이다.
- 형님. 섭섭하게 왜 그러십니까. 천지간의 도를 배워가는 동생, 기 죽이시면 안 됩니다.
“내 말이 부담스럽나?”
웨신타오가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묻는다.
지금까지 만난 중국 고위 정치인과 조금 달랐다.
감정을 감추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 당황스럽습니다.”
웨신타오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한 데가 있었다.
중국 정치인들 모두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물론 전쟁의 한복판에 맨몸뚱이로 찾아온 노력은 가상했다.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또 있을지 장담을 못 하겠네.”
웨신타오는 솔직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이 나를 죽이지 않아도 나 스스로 무너질 것이네.”
“네???”
“낚시를 해도 오래 쌓인 분노가 사라지지 않더군. 태공의 전설을 밟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했어. 권좌에 대한 미련은 생각보다 강하네. 긴긴 밤을 복수를 꿈꾸며 버티지만 오고가는 세월에 고목이 되어가고 있어.”
- 쯧쯧. 정치 중독병이 마약보다 심하다더니…….
급기야 귀신이 혀를 찼다.
그 말에는 동조한다.
황제로 군림했지만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한 비운의 중국 국가주석.
방태민이나 슈건핑처럼 권력을 한껏 누리지 못했다.
“웨 주석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천하를 논하기에는 제가 가진 재능과 힘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저는 천하를 꿈꾸지 않습니다.”
단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 그럼요. 지구보다 더 큰 이계 땅에서 인생 이모작을 경영하시는 분인데.
귀신만 아는 비밀.
“……아니라는 거 다 아네.”
파바바밧.
웨신타오의 눈빛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시치미를 뗐다.
웨신타오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립. 자네를 보면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네.”
-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듣고 있던 귀신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나도 웃고 싶었지만 참았다.
“과찬이십니다.”
속내와 달리 겸손으로 철저하게 포장했다.
아무리 멸문지화급 화를 당한 전직 주석이지만 엄연히 주석이었다.
괜히 자극할 필요가 없다.
“과찬이라…….”
“각하. 전 결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럼요! 이깟 인간세상 황제가 뭐가 대단합니까. 지금 바로 등선해도 신선 예약되신 분인데.
“알고 있네.”
“네???”
알고 있는데 뭐가 닮았다는 거야?
웨신타오의 복잡한 심사를 읽어낼 수 없었다.
역시 인간 심사만큼 복잡한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장립 자네는 황제를 꿈꾸지 않을 걸세. 다만…….”
웨신타오가 말을 끊었다.
눈빛에 확신이 가득 찼다.
- 다만? 이분이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귀신이 호기심을 보였다.
웨신타오도 사람 다루는 데 도사다.
느낌이 싸했다.
“립 자네를 보면서 공명의 계책이 떠올랐네.”
“!!!”
웨신타오가 진짜 뭔가 아는 모양이다.
지금껏 중국 정치인들 누구도 파악 못 한 나의 계책.
- 공명의 계책요?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쉽게 설명해 주면 덧납니까?
귀신이 머리를 쥐어짰다.
“잘 모르겠습니다.”
“후후훗.”
웨신타오가 묘하게 웃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 많은 걸 알게 되네.”
웨신타오는 나의 거절 의사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어느 정도는.”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네.”
“그럼 보여주십시오.”
웨신타오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겠다.
진짜 그가 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스윽.
웨신타오가 종이를 내밀었다.
- 이건 경매함에 넣으라고 뿌린 종이가 아닙니까?
웨신타오는 경매에 참여하지 않은 것 같다.
“읽어보게.”
직접 종이를 건네며 담담하게 말하는 웨신타오.
종이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접혀 있는 종이를 천천히 펼쳤다.
- 엥? 이건 또 뭡니까? 천하…….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