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장. 정(情)(2).
“그깟 과자 회사 하나에 우리까지 움직여야 해?”
“아리아잖아. 그리고 그깟 게 아니라 중요한 문제야. 러시아 국민 과자가 됐어. 거기에 베트남에서도 최고 인기야.”
“쳇…… 난 달고 싫던데.”
“솔직히 말해서 맛있잖아. 특히 얼려 먹으면 마시멜로가 아이스크림처럼 변해. 그게 또 완벽해.”
“우리도 만들면 되잖아.”
“제조 기술 보안이 까다롭잖아. 그리고 굳이 공장까지 다 인수할 수 있는데 뭐하러 개발해.”
“그런가?”
“위에서 시키는 일이야. 우리는 그저 할 일만 하면 돼.”
“흐흐. 그건 그래.”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 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이라 불리는 CFDA 산하 식품안전 관리부 2부 소속 공무원들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일에 대해 환담을 나눴다.
멜라민 분유를 비롯해 의약품 파동으로 민심이 이반됐다.
가짜 분유로 가정마다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 아이들이 바보가 됐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민심이 격동했다.
거기에 더해 고위 공무원이 개입된 가짜 의약품 제조까지 문제가 됐다.
공산당 정권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으로 인민들이 분노했다.
그 여파로 탄생한 CFDA.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가 엄청났다.
2015년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엄격한 식품안전법 개정안이 공표됐다.
먹거리나 의약품으로 장난할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사업체는 물론 재산이 바로 몰수되거나 현장이 폐쇄됐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식품안전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 보니 중국에서 식품이나 의료 사업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렸다.
걸리면 사업이 망하는 것은 둘째치고 사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권한을 쥔 CFDA 소속 공무원들이 한 업체에 관련한 서류를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지금도 중국에서 따라올 만한 과자가 없다고 평가받는 초코파이의 선방.
얼마 전까지 잘나가던 회사가 순식간에 진흙탕에 빠졌다.
중국에서는 외국인과 외국 법인은 반드시 합자 회사를 설립해야만 했다.
사업 초기에는 우호적이었다가 중반이 넘어가면 대부분 위기를 겪는다.
노하우를 습득한 중국 측 합자 회사들이 시기를 맞춰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상호 협력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도덕이나 인의예지도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조용히 협박하거나 지분 인수를 주장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국가 권력까지 이용했다.
아리아 초코파이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제 완벽하게 기술을 습득한 합자 회사가 합병을 노렸다.
아직까지는 동룡제과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베트남 지분까지 중국 측에서 요구하고 있는 실정.
한마디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었다.
의심 없이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자 발끈하고 나왔다.
요구를 거절한 대가는 참혹했다.
중국 측 합자 회사 직원이 초코파이에 이물질을 삽입했다.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가장했지만 관련 직원들이나 공무원들은 진실을 알았다.
동룡 측에서는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러시아 쪽도 연결됐다고 했지?”
“아마도 그런 것 같아.”
“혹시 동룡 쪽에서 사용할 만한 꽌시가 있는 건 아냐?”
“꽌시? 상대는 상무위원이야. 그게 통할 것 같아?”
“맞아. 내가 잠시 그걸 잊었군.”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도 호랑이야. 우리는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해.”
“쳇. 그깟 상해방이 뭐가 두렵다고.”
“양 주임! 쉿!”
상해방이라는 말에 놀란 대화 상대가 사색이 되어 양 주임의 입을 틀어막았다.
양 주임도 순간 깜짝 놀랐다.
속에 있는 말을 소리 내 뱉고 말았다.
아직도 진행 중인 중국 권력 다툼.
슈건핑 사람들이 상해방 고위 공무원들을 상당수 척결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일개 주임 정도 따위는 바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누, 누가 들은 건 아니지?”
양 주임이 불안한 시선으로 사방을 살폈다.
다행히 다들 바빠서 두 사람의 대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네 목이 두 개라도 돼?”
“미안해……. 그만 실언했어.”
“조심해. 얼마 전에도 입을 잘못 놀리다 순시원 급도 다음 날 자리를 뺐어.”
비 지도자급 최고 직급인 순시원도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판이다.
“휴우. 고맙네. 장 주임 자네가 날 살렸어.”
“알았으면 저녁에 술이나 사.”
“걱정 말게. 오늘은 화끈하게 내가 대접하겠어.”
