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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장. 작업의 정석(3). (1,091/1,284)

1114장. 작업의 정석(3).

‘뜨겁게…….’

홍린은 장립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렇게 저돌적인 남자는 처음이다.

자신이 누구인가.

중국을 실재적으로 지배하는 고위 공산당 상무위원의 애첩이다.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상무위원 왕정의 무서움을 알기에 애초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가 없었다.

맡고 있는 사업과 도박, 술을 통해 그나마 스트레스를 풀며 살았다.

그녀는 지금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한창 발산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현실은 힘을 쓸 수 있는 애첩 자리에서 거의 밀려난 상태다.

왕정은 홍린 말고도 몇 명의 여인을 측근에 더 두고 있었다.

중국에서 축첩은 보이지 않는 훈장과 같았다.

그런 마당에 오늘 장립이 대놓고 자신에게 뜨거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직접 겪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처음 만날 때부터 그에게 호감이 있었다.

장립은 야망 있는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최상의 남자였다.

돈과 지략은 물론 배짱과 외모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당연히 홍린도 그런 장립을 마음에 두었다.

물론 품은 마음을 행동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왕정의 부하들과 적들을 의식해서다.

왕정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이 집에 들여놔서는 안 될 일이다.

상무위원 정도면 홍린 따위 소리 없이 제거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비자금 관리를 맡기고 있지만 당장 그것을 포기하고도 남을 남자가 왕정이었다.

“싫어요?”

귓가에 속삭이던 장립이 뒤로 몸을 물리며 물었다.

“아니 그게!”

홍린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졌다.

‘기회?’

고위 공산당원의 첩이 되면 어느 누가 되었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워낙 공유한 내용들이 많아 이별하게 되면 대부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은 존재했다.

지금 섬기고 있는 남자보다 더 강력한 권력자의 손을 잡았을 때 목숨을 부지한 헤어짐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서로 알게 모르게 전부 연결돼 있는 권력 관계에서 누군가의 첩을 빼앗는 행위는 막말로 전쟁 선포와 같았다.

콰득.

홍린이 여러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차려! 홍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런 감정으로는 장립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고작 하룻밤 상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왕정에게서 완전히 내쳐질 것이다.

“……동생 오늘 농담이 과한 거 아냐?”

홍린은 요염함으로 다시 재무장하며 장립이 보이는 태도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농담 같아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장립이 은근히 물었다.

손에 든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장립.

‘리장창과 장문량을 만나고 나를 찾아왔어. 단지 욕정을 채우려고 온 게 아닌 건 확실해.’

애써 정신을 차리며 의식을 집중했다.

이래봬도 홍린은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똑똑한 머리와 못지않게 받쳐주는 미모로 이 자리까지 왔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매혹적인 남자와의 하룻밤으로 지금까지 일궈온 인생을 날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며 겪어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 진심?”

홍린은 목소리에 색기를 담았다.

음색만으로도 상대를 유혹할 자신이 있었다.

“후훗.”

짧게 웃음을 흘리는 장립.

‘도대체 의도가 뭐야!’

홍린은 장립이 하는 말과 태도에서 내비치는 욕망을 읽어내지 못했다.

여심을 흔들어 대는 따뜻한 음성과 달리 눈빛은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죠.”

“응.”

홍린이 잔을 들었다.

팅!

와인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여유 있게 와인을 마시는 장립.

‘완벽해…….’

홍린은 연신 장립의 모습에 빨려들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중국 공산당원들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에 칼자루를 숨기고 겉은 거만함과 허세로 무장했었다.

갑자기 부를 움켜쥔 졸부들처럼 예의와 주도를 몰랐다.

홀릴 만한 맛있는 요리가 나오면 근본을 숨기지 못하고 손을 쓰는 자들도 허다했다.

음식이 목구멍까지 차고 배가 터질 듯 부르도록 먹고 마시는 일이 대단한 접대라고 생각했다.

장립과 함께하고 있는 이런 품격 있는 술자리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홍린.”

와인을 반쯤 마시다 잔을 내려놓으며 장립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흠칫.

홍린은 그 부름에 미친 듯 심장이 뛰었다.

‘누님’이라는 호칭보다 훨씬 더 듣기 좋고 달콤했다.

“말해…….”

홍린이 장립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파바밧.

두 사람 사이에 가볍게 스파크를 튀기며 흐르는 전류.

“내가 당신 인생 구제해 줄까?”

“!!!”

***

- 캬아! 좋습니다! 이게 바로 진짜 작업의 정석이죠! 홍린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거 보십시오!

귀신이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아직도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치 없이 구는 귀신.

비루한 제 경험과 상상력을 더해 지금 상황을 전개하느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싫어?”

