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8장. 점당 10억. (1,071/1,284)

1088장. 점당 10억.

“헛!”

콘솔을 조작하던 직원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저 자식들 뭐야!!!”

지휘 차량에서 알파조를 이끌던 조장 이대성 역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럽게 화면에 예상치 못한 대상이 나타났다.

적외선 장치까지 동원해 주변 동태를 살폈는데 어느 틈에 뚫렸다.

도리어 상대 쪽에서 더 특수한 장치를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문제는 특급 국가기밀인 국정원 직원의 정체를 상대 쪽에서 상세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

국정원 특수 공작팀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

블랙 요원급까지는 아니어도 1급 보안으로 처리됐다.

원장을 비롯해 상위 고위 직급과 직속 상관들만 몇몇 알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 조직 구성원 중 한 명인 조강득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는 상대.

거기에 총을 사용하려던 조강득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특수 훈련을 받은 자들이 확실했다.

‘김현재 주변에는 저 정도 실력의 경호원이 없다. 그렇다면…….’

이대성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국정원 요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건들지 못할 거물이 된 장태산의 짓이 분명했다.

“어, 어떻게 합니까?”

알파조는 본래 다섯 명이 한팀.

차량 지휘부에 두 명이 있고 나머지 둘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대기 중이다.

그들을 투입하게 되는 순간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총기가 사용될 수도 있는 상황.

과거 시절만 됐어도 국정원 요원이 이런 일에 쩔쩔맬 일은 없었다.

국정원 요원이라는 말 한마디면 경찰서장은 물론 웬만한 권력자들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 옛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

특히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를 불법 사찰하다가 발각된다면 더욱 그랬다.

그 후폭풍이 어디를 강타할지 몰랐다.

“빌어먹을…….”

이대성의 입에서 욕설이 터졌다.

딱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치이잇.

차량에 설치된 고유 무전기 주파수에서 신호 하나가 잡혔다.

그리고.

- 이대성 조장.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떻습니까?

갑자기 무전을 통해 들려온 낯선 음성.

“히익!”

기계들을 컨트롤하던 조원이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다.

“해, 해킹!”

이대성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서 구입해 들어온 차량은 모든 장치들이 최신 암호화로 락이 걸려 있었다.

누구도 뚫지 못할 거라고 부서 담당자도 호언장담한 터였다.

그럼에도 상대는 버젓이 국정원이 사용하고 있는 암호 차량을 해킹했다.

-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고? 스톱?

무전 상대가 선택을 압박해 왔다.

물론 대답해야 할 답은 정해져 있었다.

으득.

이대성이 아래턱을 움직이며 이를 갈았다.

평생 치욕으로 남을 만큼의 완벽한 패배였다.

더욱이 국정원 요원이 상대의 정체를 파악도 못 한 채였다.

‘두고 보자!’

이대성의 두 눈에는 원망이 가득 찼다.

반드시 이 치욕을 되갚아 복수하리라 작심했다.

- 쪽팔립니까? 그러게 누가 불법 사찰하라고 했습니까. 합법적으로 사셨어야죠. 그깟 보험이 뭐라고…….

“!!!”

상대는 이번 일이 보험 장치인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으으.’

이대성은 분노의 감정에서 격하게 좌절감을 맛봤다.

팀장 유낙준과 나눴던 통화 내용까지 상대는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번졌다.

머릿속에서는 그 어떤 판단도, 선택의 방향도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 하나는 감히 제가 대응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위험신호뿐.

“스톱! 처, 철수하겠다!”

이대성은 본능에 따라 백기를 들어 올리며 꼬리를 말았다.

다시는 장태산과 관련된 일은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맡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뼈아픈 각오를 가슴에 새겼다.

***

‘깜냥……!’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양우석.

장태산과 김현재 전 대표와의 만남은 초반만 해도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도 바로 격변했다.

기어코 깜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저런 충고야 그렇다 치더라도 보통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은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스스로 능력을 헤아리는 게 가능하냐’고 묻고 있었다.

