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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장. 역린(逆鱗). (1,088/1,284)

1111장. 역린(逆鱗).

‘나이도 어린놈이 심기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장문량은 내심 찝찝함을 거두지 못했다.

장립의 갑작스러운 홍콩 방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 회에서 장립을 구성원으로 끌어들이자는 결정이 났다.

문제는 놈이 미국에서 별다른 활동 없이 칩거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본토로 불러들이려 했지만 그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정에 소홀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중국 본토에 일가친척이 전혀 없다 보니 가족을 통한 협박도 먹히지 않았다.

가뜩이나 미국 시민권자인 데다 주변 경호도 철저했다.

당장 어쩌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운 좋게 홍콩에서 우연한 조우가 이루어졌다.

내친김에 리장창과 철두철미한 계략을 짰다.

최대한 여러 가지 미끼를 던져 이번 기회에 장립을 회에 입회시키자는 데 뜻을 함께했다.

자연스럽게 술이 오갔다.

분위기는 바라던 대로 흘러가고 좋았다.

장립도 뚜렷이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권력에 욕망 있는 자들이라면 덜컥 물고도 남을 만한 큼지막한 먹이를 던졌다.

당연히 수락할 거라 의심치 않았다.

지금 중국을 움켜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장립 역시 모를 리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장립을 회에서 포섭하게 되면 귀한 환단을 천지회가 온전히 움켜쥐게 된다.

지금은 장택민만 애용하고 있고 그만이 수중에 넣을 수 있는 전설의 환단.

환단이 의외로 정치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했다.

부와 권력을 움켜쥔 자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가 바로 건강한 노후 대비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고 젊음을 되찾을 길 없었다.

늙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천하의 진시황도 불로초를 찾아 헤맸으나 결국 죽었다.

여유 있게 장립의 흔쾌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가 거절 의사를 밝혔다.

거기에 부탁의 말까지 보탰다.

“저와 형님들에게도 이익이 될 부탁입니다.”

‘이익?’

천지회 인단 단주인 리장창은 장립이 말하는 부탁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돈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넘쳤고 제안한 권력도 걷어찼다.

그런 마당에 부탁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들어보고 마음에 드시면 결정하십시오.”

장립의 표정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놈이었다.

리장창은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장문량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다.

“말해 보게. 아우를 도와줄 수 있다면 돕겠네.”

리장창이 말을 이었다.

중국에서 이런 청탁이 오가는 것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에게 이익이 될 만한 가치가 존재해야 꽌시가 형성되는 법이다.

‘우리와 거래를 원하다니……. 역시 겁이 없는 놈이야.’

장문량은 장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홍콩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미치는지 빤히 알면서도 저렇듯 아무렇지 않게 거래를 요구하는 장립.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부탁의 내용이 장문량 역시 궁금해졌다.

“왕정의 목을 쳐주십시오.”

“뭐라고!!!”

“와, 왕정!!!”

장립의 담담하면서도 짧은 요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

두 사람은 크게 놀란 시선으로 장립을 쳐다봤다.

왕정이 어떤 인물인가.

상해방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를 제거한다면 진짜 내란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빨이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였다.

그 일을 두고 장택민이 가만있지 않으리란 건 당연했다.

“왜요? 안 됩니까?”

당돌하고 뻔뻔하게 묻는 장립.

“자네……. 그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은 아나?”

장문량이 얼굴이 굳은 채 물었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장립이 던진 말의 파장이 컸다.

장립이 파장을 생각지 못하고 이 말을 던졌다면 입회는 그야말로 다시 재고해 봐야 할 정도로 큰 문제였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대답하는 장립.

“장 주석과 적이 되고 싶은가?”

리장창이 겁을 상실한 듯한 호랑이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씨익.

장립이 다시 묘한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역린(逆鱗)을 건드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한쪽을 거든다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 제안 드려봤던 겁니다.”

장립의 말에 장문량과 리장창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자신들이 제안한 입회는 면전에서 거절하고 한편으로 또 장택민과 척을 지겠다고 말하고 있는 장립.

이득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긴 했지만 선뜻 답할 수는 없었다.

겪으면 겪을수록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

- 역린(逆鱗)요? 형님 이번 발언 셉니다. 크크크크.

귀신이 흥미진진한 반응을 보였다.

허공에 둥둥 떠서 팔짱을 낀 채 영화 관람모드를 가동 중이다.

살짝 얄밉다.

누구는 현장에서 열연 중인데 혼자서 유유자적하며 관람 포인트를 챙겨 먹는 불로소득 전문 귀신이다.

- 그래서 제가 형님을 존경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나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로 벌어들이게 되는 포인트는 공정하게 3분의 1 비율로 분배된다.

다른 사람의 모습과 삶을 빌려 쓴 대가다.

그래도 나에게는 무조건 남는 장사다.

장문량과 리장창 두 사람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소란스럽다.

열이 받은 듯 두 사람의 머리통에서 번지는 기운이 뜨겁다.

허수아비에 불과한 왕정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장택민을 배려해서다.

동시에 아직 권력을 확실히 쥐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무리 슈건핑과 여기 있는 천지회 핵심 인물들이 권력을 잡았다 해도 뿌리 깊은 나무는 그렇게 쉽게 뽑히는 게 아니다.

회귀 전인 2020년 당시만 해도 슈건핑은 장기 독재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기반이 완벽하지 않았다.

총리를 비롯해 몇몇 사회 지도층이 대놓고 반발했다.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그만큼 치열했다.

그 권력이 집중된 한복판에 던진 큼지막한 불덩이.

이모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기회가 왔을 때 판은 키워야 제맛.

홍콩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나 장태산이 아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장문량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물론 책임진다.