양 주임이 허리를 펴고 말했다.
“적당히 먹어. 탈 나면 큰일 나.”
“걱정 말게. 이런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뒤로 뇌물이 들어와도 결코 혼자 먹지 않았다.
적당히 떼어 일부는 상부에 상납했다.
특히 이번에 추진하는 일은 위에서 먼저 지시가 내려왔다.
그만큼 안전도 보장되고 돈도 두둑이 받을 수 있어서 최고의 기회였다.
“그럼 공장 총경리를 구속 결정하자고.”
결정 난 듯 말하며 양 주임이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 했다.
“기다려봐. 위에서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오지 않았어.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찝찝해.”
장 주임이 눈치를 주며 말렸다.
“쳇. 한국 놈들 질기기도 해.”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지.”
“우리 인민들 덕분에 그동안 돈 벌었으면 어느 정도는 토해야지! 과거 같았다면 조공이나 바쳤을 속국 놈들이잖아!”
양 주임은 말을 하는 데 거침없었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나 소황제 대우를 받고 자란 지금의 공무원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어린 시절부터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라온 세대였다.
국가로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문화와 의식을 교육받았다.
미국을 상대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자 본격적으로 들이받으려는 본심을 내비쳤다.
세상 모든 국가를 발아래 놓고 만만하게 취급했다.
특히 중국 주변국들에 대해서는 과거 제국 시절의 영광을 재차 인정받으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다른 놈들보다 한국 놈들이 더 독하고 질긴 면이 있어.”
중국과 접하면서도 대대로 국가를 보존해 온 한국의 저력.
특히 한국 유학 경력이 있는 장 주임은 한국 국민에 대한 경계의 빛을 거두지 않았다.
“흥! 그래 봐야 가오리 빵즈들. 미국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일 뿐이야!”
양 주임은 장 주임과는 생각이 달랐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마음만 먹으면 당장 목을 움켜쥘 수 있는 상대 한국.
더 이상 과거처럼 기술과 자본을 구걸하기 위해 고개 숙이며 상대해야 하는 손님이 아니었다.
***
- 작업요? 왜요?
귀신이 의아한 듯 물었다.
막상 중국인이었던 귀신은 몰랐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 얼마나 무법천지인지 말이다.
“앉아서 차분히 말씀해 보십시오.”
이모를 떠나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핍박받은 한국 기업가의 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몇 달 뒤부터 당장 직면하게 될 문제들.
한국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생떼에 치를 떤다.
자신들이 먼저 펼쳐 놓은 거대한 그물 입구를 싹 닫아버리는 중국 공산당.
계획된 그물에 걸린 줄도 모르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이들은 느닷없는 중국의 처사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공산당과 합작한 짱개들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
중국은 국가 자체가 법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환구시보라는 공산당 일간지를 통해 지령이 떨어지면 홍위병 같은 놈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선다.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등의 시비를 걸며 길가에서 한국 자동차와 상점들을 겨냥해 불을 지른다.
그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짱개들의 수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자신들의 눈에 거슬리면 멀쩡하던 수출입 교류도 통제해 버린다.
그야말로 중국이란 나라에서는 하루아침에 기업이 망해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붐을 시샘하고 질투하기 바쁜 속 좁은 짱개국.
그 타겟으로 동룡제과가 선제공격을 당했다.
이 일은 과거 생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사건이다.
아직 사드 문제가 터지기 전 시점이다.
회기 전 당시에는 랏데와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언니 차 마시면서 얘기하자.”
엄마가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나섰다.
“답답해서 그래. 정말 미치겠어. 그동안 중국 사업에 진출해서 뿌린 돈과 노력이 얼만데……. 그걸 날강도에게 빼앗기는 심정이야.”
이모가 억울한 듯 눈물을 보였다.
“차보다 술 한잔하시죠.”
“그래. 나 시원한 맥주 한 캔 줘.”
“알았어.”
엄마가 냉장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스위트룸답게 냉장고 사이즈부터 달랐다.
그 안에 진열돼 있는 각종 맥주들.
바에도 고급 양주가 떡하니 진열돼 있다.
옆에 세워진 와인 냉장고에도 이름깨나 있는 와인들이 곱게 누워 선택을 기다렸다.
- 형님 난 우아하게 와인 마시고 싶습니다. 오! 저기 치즈 안주도 있습니다. 정 신선님도 와인 드실 줄 아시죠?
