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9장. 꽝 없는 복권.
- 경매가 끝났습니다.
“이제?”
새벽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창밖으로 벌써 어둠을 물리치고 붉은 여명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총리실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파악하면서 밤을 지새운 란커창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저녁 무렵부터 시작된 경매는 연회까지 쭉 이어졌다.
연회 자리에서도 놀라운 일은 연속 벌어졌다.
베이다이허와 같은 큰 모임에서도 함께 모이기 힘든 네 사람이 한자리에서 조우했다.
그리고 본래부터 그래왔던 것 같이 술을 마셨다.
비공식적인 자리였지만 슈건핑과 방태민, 웨신타오와 완진바오가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상황이다.
그들 모두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에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자존심도 셌다.
전국인민대표회의 시간에도 짧은 시간 개별 접촉만 가질 뿐이다.
그나마도 각자의 오른팔들끼리 만나 중요한 일을 대리 처리함이 다반사다.
- 한 사람도 먼저 나간 이가 없었습니다.
“음…….”
전화를 통해 보고를 받으며 란커창은 신음을 흘렸다.
‘내가 실수한 건가.’
괜히 속이 쓰리고 아팠다.
장립이 경매장에서 풀었던 환단의 가치는 가격을 책정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애써 무시하고 독야청청하려 했지만 인간의 욕심은 란커창을 괴롭혔다.
괜히 장립에 대해 경계하고 시기하느라 정작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몇 시간 동안 계속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애써 다른 이들과 다르다 위안을 삼았지만 천도등선단이라는 환단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피가 터지도록 깨물었다.
전현직 주석과 총리들에게 제공됐다는 장립의 특별 선물.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란커창도 한 알 정도는 무난하게 받았을 것이다.
아직 직접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영약일 게 확실했다.
“다들 술에 취했겠군.”
- 그렇지…… 않습니다.
“안 취했다고? 꽤 많은 술을 마셨다고 하지 않았나?”
- 지금까지 봐온 중에 가장 성대한 연회였습니다.
중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말술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시간까지 독한 백주를 쉼 없이 마셨다면 누구라도 취하는 게 당연지사다.
최고 권력자들이 동석했다 해도 정신력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성대하게 열린 연회였다면 그만큼 요리와 술이 수준급으로 제공됐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안 취해?”
- 서비스로 제공한 환단 약효인 것 같습니다. 참석한 이들 모두 마시면 마실수록 술이 깬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 눈으론 봤을 때는 그랬습니다. 슈 주석도 열 병 이상 비웠는데 멀쩡했습니다.
“!!!”
평소 술을 크게 즐겨 마시지 않는 슈건핑이다.
마오타이주 열 병 이상이면 최고 주량을 넘어선 수준이다.
그럼에도 멀쩡했다는 소리였다.
- 놀라운 건 방 주석입니다.
“뭐가 말인가?”
- 젊은 시절 주량을 넘어섰습니다.
“뭐라고???”
작은 키지만 대단한 주량과 정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방태민이다.
그와 대적했다가 멀쩡하게 걸어 나온 이가 없었다.
술로도 황제임을 스스로 증명했던 방태민.
나이을 먹으면서부터 10년 전부터 술을 자제했다.
아무리 환단을 먹어도 육체 노화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그가 젊은 시절의 주량을 넘겼다는 소리였다.
- 무려 20병이 넘는 술을 마셨습니다.
“음…….”
란커창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토했다.
배가 더 쓰리게 아파왔다.
장립의 환단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어지럽혔다.
‘황제 재생단을 넘어서는 천도등선단의 약효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 웨신타오 주석도 오랜만에 완 총리님과 대작을 벌였습니다.
‘두 사람이 대작을?’
환단이 문제가 아닌 듯했다.
정치적으로도 큰 기회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장립이 주관한 경매 사건은 계속해서 파란을 일으켰다.
아니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사건이었다.
또다시 장립이 경매를 연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누구도 빠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스스로 소외되어 버린 란커창.
누구에게도 부정 못 할 만큼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에 더 뼈아팠다.
슈 주석의 부탁마저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거절해 가며 버텨 왔는데 모든 게 허사가 돼 버렸다.
“장립은 어디에 있나?”
-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찾아가 봐야 하나?’
정치 세계에서 새벽은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시간대이다.
욕망에 물들어 사는 이들에게 는 낮보다는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 더 편했다.
