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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장.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1,096/1,284)

1119장.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흐흐흐. 오늘따라 출근길이 편안하군.”

겨울도 아닌데 미세먼지가 뿌옇게 하늘을 가려 북경 중심 도로는 평소보다 한가롭다.

합자회사 본사로 출근하고 있는 왕수룡은 흡족스러운 듯 연신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날이 궂어도 기분이 좋을 만큼 일이 술술 풀렸다.

국가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 공무원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아리아 초코파이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사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압력이 들어갔다.

동룡에서 선임한 총경리가 겁을 먹고 벌벌 떨었다.

동룡 선임 관리들의 출국도 금지됐다.

세무서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왕수룡 일파가 그간 빼돌린 자금 횡령까지 교묘하게 동룡 책임으로 돌렸다.

짜고 치는 마작판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부우우우웅.

중국에서 성공한 이들이 타고 다니는 홍치자동차를 몰고 회사에 다다른 왕수룡.

“주차장이 어수선합니다.”

운전기사 겸 경호원이 다른 날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회사 앞 상황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검은 슈트 차림의 남자들 몇몇이 서성이고 있었다.

“벌써 왔나?”

맛보기로 공무원 몇 명이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직은 이른 시각.

왕수룡은 보고 들은 바가 없어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끼이익.

회사 정문에 차가 멈췄다.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평소와 달리 경비원이 한달음에 달려와 차문을 열지 않았다.

딸깍.

불만 어린 목소리에 경호원이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왕수룡이 앉아 있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

“싹 잘라 버려야겠어. 내가 누군 줄 알고!”

평소에도 동룡제과에서 파견한 임원들을 중심으로 더 챙겨온 경비원들이 늘 못마땅했던 왕수룡.

회사를 접수하고 나면 그간 꼴 보기 싫었던 임직원들을 모조리 갈아치워 버리리라 결심했다.

스윽.

차 밖으로 나온 왕수룡.

그때.

저벅저벅.

어슬렁거리던 모습이 수상해 보이던 남자들이 왕수룡 쪽으로 다가왔다.

“당신들 뭐야!”

경호원이 인상을 쓴 채 앞을 막아서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왕수룡 뒤에는 상무위원이 버티고 있다.

웬만한 공안들도 명함을 못 내밀었다.

그 힘은 일개 경호원에게도 미쳤다.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을 향해 험상궂게 인상을 쓰는 경호원.

퍼억!

“커어어어어억.”

대답 대신 날아온 주먹 한 방.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복부를 움켜잡았다.

나름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자부했지만 낯선 남자의 한 방에 꼴이 우습게 됐다.

“뭐……야! 너희들 누구야!”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왕수룡이 놀라 소리쳤다.

“…….”

아무 말 없이 왕수룡을 똑바로 쳐다보는 낯선 남자들.

“야! 나와서 이 새끼들 잡아!!!”

정문 안쪽으로 몇몇 경비원들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출근하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출근 시간대에 벌어진 회사 내에서의 폭력 행위에 목소리를 높여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싸늘한 시선만 돌아올 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런……. 썅!”

한바탕 욕을 퍼붓는 왕수룡.

“이것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왕수룡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남자들을 향해 큰소리쳤다.

“왕수룡.”

한 발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로 왕수룡의 이름을 불렀다.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행동이다.

‘이 새끼들 뭐야?’

왕수룡은 그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삼합회 같은 보통 조직 폭력배가 아닌 듯했다.

중국 공안들 특유의 오만함과 권위의식이 잔뜩 담긴 눈빛과 목소리.

‘설마!!!’

왕수룡은 등을 타고 흐르는 섬뜩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직은 이런 대우를 받을 때가 아니었다.

멀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왕정 상무위원.

“널 뇌물 및 뇌물수수죄, 반부패혐의, 당과 국가의 기밀을 누설한 죄로 체포한다.”

사형을 언도하는 판사와 같은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

쿵!

왕수룡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비밀 공안의 등장.

“무슨 개소리야! 우리 형님이 누군 줄 알고! 너희들 기다려……. 내가 바로…….”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바쁘게 번호를 누르는 왕수룡.

쫘아아아아앗.

가소롭다는 듯 뺨에 강하게 작렬하는 손찌검.

콰득.

허망하게 바닥에 떨어지며 쓸리는 스마트폰.

“증거물 압수하고 연행해!”

“넵!”

철컥.

왕수룡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으아아아아! 도대체 이게 뭐야!!!’

느닷없는 날벼락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왕수룡.

두 눈은 의구심으로 가득 차고 가슴 속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날이 밝았다.

창가로 비쳐드는 북경의 불투명한 햇살.

고위 공산당원들도 피해갈 수 없는 미세먼지가 오늘도 창밖으로 뿌옇게 잔뜩 끼어있다.

“크으…….”

왕정은 흡사 짐승 같은 신음을 뱉어냈다.

밤을 꼴딱 새웠다.

독주를 꽤 마셨음에도 어찌 된 일인지 정신은 더 맑아졌다.

아침이 밝도록 홍린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주변 상황 보고는 계속 들어왔다.

결국 장립은 홍린의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감히…… 내 것을……. 으드득.”

이를 바득바득 가는 왕정.

지난밤 수없이 갈등에 갈등을 거듭했다.

당장 수족들을 동원해 홍린과 장립을 끌어내 요절내고 싶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측한 상상은 왕정을 밤새 괴롭혔고 그 고통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하지만 실행해 옮기지 못했다.

자존심보다 중요한 정보가 달려 있었다.

