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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장. 옴므파탈. (1,095/1,284)

1118장. 옴므파탈.

- 형님! 지금 약 파세요? 그게 먹힐 것 같아요? 지금 홍린 뿔 난 거 안 보이세요? 여자의 자존심을 그렇게 팍팍 긁어놓고 약빨이 끝내줘요? 아무리 여자를 몰라도 그렇지…….

귀신이 한심하다는 듯 훈계하고 나섰다.

아직 멀고 먼 혼령 세계의 레벨 업.

“……화, 황제재생단?”

호기심에서 기대로 감정이 바뀌는 것 또한 한순간이다.

홍린이 놀라움을 표했다.

현재 중국에서도 고위급 정도 되어야 내게서 환단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환단의 약빨을 잘 알고 있는 홍린이다.

“환단으로 구명할 수 있습니까?”

“…….”

현실을 즉시 일깨워주었다.

환단이 로비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목숨까지 구명해 주지는 못한다.

평소 통하던 뇌물도 위급 시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게 마련.

식량이 부족한 때에는 황금도 돌 취급을 받는 법.

“그럼 뭐야?”

홍린이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부드러운 자세로 가볍게 채근해 왔다.

분위기는 다시 밝아졌다.

- 이……거 뭐죠?

분위기 전환을 확인하고 귀신이 어리둥절해했다.

여인의 변신과 변심은 언제고 무죄라는 걸 아직도 몰랐다.

홍린은 그 어떤 여인보다 계산이 빠른 책략가다.

그냥 꺼내놓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간단하게 알아챘다.

“북방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홍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시조 한 자락을 읊었다.

반짝!

똑똑한 홍린은 시조 한 구절을 듣자마자 내용을 알아들었다.

“세상에 둘도 없이 홀로 섰네.”

홍린과 눈을 맞추며 시조를 이어갔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세 번째 구절이 읊어지자 홍린의 눈동자가 다시 촉촉해졌다.

“두 번 돌아보면 나라도 기운다네.”

마지막 구절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갑자기 이 시조는…… 뭡니까?

귀신이 떨떠름한 음성으로 물었다.

산사람 특유의 예측 불가한 행보에 다음을 짐작 못 했다.

“…….”

홍린의 볼에 다시 은근한 홍조가 물들었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가장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그리고 누님은 자격이 됩니다.”

진짜 돈 한 푼 안 드는 아부를 적당히 곁들였다.

“방금 전에는 피부 탄력이 떨어진다고…….”

홍린이 수줍은 표정으로 조금 전의 나의 진담 같았던 농담을 끄집어냈다.

“신선도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과 함께 환단을 한 번 바라봤다.

“이 환단을 섭취하면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 젊어질 수 있습니다.”

“!!!”

즉각 홍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이 들어가는 여인에게 이만한 선물은 세상에 없었다.

내일 지구에 멸망이 찾아와도 오늘 풀 메이크업을 하고 네일아트를 받으려는 게 미녀들의 본성이다.

클레오파트라도 그런 삶을 선택했다.

도도하게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하고 싶은 절대 욕망.

홍린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돈으로 과학의 힘을 빌린다 해도 역시 잠깐 탄력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청출어람이라 홍린의 뒤를 이어 세상에 등장하는 미녀들은 매순간 넘치고 넘쳤다.

저물어 가는 여인이 그들 모두와 경쟁할 수는 없다.

왕정에게서 밀려난 것도 홍린이 나이 들어가며 점차 매력을 잃어서다.

“지, 진짜야?”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습니까?”

홍린이 날 똑바로 직시했다.

틀린 말 아니다.

나, 장태산은 입에 거짓을 담지 않는다.

다만 장립으로 살 때는…….

- 와아아아아! 형님은 진정 대도(大道)를 이루셨습니다. 말 몇 마디로 여인의 마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다니. 더 이상 형님의 기술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충성!

수시로 변하는 홍린의 감정에 귀신이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두 번 속지 않는다.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도 남을 귀신.

“아무리 그래도.”

홍린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녀에게 믿음을 줄 만한 라인 하나.

“이건 약소한 선물입니다.”

“???”

씨익.

입가에 번지는 뜻을 파악할 수 없을 묘한 미소 한 자락을 베어 물었다.

“누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됩니까?”

“!!!”

- 혀, 형님!!!

***

‘도대체 장립 너의 정체는!’

평소 똑똑하다 자부해 온 홍린은 극한의 혼란을 맛보고 있었다.

리장창과 장문량을 만난 직후 곧바로 자신을 찾은 장립이다.

목적이 있는 접근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어느 정도 장립의 행동을 예상해 장단을 맞췄지만 모든 게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장립의 의중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꼴이 됐다.

상무위원 왕정의 목숨을 두고 흥정해 왔다.

도저히 대안을 생각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홍린을 혼돈의 도가니로 이끄는 장립.

새파란 비수로 가슴을 찌른 후 곧 약을 내밀었다.

효과가 확실한 약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됐다.

왕정을 파멸로 이끌 심장은 홍린이 가지고 있다.

장택민의 자금 관리를 맡고 있던 왕정이지만 뒤로 돈을 빼돌렸다.

그것도 소소하게 떨어진 부스러기 수준이 아니라 엄청난 덩어리다.

