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장. 돌아온 약장수!(7).
‘당했군! 당했어! 허어…….’
방태민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끌끌 혀를 찼다.
장립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철저 할 줄은 몰랐다.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연속 벌어졌다.
홍콩 방문으로 시작해 왕정에 대한 우회 공격과 전혀 뜬금없는 경매, 그리고 그 운영 방식까지.
“도대체 얼마를…….”
“…….”
방태민을 보좌하고 있는 권력자들이 눈치를 슬슬 봤다.
장립이 제시한 조건은 대단히 파격적이다.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이런 경매는 없었다.
감히 자신들 앞에서 그 누가 이런 배짱 좋은 경매를 진행한단 말인가.
권력 라인에 들어선 이후 줄곧 선물을 받아만 왔다.
말 그대로 뇌물이지만, 비공식적으로 이 땅에 자리매김한 상납 제도.
받기만 해봤지 이렇게 을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천하의 슈건핑도 방태민 앞에서는 한 수 접었을 정도다.
그게 중국에서는 정치 연장자에게 보이는 보편적 예의였다.
그러나 천하의 장립은 달랐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유럽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이유 때문인지 티가 났다.
예의를 다해도 부족할 판에 같은 공간에 몰아넣고 경쟁을 부추겼다.
다행히 비밀 경매로 전환하며 최소한의 예의와 질서는 유지했다.
그것도 아니었다면 경을 쳤을 상황이다.
문제는.
‘돈이 목적은 아닌 것 같고 저 녀석이 원하는 게 뭘꼬?’
장립의 보유 재산 규모는 상당했다.
미국에 있는 장립의 자산 목록을 살핀다고 살폈지만 그 끝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지금 태도로 보아 돈을 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정치적 야망을 좇기 위한 거라면 한국 여자와 애를 낳고 살림을 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립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방태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 녀석도 골치 아프겠군.’
슈건핑을 힐끔 곁눈질로 쳐다보는 방태민.
헛헛한 표정으로 슈건핑 역시 장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뒤에서 키워낸 중국의 황제.
결국 배신자의 길을 걷긴 했지만 이해는 갔다.
자신 역시 슈건핑처럼 믿어주었던 자의 뒤통수를 치고 지금의 권좌를 차지했다.
장강의 뒷물이 앞의 물을 밀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다만 아직은 지금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이는 속일 수 없지만 방태민의 심장만큼은 여전히 청춘 시절처럼 팔팔했다.
벌써 뒤로 물러나 죽을 날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수 없었다.
황제는 죽음 뒤에나 권좌를 내려놓는 법이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후손들과 지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은 생의 열정을 다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다시 한 번 차지하고 싶은 권좌.
슈건핑과 태자당, 이제는 대놓고 밀어주는 조직 천지회와도 일전을 준비했다.
과거보다 힘에서 밀렸지만 긴 세월 동안 중국 곳곳에 뿌려 놓은 인맥이 탄탄했다.
호시탐탐 슈건핑이 쳐내고 있지만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큰 나무의 뿌리는 생각보다 땅속 깊이 파고들게 마련이다.
다만.
‘저 녀석만 끌어들이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장립이 탐났다.
경매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권을 챙기고 있는 장립은 귀계의 달인이 분명했다.
“각하……. 건방진 저놈을 당장 끌어내려서…….”
왕정이 옆에서 장립에 대해 발언하며 이를 갈았다.
‘이놈도 끝났군.’
방태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쓰임이 다한 사냥개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왕정.
상해방을 대표하는 상무위원으로서 이미 실격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의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상해방을 사지로 끌고 가려 했다.
“나가게.”
“네???”
“당장 내 앞에서 꺼지라고!”
방태민이 조용하고 낮은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가, 각하…….”
왕정의 얼굴이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상무위원에 오른 뒤 이렇게 강한 방태민의 표정과 언사는 처음이었다.
“내 명령을 무시할 텐가?”
방태민이 인정 없는 시선으로 왕정을 바라봤다.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냉막한 눈빛.
‘젠장!’
왕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경매에 다들 목을 맸다.
급기야 자신은 방태민에 의해 내침까지 당했다.
파바바밧.
주변에 자리한 방태민의 수족들이 돌아가며 왕정에게 눈치를 줬다.
‘장립! 이 개자식!!!’
어쩔 수 없이 이를 갈며 왕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익.
눈을 부라리며 자신을 쏘아보는 왕정을 향해 시종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장립.
방태민의 입에서 터진 말을 듣기라도 한 비웃음을 띤 표정이었다.
까닥.
게다가 고개까지 살짝 숙여 배웅하듯 미소 짓는 장립.
으드득.
왕정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이를 갈며 조용히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
- 멍청한 왕정이 단단히 화가 났군요.
귀신이 경매장을 빠져나가는 왕정을 비웃었다.
방태민이 내치는 소리를 나도 들었다.
끝까지 나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물고 늘어지려 했던 어리석은 사냥개.
오늘 이후로 공식 석상에서 왕정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권력자들이 자주 사라져갔다.