문제는 그를 만날 만한 명분이 없다는 것.
장립 또한 경매장에 참석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게 분명했다.
고위직 중에 유일하게 자신만 그 자리에서 빠졌다.
‘그놈을 만족시킬 만한 선물도 없고…….’
정치적 만남에 있어 상대가 혹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건 기본 예의였다.
꽌시를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정의가 바로 이해관계의 물물 교환이었다.
그러나 장립이 원하는 바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환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어려웠다.
“혼자인가?”
- 아닙니다.
“그럼 여자?
당연한 질문 순서였다.
장립 옆에 류미와 양소려가 있었다.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과는 분명히 밤을 보낼 것이라 예상은 했다.
-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누구와 함께 있단 말인가!”
란커창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감정이 격해져 있는 상태였다.
-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그분께서 장립에게 찾아간 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분이 직접???”
***
- 오늘 파티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남자들만 있어도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입니다.
화기애애?
표면적인 분위기만 보고 본질을 파악 못 한 귀신.
그런 건 화기애애가 아니라 눈치게임의 감독판 정도로 봐야 마땅하다.
- 맞는 말씀입니다. 다들 형님 눈치만 보더군요. 눈이라도 마주치면 집 지키는 개들처럼 어찌나 꼬리를 흔들어 대던지……. 흐흐.
하긴 안 흔들면 국물도 없었다.
오늘 서비스로 제공한 소황자단은 다른 말로 강력 숙취 해소제다.
그걸 먹고 다들 주야장천 취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복용 방법을 지도해 줬지만 개의치 않았다.
방태민 이하 모두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자리를 즐겼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 슈건핑과 방태민, 웨신타오, 완진바오가 포진했다.
그들과 맛있는 요리를 먹고 마시며 연회를 즐겼다.
복잡한 정치와 경제 문제는 잠시 접어뒀다.
자신들이 경험했던 중국 과거사를 안주 삼아 동틀 때까지 이야기 나누었다.
들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인생 역경 이야기였다.
그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과거사는 중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였다.
술을 마시며 편안하게 귀를 열고 경청했다.
적을 알아야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법이다.
술이 몇 차례 돌자 호승심에 감춰진 비사도 몇 개 풀었다.
물론 차곡차곡 기억에 저장했다.
후에 비사를 꺼내 쓸 일이 있을 것이다.
- 형님. 이제 복돼지 한 번 개봉해 보시죠.
복돼지?
귀신의 시선을 따라갔다.
- 저기 통 있지 않습니까. 그거 까보시죠. 흐흐흐.
귀신이 경매장에서 가져온 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황제 재생단 구매가가 담겨 있는 경매함.
복돼지가 맞았다.
오직 나만 볼 수 있다.
혹시 몰라 마법으로 이중삼중 안전장치를 걸었다.
“복권 한번 까볼까?”
꽝이 없는 슈퍼 복권.
겁 없이 경매가를 시작가보다 적게 적어 낼 자는 없었다.
오늘 제대로 나의 능력을 발휘했다.
길고 긴 술자리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중국 최고위층과 이렇게 긴 시간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연회를 끝내고 해산했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가는 1박 2일 코스로 술을 마실 분위기였다.
다행히 방태민과 슈건핑이 나서서 조율했다.
그들의 시간이 가진 가치는 일반인들의 것과는 감히 비교 자체를 못 할 정도로 값 비싸기에 충분히 이해했다.
“해제.”
팟!
빛이 터졌다.
통에 걸린 마법이 해제됐다.
- 형님 누가 볼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까칠하십니까?
그래, 다른 자는 절대 볼 수 없다.
다만 귀신이 문제.
마법으로 귀신도 보지 못하도록 제약을 걸었다.
- 제가 남도 아니고 그것 좀 본다고 닳습니까?
응. 닳아.
고개를 끄덕였다.
- 말도 안 됩니다. 그깟 종이에 적혀 있는 숫자 나부랭이가 무슨 닳습니까?
맛이 달라진다.
기가 빠진다고나 할까?
내가 맨 처음 열어보고 싶은 보물 상자다.
그런데 귀신이 엿보고 입방아를 찌면 개봉하는 맛이 사라진다.
- 우리 사이가 남도 아닌데…….
귀신이 서운한 빛을 띠며 말했다.
안 속는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 사이가 어쨌다고?