- 물론입니다. 초코파이나 피자처럼 요즘은 제사상에 와인도 제법 올라오니까요.
- 시대가 변하면 제사 문화도 변해야죠. 좋은 현상입니다.
- ……문제는 제사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겁니다. 죽은 조상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세상에 내어놓은 후손들 공식적으로 한 번 보고 싶어 국에 찬 몇 가지 놓고 한 끼 먹고 싶은 것뿐인데……. 그걸 다들 부담스러워하니.
- 다들 바쁜 시대 아닙니까.
- 마음이 문제죠. 제사상 안 차린다고 후손에게 해코지할 조상들은 없지만…… 그리움의 배고픔은 또 실재적이고 또 아주 예민한 문제입니다.
- 저도 그 마음 압니다.
저기 학신 정모씨님 퇴근 안 하세요?
사적인 자리까지 학신 정모씨가 따라왔다.
- 아직 근무 시간도 남았고 장 아우와 회포도 덜 풀어서…….
- 형님 초과근무수당 받게 놔두십시오. 정 신선님도 챙길 때 챙겨야죠.
귀신과 신선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죽이 잘 맞는다.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와인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냈다.
2011년에 생산된 보르도 지역 와인.
상당히 맛이 인상 깊었던 녀석이다.
“나도 한 잔 줄래?”
“네.”
이모에게 맥주 캔을 건네고 엄마가 와인 잔을 내밀었다.
쪼로로록.
붉은 와인이 잔에 채워졌다.
꿀꺽 꿀꺽.
그사이 속이 탄 듯 이모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하아아아아.”
한 캔을 다 비우고 긴 숨을 내쉬는 이모.
“언니 말해봐. 도대체 누가 괴롭혔다는 거야? 상대는 파악했어?”
말투에 냉정함이 담겼다.
엄마도 사업가였다.
학교 법인과 미술관은 물론 동룡그룹도 실질적으로 엄마가 운영하고 있었다.
“한 달 전쯤에 갑작스럽게 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에서 공문이 내려왔어. 우리가 제조한 아리아 초코파이에서 이물질이 검출됐다고 말이야.”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모.
“그래서?”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어. 아무리 청결을 강조해도 사람이 조작하다 보니 이물질이 들어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신고한 사람에게 상당한 위로금을 전달하고 총국에는 약간의 과태료를 지불하기로 얘기가 됐어. 그런데 갑자기 사건이 커진 거야.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거야. 우리 제품에서 신맛이 난다고. 부랴부랴 내막을 파악해 보니……. 제조 공정에서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물질이 섞여 있었어.”
“어떤 물질 말입니까?”
“식초.”
“뭐라고 식초?”
엄마가 깜짝 놀랐다.
과자에 식초가 대량으로 들어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것도 한두 병 분량이 아니라 한 공정에 들어가는 원료에 수백 리터가 섞였어.”
비닐 포장되다 보니 한 번 출하돼 버리면 판매될 때까지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장에 식초를 사용할 일이 있습니까?”
조용히 물었다.
“없어. 중국에서 요즘 그런 식으로 사업했다가는 사형까지 당해.”
이모가 고개를 내저었다.
예상대로 작업을 당한 게 맞았다.
“혹시 그 전에 다른 사건 없었습니까?
작업에는 다 이유가 존재하는 법.
“있었어.”
“그게 뭔데?”
엄마가 다급하게 물었다.
“합자 회사 투자자가 회사 인수에 대해서 물어왔어.”
“인수요?”
“사실 말하기 그렇지만 합자 회사를 세워놓고 우리 기술자들을 꼬드겨 다른 곳에 공장을 차려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어. 하지만 설란이 너도 알다시피 핵심 공정은 최측근만 알잖아.”
“맞아. 아빠가 신신당부했지.”
여러 과자 회사에서 초코파이를 생산하지만 아리아 초코파이는 누구도 똑같이 따라서 만들 수 없었다.
촉촉하고 달콤한 마시멜로와 빵 위를 덮는 초콜릿 풍미는 국민 간식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좋다.
그걸 베끼고 싶어 했던 중국 합자 회사.
“그게 실패했군요.”
“응……. 그리고 1년 전부터 은근히 제안하더라. 제조 방법과 영업권을 넘기라고 말이야.”
“거절하셨군요?”
“그걸 넘기면 그놈들이 가만있을 것 같아? 우리나라에 역수출도 할 놈들이야.”
