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0장. 전설의 타짜. (1,073/1,284)

1090장. 전설의 타짜.

“김현재와 장태산이 만난다고?”

“그렇습니다.”

“어디서?”

“송추 백숙집입니다.”

“정보 확실해?”

“국정원에서 방금 들어온 정보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리앤장 이사실.

손대균은 정보원의 보고를 듣고 난 뒤 말을 아꼈다.

중요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정보력을 모두 가동해 중요 인사들을 체크했다.

‘빠르네.’

김현재의 발 빠른 행보에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보여 왔던 신중한 정중동의 행동과 다른 행보였다.

김현재와는 손대균도 안면이 있다.

주무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김현재.

그전에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대기업과 기득권 측을 주로 대변해 온 리앤장 변호사와 인권 관련한 약자를 대변하는 데 앞장섰던 김현재는 번번이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많은 숫자를 뽑지 않았기에 동기들에 대해 서로 자세히 알았다.

그때에도 김현재는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다 군대에 끌려갔다시피 복무하고 나온 남자.

우여곡절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투쟁 전력으로 판사나 검사의 길로 들어서기 힘들었다.

부친이 대법관 출신이던 손대균의 입장과 처지가 달랐다.

사법연수원에서도 두 사람은 극과 극을 달렸다.

금수저와 흙수저 정도의 차이.

그럼에도 연수원에서 김현재는 인기가 좋았다.

공수부대 출신답지 않게 그의 인상은 유순하고 부드러웠다.

동기들과도 진심 어린 인간적 교류를 즐겼다.

특히 여자 동기생들 중에서 김현재를 좋아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상남자처럼 체격이 좋았지만 말투는 부드러웠다.

그런 그도 모의 법정이 열리고 다퉈야 하는 상대로 만나면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성품 자체가 소수와 약자를 위해 전력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몇 번 같이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강하게 부딪쳤다.

연수원에 안기부 끄나풀도 심어져 있었지만 김현재는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비난을 거침없이 뱉는 인물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하는 꼴이 보기 싫어 손대균은 김현재를 비웃었다.

시대 기류도 읽지 못하는 패배자들의 변명 정도로 취급했던 것이다.

그랬을 때 김현재가 손대균을 똑바로 응시하며 했던 충고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마음을 훔치기라도 한 듯 내뱉었던 그의 말.

‘시대 기류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깨달아 진짜 법조인이 돼라’.

“대화 내용은?”

“……장태산 쪽 경호원들에게 털렸답니다.”

“바보 같군.”

“정확히는 모르지만 투입됐던 팀 자체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장태산이 어떤 인물인데.”

손대균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상대할 수 없는 거물임을 몸소 경험한 바 있는 손대균이었다.

소중한 딸의 목숨을 직접 부탁했을 만큼 대단한 녀석이다.

“저희 측 인원들을 투입할까요?”

자신감이 결여된 듯한 조심스러운 물음.

“그 정도면 됐어. 가서 쉬어.”

“넵!”

손대균의 한마디에 보고를 잇던 정보원은 한숨 돌렸다는 듯 힘 있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김현재가 장태산을 만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챘겠지.”

어리석어 보일 만큼 우직했던 동기였지만 이제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에서 당했던 그 수모를 잊었을 리 없다.

두 눈 뜬 채 친구이자 동지였던 주무형을 놓친 사람이다.

그것도 안타까울 만큼 처참한 죽음을 맞았지 않은가.

국정원과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기득권이 쳐놓은 덫에 걸렸던 주무형.

그 안에서 발버둥 칠수록 그의 주변 인사들에 대한 압박을 넣어 결국 스스로 끝을 보게 만들어 버렸던 주무형 사건.

김현재는 그 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치밀하고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낮추며 뜨겁게 준비하고 있을 김현재.

“다들 잘못 생각하고 있어. 임계점이 넘어버리면…….”

주순자를 괴롭혀 조근영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던 일송회 장로들의 시나리오.

손대균은 그들의 판단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직감했다.