-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죽음을 같이 하기로 한 심인행 결의자 아닙니까!
미친 거 아냐?
죽은 놈이 뭘 또 죽어!
조용히 입 닥치고 있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으면.
- 넵!!!
콩고물이라는 말에 화들짝 입을 다물었다.
드르륵.
경매함을 찢어 개봉했다.
그 순간 드러나는 경매가가 적혀 있는 100여 장의 쪽지.
“어디 보자……. 전 상무위원 소방. 가격 15억 위안.”
- 와아! 똥삼 제조 환단이 15억 위안이라니…….
가격을 소리 내어 읽자마자 귀신이 호들갑을 떨었다.
최소 경매 시작가가 한 세트에 10억 위안이다.
무난한 출발이다.
전직 상무위원이 이 정도 가격을 써낼 정도라면 나름 큰 맘 먹고 쓴 거다.
“그다음에는 11억 위안……. 이 아저씨 돈이 없나? 쩨쩨하게 11억 위안이 뭐야.”
- 11억 위안도 큰 겁니다.
원가를 알고 있는 귀신이 다시 한 번 11억 위안의 가치를 상기시켰다.
“이건 또 뭐야? 찾아오면 최상의 서비스로 모시겠다고? 자기가 클럽 웨이터야? 참나…….”
가격 밑에 자잘하게 적혀 있는 각종 첨부 내용.
부정청탁을 받아주겠다는 의미가 수두룩했다.
꽌시를 맺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의 욕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17억 위안!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 안타깝네요. 11억 위안도 큰돈인데…….
뭐가 안타까워?
귀신에게 돌직구로 물었다.
- 10세트 한정 상품이라면서요. 낮은 가격 응찰자는 당연히……. 헛!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빛내는 귀신.
눈을 커다랗게 뜨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씨이익.
말보다 빠른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 와아아……. 진짜 형님 무서운 분이십니다. 똥삼 환단을 100명에게 다 팔아먹을 작정이었습니까? 그래서 비밀 경매 방식으로 진행한 겁니까? 최소 10억 위안 이상을 책정해서 말입니까?
다다다 속사포처럼 묻는 귀신.
고개를 끄덕여줬다.
- 장강의 똥물로 생수를 만들어 팔아먹을 위인이십니다…….
어이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로 존경심 가득한 눈빛을 보이는 귀신의 말.
평양강 물을 팔아 드신 봉이 김선달 선생님의 수법도 별 것 아니다.
기회와 운때가 맞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20억 위안! 그래 이거지!!!”
꽝 없는 복권은 계속 오픈이 됐다.
귀신은 질렸는지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 순간.
띵동.
경쾌한 벨소리가 울렸다.
회귀의 전설 3부
1150장. 천하를 논하다.
“장립을 찾아갔다고?”
“그렇습니다. 각하.”
상해가 아닌 북경에 있는 집에 도착한 방태민.
잠들지 못했다.
조금도 눈 붙이지 못한 채 아침 해가 뜨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너무 맑았다.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하느라 마음이 바빴다.
그러는 중에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
장립을 가만히 놓아둘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장립의 행동 하나하나로 인해 북경 정계 전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단 이틀 만에 벌어진 상상조차 못 한 사건.
중국 정치인들 모두가 장립이란 자에게 빠져들었다.
자신과 인연이 얕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믿을 수만은 없는 장립.
계륵 중에서도 슈퍼 계륵이었다.
남 주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대놓고 내가 가질 수도 없는 존재.
잠깐 시간을 벌며 고심하는 사이 또 다른 일이 터졌다.
죽은 듯 잠잠했던 낚시꾼이 장립과 지속적인 인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배신자는 확실히 정리했어야 하는데…….’
웨신타오를 생각하면 방태민은 지금도 화가 났다.
충실한 개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뒤로 온갖 음모를 꾸미고 자신을 물어뜯으려 혈안이 되었던 웨신타오.
그자 때문에 슈건핑에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멍청한 자가 복수를 명분으로 모든 권력을 슈건핑에게 한꺼번에 넘겨 버렸다.
차라리 자신처럼 권력을 쥔 상황제가 되었다면 욕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웨신타오는 그릇이 부족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짧다 했는데 그 짧은 세월을 참지 못했다.
“다른 자들은?”
“전현직 상무위원급 인사들 몇몇이 회동했지만 대부분 귀가했습니다.”