장립이라는 이름을 걸고!

- 형님……. 장립도 형님의 일부지 말입니다!

그건 네 생각이다.

스스로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천지회 단주들과 회동 중임에도 귀신을 상대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슈건핑과 장택민 같은 우두머리가 아닌 그 휘하에 있는 권력자들.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한참 아래 수로 보였다.

그만큼 상대하고 있는 일에 대한 눈높이가 달랐다.

차일드 가문의 주인인 로리아나나 미국 대통령 등과 인간관계를 맺다 보니 간이 커졌다.

내가 던진 미끼에 걸린 줄도 모르고 파닥거리는 두 사람의 반응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지금껏 전 제가 한 말은 모두 책임지며 살아왔습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는 고상한 말로 표현할 것도 없다.

“역린을 건드리면 그 화가 자네에게도 미칠 걸세.”

장문량이 목소리를 쫙 깐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왜 왕정을 제거하고 싶은지 궁금하군.”

리장창이 나름 핵심 질문을 날렸다.

“왕정이 제 밥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게 무슨…….”

“침?”

왕정과 나에 대해 접점을 찾아보려 애쓰는 두 남자.

속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표정이다.

느닷없이 조용히 살던 나, 아니 장립의 밥에 침을 뱉었다는 왕정에 대한 처분 요구.

“두 형님이 알다시피 전 투자자입니다. 크게는 국가사업에 작게는 전도유망한 기업에 투자하기를 좋아합니다.”

서론부터 풀었다.

뭐든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한 법이다.

갑작스럽게 왕정을 치워달라는 나의 요구를 이들이 순순히 동조해 주지 않을 건 당연했다.

“알고 있네. 동생의 투자 능력은 탁월하지.”

리장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아리아 초코파이를 좋아합니다.”

“???”

뜬금없이 초코파이를 언급하자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국적 거사를 논하는데 한낱 아리아 초코파이를 언급할 만한 타이밍이 아닌 것이다.

“쌍둥이들도 간식으로 잘 받아먹죠.”

내친김에 애들도 팔았다.

“???”

여전히 두 사람은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조용히 아리아 초코파이 제조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본토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베트남을 비롯해 아시아권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나도 간식으로 즐겨 먹네.”

홍차를 곁들여 마시기에 제법 어울리는 아리아 초코파이.

리장창이 살짝 이야기의 속뜻을 알아챈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제가 투자한 회사에 침을 뱉고 재를 뿌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의 힘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왕정이 직접?”

장문량도 돌아가는 이야기의 핵심을 눈치를 챘다.

“아닙니다.”

“그럼 누가?”

“왕수룡이라는 자입니다.”

“왕수룡이라면…….”

리장창이 눈빛을 빛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듯 두뇌 활동 용량 업그레이드가 필요해 보였다.

“왕정 상무위원의 조카입니다.”

“맞아! 왕수룡!”

리장창이 왕수룡을 기억해 낸 듯 이름을 언급했다.

“립……. 자네 말은 알아들었네. 하지만 겨우 그 정도 일로 상무위원을 쳐내기에는…….”

장문량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상무위원은 과거 제국시절 각 지역의 제후나 공왕과 비슷한 신분에 속했다.

일개 초코파이를 생산하는 기업 하나 때문에 상무위원의 목을 베는 건 명분과 실리 싸움에서 한참 밀렸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이 동생도 가만히 있었을 겁니다. 저는 겨우 몇 푼 되지도 않는 투자금 때문에 상무위원을 치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미끼를 문 물고기와는 적당한 밀당이 필수다.

“그런데 왜?”

리장창이 미끼를 한입 더 물어 삼키며 파닥였다.

“정보를 캐던 중에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정보?”

“이걸 다 말씀드려도 될지…….”

적당한 선에서 호기심도 자극했다.

사람의 심리라는 건 역시 묘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도 대화 상대의 입을 빌리면 궁금증이 더 증폭된다.

“말해 보게. 우형들의 입은 무겁네.”

장문량도 미끼를 크게 한입 더 물어 삼켰다.

- 흐흐! 확 땡기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귀신도 나의 비즈니스 스타일에 점점 물들어갔다.

“러시아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와도?”

“베트남 관리들도 포섭된 것 같습니다.”

사건을 점진적으로 확대시켰다.

베트남 관리들이 연관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공산당이 포진한 베트남의 관리들과 연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동생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리장창의 눈이 예리하게 변하게 가늘어졌다.

여기서 마지막 챔질!

“비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은 자금을.”

“비자금!”

“흐음.”

역시 두 사람이 크게 놀랐다.

아니 크게 놀라는 척한다고 해야 할까?

현재 상해방이 핍박을 받아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걸 이들이 모른다면 두 사람 다 자리 내놔야 한다.

어느 정도 그들의 행태를 눈감아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동생은 분노했습니다! 감히 인민들이 피땀 흘려 쌓아 놓은 국부를 해외로 빼돌리다니요! 그런 인민의 적들은 발본색원해서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합니다!”

두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강력한 살기는 덤이다.

움찔.

역시 찔리는 게 있는 듯 두 사람은 은근히 나의 눈을 피했다.

두 사람이 손바닥 위에서 당황하는 게 귀엽다.

고위 공산당원들 중에 비자금 조성에 있어 결백한 자는 전무했다.

장문량의 아들 또한 미국에서 달러를 물 쓰듯 펑펑 써재꼈다.

물론 리장창도 마찬가지.

유럽 쪽에 그의 비자금 창구가 존재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니 안 쫄리면 그게 이상했다.

“형님들, 제가 총대를 메겠습니다! 왕정……. 깔끔하게 날리시죠!”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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