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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장. 반간계(反間計) (1,092/1,284)

1115장. 반간계(反間計)

“도대체 둘이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썅!”

북경의 밤이 유난히 길고 깊었다.

12시를 시간은 그새 새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상무위원실에 남아 아직 퇴근하지 않은 왕정의 얼굴은 한껏 달아올라 벌겋다.

탁자 위에는 술병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그사이 몇 병의 술을 비운 왕정.

불콰하게 달아오른 그는 화가 잔뜩 난 상태다.

보고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능구렁이 같은 장립은 리장창과 장문량을 만나 한참 시간을 보낸 뒤 자리를 떴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애첩인 홍린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곳은 왕정조차 아직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곳이다.

왕정의 돈으로 매입한 펜트하우스.

그곳에 자신이 아닌 장립이 먼저 발을 들였다.

콰득.

내내 놓지 못한 스마트폰은 긴 시간 동안 잠잠하기만 했다.

홍린을 통해 지시해 놓었다.

장립이 리장창과 장문량을 만난 진짜 목적을 알아내는 일이다.

“만약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

으드득.

왕정은 두 눈에 힘을 주며 이를 갈았다.

홍린과의 사이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녀에 대한 모든 걸 포기한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기 손에 들어온 물건을 순순히 내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배고픈 촌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렇듯 상무위원의 자리까지 올랐다.

상해방과 장택민의 개가 되어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왔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대가는 엄청났다.

온갖 것을 다 누렸지만 결코 욕망은 충족되지 않았다.

취하고 거머쥘수록 욕망은 더 강하게 삶을 지배했다.

돈과 권력, 여자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모든 것을 움켜쥐어야 겨우 직성이 풀렸다.

그런 자신이 오늘 홍린을 제 손으로 내줬다.

“장립……. 널 반드시 찢어 죽이고 말 거다!”

등장할 때부터 돌풍을 일으켰던 장립은 이제 그 한가운데 우뚝 섰다.

왕정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를 질투하고 있었다.

장립이 소유한 젊음과 출중한 외모, 돈을 비롯해 빠지지 않는 배짱까지 다 꼴 보기 싫었다.

꿀꺽.

왕정은 큰 글라스에 독주를 가득 채운 후 한 모금에 비워냈다.

눈동자는 이미 그가 만취에 가까운 걸 증명하듯 벌겋게 충혈됐다.

상상할수록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언젠가 정리할 인연이었지만 지금은 홍린이 무척 아까웠다.

오늘의 왕정이 있기까지 홍린의 역할과 도움이 컸다.

지금 곁에 두고 있는 다른 첩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외모와 몸매는 물론 왕정이 미처 생각지 못한 지략까지 겸비한 홍린.

“홍린……. 넌 똑똑하니까. 잘 처신할 거라 믿는다.”

왕정의 눈빛이 알 수 없는 독기로 번득였다.

홍린을 내어놓은 일은 그의 살을 주고 상대의 뼈를 취하는 심정과 같았다.

쪼로록.

다시 잔에 독주를 채웠다.

꿀꺽.

“크으으으.”

변변한 안주도 없이 술만 연신 마셔대는 왕정.

그의 한없이 괴로운 긴 밤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도 홍린의 집에 머물고 있는 장립은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장립…… 장립! 장리이이이이입!”

왕정이 이를 악물며 장립의 이름을 곱씹었다.

***

- 악한 자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 선한 카르마가 지급됐습니다.

이런 야밤에 누가?

악한 놈이 나를 저주했다.

뭐, 땡큐다.

나에 대한 저주가 강해질수록 반대로 선한 카르마 배당은 늘어난다.

나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건 내가 선신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선과 악은 부조화의 대립 구조로 조화 속에 서로 얽혀 녹아들어 있다.

극단의 선과 악의 양 갈래의 기로에서 늘 인간은 선택에 내몰리며 삶을 이어간다.