가볍게 툭 한마디 던졌다.

홍린은 보통 여자가 아니다.

미모가 뛰어나긴 했지만 홍린 수준의 미녀는 중국에 널리고 널렸다.

출세한 상무위원 왕정이 그녀를 탐낼 정도로 특별한 그녀만의 무기가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이 만남은 그녀를 테스트하기 위한 자리.

“가, 갑자기 그 말을 왜?”

홍린이 살짝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 우리 형님 선수라니까. 거의 다 넘어왔습니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

홍린의 흔들리는 두 눈을 직시했다.

내적 갈등과 의혹 가득한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었을 미인계를 사용하려던 홍린.

도리어 미남계 덫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방심하는 틈새를 노려 훅 하고 깊숙이 매력의 칼을 찔러 넣었다.

그녀 심장에 박힌 칼은 쉽게 수습이 되지 않았다.

콰득.

홍린이 연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금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이쯤에서 매끈매끈한 기름칠이 필요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리장창과 장문량을 만난 사실은 알죠?”

다시 비즈니스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끄덕.

홍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을 왜 만났을까요?”

잔을 들고 다시 빙글빙글 돌리며 무심한 듯 물었다.

고도의 심리전이다.

홍린은 왕정의 첩.

고작 하룻밤을 위해 이곳으로 나를 불렀을 리 없다.

사방에서 감시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남자라면 누구나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클 수밖에 없다.

중국 황제들이 수천 궁녀들을 곁에 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본 왕정의 관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인 손에 들어온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한 인물이다.

그런 왕정의 허락을 받고 난 뒤 나를 초대했을 홍린.

이보다 불쌍한 여인이 따로 없다.

발밑에 홍콩의 불야성을 깔고 앉아 생활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게 그녀 것이 아니다.

왕정의 명령 한마디면 그녀가 누리는 모든 건 소리 없이 사라질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홍린은 천길 절벽 위에서 외줄을 타며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길도 없는 상황.

한번 맛봐 버린 상류층 생활.

홍린이 이 세계를 경험하기 전 과거로 회귀하기 전까지는 이 개미굴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제시한 조건이 파격적일 수밖에 없다.

“회유.”

홍린의 입에서 나오는 짤막한 답변.

역시 괜찮은 여자다.

“그들에게 난 어떤 대답을 했을 것 같습니까?”

웃는 얼굴로 물었다.

순간 홍린의 눈빛이 번뜩였다.

날 유혹하려던 가식적인 색의 기운이 사라졌다.

- 뭐죠? 갑자기 이 분위기는?

귀신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해력과 상황 판단이 다소 떨어졌다.

큰 그림을 그리며 살라고 그렇게 강조해서 말했는데 쉽게 습득하지 못했다.

“……자기라면…… 거절했을 거야.”

홍린이 차분하고 느린 말투로 답했다.

- 자기! 형님 홍린이 자기라고 불렀습니다!!!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가벼운 귀신.

끝내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왜요?”

홍린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그녀의 모든 몸짓과 느낌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호흡에 따라 흔들리는 감정 변화와 몸의 미세한 움직임이 생생하게 보였다.

“판돈을 올인하기에는 아직 판이 너무 작잖아.”

호오! 

이 정도면 리장창과 장문량보다 심계가 깊다.

남자가 세상을 호령하지만 역시 그 뒤에서 그들을 휘어잡는 건 여자라는 말이 실감된다.

왕정이 오늘의 상무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홍린이 있어 가능했던 게 확실했다.

첩의 자리에 앉은 여자답지 않게 무척 현명했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홍린.

“빙고.”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리고?”

“아직 제 스타일 모르십니까?”

“그게 무슨…….”

홍린의 현명함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판은 키우면 그만 아닙니까.”

“!!!”

홍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설마…….”

씨익.

감정을 절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래?”

구체적인 답은 굳이 필요 없었다.

“립! 그들과 거래는…… 위험해!

어차피 정치 행위는 언제나 위험을 내포하는 법이다.

“대가는 더 풍성하겠죠.”

어차피 이 동네는 곳곳에 호랑이, 늑대, 여우들이 판 친다.

그들 틈에서 외줄을 타는 재미도 쏠쏠했다.

- 뭐죠……. 이 빠꾸 분위기는.

귀신이 다급했는지 비속어를 사용했다.

실망 가득한 귀신 목소리.

김이 다 샌 걸 이제야 알아챈 모양이다.

“……그 조건, 나도 알아도 될까?”

홍린이 주저하듯 어렵게 물어왔다.

정작 왕정이 원하는 답일 것이다.

“물론이죠.”

파바밧.

허공에서 홍린과 눈빛이 마주치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허수아비의…… 목.”

“아!!!”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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