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9장. 이상한 나라. (1,106/1,284)

1129장. 이상한 나라.

“북경으로 떠났다고? 방금?”

“그렇습니다.”

“아…….”

양소려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당했다!’

홍린의 집에서 나온 직후 장립이 류미와 만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당황한 사이 선수를 빼앗겼다.

분명 류미와 우연히 조우한 것으로 보인 장립은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이 아닌 류미를 택했다.

우둑.

양소려가 살짝 핏빛이 비칠 만큼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상해방을 떠나 여자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어찌 되었든 자신보다 신분이 한 수 높은 류미.

이번에도 패배자 신세가 됐다.

“물러가도록.”

“넵!”

정보를 가져온 자를 물렸다.

이제부터는 한층 더 중요한 대화를 나눠야 할 때였다.

“늙은 너구리가 수를 썼다.”

양광이 상황을 지켜보며 허탈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이는 원자바오가 직접 나섰음을 의미했다.

과연 그가 진짜 손을 썼다면 장립과 관련된 일은 양광의 손을 떠났음을 의미했다.

“파장이 더 커지겠군요.”

양소려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예견했다.

왕정 사건은 짧고 굵게 치고 빠질 성질의 국지전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과거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윗선이 만나 적당히 조율하고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명확하게 색을 드러내며 누가 나서서 우위를 점하지 않았다.

괜히 멋모르고 나서서 총질했다가는 정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장립 한 사람의 등장에 공청단까지 용병으로 등장했다.

그만큼 극도로 예민해진 시기였다.

이제 미래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공청단까지 한발 걸치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양광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상해방의 수장인 장택민의 아바타 왕정을 공격했을 정도면 양광을 없애는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사방에서 그를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비밀 공안이 그를 연행해 가면 저항도 못 하고 끌려갈 수밖에 없다.

홍콩의 자치권 보장은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유명 인사들을 제외하고 모두 다 제거 대상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준비할까요?”

양소려가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이런 날을 대비해 어느 정도 계획이 세워져 있다.

관리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짧은 시간 안에 처분하고 곧장 영국으로 이주 가능할 정도다.

홍콩에 거주했기에 영국 영주권을 갖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는 홍콩을 정리해야만 하는 운명인 걸 알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보자.”

양광은 좀 더 신중했다.

아직 윗선에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가 없다.

우려와 달리 왕정 상무위원도 잡혀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전투는 시작됐지만 본진 밖 외곽에서만 사건이 진행됐다.

“알겠어요.”

양소려가 양광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싱숭생숭했다.

그때.

띠링.

양소려의 스마트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

문자를 보낸 상대방 이름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는 양소려.

서둘러 문자 내용을 살폈다.

“아…….”

크게 놀라며 신음을 토했다.

“무슨 일이더냐?”

양광이 딸의 낯빛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북경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경? 왜?”

“그가 초대했습니다.”

“그라면……. 설마.”

“네. 장립이 북경으로 절 초대했어요.”

방금 전과 달리 눈빛을 반짝이는 양소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장립!’

북경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의 짧은 문자.

그 문자 한마디에 양소려의 심장이 다시 살아나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

“누구한테 보내는 거야?”

“알고 싶어?”

“응.”

“왜?”

“우리 친구 사이라며. 그것도 연인 사이보다 더 가까운.”

류미가 바짝 다가왔다.

자가용 비행기라 확보된 공간이 크지 않았다.

팔 한쪽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촉감.

- 충분히 오해 살만한 제안이었습니다. 흐흐흐.

빠질 리 없는 귀신이 음흉하게 웃는다.

오해는 개뿔!

‘인생 친구’라는 말을 연인 사이보다 더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해 버린 류미.

귀신과 생각하는 수준이 거의 비슷했다.

- 곧 착륙할 예정입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방송으로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북경으로 향하는 자가용 비행기.

중국 부자들의 클래스가 이 정도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미국 갑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류미는 아빠 회사 전용기를 이용했다.

새벽에 일어나 회사 전용기를 타고 홍콩에서 딤섬을 즐기는 류미.

한국에서 부유층 자제가 이렇게 생활한다는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여론은 불바다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국, 역시 체제가 달랐다.

홍콩 공항에서도 출국이 프리 패스였다.

공항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VIP 통로를 이용했다.

한순간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륙 준비 중인 비행기를 정지시키고 곧바로 류미가 탄 비행기가 출발했다.

현재 공청단 파워가 이 정도다.

상해방과 태자당 측 유력 가문들의 위세는 더 대단할 게 뻔했다.

“하늘이 사라지네…….”

옆에 앉아 오는 동안 조잘거리던 류미가 창밖을 보며 말수를 줄였다.