중심에서 밀려나면 자연스럽게 언론에서도 모습이 지워졌다.
- 분위기 장난 아닙니다. 오늘 대박 터지겠습니다. 흐흐흐.
귀신이 나름 기대하는 바가 있는 듯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100여 명이 넘는 고위 공산당원들이 부지런히 숫자 적기에 열을 올렸다.
서로 조심스럽게 논의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혼자는 부담이 되는 만큼 합작을 하려는 행동들이었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다.
- 형님. 남은 환단 하나는 저 주시는 겁니다. 형님만 믿습니다!
도대체 육신도 없는 귀신이 환단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데?
진짜 궁금했다.
손에 쥔다 해도 이승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환단.
환단의 기를 뽑아가 봤자 막상 쓸 일이 없다.
냉정하게 말해 귀신은 지구에서 모쏠 혼령에 불과했다.
- 모쏠 아닙니다! 그리고 형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기 많습니다! 노바 형님과 이계에서 파티할 때 제 품에 매달리던 그분들은…….
널 호구로 봤겠지.
- 형님! 제 순수한 사랑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시면…….
어쩔 건데?
부정하고 싶어?
마음에 안 들면 저승 가든가.
지금 당장이라도 급행 담당 저승사자 불러줄 수 있다.
- 하하하. 형님의 따끔한 가르침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귀신이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호탕하게 터트렸다.
내가 봐도 호구인데 여신들에게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노바 형님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르침은 깨닫지도 못한 귀신.
안타까웠다.
포인트도 없는 놈이 눈치까지 없었다.
좀 더 옆에 두고 가르쳐 세상에 내보내야 할 것 같다.
“립…….”
그때 옆에서 류미가 나를 불렀다.
스윽.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
빨갛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그녀.
열감기인가?
“괜찮아?”
속삭이듯 류미에게 다가가 컨디션 상태를 물었다.
스윽.
류미가 귀에 입술을 가져왔다.
그리고.
“나…… 흥분돼.”
“!!!!”
미친!!!
신성한 경매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류미의 위험한 발언.
- 헙!!!
귀신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다행히 양소려는 듣지 못한 눈치다.
외조부와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얼굴이 상기된 채 흥분된다고 말하는 류미.
갑작스러운 류미의 발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명문가에서 자란 여인이 이런 자리에서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는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저기 류미…….”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그런 말은 단둘이 오붓하게…….
“이런 식의 경매……. 심장 떨려.”
류미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자신의 발밑에서 고개를 처박고는 열심히 경매가를 적어내고 있는 고위 공산당을 바라보는 류미.
몽롱했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다들 내 발아래 있어. 정말 짜릿해!”
“…….”
아! 류미가 말한 흥분의 종류를 잘못 짚었다.
중국 권력자들을 희롱하고 있는 이 자리가 그녀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큼큼.”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 크크. 우리 형님 당황하셨어요?
귀신이 나를 놀리며 음흉하게 웃는다.
저걸 콱!
감정을 추스르고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립.”
진정 모드로 돌아서자 류미가 다시 한 번 날 불렀다.
“???”
열망에 사로잡힌 류미의 새카만 눈동자.
“넌 내 거야.”
“!!!”
- 푸하하하하하. 류미 양 진짜 화끈합니다. 제 스타일이 맞다니까요.
류미의 정제되지 못한 거친 고백.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내적 고민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제 소용없어. 오늘부터 넌 내 거야. 그리고 나도…… 네 거야.”
류미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굳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경매장에서 대놓고 화끈하게 고백해 오는 류미의 태도는 상상 이상이다.
- 나도 네 거야! 캬아! 이 말 명언입니다. 다음에 저도 이 대사 써 봐야겠습니다.
귀신이 혼자 즐거워했다.
“휴우.”
짧게 터져 나오는 한숨.
좌우지간 이놈의 인기는 탈을 바꿔도 식지 않았다.
스윽.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좌중을 살폈다.
어느새 마감 시간이 다 됐다.
대부분 종이에 내용을 기재하고 접어놓았다.
행여 누가 볼세라 철저하게 가렸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
오늘 이후 중국 정치권에는 불신의 안개가 쫙 퍼질 것이다.
“대인들 시간이 다 됐습니다.”
경매 종료를 알렸다.
“소려 양이 들고 있는 함에 넣어주십시오.”
양소려가 걸음을 옮겼다.
틱틱.
종이들이 통에 담겼다.
“감사합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양소려.
보조자 하나 야무지게 잘 뽑았다.
양소려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우아한 걸음으로 경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모두들 깊은 침묵에 잠겼다.
마지막 주자인 슈건핑도 몇 자 적은 종이를 함에 넣었다.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경매 입찰 내용.
양소려에게서 통을 넘겨받았다.
그 순간.
짝짝짝짝짝짝짝.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한 슈건핑.
짝짝짝짝짝짝짝짝짝!
황제의 선제 박수에 경매장에 있는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 형님……. 이 상황은 뭐죠???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