이모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래서 합자 회사 투자자가 범인이야?”
“맞아.”
“그걸 가만 놔뒀어?”
“중국은 꽌시가 중요하잖아.”
“언니는 없어?”
“나도 만들었지.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가진 꽌시가 거물이야…….”
이모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누굽니까?”
“……상무위원이야.”
“뭐! 상무위원!!!”
회귀의 전설 3부
정(情)(3).
“그깟 과자나 만드는 한국 회사 하나 제대로 못 먹나? 내가 언제까지 밥을 떠 먹여줘야 해!”
북경에 위치한 고위 공산당원들이 거처하는 밀집 주거지역.
안경을 쓰고 체형이 마른 남자가 싸늘한 눈초리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죄……송합니다!”
그의 앞에 40대 초반의 남자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눈앞의 남자가 쥐고 있었다.
상해방의 실질적 거두.
권력이 거의 없는 자리였지만 그래도 상무위원이다.
그리고 그 뒤에 중국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1인 중 한 명인 장택민이 존재했다.
잘못 보이는 순간 제 운명이 파리 목숨처럼 달아났다.
최고 권력자 슈건핑도 아직 장택민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죄송하면 일을 잘해! 내 이름까지 빌려서야 가능하다니……. 네가 내 조카만 아니었어도…….”
상무위원 왕정은 매서운 눈초리로 조카를 노려봤다.
사촌은 아니다.
대략 8촌 정도 되는 인척 관계지만 쉽게 조카로 불렸다.
믿을 자들이 드물다 보니 쓸 만한 피붙이는 촌수가 멀어도 최대한 이용했다.
왕정은 상해방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요즘 더 피가 말랐다.
언제 부정부패 관료로 내몰려 실각될지 몰랐다.
슈건핑과 그 휘하에 있는 태자당은 무자비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권력을 쥐자마자 대대적으로 숙청을 가했다.
상해방뿐만 아니라 뒤를 밀어주던 공청단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개중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건 상해방이다.
긴 세월 동안 중국을 다스렸던 장택민은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어 두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언론 등등.
각 분야에 포진한 장택민의 사람들이 핀셋으로 골라내듯 차출돼 내쳐졌다.
군사권에 이어 경찰 권력까지 빼앗기면서 대항할 수단이 거의 전무해진 상황.
지방 수장인 각 성의 서기 자리도 하나둘씩 강탈당했다.
대신 그 자리는 슈건핑 최측근들이 차지해 갔다.
상해방은 본거지인 상해 정도만 남겨둔 상황.
상해시 서기이자 상무위원 왕정은 그래서 더 마음이 바빴다.
‘손발이 맞아야 일을 해먹지!’
슈건핑 잔당들이 전방위적으로 자금 추적에 나섰다.
대형 보험회사를 비롯해 여러 기업들에 분산돼 있는 상해방 자금이 위험해졌다.
철저히 감추고 온전하게 자금을 빼내기 위해 해외 기업들이 꼭 필요했다.
과거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동룡제과라는 한국 제과 기업도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베트남에 이어 여러 국가에서 아이라 초코파이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개 국가를 걸치고 있다 보니 자금 세탁하기에 아주 좋았다.
미국과의 환율 전쟁에 대비해 중국 공산당 정부가 해외 투자를 빠짝 쫀다는 정보가 돌았다.
그전에 중국에 있는 자금을 서둘러 빼돌려야 했다.
과거와 달리 AI를 활용해 자금 추적에 나서고 있는 슈건핑 일당.
수족들이 잘려나간 상해방은 마음이 초초하고 급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동룡제과 변호사들과 며칠 후에 보기로 했습니다.”
“확실히 마무리해. 한국 놈들은 지독한 면이 있어. 반항할 수 없도록 자근자근 밟아버려!”
“넵!”
왕정은 과거부터 한국인이 싫었다.
작은 소국 주제에 오만불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한때 국가적 성장을 거듭하며 잘나갈 때 중국에서 벌였던 한국인들의 패악질.
중국의 어린 아가씨들이 그들을 상대로 돈에 웃음을 팔기도 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비렁뱅이 같았던 놈들이 제국의 사람을 상대로 주인처럼 굴었다.
그 행태를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두었던 왕정과 중국 공산당.
지금은 한국 기업들을 천천히 쫒아내기 시작했다.
