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2장. 정(情)(4). (1,084/1,284)

1102장. 정(情)(4).

“후우우.”

상무위원실에서 나와 차에 오르기 전 담배를 무는 왕수룡.

속이 타는 듯 길게 담배를 빨았다.

“젠장……. 곧 떨어질 낙엽 주제에 큰소리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만날 때마다 칭찬은커녕 일 못한다는 구박만 하는 왕정이 극도로 싫었다.

물론 8촌 형님 왕정 덕분에 집안이 일어선 건 인정한다.

중국에서 고위직 관료를 친척으로 두게 되면 8촌까지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덕에 왕수룡은 그동안 배에 기름이 차 배고픔도 잊은 지 오래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웬만큼 먹고 살 만했다.

왕정의 눈에는 들지 않지만 눈치도 빨랐다.

상해방이 기우는 달이라는 것쯤은 진작 알아챘다.

슈건핑 쪽에서 왕수룡 자신도 주시하고 있었다.

왕수룡 주변을 탐문하고 얼쩡거리는 자들이 요새 부쩍 눈에 띄었다.

상해방은 잘나가던 과거와 달리 요즘 속내가 복잡하고 조마조마한 입장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주변에 쓸 만한 상해방 인맥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왕수룡 자신의 차례가 곧 올 게 확실했다.

왕정과 같이 엮여 모아둔 돈도 다 써보지 못하고 감방에서 평생 썩게 될 수도 있었다.

상무위원인 왕정이야 감옥에서도 호화롭게 생활할 수 있겠지만 자신은 처지가 달랐다.

각자도생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한순간 한순간 살아남을 궁리에 머릿속이 바빴다.

우선 아이들 교육을 핑계로 아내를 먼저 호주로 보냈다.

시기에 맞춰 영주권도 취득했다.

그간 상당한 금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 비밀 계좌에 넣어 두었다.

상해방의 자금을 관리하는 왕정이 떨어트린 콩고물이 작지 않았다.

콩고물 정도라 해도 일반인은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다.

“첩들도 믿을 수 없고…….”

왕수룡도 축첩을 통해 재산을 관리했다.

상류층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다.

그러나 왕정처럼 왕수룡도 주변에 믿을 만한 이가 드물었다.

사방에 도적들뿐이다.

“흐흐. 그래도 이번 일만 잘 풀리면 끝난다.”

왕수룡은 동룡제과 작업이 왕정 밑에서 처리하는 마지막 일임을 직감했다.

식품감독국의 힘까지 사용됐다.

지방 정부를 비롯해 환경청까지 동원된 일이다.

더 이상은 무리다.

왕정의 눈치를 보느라 더 봐주기는 힘들 것이다.

“1년이면 충분해. 1년!”

왕수룡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동룡을 삼켜 1년 안에 러시아와 베트남으로 투자금을 빼돌릴 계획이다.

그쪽과도 대충 말을 맞춰놓은 상태다.

“나도 이번 기회에 같이 세탁하는 거야. 흐흐.”

왕정을 돕는 척하면서 자신의 자금도 세탁하려 계획하고 있는 왕수룡.

틱.

담뱃재를 가볍게 날렸다.

“이제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아직까지는 왕정이 장식품 호랑이 가죽은 아니니까.”

중국 공무원들도 시류를 읽고 움직였지만 상무위원이라는 명함은 끝물까지 꽤나 쓸 만했다.

그의 명함으로 모든 일들이 신속하게 처리됐다.

슈건핑 천하로 보이지만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곳이 중국 공산당의 정치판이다.

하루아침에 슈건핑이 독살이라도 당하게 되면 당장 장택민이 다시 실권을 쥘 수도 있다.

“동룡제과 사장이 반반하던데……. 이번에 접대 한번 받아볼까. 흐흐흐.”

중국 측 투자 사업자인 왕수룡.

탁월한 미모로 기억에 남는 동룡제과 안주인을 떠올렸다.

