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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장. 작업의 정석(2). (1,090/1,284)

1113장. 작업의 정석(2).

“홍린한테?”

“그렇습니다.”

“하아.”

양소려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터졌다.

장립이 홍콩에 와 있다.

인연이 깊은 자신을 먼저 만나지 않고 리장창과 홍린을 연달아 만났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장립과 함께했던 시간은 무척 짧았지만 그 시간이 남긴 추억은 가볍지 않았다.

홍콩과 베이다이허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빠르게 재생되며 스쳐 지나갔다.

“물러가라.”

“넵.”

양광의 한마디에 장립의 소식을 가져왔던 자가 물러났다.

“서운하더냐?”

“아……니에요.”

아버지 양광의 물음에 양소려는 감정을 감추며 말을 흐렸다.

솔직히 서운한 마음이 컸다.

상해방의 자금을 처리하고 있는 하수인 입장이지만 장립과는 인간적인 인연으로 얽혀 있는 게 사실이었다.

장립은 어떤 여자라도 탐낼 만한 남자였다.

잘생긴 외모에 학벌, 표현 불가능한 정치적 감각과 투자 실력까지 빠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여심을 녹일 줄 아는 기본 센스와 부드러운 미소, 숨길 수 없는 거친 수컷의 체취도 풍겼다.

내심 양소려는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한때는 장립과의 관계를 두고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뜬금없이 여자를 만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쌍둥이의 아빠가 되어 버린 장립.

허탈함에 한동안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마음 구석에 밀쳐놓았던 장립은 홍콩에 다시 나타나서도 자신을 찾지 않았다.

“우리가 품을 수 없는 그릇이다.”

양광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더 이상 처음 만났을 때의 장립이 아니었다.

베이다이허 기간 동안 그는 몰라볼 정도로 우뚝 성장해 버렸다.

상해방의 심복이었던 자신과도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다.

딸이 겪고 있는 인간적 고뇌는 진작 눈치 챘다.

물론 양광도 장립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레벨 자체가 달라졌다.

“리장창과 홍린을 연달아 만난 이유가 뭘까요?”

양소려가 말을 돌렸다.

사적인 감정에 빠져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사치였다.

상해방 핵심 인사들에게 있어 지금 상황은 곳곳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정치 행위의 일종이겠지.”

“정치 행위요?”

양광의 말에 양소려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그리 놀라느냐. 나이는 너와 비슷하지만 장립은 정치인이다.”

“…….”

“장문량 역시 리장창과 동석한 자리에서 만났다. 그게 쉬운 일이더냐?”

‘장립…….’

양소려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문을 닫았다.

현 중국에서 리장창과 장문량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

태자당의 보이지 않는 실질적 조율자들이다.

두 사람 모두 황제 슈건핑과 독대가 가능한 인물.

그런 두 거물과 편하게 어울려 술자리를 가진 장립의 위치는 감히 상상을 불허했다.

피부에 와 닿는 수준으로 표현하자면 최소 상무위원급이다.

“어떤 거래가 오갔겠지.”

“거래요?”

“장립은 매력적인 물건이다. 그를 끌어들인다면 엄청난 이득이지.”

“미국 측 인맥 때문에 그런 건가요?”

“그뿐만 아니라 환단 제조 그리고 감히 측정 불가한 미래가치.”

양광의 평가는 긍정적으로 이어졌다.

“그럼 홍린과의 만남은…….”

“장립은 쉽게 태자당과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상해방과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겠지. 그리고 왕정의 첩 홍린은 최고의 흥정 파트너다.”

양광도 상해방의 자금 세탁을 돕고 있지만 왕정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다.

냉정하게 말해 장립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장립도…… 장사꾼이 맞군요.”

양소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장사꾼이 아닌 인간이 과연 세상에 존재하느냐?”

“네?”

“갓 태어난 아기도 엄마와 울음으로 젖을 거래하지 않더냐. 하물며 거물 투자자인 장립에게는 당연한 일이지.”

양광의 말에 양소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모두 거래를 하는 거야.’

양광의 말에 양소려는 다시 한 번 세상의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깨달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모두와 거래하는 존재다. 몇몇 성인들을 빼고 모두 다 그렇게 살다가 가는 거다.”

평소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확실히 드러내는 양광.

“네.”

양소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거라. 장립이 내일쯤 우리를 부를 것이다.”

“정말요?”

실망하고 있던 양소려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쯧쯧. 그렇게 쉽게 감정을 드러내다니……. 남자가 장립만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는 유부남이지 않더냐.”

양광이 안타까운 듯 딸을 보며 혀를 찼다.

양소려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마음 깊숙이 품었던 그에 대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유부남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장립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대안을 준비하거라.”

“네…….”

양소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근두근.

조용한 대답과 달리 홀로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

양소려는 몹시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와인?”

“좋죠.”

“조금 기다려. 안주 간단하게 만들어 올 테니까.”

홍린의 아파트다.

전망이…….

- 형님……. 전 인생 허투루 살았나 봅니다.

참 일찍도 깨달았다.

