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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장. 반간계(反間計)(3). (1,094/1,284)

1117장. 반간계(反間計)(3).

“장립이라…….”

상해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

그 주변에서도 상해 공안과 개인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저택.

대지 부지만 수만 평에 달했다.

중국에서 땅값 비싸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상해 중심부에 자리한 대저택.

과거와 현대가 뒤섞인 퓨전 형식 건물 몇 채가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심처의 핵심.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던 장택민이 차를 마셨다.

“다시 찻물을 끓이겠습니다.”

장택민의 비서이자 애첩인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다소곳하게 찻물을 데웠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다.

작은 키에 부서질 듯 가녀린 몸매의 여인.

목선을 드러내고 단정하게 묶어 늘어뜨린 기다린 머리카락.

단아하고 우아한 품격이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왔다.

겨울에 홀로 피어 추운 날을 버티는 난초 같은 인상의 여인이다.

찻물을 내리는 그녀의 자태는 한 폭의 미녀도가 따로 없다.

맑은 체취가 그녀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여인은 찻잎 몇 개를 고운 손으로 집어 찻잔에 담았다.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찻잎이 아니다.

농약이나 비료가 전혀 쓰이지 않은 야생에서 재배된 용정차.

몸에 좋기로 소문난 사천의 천연 암반수로 끓여 청자 다관에 채워졌다.

매일 매일 비행기로 공수되어 그날그날 전달됐다.

맑고 그윽한 차향이 공간에 퍼졌다.

“드십시오.”

황제 앞에 진상하듯 공손하게 두 손으로 차를 올리는 여인.

“려영(濾榮).”

수심 깊은 모습으로 고민에 빠져 있던 장택민이 조용히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한때 중국을 다스리던 황제였던 남자의 부름이었다.

“하명하십시오.”

려영이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을 두고 무서운 남자라 했다.

권력을 위해 무수한 자들의 목을 베어 넘긴 사내이니 그럴 수 있었다.

그 수가 몇천을 넘어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려영은 상관없었다.

남자란 무릇 자기 집안과 여인을 지키기 위해 손에 피 묻히기를 예사로 알아야 하는 법.

밖에서는 어떤 무서운 일을 하더라도 장택민은 집안에서만큼은 따뜻한 남자였다.

지금껏 10여 명이 넘는 처첩이 그를 거쳐 갔다.

질투할 만하건만 어떤 여인도 그런 그를 원망하거나 독점하지 않았다.

황제는 그야말로 공평했다.

그를 따르는 여인들의 집안은 모두 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거기서 더 바란다면 화를 불러들이는 일임을 그를 거쳐 간 여인들 모두 잘 알았다.

그 점에서는 려영도 마찬가지다.

망해가는 집안을 장택민이 일으켜 주었다.

사촌 형제들까지 당 간부와 공기업의 고위 임원이 됐다.

려영도 신분을 감추고 북경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여인으로 태어나 이만큼의 부와 영예를 누릴 수 있는 인생은 많지 않았다.

돈과 권력,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다.

아무리 잘나도 중국에서 여인의 출세는 한계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려영은 그런 장택민의 비밀 책사였다.

“장립이 천지회와 손을 잡을 것 같더냐?”

장택민도 천지회를 익히 잘 알고 있다.

슈건핑을 앞세워 교묘히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자들.

아쉽게도 장택민은 그들과 손을 잡지 않았다.

만약 그들과 손잡았다면 장택민은 중국의 진정한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아닐 겁니다.”

려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십대 초반에 이른 나이임에도 전혀 미태가 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은근히 감춰진 농밀한 색감은 려영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너도 그리 생각하는구나.”

장택민이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에 만족한 표정이 역력했다.

“회주라면 모를까……. 지금껏 보여 온 장립의 성향이나 그릇을 보면 리장창과 장문량의 계략으로 그를 포섭할 수 없을 것입니다.”

려영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왜?”

“거래가 있었을 것이옵니다.”

려영의 눈빛이 지혜롭게 빛났다.

“거래?”

“장립은 계산이 밝은 자입니다. 거기에 배짱까지 두둑하니 그를 쉽게 입회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거래밖에 없습니다.”

려영이 차분하게 뒤 설명을 이었다.

“궁금하구나.”

“기다리십시오. 곧 알게 될 것이옵니다.”

“그래?”

“장립이 연락도 없이 홍콩까지 왔다면 무언가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나에게 부탁해도 되는 것을.”

장택민이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천지회와 슈건핑이 준비한 계책에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수십 년간 키워놓았던 세력들이 무참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뜬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태자당의 탈을 쓴 천지회와 어리숙했던 공청단이 힘을 합치자 상해방이 힘을 쓸 수 없었다.

“나름의 배려일 것이옵니다.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그리고 장립이 대인께도 거래를 제안할 것입니다.”

“그래?”

려영의 눈동자가 신비롭게 반짝였다.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일로 그녀의 집안은 신성한 무녀의 피가 흘렀다.

청나라 시절 황제를 비롯해 고관대작들만을 상대했던 려씨 무녀 집안.

제국이 무너지고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미신타파를 명목으로 려씨 무녀 집안은 말살되다시피 했다.

다행히 깊은 산간에 몸을 숨겼던 려영과 그녀의 가족.

잘 버티며 살고 있었지만 홍위병 난동 당시 그만 발각되고 말았다.

그때 갓 태어난 려영과 그녀의 가족을 살려둔 이가 바로 장택민이었다.

당시 공산당 중간 간부급이었던 장택민.