며칠 후면 중국에서 보게 될 얼굴.

비릿한 음심이 가슴 속에서 일렁였다.

***

‘정말 방법이 있는 거겠지?’

주미란의 심장이 몹시 뛰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지금은 붙잡아야 할 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카 장태산에게 전화를 했다.

이것저것 얽힌 게 많아 부끄럽게 면이 살지 않았지만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해외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 사업체를 빼앗긴다면 한국 동룡제과도 타격을 입고 무너질 수 있었다.

사나운 승냥이 같던 오빠 밑에서 겨우 빼낸 사업체였다.

주미란의 개인 목숨뿐만 아니라 자식들의 미래까지 줄줄이 엮여 있었다.

“태산아, 정말 가능해?”

주설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보다 아들을 믿지만 중국 쪽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과거 집까지 찾아왔던 여자친구 클라라의 집안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중국에 대한 적대심이 컸다.

그러다 보니 중국과 이렇다 할 인맥이 없었다.

“물론입니다.”

“조건 말해봐. 이모가 다 들어줄게!”

주미란은 애가 탔다.

사업적 밀당의 기술 따위는 이 자리에서 필요 없었다.

주미란에게 있어 지금은 조카 장태산이 슈퍼갑이었다.

“주식을 넘겨주십시오.”

“뭐라고? 주……식?”

주식이라는 말에 주미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카 장태산의 악명은 이미 경제계에서 자자하게 소문이 나 있던 터였다.

몰래 주식을 모아 그룹 회장들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쳤다.

조카 장태산의 철퇴를 맞고 무너지지 않는 자들이 없었다.

오빠도 그렇게 당한 케이스다.

거지꼴이 되어 지금 정신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설마 나까지…….’

주미란은 속으로 몸을 떨었다.

여동생에게 용서를 받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어찌 변할지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다급한 상황임에도 장태산에게 선뜻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괜히 잠잠한 조카를 자극해 탈이 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이모. 저 못 믿으세요?”

장태산이 차분한 눈빛으로 조용히 웃었다.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

조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장난기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섭다.’

깍듯하게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고 있지만 자신이 조카 앞에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운영하는 사업 규모가 비교 불가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카가 움켜쥐고 있는 그룹 산하 사업체만도 못한 동룡제과.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언니. 태산이 믿어봐.”

여동생이 옆에서 거들었다.

자신과는 살아온 인생이 달랐다.

이 또한 크나큰 부끄러움으로 주미란을 자극했다.

“아무리 이모 조카 사이라 해도 바로 믿기는 그렇죠?”

장태산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러시아 쪽에서는 반응이 없었나요?”

“있었어. 갑자기 러시아에서도 세무조사를 한다고 통보가 왔어.”

“짱개들이 치밀해요. 걔들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요. 이빨을 들이밀 때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죠.”

조카는 중국인 습성을 잘 알고 있는 눈치다.

웃는 얼굴로 마주하지만 결코 만만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꽌시를 맺어도 몇 번의 테스트를 마쳐야 했다.

“그럴 거야. 중국인들은 오래 알수록 상대하기가 더 힘들더라.”

“러시아 쪽은 지금 바로 막아줄게요.”

“???”

“조건을 걸 때는 이쪽도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죠.”

“그게 쉽지 않을 거야. 러시아도 권력관계가 복잡해.”

주미란은 얘기가 길어질수록 속이 답답했다.

베트남이야 별 문제 없지만 러시아도 중국과 상황이 마찬가지였다.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한번 찍히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왔다.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십시오.”

장태산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윽.

스마트폰을 꺼내는 조카.

티디딕.

가볍게 번호를 눌렀다.

띠이이이이.

스피커폰을 통해 들려오는 간결한 신호음.

- 이게 누굽니까!

익숙한 러시아 말이 들려왔다.

주미란은 러시아 진출 때문에 러시아어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미하일, 잘 지내시죠?”