쉽게 말해 ‘네 주제 파악은 되느냐’ 정도의 부정적 언사였다.

그런 말을 장태산이 김현재 전 대표에게 대놓고 물었다.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

셰익스피어에 이어 공자와 이름 모를 성현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내뱉은 깜냥이라는 말.

분명 오늘 자리는 김현재 전 대표가 장태산을 개인적으로 테스트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가 기관의 협작질로 인해 아쉽게 쓴잔을 마신 김현재 전 대표였다.

그런 만큼 다음 대선에서는 어렵지 않게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 김현재 대표는 직접 미래의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생각보다 뛰어난 인재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믿을 만한 이는 또 드물었다.

문제는 뛰어난 인재 다수가 불법행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상류층에 입성하거나 특정 조직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더러운 길인 줄을 알면서도 동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길을 같이 걸어야만 앞날에 대한 보장이 따랐다.

양우석도 2선이 되자마자 사방에서 청탁이 들어왔다.

장주시 의원 사무실에 지역 유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이런저런 부탁을 해왔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이권이 걸린 일에는 의원들 각자가 법안을 올려 협조해 달라 은근히 말을 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법안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닌 것에는 적당한 선을 유지해 거절했다.

강하게 반론을 제기해 봐야 돌아오는 눈빛만 싸늘해졌다.

양우석 입장에서도 미래를 위해서는 인맥을 다져야 했다.

그동안 장태산 회장과 약조한 바였고 신념을 다해 지키려 노력했다.

큰일을 위해서 끝까지 국회에 남아 올바른 곳에 힘을 쓸 수 있는 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중에 핵심은 미래 대선 주자의 눈에 드는 일.

기회가 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장태산 회장이 분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만들고 있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주 한 잔에 닭다리 한 점 뜯었을 뿐인데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 김현재 전 대표의 입장이라면 결코 이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이도 한참 어린 장태산 회장의 조언과 충고의 형태를 띤 막말.

김현재 전 대표는 대답 대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뿐이다.

그의 모습 역시 속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장태산 회장은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진실하고 정직했지만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사실 양우석은 약간의 반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장태산 회장이 대단한 인물임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어리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여겨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김현재 전 대표는 양우석도 인정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열정을 바친 투사다.

차갑게 식은 양우석의 눈빛이 장태산을 향했다.

이제 그만 김현재 전 대표를 괴롭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할까요?”

도리어 장태산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한 번 흘러나왔다.

김현재 전 대표에게 무례하다 싶은 질문을 던지고도 너무나 태연했다.

그때.

“아닙니다……. 전 제 깜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묵직하게 흘러나온 김현재 전 대표의 음성이 바닥에 낮게 깔렸다.

“어떻게 말입니까?”

집요하다 싶은 장태산의 추궁이 이어졌다.

김현재 전 대표는 장태산을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봤다.

“부족합니다. 그것도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말하고 있는 김현재 전 대표.

“부족함을 알면……. 큰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장태산이 예민하고 자극적인 멘트를 내뱉었다.

“그래도 나가야 합니다.”

김현재 전 대표의 굳은 심지가 그대로 배인 음성이 울림을 더했다.

“이유가 있습니까?”

“전 지킬 게 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짧고 간결하면서 빨라진 두 사람의 대화.

양우석은 숨까지 참으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나를 지켜야 합니다.”

진중하게 나오는 김현재 전 대표의 대답.

“나요?”

장태산이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물었다.

‘나? 그게 무슨…….’

양우석 역시 의문이 들었다.

생각지 못한 김현재 전 대표의 입에서 나온 ‘나를 지켜야 한다’는 말.

조국과 민족,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온 김현재 전 대표였다.

예상 밖으로 그런 그의 삶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답변이었다.

“나를 믿고 들꽃처럼 살다간 친구를 위해……. 나를 믿고 가시밭길 대한민국 민주화 투쟁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지들을 위해……. 나를 위해 매일 신께 기도하는 어머니를 위해……. 나를 믿고 묵묵히 반평생을 지켜준 반려와 가족을 위해……. 난 나를 지켜야 합니다!”