갱들한테 삽질로 모래밭에 파묻혀 죽은 장립 귀신이 창밖을 내다보며 한탄했다.

한마디로 경관이 그만큼 죽였다.

리장창의 언덕 위 저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야경의 맛이 달랐다.

리장창 저택이 외딴 성이라면 지금 이 아파트는 불야성의 중심에 위치했다.

그것도 펜트하우스.

주상형 복합 아파트 최상부층인 홍린의 집은 주변 모든 건물을 압도했다.

과거 언론에 보도됐던 수백억대가 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특히 불야성을 이룬 야경이 끝장났다.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 지향적인 도시의 실현.

빅토리아 항구가 발밑에 깔렸다.

작은 땅덩어리를 위해 뾰족하게 치솟은 고층 건물들 모두를 아래로 깔았다.

상무위원의 첩 정도는 돼야 누릴 수 있는 피라미드 최상층.

바닥은 비치빛 대리석이 깔렸다.

대형 창문은 통으로 제작됐다.

복층 이상의 거실 높이는 숨쉬기에 편했다.

서울에 위치한 내 집은 이곳에 비하면…….

- 형님! 세상에 화장실 전체가 황금이에요! 변기, 세면대, 바닥, 쓰레기통, 휴지 케이스까지! 샹들리에 보이시죠? 저거 다…… 진짜 수정 같아요.

집안을 돌아본 귀신이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봐도 소품과 가구들 하나하나 다 최상품이다.

대한민국 재벌도 이렇게 못 산다.

부과 권력, 욕망이 넘치는 중국 부자들이나 연출할 수 있는 초호화 인테리어.

속속 눈에 담았다.

홍린 덕분에 진짜 부자들의 인테리어를 구경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이 달라졌다.

- 형님! 우리가 뭐가 부족합니까! 함 지릅시다!

귀신이 목울대에 힘을 바짝 줬다.

정작 손에 쥘 수도 없으면서 물질에 대한 욕망이 끝을 달린다.

“후훗.”

가볍게 헛웃음이 나왔다.

홍린이 이곳에 나를 초대한 이유가 대충 짐작됐다.

“립.”

홍린이 날 부른다.

“네.”

“이리 와.”

평소 나누던 대화 같다.

공간은 최소 100평대 이상.

거실이 눈에 보이는 전부가 아니다.

홍린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 저 누님……. 작정했네요.

홍린은 위에 걸치고 있던 가벼운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새하얀 목선과 가슴선이 아슬아슬하게 내보이는 원피스 형태의 붉은 치파오.

본래 치파오는 옆트임이 심하지만 정면은 의외로 단정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홍린이 입고 있는 치파오는 개량형이다.

욕망의 향기가 위험하게 풍겨져 나왔다.

“앉아.”

아담한 라운지 바.

그녀와 작은 바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사방이 개방된 펜트하우스였기에 이곳에서도 야경이 훤히 보였다.

술 한 잔 마시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

“아파트가 좋습니다.”

“그렇지? 작년에 하나 샀어.”

“누님, 생각보다 부자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만 하겠어.”

홍린이 눈웃음을 쳤다.

나이를 먹어 눈가에 자잘한 주름이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이 더 원숙하게 보였다.

만개한 꽃봉오리 같은 홍린.

움직임 하나하나가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천생 여우.

- 꿀꺽.

귀신이 먼저 침을 흘린다.

“파실 일 있으면 저에게 넘기십시오.”

“홍콩에서 살 거야?”

홍린이 눈을 반짝였다.

“아니요.”

“그런데 왜?”

“손님 접대용으로 쓸 만하네요.”

“…….”

홍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날 본다.

방긋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것도 순수하게.

또로록.

그녀가 잔에 와인을 채웠다.

애호가답게 와인 향이 좋다.

잔을 들어 향취를 먼저 느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와인에 관한 지식들.

“화산토에서 잘 자라는 품종 같군요. 깜빠니아에서 생산됐어요. 과거 화산 폭발로 생긴 검은 속돌들이 땅에 깔려 땅이 기름지죠. 품종은 코다 디 볼페. 크리티스 주조장 제품으로 너무 드라이하지 않고 우아하며 향기가 좋은 녀석이죠. 마치…… 누님처럼.”

“!!!”

줄줄 흘러나오는 와인 상식에 홍린이 감탄하는 눈빛을 보였다.

- 형님……. 이것도 기술 맞죠?

뇌섹남은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환영받는다.

근육이 머릿속까지 차면 그건 오크와 다를 바 없다.

홍린의 눈빛이 흥분으로 촉촉하게 물들며 반짝였다.

“동생은 참 특이해.”

“뭐가 말입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자들을…… 뜨겁게 자극해.”

홍린의 몸이 나에게 살짝 기울어졌다.

자연스럽게 시선에 들어오는 그녀의 풍만한…….

- 형님! 오늘은 빼기 없습니다!

귀신이 바짝 흥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귀여운 녀석.

“누님……. 더 뜨겁게 만들어 드려요?”

“응?”

촉촉한 목소리의 홍린. 붉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천천히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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