- 물론입니다. 다니엘님 덕분에 요즘 아주 평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미하일이라는 남자가 누구인지 주미란은 몰랐다.

그러나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에너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

“보스께 조만간 사냥하러 간다고 전해 주십시오.”

-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차르께서 몇 번이나 물어보셨습니다.

‘차르? 설마…… 그 차르?’

통화 내용을 듣다가 주미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러시아에서 차르라 불리는 존재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10년 넘게 러시아를 다스리고 있는 21세기 차르.

“미하일. 부탁이 있습니다.”

- 부탁요? 말씀하십시오.

말을 하면서 장태산은 두 눈으로 주미란을 똑바로 직시했다.

“제 이모가 러시아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 이모라 하면…… 혹시 아리아 초코파이를 생산하는 동룡제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 차르께서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즐겨 먹는 간식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뭐야? 날 알아?’

주미란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통화하는 미하일은 푸틴의 최측근이 확실했다.

“그래요? 그런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 부, 불미스러운 일이라뇨?

미하일의 목소리가 몹시 떨리고 있는 게 그대로 전해졌다.

“중국 측과 연관된 누군가가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답니다.”

- 뭐라고요! 세무조사!

순간 미하일의 목소리가 격하게 높아졌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모가 슬퍼하는 모습이 마음 아픕니다.”

- 어떻게 그런 일이!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고 조치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내일 아침까지 마무리해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미하일.”

- 아닙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쉬십시오.

정중하게 인사한 미하일이 먼저 통화를 끝냈다.

마음이 몹시 바빠진 게 느껴졌다.

“들으셨죠? 내일 연락 올 겁니다.”

“태산아…….”

주미란은 갑자기 여동생이 무척 부러웠다.

자신이 낳은 새끼보다 한참 어리건만 누구보다 강한 남자로 성장한 조카.

동시에 마음 한켠이 따스해졌다.

못난 이모가 분명한데도 진심으로 챙겨주고 있는 가족 간의 정(情)이 느껴졌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통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계산기를 두들기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동룡제과 10%를 제 친구에게 파십시오. 그럼…… 기적 같은 마법을 보시게 될 겁니다.”

회귀의 전설 3부

가장 큰 사업.

“도대체 어떤 멍청한 새끼야!!!”

통화를 끝내고 미하일 패트로프는 비밀 안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 질렀다.

상대도 봐가면서 건드려야 하는 법이다.

방금 통화한 한국인 다니엘 장이 누구인가.

더 이상 과거 홍콩에서 목숨 따위를 구걸하던 자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초월적 능력을 자랑하며 급성장했다.

그리고 어느 틈에 차르가 그와 의형제를 맺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본디 황제는 외로운 법.

차르가 된 뒤 더한 고독을 감내해야 하는 늑대가 됐다.

넉넉해 보이는 웃음 뒤에 감춰진 KGB 출신의 차가운 심성은 여전했다.

작은 실수라도 저지른 자는 가차 없이 형벌을 받았다.

결코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지 않았다.

미하일 패트로프도 그 수많은 예에 속하는 한 대상일 뿐이다.

다행히 다니엘 장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우연한 인연의 끈 하나가 만들어 준 쾌속 승진.

여기서 무너지게 된다면 과거 자리 이상의 밑바닥 지옥 생활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 장에 대한 러시아 사업 이권 보호가 무엇보다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투자 금액만 해도 수천억 달러를 넘었다.

모스크바 유원지 투자는 물론 시베리아 횡단 고속철도, 극동 개발 사업까지 다니엘 손에 맡겨졌다.

다니엘과 틀어지는 순간 러시아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런 다니엘의 이모를 건드린 무지한 놈이 나타났다.

“중국인 놈들 돈은 함부로 처먹지 말라고 그렇게 가르쳤건만!”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그러다 보니 암암리에 중국 자본이 상당히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문제와 그 폐단을 똑똑하게 경험했다.