이런 날을 빌려 서로가 원하는 이익을 나누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베이다이허 회의도 이권을 나누는 물물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이 서면 장꾼들은 각자가 가진 물건들을 알맞은 물건들과 바꿔 나눠 가졌다.
‘문제는…… 웨신타오인데……. 도대체 무엇으로 장립과 거래하려는 거지?’
방태민도 내내 고심하던 문제였다.
기존에 정치인들 사이에서 통하던 뇌물이 장립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돈이나 여자, 권력은 장립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파악했다.
문제는 그 이상 진척이 없다는 데 있었다.
“계속 알아보고 보고해.”
“알겠습니다.”
“나가봐.”
“넵!”
비서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상해에 있는 거주지보다 화려하고 크지만 인간적으로는 외로운 북경의 저택.
제황으로 군림할 때는 이곳이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하루에 수십 명이 넘는 수의 사람들이 문지방을 넘었다.
하지만 슈건핑에게 일격을 당한 뒤로는 폐가 수준으로 몰락해 버렸다.
이곳에 오는 일 자체가 화를 불러들이는 꼴이 됐다.
방태민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어 상해로 거처를 옮겼다.
그 이후로는 1년에 겨우 몇 차례 정도만 사용하고 있는 북경 집.
“뭘까……. 웨신타오 넌 무엇으로 그놈을 낚을 생각인가.”
이제는 온전히 떠오른 태양을 보며 방태민은 생각에 잠겼다.
배신자에 대해 화가 끊이지 않았지만 기본 능력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박사과정까지 밟은 초엘리트인 웨신타오.
주석직까지 올랐다는 건 어떤 면에서 그 능력은 이미 탁월하다는 증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스윽.
방태민은 품에 넣어 두었던 환단을 꺼냈다.
투명한 케이스에 담겨 있는 천도등선단.
“이 녀석을 어찌할꼬.”
2년 전과 눈에 띄게 달라진 장립이었다.
과거 어느 시점까지만 해도 처리하기 크게 어렵지 않았을 대상이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힘들었다.
자신을 비롯해 중국 핵심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게 된 장립.
황제 재생단과 천도등선단만으로도 입지를 굳히는 일이 가능했다.
거기에 더해 장립이 겸비한 능력 또한 엄청났다.
욕심 같아서는 죽을 때까지 옆에 두고 싶었다.
장립과 함께라면 다시 황좌를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장립의 속을 알 수 없다는 것.
“하아아…….”
방태민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슈건핑보다 더 상대하기 곤란한 존재가 되어 버린 장립.
놈이 펼쳐놓은 그물에 단단히 걸렸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더 이상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장립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신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환단은 물 건너갈 것이다.
“지켜보면 알겠지…….”
쉬이 나지 않는 결론.
방태민은 창밖을 내다보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때가 되면 언젠가 선명하게 드러날 장립의 야심.
지금은 그저 지켜보며 감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
- 흐흐흐. 드디어 왔군요.
귀신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뭔가 아는 듯한 표정이다.
누구인 줄은 알고?
- 당연하죠. 제가 바봅니까?
누군데?
귀신이 방문자의 정체를 알아챘다는 게 놀라웠다.
- 에이. 당연히 그분이시죠.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아마추어처럼. 흐흐흐흐흐.
흘리는 웃음이 진득했다.
하지만 귀신이 장담하는 모습에서 헛다리를 제대로 짚었다는 걸 확신했다.
가서 확인해 봐.
- 뭘 더 확인합니까. 제가 눈 딱 감고 있을 테니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새벽이 가장 양기가 충천한 때 아닙니까. 움하하하하!
좋단다.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띵동.
그사이 한 번 더 울리는 벨.
- 뭐 하십니까? 어서 열어주십시오. 집에 찾아온 여인을 밖에 세워두는 건 예의가 아니라 배웠습니다.
혼자 흥분해 바짝 달은 귀신.
어이없어 고개를 저으며 출입문 버튼을 눌렀다.
스르릇.
두툼한 자동문이 열렸다.
저벅저벅.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서는 존재.
- 류미 양의 방문을 격하게……. 으헛! 뭐야! 이 아저씨가 왜 온 거야!!!
귀신이 옆에 서서 인사를 하다말고 크게 놀랐다.
나도 의외라 여겨지는 인물의 방문.