선한 삶을 살아가던 자가 악행을 저지르면 당연히 악업의 카르마가 늘어난다.

반대로 악한 삶을 살던 자가 선업을 행하면 선업의 카르마가 생성된다.

하지만 두 삶 모두 괴롭기는 마찬가지.

악인의 저주를 받은 나의 업과 그로 인해 선한 카르마를 지급받은 업.

그 관계 구조는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조화로 인한 또 다른 결과인 셈이다.

전생에 지었던 축적된 카르마의 경향성은 다시 태어난 생에도 쉬이 바뀌지 않는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짓을 벌이기 위해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반대로 선한 자는 더한 선행을 위해 세상에 탄생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만난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성향을 띠고 원하는 바를 행하며 살아간다.

두 삶이 다시 또 부조화를 겪게 된다.

빛과 어둠, 음과 양 등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선과 악의 이면.

악한 자는 더 강하게 악랄해질수록 평안을 얻는다.

그러니 누군가는 또 나를 저주해야 그 역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죽음 뒤의 세계와 살아서 짓는 인과응보를 결코 믿지 않는다.

그리하여 죽음이 눈앞에 닥쳐와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어리석은 자의 말로요 극치인 것이다.

그래서 쉽게 주변 사람들을 배신하고 물질과 욕망에 취해 그것이 전부인 양 좇는다.

다시 태어나기 힘든 인간의 몸으로 한세상을 비릿한 독사처럼 살다가는 것이다.

악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약한 체취를 더욱 강렬하게 풍긴다.

온갖 고가의 향수로 도배해도 악취를 감출 수 없는 탓이다.

죽은 자를 만지는 장의사들은 망자의 냄새로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을 짐작한다.

육향이 강한 자는 이생에 욕망을 좇아 살다 죽은 자임을 아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선한 자들의 몸에서는 자연의 흙냄새가 난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극명한 이치인 것이다.

그들은 임종 때 발끝에서부터 머리 쪽으로 천천히 몸이 식어간다.

종국에 그들의 의식은 천국에 이른다.

저주받은 나도 선업을 짓다 그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 뜬금없는 포인트 감사!

귀신이 허공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계산이 빠른 귀신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허수아비의 목…….”

홍린은 다소 충격을 받았는지 혼잣말을 읊조렸다.

허수아비가 누구를 두고 한 말인지 그녀는 바로 알아챘다.

- 그런데 갑자기 허수아비 목은 왜 찾는 겁니까?

이럴 땐 귀신이 부러웠다.

귀생 유지하는 데 참 단순해서 좋다.

모든 게 1차원적 사고에서 끝났다.

여자가 예쁘면 입이 찢어지고 배고프면 침 흘리고 돈을 보면 눈이 돌아갔다.

“허수아비를 만만하게 보지 마. 허수아비 뒤에는 포악한 왕이 있어.”

홍린과 나누는 대화는 유쾌하게 흘렀다.

말귀를 알아듣는 가인(佳人)은 언제나 귀한 법이다.

“그분도 어차피 허수아비 왕일 뿐이죠.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말 조심해!”

홍린이 목소리를 높이며 재빨리 사방을 둘러봤다.

나와의 대화가 새어나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도청 장치는 소용없습니다.”

“그게 무슨…….”

“깊이 알면 다칩니다.”

미리 공간을 마법으로 차단했다.

아무리 최첨단 장비를 가져다 놓았다 해도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홍린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찔러대는 공격에 그만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립…….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중국 영토야. 진짜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어.”

중국식 처리 방식은 익히 악명을 들어 잘 알고 있다.

중국 비밀 공안의 권한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슈건핑을 제외하고 모두 다 그들에게 끌려갈 수도 있다.

변호사의 도움을 기대하거나 대한민국처럼 민주적이고 합법적 절차를 거치는 등의 일은 개소리에 불과하다.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직진 모드로 홍린에게 던져진 가혹한 미끼의 맛.

나를 믿고 선뜻 따르기에는 우리 두 사람의 유대 관계가 약하긴 했다.