러시아 부도 위기 때 쥐꼬리만 한 돈을 투입하고 수십수백 배의 자원을 갈취해갔다.

놈들은 총을 드는 순간 사채업자와 갱 이상의 폭력 집단으로 돌변했다.

게다가 지방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이 그런 중국인과 합작했다.

중국인들이 살았던 곳 구석구석에서 러시아 소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영혼도 팔아먹는 중국인들은 인정이라는 게 없었다.

차르 명령으로 싹 밀어내지 않았다면 국경 지역은 이미 중국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다.

국가 마찰을 피해 대형 조직원들을 총동원했다.

그 덕에 하루아침에 중국인들을 모두 몰아냈다.

저항했던 자들에 대한 자비는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심이 심리적 밑바닥에 깔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돈을 받아먹고 허튼짓을 하는 놈들이 아직도 존재했다.

삐이잇.

- 부르셨습니까.

“아리아 초코파이를 생산하는 동룡제과를 털려는 놈들이 있다. 알아봐.”

- 넵!

“지금 바로 즉시!”

-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마무리 짓지 못하면 당장 내일이면 차르의 귀에 모든 상황 보고가 들어갈 것이다.

그에 앞서 다니엘이 먼저 기회를 준 것이다.

차르와 직접 통화할 수도 있었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벌어 준 다니엘.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다니엘 장…….”

마음 깊은 곳에서 고마움을 표하는 미하일 패트로프.

그는 확실한 한 가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파면 팔수록 차르보다 더 냉정하고 무서운 남자라는 것.

“절대 다니엘 장과 적으로 돌아서면 안 돼. 절대!”

***

- 아리아 초코파이 평생 공짜로 먹는 겁니까? 흐흐흐.

- 감축드립니다. 장 신선님. 본래 먹을 것이란 많을수록 좋은 법입니다.

귀신과 정모 신이 신났다.

그들 세상에서도 아리아 초코파이가 대세인 모양이다.

“그래 알았어……. 태산이 너에게 10% 넘길게.”

이모가 결단을 내렸다.

단연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그만큼 날 믿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자신의 오빠를 비롯해 나와 척을 진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재벌그룹과 운영 책임자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고 있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소문을 더는 막을 없게 됐다.

그렇다고 일반 보통 사람들까지 알 정도로 소문이 퍼지지는 않았다.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기레기 라인 정도까지 똑똑하게 전달된 정도다.

철저하게 장막 뒤에 서서 균형의 추를 들고 저울질하는 자가 된 셈이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의 균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들 중 1인으로 당당하게 섰다.

이게 다 야훼의 신전을 공격한 아사신 덕분이다.

로리아나의 승인 아래 거금을 획득했다.

서로가 배려하는 우군이 됐다.

“저에게 아닙니다. 제 친구가 주주가 될 겁니다.”

“엄마가 아는 사람이야?”

엄마가 궁금한지 물었다.

“아니.”

의외로 이모 얼굴에 근심이 살짝 드러났다.

10% 비율이면 대주주다.

세상에 믿을 자가 드물다는 걸 두 분 다 잘 알 것이다.

“이모. 제 친구 부자입니다. 동룡 주식 10%는 그 친구가 굴리는 자금 규모에 비하면 모래알 수준일 뿐입니다.”

“이모도 모르는 사람이야?”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묻는 이모.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잊혀져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절대 잊힐 수 없는 사람이죠.”

말이 나온 김에 그를 떠올렸다.

요즘 정신없이 바쁜 오래된 친구.

역시 그를 생각하면 유쾌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

“우아아아앙! 배고파! 배고파요!”

“시아. 쉬아 했어요. 아빠빠.”

“어? 미안.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금방 해줄게.”

타다다다닥.

임성철 회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아내가 외출했다.

집안일을 보는 도우미와 함께 사이좋게 쇼핑을 나갔다.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일이 연속 터졌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이 폭풍 같이 사고를 쳤다.

