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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장. 파티의 계절

“파티? 와이너리에서?”

“그렇습니다. 장태산이 나파벨리에 위치한 로버트 라이언 소유 와이너리에서 유명 셀럽들을 초청했다고 합니다.”

“왜? 가만히 한국에 처박혀 있다가 갑자기 파티라니…….”

홍콩 리장창의 자택 집무실.

특급 관리 대상으로 최우선 보고된 장태산의 근황에 리장창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엄청난 부를 이루었음에도 아직은 소박하게 살고 있는 자였다.

특출한 재능이 차고 넘치지만 눈에 띄게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호시탐탐 암중에서 어떤 짓을 꾸밀지 몰래 특별히 관찰했다.

양자 간의 휴전이 약속돼 있어 굳이 건들지 않았다.

그래도 암암리에 제 신경은 장태산에게 쏠렸다.

놈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간 짜 놓은 판이 흔들렸다.

차일드 가문의 수장을 아사신의 수렁에서 구출했다.

그 일로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보수를 대가로 받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 역시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 보이는 행보는 한국에서 학교 정도나 다니고 있던 장태산.

“장립과 조우한 직후 벌어진 일입니다.”

“장립…….”

리장창이 쓴 입맛을 다셨다.

장태산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는 장립.

최근까지 미국에서 애를 키우며 조용히 살았다.

웬일인지 그는 대내외적인 일보다 가정생활을 더 중시했다.

여러 번 중국 입국을 종용했지만 매번 완곡하게 거절했다.

지금은 육아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진행 중이던 투자 사업은 무리 없이 굴러갔다.

그 틈에도 맡은 바 일은 꼼꼼하게 처리했다.

뿐만 아니라 상무위원들에게 때가 되면 빠지지 않고 환단을 보내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 일 하나만으로도 장립의 입지는 줄지 않았다.

도리어 보이지 않는 힘을 과시하며 가늠하기 힘들 만큼 기세가 커졌다.

지금에 와서는 천하의 리장창도 장립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됐다.

그가 보낸 환단은…… 약효가 대단했다.

“찝찝합니다…….”

제갈유량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흐렸다.

함축적 의미가 내포된 그의 발언.

“나도 그래. 여우같은 장태산 그놈이 어떤 말로 현혹했을지 몰라. 하지만 장립은 한국인이 아니잖아. 화교 출신이야. 몸에 흐르는 피는 거짓말을 못 하지.”

입만 열면 중화민족 부흥을 주장하던 장립.

다음 대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를 지명하며 호언장담했다.

당시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러 정보를 통해 그의 말이 사실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그 덕에 재빠르게 트럼프와 연줄을 만들었다.

일대일로 곳곳에 월가 자금도 보이지 않게 투입됐다.

어느 정도 믿음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인과 근본적으로 다른 중화민족의 피가 장립의 몸에 흘렀다.

“계산도 빠른 자입니다.”

“배짱도 좋지.”

단숨에 베이다이허를 휘어잡은 장립이었다.

그의 과거가 모두 밝혀진 마당에도 뭔가 꺼림칙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장립의 위상은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게 높고 높았다.

더욱이 그는 미국 시민권자다.

중국인들처럼 함부로 압력을 가하거나 했다가는 외교적 마찰로 일이 커질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미국은 능력 있는 자국 시민에 대한 보호가 철저했다.

“요원들을 파티에 보내놨습니다.”

“실수 없도록 해.”

“A급으로 포섭된 이들입니다.”

“미녀들인가?”

“맞습니다.”

“미인계 좋지. 이제 신혼도 물 건너갔으니까.”

장태산도 피가 끓는 나이였다.

물론 주변에 여자도 많았다.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리장창이 장립이라고 해도 지금 그의 모습처럼 살았을 것이다.

리장창은 아내에게 충실했다.

그렇다고 여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프랑스 귀족이다.

서로의 문화 차이로 결코 채워줄 수 없는 정서적 거리가 존재했다.

그때마다 중국 여인을 취했다.

중국에서는 상류층 취첩은 당연한 일 중 하나로 여겨졌다.

특히 공산당 고위직들은 과시욕이 넘쳤다.

권력과 돈, 욕망에 가장 충실한 자들이 바로 공산당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민의 평등은 허울 좋은 겉치레 주장일 뿐이다.

모택동을 비롯해 대부분 권력자들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도 남았다.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가는 제국의 부활.

중국 공산당이 바라는 건 자신들만의 평안과 행복이다.

“그리고 엘자그룹 측이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도와줘야지. 흐흐흐.”

음흉한 눈빛으로 묘한 웃음을 터트리는 리장창.

성과가 하나둘 드러났다.

중국에 투자된 한국 자본과 기술 대부분을 어렵지 않게 탈취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걸린 숙원.

이제 남은 건 한국 전자 기업들이 소유한 극비 기술만 빼내면 됐다.

그중 핵심은 엘자그룹.

내부적으로 분열된 적의 심장만큼 손에 쥐기 쉬운 먹잇감은 없었다.

“그럼 북경으로…….”

띠리리리리리리리리.

제갈유량이 말을 하는 사이 리장창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무척 단순한 벨소리다.

“어?”

리장창은 화면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틱.

빠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

- 형님. 동생 장립이 인사드립니다.

***

- 오! 립! 반갑네.

다분히 가식적인 리장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덩달아 비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오랜만에 공식적인 출장길에 나섰다.

적들에게 혼란이라는 폭탄을 직접 던지기 위해 몸소 행차했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 이해하네. 나도 키워봤지만 아이들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해는 개뿔.