기술과 자본을 거의 다 흡수한 상태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특히 보이지 않는 국가적 계략으로 그들 기업을 빈털터리로 만들어 내쫒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는 법이 통할 리 없다.
가장된 꽌시를 앞세워 일단 심기를 안심시킨 뒤 적당한 시기를 봐 뒤통수를 후려쳤다.
겁을 먹고 야반도주하는 놈들도 발생했다.
개의치 않았다.
중국에 세워진 공장과 기술은 모두 다 중국인의 소유가 됐다.
인건비 정도 수준의 이익을 벌어들이는 조잡한 기업들이 1차적으로 정리됐다.
환경과 임금 문제로 기업 운영에 제재를 가해 사업 확장을 막았다.
그 뒤를 이어 기술 중심의 중소기업이 작업됐고 이제 그 칼끝은 한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을 향하고 있다.
돈만 두둑하게 챙겨 주면 알아서 영혼까지 털어 바치는 놈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이 선두에 있던 LCD 공정과 배터리, 자동차 부품, 조선과 같은 사업들이 예상했던 대로 하나둘씩 경쟁력을 잃어갔다.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 투자된 대작업.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2020년을 기점으로 반도체까지 한국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한국 기술을 빼돌리는 데에는 각 세력들도 이견을 갖지 않고 의기투합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왕정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특히.
‘장립 그놈 때문에 더 싫어!’
능구렁이 같은 놈이 장택민을 비롯해 중국 권력자들의 눈에 들었다.
때때마다 귀신같이 뿌리는 놈의 단약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뇌물이 됐다.
미국에서 근본도 없는 한국 여자와 눈이 맞아 살림까지 차린 장립.
다분히 사상이 의심스러웠다.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그와 자녀들의 혼사를 적극 원했지만 놈은 그 복을 걷어찼다.
게다가 미녀들은 하나같이 놈을 좋아했다.
첩 홍린도 장립에게 대놓고 관심을 보였을 정도다.
다시 힘을 되찾으면 어떻게든 빌미를 잡아 박살을 내고 싶은 괘씸한 자였다.
“마무리 잘해. 확실히 영업권까지 받아내고 돈 몇 푼 쥐여서 한국으로 쫓아버려.”
“세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 손을 써놨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알겠습니다. 형님.”
“일 끝나면 술 한 잔 제대로 하자.”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꼬투리 잡히지 말고.”
“최대한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합법적으로…….”
왕정의 눈동자가 차갑게 일렁였다.
이제 한국 정부 따위의 눈치를 볼 일은 없었다.
미국은 대선으로 인해 자신들 내부일도 처리하기 바빴다.
그사이 벌어진 빈틈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장립……. 남은 인생 한가하게 애나 키우고 살아라. 그게 너에게는 축복일 것이야. 흐흐흐.’
***
- 적이 저주 같은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 3분 1로 포인트가 미미하게 분배되어 지급됐습니다.
3분 1?
갑작스럽게 들려온 알 수 없는 내용의 알림음.
어떤 놈이 날 또 씹은 것 같다.
- 오! 형님. 껌값 들어왔어요!
귀신은 그 틈에도 신이나 외쳤다.
‘저주 같은 축복’이라도 포인트는 포인트.
- ……부럽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포인트라니.
- 하하. 정 신선님도 언젠가 볕들 날이 올 겁니다. 우리 형님과의 인연 줄 꽉 붙잡으십시오.
- 당연히 그래야죠. 장 신선의 넉넉한 마음씨는 신선계에서도 널리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호구로 소문난 게 분명하다.
일단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니 참는다.
많이 번만큼 어느 정도 베푸는 일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건 적의 정체다.
왠지 모르게 지금 날 저주하는 놈과 이모의 일이 얽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언니, 진짜 상무위원과 이번 일이 연결되어 있어?”
엄마도 놀라서 묻는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중국에서 상무위원은 대한민국에서 총리급 또는 그에 대등한 직급의 고위직이다.
그런 위인들이 고작 아리아 초코파이를 생산하는 동룡제과를 노린다는 게 이상했다.
애들 코 묻은 돈 빼는 격이라고나 할까.
“나도 그 사실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어느 정도 레벨이 돼야 비벼보기라도 하지……. 상무위원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도와주려던 중국 측 인사들이 모두 손사래를 치고 사라졌어. 연락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도 당했어.”