높은 창공에서 속도를 낮추며 지상으로 내려가는 비행기.

맑았던 하늘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계절 내내 잿빛 하늘이 뒤덮은 북경.

홍콩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 흐흐. 북경이군요.

공기질과 하등 상관없는 귀신은 환경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북경이 싫으면 다른 곳에 살면 되잖아.”

“그러고 싶지만 목숨이 위험해.”

“응?”

“립이 몰라서 그러는데 다른 곳에 살면 그만큼의 위험에 노출돼. 그나마 북경에서 살아야 정보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 그래서 고위 공산당원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북경에 몰려 살아. 끼리끼리.”

“문파 같은 개념인가?”

“푸하하하. 맞아 문파! 난 공청단파.”

류미가 재미있는 농담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그러나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슬퍼 보이는지.

돈은 많지만 자유가 없는 이상한 나라.

꽌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만큼의 강도로 서로를 믿지 못했다.

권력을 쥐고 있어도 매순간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쿵!

비행기가 착륙했다.

북경 공항의 활주로.

끼이이이이이익.

브레이크를 밟으며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렸다.

오후 시간대의 북경.

홍콩 도착 하루 만에 기다렸다는 듯 연달아 사건이 벌어졌다.

계획과 무계획 속에서 흘러가는 인연과 업의 소용돌이.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스르르릇.

비행기가 천천히 계류장으로 접근했다.

그때.

끼릭.

비행기가 갑자기 멈췄다.

몸이 살짝 쏠릴 정도로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다.

“뭐야?”

류미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 죄송합니다! 갑자기 관제탑에서 멈추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관제탑에서? 이것들이 미쳤나!”

류미의 얼굴이 흡사 화난 호랑이처럼 변했다.

나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와 태도로 살랑거리던 그녀였는데 역시 이럴 땐 권력자 후손다웠다.

- 무슨 일입니까?

귀신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스윽.

가볍게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가는 귀신.

- 어! 형님! 밖에 무슨 일이죠?

귀신이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무슨 일인데?

- 비상등을 켠 자동차들 몇 대가 다가오는데요.

비상등? 자동차?

공항 활주로에 진입할 수 있는 차량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도 공청단 원자바오 외손녀가 타고 있는 자가용 비행기를 멈춰 세울 만한 존재들도 마찬가지.

“흥!”

창밖으로 다가오는 차들을 쳐다보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류미.

무슨 생각인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단축 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띠이이잇.

짧게 신호가 갔다.

“아빠. 지금 이게 뭐죠? 공항 무관들이 비행기를 멈춰 세웠어요.”

- 알아보고 있다. 잠시만 기다려.

“빨리 처리해 줘요. 점심 먹을 시간이란 말이에요.”

밖의 상황을 살피며 류미가 신호를 보냈다.

지금 류미는 공청단의 대리인 자격으로 그들 모두를 대표했다.

자존심이 상할 만한 상황이다.

- 알았다.

류미의 아빠인 류평의 다소 무거운 목소리가 밖으로 들렸다.

띠릭.

통화를 마친 류미.

“립…… 미안해.”

“뭐가?”

“귀찮게 해서.”

“괜찮아. 우리 친구잖아.”

“흐으. 친구가 이런 점은 좋네.”

류미가 이런 상황에서도 친구라는 말에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스르르르.

비행기가 다시 움직였다.

- 고, 공항 무관의 조치에 따라 다른 계류장으로 이동 중입니다.

기장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우리 할아버지 많이 약해지셨네.”

상황을 짐작하는 듯한 류미가 입맛을 다셨다.

- 뭔가 스펙터클한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은 뭘까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귀신의 반응은 신났다.

조용히 침묵을 고수하며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잠시 후.

끼이이익.

비행기가 다시 멈춰 섰다.

일반 비행기들이 사용하는 계류장은 아닌 듯했다.

공항 한쪽에 위치한 특별 구역 정도로 생각되는 공간.

- 내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기장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은 채 들렸다.

“무, 문을 열겠습니다.”

눈이 동그래진 놀란 여자 승무원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열어봐.”

“넵!”

류미가 앞장섰다.

- 문을 열거라! 장립 대인 행차시다!

귀신이 바짝 뒤를 따르며 외쳤다.

언제나 천하태평인 귀신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류미의 뒤를 따랐다.

스르르르릇.

두께가 꽤 있는 비행기 문이 열렸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광경.

처처처처처척!

일단의 군복을 착용한 무장 병력이 총을 들고 양쪽으로 도열한 채 각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하하하. 립! 어서 오게!!!”

회귀의 전설 3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