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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8장. 이곳이 무릉도원입니다!(2) (1,081/1,284)

1098장. 이곳이 무릉도원입니다!(2)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김현재가 차 문이 열린 뒷자리에 올라탔다.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겼다.

웬만해서는 술자리 참석을 갖지 않는 인물로 평판 나 있는 평소 모습과 달랐다.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은 아직 술자리가 남긴 열기가 식지 않은 듯했다.

국회의원이었을 당시부터 함께했던 보좌관이 운전석 룸미러로 김현재의 표정을 살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해 왔다.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김현재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숱한 다른 의원들처럼 보좌관의 월급으로 장난 같은 것도 치지 않았다.

언제나 상대를 존중하는 경어를 사용하고 기본적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다.

아래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도 항상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삶 전반에 대한 인생 상담도 수시로 해주었다.

한때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돈이 되지 않는 변론도 많이 맡았다.

보통의 변호사의 삶으로 성공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왔던 김현재.

지금의 표정은 마치 선물을 듬뿍 받은 아이처럼 다소 들떠 있었다.

“장태산이라는 청년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이래봬도 최측근이었다.

장태산에 대한 정보를 자처해 물어다 주고 양우석 의원과도 연결해줬다.

“그 반대입니다.”

“네?”

“장태산이라는 청년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아주 다행입니다.”

“???”

보좌관 오정수는 지금 김현재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오늘 만남은 장태산이 쓸 만한 인재인가를 알아보는 테스트 자리였다.

성공한 투자자로 알려져 있지만 어딘가 의문이 많이 가는 청년이다.

수십억이나 수백억도 아니고 수조를 주식투자로 거머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솔직히 그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 정도의 부를 이룰 수 없었다.

군대 문제만 해도 그랬다.

한국대 출신인데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자연스럽게 면제를 받았다.

그것도 체격조건이 다른 백인들과 경쟁해서 얻은 업적.

마침 금메달을 딴 동료에 가려져 장태산의 이야기는 제대로 거론되지 않았다.

그 이후 어린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사회에도 발을 담구었다.

얼굴도 출중한 미남이었고 키도 모델 못지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밖으로 구체적인 사안들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에 대한 모든 사항이 비밀에 감싸여 있던 장태산.

몇 년 전부터 한두 번 여의도에서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무소불위의 공포 대상이 됐다.

장태산과 악연으로 얽히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하물며 내로라하는 그룹을 경영하던 회장도 패가망신을 피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는 청와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보수 언론사들과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틀어져 있는 장태산.

나국찬 의원의 정계 입문 권유가 있었지만 그가 거절했다.

그런 장태산을 만나겠다 먼저 입을 열었던 김현재.

물론 처음에는 그의 요청을 만류했다.

괜히 모두가 꺼려 하는 위험한 인물과 엮여 구설수에 오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살점 하나만 발견해도 무한 확장시켜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은 기득권 세력들.

김현재가 의사를 강력하게 밝히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멋진 청년입니다.”

미사여구가 완벽하게 배제된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평소 과묵한 성격의 김현재를 감안할 때 최고의 찬사였다.

“다행입니다. 사실 걱정 많이 했습니다.”

“뭘 말인가요?”

“장태산 그 친구가 예의가 없다는 소문이…….”

보좌관들 사이에 그 같은 소문이 쫙 돌아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수가 틀리면 야생 호랑이처럼 그 자리에서 물어 뜯어버리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 소문 맞아요.”

“???”

“그래도 상대는 가려서 무는 것 같으니 오 보좌관은 크게 걱정하지 말아요.”

단 한 번의 만남이었음에도 김현재는 그에게 큰 신뢰를 보였다.

“알겠습니다.”

‘체크해 둬야겠군.’

저 정도 신뢰를 보일 정도라면 이미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걸 의미했다.

보좌관으로서는 무척 중요한 체크 사항이었다.

“양우석 의원과 내일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1시에 자주 가는 양평 해장국집 예약해 두세요.”

“넵!”

최근처럼 바쁜 시기에 양 의원과의 점심 식사까지 잡았다.

양우석 의원이 곧 핵심 라인으로 합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같은 당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이 드물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오늘까지 가까웠던 동료가 내일 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단둘만 알고 있던 비밀도 필요에 의해 유유히 빠져나가는 곳이 여의도 정가의 일이었다.

“……복숭아꽃 향기가 나는군요……. 아주 진하게.”

차창 밖을 바라보며 뜬금없이 복숭아꽃 향기가 난다고 말하는 김현재.

룸미러에 보이는 그의 입가에 빙그레 화사한 꽃 같은 미소가 번졌다.

***

“회장님.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아 죄송합니다.”

김현재를 배웅하고 양우석 의원과 다시 술을 마셨다.

- 이곳이 무릉도원입니다! 캬아! 대사 멋지셨습니다.

- 장 신선님. 잘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정치란 무서운 것입니다. 본래 정치판이 중구삭금(衆口鑠金)의 이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라리 왕의 길을 가십시오.

- 정 신선 정체가 뭔가요? 생시에 대단했던 분이 맞는 것 같은데…….

-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조금 전 자랑하지 않았습니까?

-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신선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생에서의 미련이 남았나 봅니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나라고 믿었던 그때가…… 야무진 꿈을 꾸던 시절이 아직 제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 저도 그 마음을 압니다. 그게 바로 무상의 깨달음 아니겠습니까. 본래 핀 꽃은 아름답고 져버린 꽃은 추하다고 했습니다. 천년만년 갈 것 같던 부귀영화도 다 부질없더군요.