권력을 사용해 있는 힘껏 꽉꽉 눌러온 민심.

지금으로서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최병박 정권 초기에 터졌던 촛불의 힘을 손대균은 아직 잊지 않았다.

워낙 큰 표 차이로 선거에서 승기를 잡으며 임기를 버텨냈지만 조근영은 그렇지 못했다.

치졸하고 더러운 술수로 대통령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오월호 사태를 비롯해 각종 측근 비리로 민심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지율 30%가 간당간당 유지됐다.

여기서 무너지면 그 어떤 대책도 있을 수 없었다.

주권자의 지지 없이는 손에 쥘 수도 스스로 굴러갈 수도 없는 민주사회의 권력.

“태산아……. 김현재한테는 뭘 제시하고 있는 거냐.”

손대균이 아는 장태산은 기득권을 무척 격멸했다.

자신 앞에서도 기득권을 두고 거침없이 썩어빠진 놈들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특히 친일파에 대해서는 악의를 넘어 극도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현 기득권 인사들은 대부분이 다 친일파 세력들.

김현재와 장태산이 손을 잡으면 불을 보듯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은 자명했다.

보이지 않는 큰 손 장태산의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김현재는 무난하게 날개를 달 것이다.

그리고.

긴 세월 사철 푸른 소나무 같은 대한민국을 칡넝쿨처럼 칭칭 휘감고 있던 친일파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태산아, 피똥 한번 거하게 싸게 만들어 봐라……. 후후훗.”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상황에 진심으로 장태산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손대균.

그는 몰랐다.

김현재와 장태산이 만나고 있는 현장에서 그가 피똥을 쌌다는 사실을.

***

‘어? 이건 뭐죠? 왜 같은 패가…….’

귀신이 바닥에 깔린 패를 보고 의아해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고스톱을 접한 귀신.

포커와 마작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귀신은 지금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 허어! 쌌네! 쌌어! 그것도 피똥을!

반면 한반도 조상신 계열인 학신 정모씨는 상황을 제대로 읽어냈다.

쌌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큼지막한 것을 싸고 말았다.

“쌌습니다! 그것도 똥을…….”

양우석 의원이 목소리가 높아지며 깜짝 놀랐다.

“이게…….”

그에 반해 얼굴색이 환하게 바뀌는 김현재 대표.

눈 주변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화투를 잡은 손이 덜덜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보였다.

초출인 똥 껍데기를 먹었다가 똥광을 그 위에 싸 버렸다.

그 모두를 쓸어먹을 패를 들고 있는 게 확실한 김현재 대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쌌네요……. 하아.”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탁!

혹시라도 내가 판을 뒤엎을까 마음이 급해진 듯 똥무더기 위에 똥쌍피를 화끈하게 때리는 김현재 대표.

“한 표 주십시오.”

“네…….”

“대표님 났습니다! 장 회장님…… 광박입니다.”

양우석 의원 또한 덩달아 신이 났다.

맞고에서 쓰리고에 광박을 맞았다.

김현재 대표 입장에서는 네 배를 더 벌어들인 판이었다.

시작부터 서비스 카드 세 장을 김현재 대표가 깔고 시작하는 통에 큰 판이 됐다.

“포고!”

김현재 대표가 주저하지 않고 고를 외쳤다.

내친김에 날 아주 벗겨 먹겠다는 강렬한 투지가 엿보였다.

- 포고까지 더하면…… 얼맙니까?

- 광박에 포고라면…… 점수의 여덟 배입니다.

- 와아아……. 그럼 이번 판 점수는…….

- 장 신선님 제대로 주머니 털렸습니다 그려.

학신 정모씨도 판 돌아가는 모양에 만족한 듯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김현재를 밀어주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며 티를 팍팍 냈다.

- 형님, 지금 접대 도박하는 겁니까?

귀신이 이제야 눈치를 챘다.

맞다 접대 도박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엇을 바라고 하는 짓은 아니다.

김현재 미래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결코 뇌물이 아닌 친일파 처단을 위한 군자금 정도라고 하겠다.