나지막하면서 듣는 이의 심장을 뜨겁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

“아…….”

양우석은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나를 지킨다는 말은 김현재 개인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역시 김현재 전 대표다운 발언이었다.

“더 힘들어질 겁니다. 이 땅에 뿌리박고 있는 토착 왜구들의 세뇌는 아직도 상당히 힘이 강합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시민을 대놓고 빨갱이라 외치는 자들이 세상 곳곳에 널렸습니다. 그들은 양껏 자신들의 소리를 내도 잡혀가지 않는 시대의 포용력을 외면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뭐든 더 자신들 손에 쥐어줄 것을 요구하는 철면피들입니다.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만 주장하는 이들도 도처에 넘칩니다. 그들도 국민입니다. 그들이 뱉어놓을 무수한 아우성을 감당할 자신은 있습니까? 스스로의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대표님에게는 성인보다 더한 것을 요구할 겁니다. 그리고 조금만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그 모든 수모를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까?”

다그치는 듯한 장태산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됐다.

마치 미래가 그렇게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김현재를 몰아붙였다.

빙긋.

김현재 전 대표가 웃는다.

그의 미소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함축적 미소였다.

“제 친구도 갔던 길입니다. 저 또한 기꺼이 감내할 겁니다.”

‘……신이시여.’

양우석은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숱하게 만나왔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 중에도 김현재 전 대표 같은 마음을 가진 투사가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사리사욕을 위한 욕망은 하나도 감지되지 않았다.

친구와의 의리와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마음만 한가득 느껴졌다.

“가족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장태산이 언급한 마지막 테스트 같은 한 마디.

“……그 또한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부족한 저와 천륜으로 엮인 업보겠지요.”

가히 성자 같은 답변이 나왔다.

바보들이나 선택하는 가시밭길을 스스로 걷겠다고 선포하고 있었다.

김현재 전 대표의 입가에 번지는 환한 미소.

그의 뚝심 있는 신념이 만들어 낸 미소는 그 어떤 빛보다 밝고 환해 보였다.

“아…….”

그때 장태산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감출 수 없는 존경과 경탄이 그의 눈에도 가득 담겼다.

그런 장태산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여는 김현재 전 대표.

“걱정하지 마십시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과 꿈을 위해 많은 선배와 동지들의 피 거름으로 민주주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 길에…… 나와 내 가족의 피로써 또 한 번 거름을 더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확고부동하게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김현재.

“…….”

방 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이 맴돌았다.

말은 없었지만 각자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홀로 가겠다고 선포하는 초인 앞에 따로 할 말이 필요 없었다.

짝짝짝.

장태산이 느닷없이 박수를 쳤다.

지금까지 대차게 몰아붙였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

“멋지십니다!”

그의 한 마디에 응축된 오만가지 감정.

“부족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김현재 전 대표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평가하고자 만난 장태산에게 도리어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불쾌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칭찬을 늘어놓거나 어줍지 않은 민주주의 투사 흉내를 냈다면 김현재가 더 실망했을 터였다.

예리한 칼로 사정없이 쑤시고 들어왔지만 아프지 않았다.

장태산의 말처럼 앞으로 듣고 또 들어야 할 거친 말들과 무수한 사람들의 경멸에 찬 표정들.

오늘 이 자리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주권자라는 이름으로 장창을 들어 아물지 않은 상처를 쑤실 이들이 족히 수백만은 넘고도 남을 판이다.

그들 또한 품고 가야 할 이 땅의 국민이요, 한반도의 미래를 짊어질 후손들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판을 벌여 볼까요?”

“???”

장태산이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스톱 좋아하십니까?”

“고스톱요?”

갑작스런 장태산의 농담 섞인 듯한 말.

그러고 보니 한쪽 구석에 화투와 카드가 눈에 띄었다.

“칠 줄 모르십니까?”

“압니다만…….”

“그럼 한 판 치시죠.”

갑자기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논하던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고스톱을 치자고 말하는 장태산.

“판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승리하시면 점당……. 10억씩 대표님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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