누구를 닮았는지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는 아들 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음에도 빵과 시리얼을 극구 거부했다.

자신의 입맛을 빼닮아 완전 한식 체질이었다.

게다가 배가 고프면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되든 짜증을 냈다.

밥을 챙기는 사이 시아는 오줌을 쌌다.

요즘 기저귀를 떼고 배변 연습 중인 시아.

밥 준비하는 데 정신이 팔려 화장실 가자는 소리를 못 들었다.

“밥! 밥! 밥 주세요!”

아들이 식탁으로 다가와 괴성을 질렀다.

낮잠을 자고 난 뒤에는 꼭 간식을 챙겨먹는 아들.

찰팍찰팍.

바지에 오줌을 싸버린 사아는 바닥에 흥건한 오줌을 가지고 물놀이에 빠졌다.

“오…… 신이시여.”

임성철 회장은 절로 신을 찾았다.

과거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혼란 속에서 벌어지는 육아의 고통.

자신이 아이들을 키울 때 육아는 전적으로 여자들 몫이었다.

또 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으로 생활했다.

집에 거주하는 가정부만 다섯 명이 넘었다.

당시에도 대한민국 갑부 순위에 당당히 들었기에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올 때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쑥쑥 컸다.

사업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귀엽던 새끼들은 장성해 각자의 못을 해냈다.

하지만 다시 선물 받은 지금의 인생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전생 인연이었던 아내와는 아직도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었다.

함께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끈 힘이 솟았다.

지난 생에 함께하지 못했던 삶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자유롭게 사랑했다.

문제는 아이들.

자식을 처음 직접 키워보는 임성철 회장은 멘붕에 빠질 때가 많았다.

자신의 상식대로 육아는 진행되지 않았다.

계산하지 못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됐다.

더욱이 쌍둥이다.

아들은 몸으로 노는 걸 좋아했다.

딸과는 인형 놀이를 해주거나 동화책을 들려줘야만 했다.

아내가 최선을 다해 도왔지만 그녀도 힘이 부치긴 마찬가지.

베이비시터 겸 도우미가 손을 보탰지만 부모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 식은땀 범벅이 됐다.

밥을 먼저 줘야 할지 옷을 먼저 갈아입혀야 할지 감을 못 잡았다.

아직도 육아에만큼은 손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차라리…… 일이 편했어.”

과거 회사에 파묻혀 내내 일에 매진하던 순간이 그리워지는 임성철 회장.

세계를 상대로 싸우던 호랑이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100만 명이 넘는 사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지금은.

“밥 주세요! 밥! 밥! 밥!”

“오빠 쉬. 쉬이이이이이.”

돌이 지난 철부지 꼬맹이들과 씨름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딸깍.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구원의 천사.

“나 왔어요.”

아내가 쇼핑을 마치고 돌아왔다.

잠시 육아를 멈추고 바람을 쐬고 돌아온 아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여보……. 나 좀 도와줘.”

임성철 회장은 바로 SOS를 날렸다.

“엄마. 바아아아아압!”

“아들. 배고프지? 엄마가 바로 밥 줄게.”

아내는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싱긋 웃으며 아들을 안았다.

“립. 시아 욕실에 가서 씻겨줘요. 빨아 놓은 옷은 옷장에 있어요. 이모는 일이 있어 바로 퇴근했어요.”

“충성!!!”

임성철 회장은 바로 충성을 외쳤다.

한때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졌던 그룹 회장님보다 명령받는 지금이 더 나았다.

바로 문제가 해결됐다.

“배고프니까 이거 먼저 먹고 있어.”

“마마. 밥!”

아들이 간식을 내미는 엄마를 보고 활짝 웃었다.

“공주님은 목욕 좀 하실까요.”

임성철 회장은 시아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라라라~♬”

아내의 기분 좋은 허밍 소리가 귀에 들렸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밥을 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아내.