“하필 거기서…….”

당황스러운 척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리 계획된 접대 도박이라 해도 연기가 따라줘야 했다.

상대가 대충 넘어갈 수 있도록 진실이 반 정도는 섞여야 참맛이 나는 법.

김현재 대표의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탁!

들고 있던 두 장의 패 중에서 점수가 붙을 가망성이 큰 피를 빼고 나머지 다른 패를 던졌다.

타악!

뒤집은 패에 쌍피가 붙었다.

당연히 승리할 수 없었다.

“하하하! 장 회장님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타악!

쌍피를 또 때리는 김현재 대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뒤집은 패에도 열끗 하나가 더 따라붙었다.

“세상에! 열끗으로도 3점이 났습니다! 이것도 배 판입니다!”

열여섯 배짜리 잭팟이 터졌다.

“오늘 저에게 도신이 임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김현재 대표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고하시죠?”

“이제는 스톱해야죠. 이 정도면 충분히 배가 부릅니다.”

마지막 한 판을 마저 돌지 않고 멈춘 김현재 대표.

“점수가…… 피가…… 피로 17점에 포고 4점, 열끗으로 3점, 오끗으로 3점, 청단 3점 추가, 비광까지 포함해서 4점, 총…… 허어억! 544점!!!”

부지런히 계산을 하던 양우석 의원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졌다.

한판에 5000억을 쓸어 담은 셈이다.

그러니까 김현재 대표가 마지막 판까지 벌어들인 돈이 1조를 훌쩍 넘은 것이다.

판이 몇 차례 도는 데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더 이상의 게임은 무의미했다.

“대표님 타짜시죠? 그 바닥에서 유명한 광안리 피바다가 혹시 대표님 아니십니까?”

기분 좋은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소싯적에 좀 날렸습니다.”

“이 정도 점수면 거의 신화입니다. 한판에 500점이 넘다니…… 존경합니다. 대표님!”

양우석 의원이 본분을 잃고 꼬리를 흔들었다.

오늘 이후부터는 김현재 대표 측근이 될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장 회장님이 봐주신 겁니다.”

김현재 대표가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도박판에서 봐주는 게 어디 있습니까. 대표님 실력 맞습니다.”

“오랜만에 스트레스 제대로 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장 회장님.”

“힘 드시면 가끔 불러주십시오.”

“그래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저도 유쾌한 한판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불러주십시오.”

양우석 의원도 빠지지 않고 끼었다.

“그래야죠. 오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우리들만의 비밀입니다. 하하하하.”

1조짜리 도박판 자리였다.

동전 하나 오가지 않았지만 난 내뱉은 말에 신의를 지킬 것이다.

“그럼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스으윽.

화투판을 정리해 치웠다.

그리고 다시 술병을 들자 김현재 대표가 잔을 내밀었다.

쪼로로로록.

시원한 맥주가 잔에 한가득 채워졌다.

다시 자연스럽게 김현재 대표가 병을 건네받았다.

내 잔에도 맥주가 가득 찼다.

“전 소주 마시겠습니다.”

양우석 의원은 셀프로 소주를 잔에 채웠다.

“이거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몇 시간 만에 1조를 따다니……. 이 돈으로 뭘 해야 할까요?”

김현재 대표가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현명한 사내였다.

자신의 계획이 있을 텐데도 나에게 먼저 조언을 구해왔다.

“정치 자금으로 드릴까요?”

“1조를요? 그건 사양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많습니다.”

김현재가 강한 거부 의사로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그럼…….”

빙긋 웃으며 다시 그에게 사용처를 물었다.

“장 회장님이 추천해 주십시오.”

“돈뿐만 아니라 투자처까지 요구하시는 겁니까?”

“뒤에 숫자는 떼고 1조만 깔끔하게 받겠습니다.”

“컨설팅 비용입니까?”

“네.”

서로의 두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전 한국판 뉴딜을 추천드리겠습니다.”

“뉴딜요???”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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