클라라의 성장 시기 당시에 리장창은 집안일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들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하하. 당연한 일 아닌가. 우리는 형 아우일세.

리장창은 갈수록 뻔뻔해졌다.

말이 좋아 형 아우 사이지 냉정하게 말해 그는 나의 원수다.

그 사실을 전혀 짐작도 못 하고 있는 리장창은 이 순간만큼은 정말 불쌍해 보였다.

- 저 아저씨가 형님이 말하던 짱개 맞죠? 인의예지도 없는 본토인.

짱개에 대해 확실히 정의를 내려 교육시켜 주자 귀신은 도리어 자유로워졌다.

어차피 프랑스에서 자란 화교였던 귀신은 중국인 색이 진하지 않았다.

사랑을 위해 불나방처럼 몸을 던지고 살다간 장립.

리장창과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 할 수 있었다.

“형님.”

- 무슨 할 말 있나?

“술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 술?

갑작스러운 제안에 리장창이 살짝 당황하며 되물었다.

“긴히 드릴 말씀도 있고…….”

적당한 순간에 미끼를 던졌다.

장립은 그동안 이런 찬스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때때로 환단을 뿌려 은혜만 축적해 놨다.

- 중요한 일인가?

“물론입니다.”

- 그럼 만나야지. 지금 어딘가.

천하의 리장창도 내가 있는 곳을 몰랐다.

“홍콩은 언제 봐도 야경이 멋집니다.”

- 설마 홍콩?

“곧 착륙합니다.”

- …….

리장창이 입을 다물었다.

장립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정보를 손바닥에 놓고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시망에서 이미 벗어나 있는 장립.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형님?”

- 아, 알겠네! 공항으로 사람을 보내겠네.

“알겠습니다.”

- 하하하. 저녁을 기대하게.

리장창이 호탕한 척 다시 웃음을 찾았다.

“마침 배가 고파오던 참입니다.”

리장창의 장단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었다.

고오오오오오.

그사이 자가용 비행기는 기수를 낮췄다.

눈에 들어오는 화려한 홍콩 야경.

오늘따라 더욱 강한 욕망의 불꽃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장립?”

“네.”

“언제?”

“지금 막 도착해서 리장창의 사람들이 데려갔다 합니다.”

“흐응……. 그래?”

오늘도 평소 즐겨 입는 붉은 치파오 차림의 홍린.

붉은 옷자락 사이로 하얀 허벅지를 내놓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애나 보던 장립이 왜?’

생각할수록 아까운 남자였다.

짧은 시간 인연이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고위 공산당원 전체를 흔들어 놓았던 인물.

상해방과 태자당, 공청단의 주인들이 장립이란 사람에게 목을 맸다.

장립의 교묘한 처세술과 따라가기 힘든 배짱,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환단 제공은 매력 그 자체일일 수밖에 없었다.

홍린도 몇 번 계획적으로 그를 유혹했지만 장립은 넘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왕정의 첩으로 살기에는 자신의 미모와 인생이 아까웠다.

장립만 허락한다면 그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한국 여자와 눈이 맞아 쌍둥이 아빠가 돼 버린 장립.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작업할 틈이 없었다.

아쉬움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베이다이허에 참석했던 여러 공산당 가문의 여식들 입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희망고문만 남기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런 장립이 다시 홍콩에 나타났다.

‘기회야!’

홍린은 최근 외롭고 두려웠다.

상무위원 왕정의 권한은 그사이 더 축소됐다.

자신을 대하는 홍콩 관청 공무원들이 은근한 행동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처럼도 홍린을 우대하지 않았다.

슈건핑과 태자방이 그만큼 상해방을 옥죄었다.

이대로라면 상무위원인 왕정의 목숨도 위태로웠다.

상해방과 관련된 사업가와 거물급 지방 공무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숙청됐다.

재산을 빼앗기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빠르게 상해방의 비자금이 해외 계좌로 옮겨졌다.

그럴수록 홍린도 덩달아 바빴다.

홍콩에서 상해방 비자금을 관리하는 양광과 양소려 또한 정신없기는 마찬가지.

아직 홍콩까지 슈건핑 세력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지만 언제 손아귀에 들지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묘하게 홍콩까지 중국 본토 손길이 거침없이 미쳤다.

그 와중에 홍콩을 찾은 장립.

‘미국으로 안전하게 갈 수만 있다면…….’

홍린은 최근 들어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눈이 주변에 있음을 알고 있다.

상무위원의 첩은 국가 기관에서도 암암리에 관리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왕정이 숙청을 당하게 되면 당연히 그녀도 같이 끌려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고위직과 달리 첩들은 한낱 파리 목숨과 다르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잘못 보이면 인체의 신비에 나오는 박제 인간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수고했어.”

“넵!”

“이건 용돈.”

“감사합니다.”

홍린이 구축한 홍콩 내 인맥.

정보원이 두툼한 봉투를 받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다른 놈들이 빼돌리기 전에……. 만나야 해.”

이미 그의 출현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홍콩뿐만 아니라 북경 쪽에도 소식이 들어갔을 장립의 홍콩행.

그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목숨을 걸 고위 공산당원들이 많았다.

각 세력과 손이 닿아 있는 장립은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인맥의 보물 창고였다.

라아라라라~♫.

홍린의 스마트폰에서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홍린의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띠릭.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누르는 홍린.

그 순간 들려온 듣기 좋은 남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 누님. 잘 지내셨죠?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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