“진짜 그들이 허수아비 목을 원하는 거 맞아?”

홍린이 재차 확인하듯 물어왔다.

장택민이 세운 허수아비 왕정.

그를 건들면 장택민이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였다.

“네.”

간단하고 명료하게 답했다.

- 와아아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귀신이 나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난 이해가 안 돼. 왕정을 치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아.”

끝내 홍린은 날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태자당이 상해방을 완벽하게 몰아낼 만한 힘이 부족하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귀신이 홍린의 반만 따라가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였다.

“기습공격은 승리를 가져오는 병법 중 하나죠.”

“전면전이 벌어질 거야. 태자당이 중상을 입어.”

“아닙니다.”

“립이 몰라서 그러는데 중국은…….”

“허수아비는 또 세우면 됩니다.”

“???”

“참새도 무서워하지 않는 허수아비는 쓸모가 다한 폐기물이죠.”

“아무리 그래도 왕정은 장 주석의 심복인데…….”

“그래서 거래의 기술이 필요한 법입니다.”

“거래의 기술?”

홍린은 계속 질문만 했다.

상황 전개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경험한 상무위원의 힘은 나의 생각과 다를 것이다.

“내일이면 왕정의 조카 목이 날아갈 겁니다.”

“누구?”

“왕수룡.”

“진짜?”

아리아 초코파이 하나가 이렇게 대단한 파장을 일으킬 줄 나도 미처 몰랐다.

이모의 일로 이 일이 시작됐지만 막상 열어보니 꿀잼각이다.

적 내부에 직접 침투해 벌이는 반간계(反間計).

“똑똑히 들었습니다.”

“으음.”

홍린이 짧은 신음을 토했다.

반은 거짓말이다.

들은 게 아니라 내가 내민 조건이다.

왕정 대신 왕수룡을 날려 달라 요구했다.

그리고 덤으로 공무원 몇도 얹어 부탁했다.

꿀꺽.

홍린은 목이 타는 듯 와인을 들이켰다.

증거까지 완벽하니 이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든든한 보호막이었던 허수아비의 목이 날아가면 뒤에 어떤 꼴이 날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지금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도 일장춘몽으로 사라질 터였다.

홍린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나 아니면 왕정.

또로록.

그녀의 빈 잔에 와인을 마저 채워 주었다.

“…….”

침묵이 길어졌다.

자신의 목숨이 지금 선택한 결정에 달렸다는 걸 그녀도 나도 안다.

- 왜 이렇게 분위기가 칙칙하죠…….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에 남을 걸 괜히 왔습니다. 임 회장님 쪽이 더 화끈할 텐데…….

귀신이 슬슬 눈치를 봤다.

역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화끈?

꿈 깨.

난 임성철 회장님 못 믿는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상남자의 길을 걷던 분이다.

그에 대한 대책은 충분히 세워 놨다.

- 형님 솔직히 고백하시죠. 요즘 다시 고자라니 발동모드죠?

귀신이 날 자극해 온다.

내가 함부로 여인들을 취하지 않는 걸 귀신도 안다.

“정말…… 날 구해줄 수 있어?”

홍린이 결심을 한 듯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허수아비 옆에서 기생했던 숙주로서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는 거 봐서요.”

질끈.

홍린이 다시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어망에 들어간 물고기 신세가 따로 없다.

“말해봐……. 조건.”

순식간에 거래의 기술을 제대로 습득한 재녀다웠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결론을 내리겠다는 홍린의 대답.

“누님이 착각하는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목소리부터 쫙 깔았다.

입가에 냉소적이고 차가운 미소도 곁들였다.

“조건은 누님이 아니라 내가 제시하는 겁니다.”

스윽.

손을 그녀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홍린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파르르 떨리는 홍린의 눈동자.

이제 어망을 걷어 올릴 때였다.

“왕에게 바칠 허수아비의 심장……. 꺼내주십시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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