헤어질 때 낚시터 방문 날짜까지 세세히 조율하며 대화하던 인물이 찾아왔다.
- 웨 주석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분이 왜…….
중국 정치계에서 불운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황제 웨신타오.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띠며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고개를 숙여 자연스럽게 응대했다.
“늦은 밤……. 아니 이른 아침에 미안하네.”
웨신타오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밤새워 술을 마셨음에도 취기는 거의 없어 보였다.
그 대신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이한 다른 열망이 감지됐다.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고맙네.”
- 이 방문은 대체 목적이 뭐죠? 다들 형님에게 시선이 꽂혔을 텐데 괜찮은 겁니까?
오! 귀신이 일취월장 진화하는 게 느껴진다.
상황 판단이 제법이다.
왜 찾아왔을까 한번 맞춰봐.
- ……뻔하죠. 형님 구슬려서 환단을 더 받아내려 찾아왔겠죠.
역시 아직 귀신은 하수다.
생각의 폭이 넓지 않다.
전직 황제는 그깟 환단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인사가 아니다.
“앉으십시오.”
“일하고 있었군.”
“마무리 중이었습니다.”
넓은 공간 중앙에 자리한 탁자에 쌓여 있는 경매 쪽지를 웨신타오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것만 가지고도 상대방을 칠 수 있는 무기가 됐다.
경매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밝혀지면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서민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가격으로 환단이 거래됐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권력자들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이다.
공범이 되면 누구도 발설할 수 없다는 점을 노렸다.
“부럽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나이 시절에 나를 비롯해 방 주석이나 슈 주석 모두…… 립 자네처럼 고위 당원들을 모을 수 없네. 물과 기름들을 환단으로 잘 섞어 버무렸어. 대단한 정치력이야.”
이건 분명 칭찬이다.
“과찬이십니다.”
겸손은 언제 보여도 괜찮은 감정 교류 아이템이다.
“차 한 잔 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그러지.”
웨신타오가 자리에 앉았다.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매 쪽지에서는 관심을 거뒀다.
저런 사소한 공격 재료쯤은 무시해도 될 짬밥이다.
한때 중국을 경영했던 황제답게 포스가 남달랐다.
- 차까지 얻어 마셔요? 그러다 류미 양이 오면 어쩝니까!
안 온다. 귀신아.
차를 타기 위해 바로 이동했다.
호텔 펜트하우스답게 각종 와인과 커피, 차들이 비치되어 있다.
또로록.
딸깍.
생수를 붓고 전자동 포트 버튼을 눌렀다.
- 왜요? 경매장에서 마음이 뜨겁다 고백했잖아요. 그리고 떠날 때 아쉬움 가득했던 그 촉촉한 눈망울 못 보셨어요?
봤다.
하지만 류미도 바보가 아니다.
어차피 오늘 저녁은 류미네 집에서 먹을 것이다.
본인 역시 괜히 시선이 집중된 호텔까지 찾아와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을 터였다.
단세포적인 사고에 머무는 귀신은 기다림의 미학을 몰랐다.
오픈!
아공간을 열었다.
웨신타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낚시하던 습관이 언뜻 엿보였다.
인내와 기다림에 익숙해진 모습.
- 킁킁. 이거 산삼차 아닙니까!!!
가장 좋은 산삼으로 만들어진 산삼차.
따뜻한 잔에 물을 받아 산삼차를 내었다.
- 정말 서운합니다.
뭐가?
- 저도 형님과 이런 귀한 차를 마시면서 인생과 사랑과 우주의 이치를 논하고 싶었단 말입니다.
귀신아……. 너를 어떻게 하니?
살아생전 좋은 기회 다 놓치고 귀신이 되어서 뒤늦게 삶을 연구하고자 하는 귀신.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고개를 저으며 찻잔을 들고 웨신타오에게 갔다.
“드십시오.”
“흐음……. 향이 기가 막히군.”
“산삼차입니다.”
“신경 써주어 고맙네.”
만남 이후로 벌써 몇 번째 고맙다 말하는 웨신타오.
“식기 전에 드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웨신타오가 천천히 산삼차를 마셨다.
후루룻.
가볍게 입김을 불어가며 차를 다 마신 웨신타오.
딸깍.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단숨에 치고 들어오는 웨신타오.
“경청하겠습니다.”
자세를 바로잡고 그를 봤다.
“……립 자네와,”
웨신타오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하를 논하고 싶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