촤아아앗.

적당히 미지근한 물로 시아를 씻겼다.

“아빠빠.”

물놀이를 좋아하는 시아가 임성철 회장을 보고 활짝 웃었다.

귀여운 보조개가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집안에 평안이 찾아왔다.

배고픈 아들 준은 유아용 식탁에 앉아 이유식을 먹으며 암전해졌다.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시아는 인형을 잡고 인형 놀이에 집중했다.

그리고.

“수고했어요.”

번개같이 일을 처리한 서유나가 남편을 보고 웃었다.

“……아니야. 내가 뭘 한 게 있어. 당신이 수고했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부부는 서로를 향해 마음을 담은 말을 건넸다.

파바밧.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여보.”

서유나가 남편을 불렀다.

“응?”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제 당신 하고 싶은 일 하세요.”

“아니야. 난 아이들과 노는 게 행복해.”

“그래도 난 당신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죠.”

서유나가 남편의 마음을 헤아렸다.

집에서 소소한 일을 하느라 시간을 버리기 아까운 남자였다.

뉴스를 볼 때마다 남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경영 상식에 관한 발언은 서유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업이야.”

임성철 회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래도…….”

“걱정 마. 느낌에 조만간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정말요?”

“아마…….”

띠리리리리리릿.

그때 울리는 임성철 회장의 단조로운 스마트폰 벨소리.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임성철 회장.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장 회장. 무슨 일이야.”

회귀의 전설 3부

가장 큰 사업(2).

-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입금될 겁니다.

“고맙소. 매번 이렇게 신경 써주고.”

- 아닙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렇죠. 좋은 일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게 의리죠. 하하하하.”

- 마무리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한두 번 하는 일도 아니고.”

-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성과로 보여드리죠.”

띠릭.

통화가 끝났다.

“속이 바짝 달았군. 흐흐흐.”

러시아 연방 국세청 조사 2국장 아나톨리 바지시니코프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국가를 막론하고 요직으로 분류되는 국세청.

러시아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러 연방 국가들의 사업체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연방 국세청.

러시아 역시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총리를 선출하지만 실정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르가 권력을 잡은 뒤 보이지 않게 독재를 펼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방 국세청은 핵심 권력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돈과 권력을 동시에 주무를 수 있어서 연방 국세청에 몸담으려는 자들이 줄을 섰다.

그중에서 가장 충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자를 차르가 직접 뽑아 수장에 임명했다.

아나톨리 바지시니코프도 어렵게 이 자리에 올라왔다.

러시아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조사국.

IT가 발달했지만 아직도 러시아 세금 징수는 과거의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뇌물을 바치면 세금이 팍팍 줄어들지만 반대로 찍히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기 일쑤다.

특히 이번처럼 한국의 작은 기업 같은 경우라면 더욱 다루기 수월했다.

연방 정부에서 신경 쓰는 한국 재벌그룹 계열이 아니다.

아리아 초코파이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는 있지만 말 그대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없는 죄목을 뒤집어씌우면 주인 바꾸기는 식은 죽 먹기만큼 쉬웠다.

중국 고위 관리층이 아리아 초코파이를 노렸다.

“상해방 자금이 확실해.”

브로커를 통해 의뢰가 들어온 건이다.

방금 전에 통화한 자는 중국 측 권력자들이 자주 중개자로 애용했다.

특히 상해방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러시아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상당히 많았다.

인접한 국가이다 보니 중국 측 싸구려 공산품이 흘러들어와 러시아 서민들의 애용품으로 사용됐다.

그들을 통해 수시로 탈세와 자금 세탁이 이루어졌다.

러시아에서도 웬만한 수준은 눈감아 주었다.

미국과 서방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측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무기 구매의 최대 고객이기도 했으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니 크게 문제만 없다면 중국 측과 손을 잡고 그쪽 요구대로 일을 처리하는 게 좋았다.