발각된다면 왕정은 장택민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쓸려나갈 것이다.

돈뿐만 아니라 상해방의 핵심 자금줄에 대한 장부도 따로 빼서 관리했다.

그것을 홍린은 왕정 모르게 복사해 보관했다.

언젠가 자신의 목숨을 구명해 줄 귀중한 동아줄이라는 것을 홍린은 알았다.

장립이 그 사실을 귀신처럼 알고 자료를 내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절대 그냥 내줄 수 없는 일.

요구하는 대로 내놓으면 홍린이 가진 강력한 패를 전부 오픈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운명을 건 도박판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금 전 장립이 언급한 니체의 실존철학 구절도 홍린이 좋아하는 대목이었다.

삶의 한가운데로 죽음을 가져와 공생하는 것.

공산당 정치판에 뛰어든 것 자체가 그 도박판의 중심에 선다는 걸 의미했다.

으득.

홍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장립을 유혹해 인연의 끈을 만들어 두려 했을 뿐이다.

대부분 남자들은 자신의 여자를 보호하려는 습성이 강했다.

장립이 자신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그 뒤 본격적으로 요리할 자신이 있었다.

홍린이 파악한 바로는 장립은 함부로 여자를 버리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없습니까?”

홍린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장립이 몰아치듯 되물었다.

오늘 밤 이곳에서 잠을 청하겠다는 그의 말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 건 간단치 않았다.

모두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정은 그들 중 한 명.

오늘 이곳에서 장립이 밤을 지새우고 나간다면…….

홍린은 하룻밤 사이에 장립의 여자로 선포되는 것과 같았다.

꿀꺽.

홍린은 답답한 듯 와인을 비웠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장립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 이상의 괴물이다.

그가 내민 달콤하고 사악한 제안을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다.

장립의 환단 약효는 이미 내로라할 만한 인사들이 다 증명했다.

심장이 빠르고 거칠게 뛰었다.

5년만 젊어져도 홍린의 가치는 급상승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장립이 보호자로 나서준다면…….

공산당 정계에서 홍린은 단박에 엄청난 권력을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홍린이 마지막인 듯 물었다.

이대로 일이 진행되면 왕정이 가만있지 않을 게 확실했다.

그가 원하는 장립에 대한 정보를 일절 전달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배신.

시간이 많지 않다.

왕정과 장립.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칼을 빼 상대를 찌르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홍린은 선택의 여지없이 장립과 한배를 타야 한다.

“그 질문 제가 던져야 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속을 알 수 없는 장립이 대답 대신 질문을 다시 했다.

‘바보가 된 기분이야.’

완벽한 패배의 순간이었다.

태어나 사고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래 오늘 같은 패배는 처음이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차라리 개운했다.

감당할 수 없던 숙제를 끌어안고 밤을 새워 끝마친 초등학생 시절의 심정 같다.

“고마워.”

“뭐가 말입니까?”

“동생을 만난 뒤로 내가 평범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

홍린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굴종이 아니라 굴복.

더 이상의 간 보기는 무의미했다.

장립은 이미 몇 수 앞을 보고 행동하는 고수였다.

“인간들 모두 신들 앞에서는 평범한 존재들입니다. 다들 그걸 깨닫지 못해 발버둥 칠 뿐이죠.”

신의 입장을 알기라도 하는 듯 말하는 장립.

새벽이 가까워오는 시간에도 그는 여전히 빛났다.

‘다시 봐도……. 탐이 나.’

홍린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즐거워졌다.

비가 온 뒤에 맑게 개인 하늘처럼 선명하게 장립이 눈에 들어왔다.

덩달아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여자의 금기를 스스럼없이 건드는 악동이자 영혼의 치료사.

옴므파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남성을 뜻하는 옴므와 치명적이라는 의미의 파탈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프랑스어.

상대 여성이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부정적이고 숙명적 남자.

나쁜 남자라는 걸 알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었다.

팜므파탈의 길을 걸었던 홍린이 진정한 적수를 만난 격이었다.

파밧.

장립과 눈이 마주쳤다.

사르르르.

홍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든든한 장립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계산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겨 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여자로 태어나 장립 같은 존경할만한 남자와 추억 한 번 만들지 못하면 그것도 억울할 것 같았다.

또로록.

다시 잔을 채워주는 장립.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그 또한 홍린이 좋아하는 남자의 조건 중 하나.

“심장은 지금 줄까?”

핏빛을 닮은 붉은 와인을 받으며 홍린이 물었다.

어설프게 종이 서류 따위로 남기지 않았다.

IT를 폭넓게 사용할 줄 아는 홍린.

아무도 찾지 못할 인터넷의 바다 한구석에 감춰놓은 몇 기가가 넘는 정보.

세상에 밝혀지는 순간 왕정뿐만 장택민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린.”

장립이 부드럽게 홍린의 이름을 불렀다.

“응…….”

홍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귓가에 들려오는 장립의 목소리는 어떤 사랑의 세레나데보다 듣기 좋았다.

“밤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깁니다…….”

시처럼 흐르는 장립의 말들.

장립이 잔을 들었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뜨거운 동맹을 위해.”

장립의 무저갱 같은 깊은 눈빛에 순간 빨려 들어가는 홍린.

저항할 수 없었다.

그저 홍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위하여…….”

챙!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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