중국은 과거나 현재나 인맥 싸움이 처음이고 끝이었다.
아무리 경제 수준이 나아졌다고 해도 인민들에 대한 인권은 권력자 개인 인간관계보다 못했다.
철저하게 개돼지 가축 다루듯 인민들을 길들였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부패에도 입 닥치고 사는 게 편한 국가다.
“상무위원이 누군데?”
엄마가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모, 그 상무위원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나도 호기심이 발동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에 관심 없는 일반인은 잘 모를 수도 있어. 왕정이라고 상하이시 서기야.”
“왕정요?”
내가 놀라서 다시 물었다.
“왜? 조카도 아는 사람이야?”
“…….”
물론 잘 안다.
같이 술도 마시고 눈싸움도 했던 사이다.
첩인 홍린과도 엮여 있다.
나를 두고 사기꾼이라고 매도하며 장택민 앞에서 큰소리쳤던 안경잡이 왕정.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이모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태산이가 글로벌하지만 중국 상무위원하고는 접점이 없지. 미국이라면 몰라도.”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실제 내 정체를 몰랐다.
이래봬도 상무위원들 대다수하고 곧바로 연락이 가능했다.
중국 실권자들인 장택민뿐만 아니라 슈건핑과도 직통 전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다만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을 뿐.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이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아무리 피붙이라 해도 이모는 사업가다.
어설픈 정에 이끌려 움직였다가 내 정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태산아……. 어떻게 안 되겠니? 이틀 후에 북경에서 그자를 만나기로 했어.”
“왕정 상무위원요?”
“아니. 상무위원의 8촌 조카 왕수룡.”
8촌……. 요즘 같은 세상에 얼굴도 모를 먼 친척 관계다.
8촌까지 근친혼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 정도가 친척을 나타내는 기준일 뿐이다.
“동업자?”
“맞아. 중국 쪽 사업 파트너야.”
수상한 냄새가 물씬 났다.
8촌 조카 때문에 상무위원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중국에서 아주 드문 일이다.
“뭔가 이상하네……. 상무위원이 한가한 위치도 아니고.”
“나도 처음에는 못 믿었다니까. 그런데 아는 고위직 공산당원이 말해줬어. 왕정이 왕수룡을 밀어준다고 말이야.”
퍼즐이 빠르게 맞춰졌다.
‘자금 세탁.’
지금쯤 상해방은 똥줄이 탈 거다.
슈건핑과 그 일당들이 상해방 목줄인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해외 사업장이 잘나가는 동룡제과를 통해 자금 세탁을 준비 중인 듯하다.
생각보다 골치 아픈 사건이 될 수도 있다.
- 형님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립의 이름으로 해결하면 그만 아닙니까.
- 립은 또 무업니까?
- 정 신선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형님이 제 이름을 빌려 포인트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 정말요?
학신 정모씨가 금시초문인지 놀라서 묻는다.
귀신의 어깨가 곧바로 치솟는다.
- 그렇게 큰 건 아닙니다. 동업자가 셋이다 보니 소소하니 용돈벌이 수준입니다.
-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역시! 처음 볼 때부터 크게 될 귀신으로 보였습니다.
- 그래요? 하하하. 정 신선께서 보시는 눈이 있습니다.
- 한 잔 받으십시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이것도 인연인데 정 신선께서 의향이 있다면 의형제를 맺을까요?
귀신이 멋모르는 학신 정모씨에게 작업을 건다.
태생이 중국인이라 꽌시로 신선을 엮으려는 수작으로 보였다.
- 그럼 저야 좋죠!
- 형님!
- 장 아우님!
남의 속도 모르고 잘들 논다.
마음 같아서는 학신 정모씨를 신선계 유배지로 3000년 이상 보내고 싶다.
아직도 정치에 미련이 많은 눈치다.
신선이 일개 잡귀와 의형제를 맺다니.
그 와중에도 나의 눈치를 힐끔힐끔 봤다.
귀신을 통해 나와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느껴졌다.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힘들겠다.”
엄마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나도 알아.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조카한테 연락한 거야. 혹시 미국 측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모도 내 눈치를 봤다.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태산아, 도와줄 수 있어?”
엄마의 표정에서 피붙이 형제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를 대하던 이모의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살짝 뜸을 들였다.
“방법! 어떤 방법!!!”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조카와 이모 사이라 해도 오고가는 게 있어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법이다.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