아끼던 첩을 희생해서라도 장립이 홍콩에 온 목적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성과 달리 감정적으로는 괴로움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장립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홍린은 죽을 때까지 왕정의 여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홍린……. 날 실망시키지 마라.”

하물며 간단한 문자 한 통도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홍린의 집에 설치한 도청 장치도 말썽을 일으키고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온갖 상상과 질투가 왕정을 집어삼켰고 스스로를 괴로움의 지옥으로 몰아넣은 꼴이 되고 말았다.

온몸으로 진득한 살기를 방출했다.

똑똑똑.

그때 급박한 노크 소리가 연신 들렸다.

“뭐야!”

“상무위원님! 큰일 났습니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정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측근 비서였다.

“들어와.”

끼릭.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서는 비서.

사색이 된 얼굴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뭐야?”

수상함을 감지한 왕정이 차갑게 물었다.

방금까지 들끓던 분노는 금세 가라앉고 곧바로 이성이 작동했다.

“……조카 왕수룡님이 비밀 공안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왕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수룡이 자신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비밀 공안이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지시를 받고 움직이던 국가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 공무원들도 전격 체포됐다고 합니다.”

“!!!”

놀라움에 왕정의 얼굴도 하얗게 사색이 됐다.

자신의 친척과 그와 관련된 공무원들이 공안들에 체포됐다면 이는 본격적으로 태자당이 움직였다는 의미였다.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명확했다.

두말할 것 없이 왕정을 치겠다는 의미.

“이것들이 미쳤나!!!”

상황을 알아챈 왕정이 버럭 큰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이 시점에 양측의 다툼이 본격화되면 내전으로 번질 수 있었다.

아직 장택민의 명을 받는 조직이 적지 않았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왕정.

그때.

띠리리리리리리리.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

자신이 통화하려던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띠릭.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는 왕정.

“주석님, 그리 안 해도…….”

-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무미건조한 상대의 목소리.

왕정의 눈앞이 순간 아득해졌다.

***

- 진짜……. 진짜……. 하아아아아아.

귀신이 바로 옆에서 들으라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이 밝았다.

홍린과 밤새 뜨겁게…….

- 술만 마셔요? 미쳤어요? 왜! 술만 마시냐고요!!!

그럼 맞고라도 치나?

아니면 마작?

- 왜 제 가슴에 불을 지피고 식혀 주지는 않습니까! 모든 게 완벽했는데……. 모든 게!

귀신은 아침이 밝았음에도 지난밤이 아쉬워서 죽는다.

후후훗.

그 모습에 웃음만 나온다.

홍린과 작정하고 술을 마셨다.

밤새 눈빛만 뜨겁게 교환했다.

아무리 내가 장립의 탈을 쓴 처지이지만 지조는 지켜야 하는 법.

임성철 회장에게 저주 마법을 건 장본인으로서 나만 행복하면 공평하지 않았다.

- 거기서 공평이 왜 나옵니까?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원래 세상은 가진 자가 더 많이 소유하는 법입니다! 

귀신이 씩씩거리며 내뱉는 논리가 그럴싸하다.

“저 남자 뭐야?”

“모델인가?”

“되게 멋있다.”

“중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주변에서 여러 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다양한 인종의 목소리가 파노라마로 들렸다.

개중에는 남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자들의 주목을 압도했다.

홍콩 거리를 걷고 있다.

아침이 밝을 무렵 홍린은 쓰러졌다.

그녀를 침대에 옮겨 눕혔다.

내가 문밖을 나설 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던 그녀.

홍콩의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부터 첫사랑, 왕정과의 만남, 그리고 오늘까지.

타인의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듣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이번 생은 단 한 번뿐이다.

예외로 나처럼 회귀하지 않는 이상, 모든 이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었다.

화려해 보였던 홍린의 삶도 짐작했던 것처럼 감춰진 어두운 구석이 많았다.

공감하는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채워 주었다.

나와 달리 마신 양만큼 알코올에 취해 홍린은 무장 해제됐다.

남녀 간의 상열지사도 거침없이 얘기하던 그녀.

울고 웃다 다시 울고 웃기를 반복하다 결국 쓰러졌다.

- 다음에도 이러시면 반칙입니다. 형님 세상 그렇게 마음대로……. 어! 저 여자 패션 죽이네요? 와아아아! 역시 홍콩입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떠들어대다 지나가는 미모의 여인을 보고 금세 말을 돌리는 귀신.

홍콩의 아침은 싱그러웠다.

미세먼지가 휩쓴 중국 본토와 달리 상쾌한 바다 공기가 들어찬 도시.

홍린의 집 밖으로 나오자 바로 대로가 나타났다.

아름답게 자신을 꾸민 미녀들이 거리를 메웠다.

직장인들은 모두 근무할 시간.

대부분이 관광객들로 쇼핑을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넘쳤다.

눈에 띄는 사람들은 거의 다 여성들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미인들이 있었다.

- 으흐흐흐……. 좋다.

물처럼 흘러가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귀신이 흐뭇하게 웃는다.

참으로 단순한 귀생.

살아있을 때 누려보지 못한 그의 인생이 안타까워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 장태산으로서는 결코 걸을 수 없는 이 거리를 흠뻑 즐겼다.

이 거리는 나에게도 많은 추억을 남겼다.

한두 번쯤 걸었던 거리를 지나쳤다.

- 혀, 형님! 

그때 귀신이 다급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왜?

- 지금 엄청난 미녀가…….

미녀?

고개를 돌려 귀신이 보고 있는 쪽을 바라봤다.

또각또각.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인.

짧은 반바지 아래로 새하얗고 탄력적인 기다란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늘씬한 허리와…….

“립?”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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