려씨 가문의 내력을 먼저 알아챈 그가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였다.

공산당원이었던 그는 마르크스 레닌 사상에 깊이 물든 상태가 아니었다.

철저한 실리파였던 장택민.

단지 천하를 주무를 수 있는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공산당원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때 그렇게 인연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장택민과 려영.

두 사람은 나이 차이를 떠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 있었다.

“며칠 내로 연락이 올 겁니다.”

려영이 푸근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기다려야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장택민.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근심이 사라지자 그의 눈에 려영이 들어왔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창 잘나갈 때 마음과 달리 그녀를 멀리했다.

무녀 집안 출신인 려영이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그러면서 탈이 났다.

려영이 뒤로 물러난 사이 장택민은 천지회의 마수에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기다려 준 려영이었다.

수십 년을 품어 왔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그윽하기만 한 여인.

그의 뜨거운 시선에 려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

- 으흐흐흐! 역시 형님도 남자십니다!

귀신이 흐뭇하게 웃었다.

남자?

당연히 나도 남자다.

하지만.

툭.

부끄러움도 유혹의 무기로 사용하는 홍린의 뺨에 손가락을 살짝 가져다 댔다.

“하아아아.”

뭔가를 기대하듯 달콤한 숨을 뱉어내는 홍린.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남자를 제대로 홀릴 줄 아는 여인이었다.

누가 상무위원 애첩 아니랄까 봐 색기를 장난 아니게 분출했다.

외모야 수술 같은 기술로 커버 가능하지만 타고는 끼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었다.

거기에 홍린은 지략까지 갖추고 있다.

다만 선수를 잘못 만난 게 아쉬웠다.

“누님.”

눈을 지그시 감고 다음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홍린을 나지막한 음성으로 불렀다.

“???”

뺨에 닿은 손가락을 나름 깊게 음미하고 있던 홍린이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눈빛이 참 촉촉하다.

- 혀, 영님. 설마 아니죠……. 그거 아니죠.

귀신이 불안감을 느끼고 다급하게 날 불렀다.

씨익.

입꼬리가 한쪽으로 씨익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았나 봅니다.”

“그거야…….”

홍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린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에 몹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피부가 많이 상했네요.”

뽁뽁.

손가락으로 홍린의 뺨을 콕콕 찔렀다.

“탄력도 떨어지고.”

“!!!”

홍린의 눈동자가 점점 커다랗게 치떠졌다.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발언.

그것도 나이 들어가는 홍린에게는 독을 바른 비수와 같을 터였다.

- 으아아아아아아! 갑자기 그런 망발이 왜 튀어나와요!!! 피부가 상하고 탄력이 떨어진다니!!!

귀신이 아주 지랄발광을 한다.

분위기가 빠르게 체감 온도 영하로 떨어졌다.

촉촉하던 홍린의 눈동자에 금방 냉기가 들어찼다.

으드득.

턱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게 이까지 가는 홍린.

스윽.

가까웠던 얼굴이 순식간에 멀찍이 물러났다.

“장난이 심하네.”

목소리도 냉기를 풀풀 풍긴다.

“장난 아닌데…….”

“장리이이이입!!!”

홍린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여자라면 누구나 죽어도 듣기 싫은 속마음이자 부정할 수 없는 치부.

남자의 이런 비수 같은 말을 참아낼 수 있는 여자는 세상에 많지 않았다.

“누님. 혹시 니체 아세요?”

나도 뒤로 몸을 물리며 말을 돌렸다.

“…….”

홍린이 이를 악문 채 날 노려보듯 쳐다봤다.

눈빛에 레이저 발사 장치가 달렸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정도의 광망이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실존주의 대표주자인 니체 형님이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빙글.

와인잔을 오른손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홍린의 눈빛을 바라봤다.

“아모르파티. Love of fate.”

- 갑자기 니체와 아모르파티는 뭡니까! 완전……. 환장하겠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며 운명애(運命愛)라고도 부릅니다.”

귀신의 저주와 한탄, 그리고 홍린의 차가운 눈빛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홍린은 분명 매혹적인 여성이 맞지만 딱 거기까지.

육체로 인연을 맺어두려는 그녀가 가여웠다.

지금까지 스스로가 가장 자신 있는 방식으로 모든 상황을 풀어내며 살아왔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지 못합니다. 누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홍린이 짧게 반문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굳이 저와 그렇게 얽히지 않아도 흘러야 할 운명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 값 대신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말이었다.

“인간은 누가 되었든 모두가 죽습니다. 그런 삶과 죽음의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생을 스스로 풀어나가며 살아낸다면……. 그 자체로 이생에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짧지만 어려운 말이었다.

죽음이라는 말은 인간들 대부분이 입에 올리기 꺼려 하고 터부시하게 마련이다.

한 번 죽어본 경험이 있는 나의 입장에서 생사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동생이 던지는 먹잇감에 만족하며 왕정의 심장을 꺼내 바치라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야?”

날이 잔뜩 선 홍린의 말투.

- 날 샜네……. 샜어. 에휴.

귀신이 지켜보다 한숨을 짧게 뱉었다.

스윽.

나는 품에서 목함 하나를 꺼냈다.

“???”

그것을 홍린 앞에 내밀었다.

“이……건 뭐야?”

여인의 호기심이 아담을 타락시켰다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홍린은 금방 화 대신 호기심을 보였다.

딸깍.

무심한 듯 목함을 열었다.

순간 진하게 퍼지는 약 향.

“누님……. 이 약 한번 드셔봐. 아주 끝내줘.”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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