뭐니 뭐니 해도 비자금이 넉넉해야 승진하는 데도 유리했다.

차르의 최측근이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입금되면 요트나 하나 살까……. 알리사와 휴가를 같이 보내야겠어.”

짭짤한 부수입을 기대하며 아나톨리는 앞으로 펼쳐질 환상의 시간을 꿈꿨다.

불륜 상대인 알리사는 그의 비서였다.

아직 아내도 눈치 채지 못한 관계였다.

“300만 달러……. 300만 달러. 흐흐.”

곧 입금될 돈을 생각하며 아나톨리는 흥분된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뭐야? 저 차들은?”

큰 창문 너머로 조사 2국장 방에서 훤히 보이는 건물 현관.

썬팅이 진한 특수 차량들이 거침없이 현관 앞을 막아섰다.

우르르르.

일단의 덩치 큰 남자들이 차에서 내렸다.

약 30여 명.

“무슨 놈들이야?”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연방 국세청은 러시아 검찰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기관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찾아온 불청객들.

그들은 무장 경비들의 제재도 받지 않고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쯧……. 누가 또 못 먹을 것을 먹었나보군. 멍청하긴.”

아나톨리는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권력자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든 놈이 연방 국세청에 있는 게 분명했다.

덜컹.

느닷없이 문이 열렸다.

새파랗게 질린 알리사가 다급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알리사, 왜 그래?”

“국장님 FSB에서…….”

알리사가 벌벌 떨며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애써 열려는 그 순간.

“FSB???”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나톨리 조사 2국장.

타다닥.

그때 복도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우르르 안으로 들어서는 일단의 남자들.

“연방 국세청 아나톨리 바지시니코프 조사 2국장 맞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맨 앞에 선 남자가 물었다.

“맞는데……. 당신들 누구야! 내가 누군 줄 알고!”

연방 국세청장을 뒷배경으로 두고 있는 아나톨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스윽.

안경을 벗는 남자.

“허엇!”

아나톨리가 상대를 알아봤다.

차르가 주최한 연회에서 근접 경호를 맡고 있던 남자였다.

“FSB 소속 미하일 패트로프. 널 국가 반역 및 뇌물죄로 긴급 체포한다.”

“구, 국가 반역죄! 내가 왜…….”

뇌물죄까지는 이해하지만 국가 반역죄라는 말에 아나톨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역죄라면 최소 형량이 무기징역이다.

FSB가 직접 이렇게 나타났다면 모든 게 끝났다는 의미였다.

“쥐새끼 같은 연방의 반역자 새끼! 감히 주제도 모르고 차르의 동생 가족을 건드려? 그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란다면……. 뭔가 큰 착각이지.”

“차르의 동생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마지막까지 저항해보는 아나톨리.

“그건 몰라도 돼. 어차피 넌…… 뒈졌어. 뭣들 해! 이 반역분자 압송해!”

“넵!”

함께 온 사내들이 아나톨리에게 다가왔다.

“아니야! 난…….”

거칠게 반항하는 아나톨리.

퍼억! 퍽! 퍽!

경고도 없이 가해지는 거친 폭력.

순식간에 잘나가던 연방 국세청 조사 2국장 아나톨리는 피투성이에 만신창이가 됐다.

“난…….”

눈알이 반쯤 풀리는 중에도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틈에도 눈에 들어오는 여비서 알리사.

아나톨리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독사라도 마주한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고맙네. 장 회장!”

“네?”

나를 만나자마자 그가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로 입을 여는 임성철 회장.

몇 달 사이에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다.

“얼굴이 상했습니다. 이제 신혼은 지난 것 같은데…….”

“그게…… 에휴.”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무슨 일 있습니까? 장씨 집안 쌍둥이들은 별일 없죠?

미국에 왔다.

한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사신 때문에 제대로 미국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로버트 라이언과도 만나봐야 한다.

특히 이모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성철 회장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사방에 적이 많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됐다.