- 장 형제의 깨달음이 도통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 많이 부족하죠. 한 잔 쭉 드십시오.

- 그럴까요?

귀신 된 자들이 언제부터 부귀영화? 무상? 도통?

귀신과 신선이 죽을 맞춰 잘들 시간을 보냈다.

자화자찬의 대화와 술을 주거니 받거니.

“괜찮습니다. 어차피 한번 만나 뵈어야 할 분이었습니다.”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현재 대표님의 저런 모습은 처음 뵈었습니다.”

“앞으로 바빠지시겠군요.”

“모두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양우석 의원이 고개를 짧게 숙였다.

“의원님 본인의 역량입니다.”

“회장님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음을 잘 압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점점 국회의원다워지십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맞습니다. 칭찬.”

어차피 시궁창 같은 정치에 입문해 있는 상태다.

최선을 다해 그 바닥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안에서 피워낼 한 송이 연꽃이 기대가 됐다.

양우석 의원은 자신의 영달이 아닌 다수를 살리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또 다른 살신성인의 성인이었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초심을 잃지 마십시오.”

“넵! 국민에게 충성하고 세금만 먹는 하마가 되지는 않겠습니다.”

군자금은 언제나 넉넉하게 지급하고 있었다.

돈이 궁하지 않아야 오로지 깨끗한 정치에 신경 쓸 수 있었다.

지역구를 유지하고 보좌관들을 챙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말한 악당의 길.

그 길은 나 혼자만 가도 충분했다.

“대충 느끼시겠지만 올해 연말부터 진짜 폭풍이 불어닥칠 겁니다.”

“연말입니까?”

“헌정 역사상 전무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 말씀은…….”

“그 이상은 천기누설입니다.”

“네…….”

양우석 의원의 눈동자가 샛별처럼 반짝였다.

2선 의원이 이 정도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영어 좀 하십니까?”

“대학교 재학 시절 학원 강사 일을 했습니다.”

“잘됐군요. 조만간 미국에 다녀오십시오.”

“미국에요?”

“미국 상원의원 쪽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챙겨주고 싶은 친분 있는 의원들과 조를 짜십시오.”

“상원의원요???”

양우석 의원이 화들짝 놀랐다.

“왜 쫄리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개개인이 작은 국가의 대통령급입니다.”

100명밖에 안 되는 미국 상원의원들.

상당수가 한 번 당선되면 그 자리를 쭉 이어갔다.

그들은 미국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권력 축이었다.

“별것 아닙니다. 어차피 그들도 정치인입니다. 자신들 이익에 부합하면 명함용 사진도 잘 찍어줍니다.”

“그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도 이제 세계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큰일 하시려면 인맥도 중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안 쫄겠습니다!”

“바로 추진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계시나 봅니다.”

“대충 몇 명 알고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누구…….”

“리처드 요한슨과 존 피어스 상원의원 정도입니다.”

“헛!”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양우석 의원이 크게 당황했다.

미국 상원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리처드 요한슨과 존 피어스 상원의원.

“그리고 가는 김에 거물들과도 접촉해 언론에 적극적으로 뿌리십시오.”

이왕 가는 길이니 두루두루 여러 라인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로버트 라이언……. 말씀하시는 거죠?”

“아닙니다. 요즘 바빠요.”

“그럼 누구를…….”

양우석 의원이 살살 눈치를 봤다.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다.

아직은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양우석 의원.

앞으로 확실히 키워줄 생각이다.

거물급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수준도 올라가게 되어 있다.

한 번 만나면 그게 인연이고 연줄이 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특히 내가 뒤에 있다면 다들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발론 머스크를 만나 햄버거 먹고 회사 구경시켜 달라고 하십시오.”

“발론 머스크요!!!”

“그리고 락히트 마린사 회장도 만나시고…….”

“!!!”

쏟아져 나오는 거물들 이름에 앞에 양우석 의원의 입이 쩍 벌어졌다.

대통령이 가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인사들이었다.

“트럼프의 사위와 술도 한잔하십시오.”

“……바쁘겠군요.”

“출장입니다. 정신 나간 의원들처럼 라스베이거스 가서 스트립 걸 가슴 볼 생각 마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전 와이프만 여자로 봅니다.”

“좋은 자세입니다.”

양우석 의원은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아들도 보병으로 만기 제대했다.

와이프도 사회활동을 접은 평범한 가정주부다.

말인즉 털어서 먼지 나올 게 없었다.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회장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저 말고 하늘을 믿고 가십시오.”

“회장님이 저에게는 하늘입니다!”

- 오! 저 의원님 똑똑하네. 우리 형님이 대단하시긴 하지.

- 장 신선 위명이야 신선계에서도 자자하지요.

- 정말요?

- 그럼요. 장 신선이 차고 있는 포인트 주머니가…….

학신 정모씨가 말을 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날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 흐흐. 제가 그래서 우리 형님을 옥황상제님처럼 섬깁니다.

귀신의 음흉한 웃음이 귀에 거슬렸다.

애써 모른 척 외면했다.

내가 쌓아놓은 포인트가 썩어나가도 귀신한테 두 번 퍼줄 일은 없다.

“앞으로 김현재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반도의 조상님들이 직접 섭외하신 귀한 분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 한 몸 무릉도원 완성을 위해 비료가 되겠습니다!”

양우석 의원 포부가 내심 마음에 들었다.

띠리리리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에 보이는 친숙한 이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태산아…… 나야.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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