나를 노리고 있는 그들을 완벽하게 속여야 한다.

나파밸리에 위치한 와이너리 별장에서 조우했다.

“잘 크고 있으니까 걱정 말게.”

- 흐흐. 귀한 보배들 아닙니까.

자신이 경작한 자손도 아닌데 귀신은 은근히 쌍둥이에게 집착을 보였다.

“귀한 보배들 맞지…….”

임성철 회장의 말에 뭔가 의미가 담겼다.

“장 회장.”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십시오.”

날 지그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임성철 회장.

“최대한 결혼은 늦게 하게.”

“사모님이 구박합니까?”

“그게 아니라…… 그게 참 좋은데……. 그게 말이야.”

줄어드는 말끝에 여러 뜻이 내포된 듯했다.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알고도 남았다.

일평생 사업에 주야장천 매달리던 분이 평범한 가정생활을 해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몸은 젊지만 정신은 살아온 세월의 경험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손주도 아닌 어린 자식들 뒷바라지를 이제 하려니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히 가중됐을 것이다.

- 배부른 소리 하십니다. 난 살고 싶어도 못 누리는 인생입니다.

귀신이 임성철 회장의 말을 듣고 투덜거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했다.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일이란 없다.

“미안해. 내 잠시 투정을 부려봤어.”

임성철 회장이 귀신의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 많이 컸죠?”

“그럼. 자고 나면 쑥쑥 큰다네.”

“시간 내서 내공으로 마사지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야 고맙지!”

“받고 나면 살면서 앓는 웬만한 병은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특히 성장판이 활짝 열려 키가 쑥 클 겁니다.”

“오! 정말인가!”

키에 있어서 약간의 열등감을 갖고 있는 임성철 회장.

그의 눈이 반짝였다.

“회장님.”

“말하게.”

“이제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내 휴가가 끝났나?”

LA 시내에 투자 회사 사무실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지금은 육아에 더 열성인 임성철 회장.

“비밀 계좌에 담겨 있는 비자금 불리셔야죠.”

“그래야지.”

“중국 측과도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기대하는 바이네.”

“이번에 중국 권력층과 접촉할 생각입니다.”

“내가 갈까?”

“아닙니다.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몰랐다.

임성철 회장의 평범한 능력으로 감당할 수준의 일이 아니다.

“짱개들이 고약스럽지.”

- 허억! 설마 그 짱개가 그 짱개입니까?

귀신이 이제야 ‘짱개’라는 말의 뜻을 알아챘다.

미안하지만 맞다.

- 와아아아. 듣고 보니 기분이 안 좋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중국인들에게 그보다 어울릴 만한 명칭은 아직 없다.

어차피 그들도 한국인들을 소수 민족 취급하며 ‘가오리 빵즈’라 부른다.

지구상 어떤 국가도 인접한 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곳이 없다.

수시로 이웃 땅을 노리고 전쟁을 벌였다.

터키와 그리스, 독일과 러시아,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멕시코, 인도와 파키스탄 등등.

유전자에 각인된 상대에 대한 증오는 한 민족이 말살되거나 강제 융화되어야 끝날 것이다.

“이곳에서 편히 쉬고 계십시오.”

“몸뚱이를 바꿔야겠군.”

임성철 회장은 눈치가 빨랐다.

“휴가 기간이라 생각하십시오.”

“집에 전화해도 되나?”

“가능합니다.”

“들킬 염려는?”

“특수 위치 변환 장치가 작동됩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야…….”

임성철 회장이 안심되는지 씨익 웃는다.

거기에 선물이 하나 더 있다.

“쉬시는 동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

“……제 대신 놀아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중국에 가 있는 동안 떠들썩하게 파티를 열어 주십시오. 돈 걱정 마시고 뜨겁고 화끈하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주십시오.”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듯 날 지그시 바라보는 임성철 회장.

- 콜! 전 무조건 콜입니다!!!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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