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7장. 깜냥. (1,070/1,284)

1087장. 깜냥.

‘다들 쫄아가지고.’

국정원 국내정보 3팀 소속 알파 조원 조강득은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오늘 작업할 대상이 상대하기에 만만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난 대선 야당 대권주자와 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악명이 자자해진 장태산이라는 인물이 목표다.

거기에 현직 의원도 포함됐다.

발각될 시에는 정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성공하면 반대급부가 상당한 일이다.

조직 내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휘몰아치는 정치 풍파에 요즘 동료 직원들이 덩달아 요동쳤다.

이런 시기일수록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어차피 다음 대 대통령도 여당이야. 아무리 실정을 저질러도 투표심리는 쉽게 안 변해.’

어릴 때부터 극우 성향이 강했던 할아버지로부터 세뇌 교육을 받아온 조강득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현 세태에 확신을 품었다.

확실한 라인을 정했다.

다음 대 대통령도 여당에서 나올 것을 확신했다.

기득권의 힘은 대한민국에서 생각보다 대단했다.

냄비 속 끓은 물 같은 민심 따위가 함부로 바꿀 수 없었다.

오늘 대박 정보를 획득하면 다음 대 대통령 임기 동안에는 조장을 넘어 팀장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그동안 숱한 공작을 실행해 왔지만 실패한 적이 없었다.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보조 장치들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예상치 못한 접선인 만큼 최첨단 장치가 대거 동원됐다.

창문에 붙이기만 하면 음파 탐지가 가능한 물건이다.

다만 기기가 예민하고 초소형이라 사람이 직접 움직여 안전하게 장착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저벅저벅.

종업원 복장으로 환복하고 미리 주문해 놓은 안주를 서비스로 들었다.

창문 부착에 실패하면 서비스를 전달하기 위한 종업원임을 핑계 대기 위한 대비였다.

큐싸인도 떨어졌다.

주변에 이상이 없다는 의미였다.

‘장태산, 그 새끼가 뭐라고 다들 이 난리야?’

조장도 몇 번 당부를 해왔다.

국정원 내에서 위험인물 1위에 올라 있는 장태산.

조강득은 내심 비웃음을 지으며 별채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 순간.

“멈추시죠.”

갑자기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목소리.

“!!!”

조강득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깜짝 놀랐다.

비밀 모임인 만큼 측근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는다고 파악했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스윽.

두 명의 남자가 거짓말처럼 나무 옆에서 모습을 보였다.

깔끔한 검정 슈트 차림이다.

‘씨발!’

조강득은 속으로 욕을 뱉었다.

특전사 교육을 이수한 인물로 상대의 기운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는 감이 있었다.

상대는 고수였다.

“서비스 나왔습니다.”

조강득은 손에 든 쟁반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웃었다.

긴장감을 감추고 최대한 평범한 종업원처럼 행동했다.

“서비스요?”

“우리 사장님이 인심이 좋으십니다.”

거짓말도 술술 나왔다.

“국정원 2차장 소속 국내정보 3팀 알파조 7급 공무원 조강득 씨. 요즘은 국정원 원장이 도토리묵도 서비스로 주십니까?”

싸늘하게 들려오는 저승사자 같은 상대 남자의 목소리.

“너, 너희들 뭐야!”

와장창.

크게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뜨린 조강득.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자신의 정체가 이미 노출된 상태였다.

처억!

다급한 마음에 가슴에 품고 있던 총을 뽑아들려 손을 움직였다.

그 순간.

콰득!

상대 남자의 오른팔이 조강득의 손목을 낚아채 돌려 꺾었다.

“악!”

번개처럼 빠른 수법이었다.

조강득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경찰과 언론사 부를까? 국정원 직원이 미래 대선주자인 야당 전 대표를 불법 사찰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 한 판 때려줘?”

귓가에 대고 속사이듯 전하는 비웃음 넘치는 남자의 목소리.

“으으으으…….”

조강득은 소름 끼치는 신음만 흘렸다.

국정원 직원으로서 맡은 바 작전의 실패는 죽음을 의미했다.

다행히 국내에서 발각된 작전이라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

자칫 해외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비명횡사를 당하고도 남을 만큼 창피한 상황이었다.

***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제나라 경공이 공자와 나눴던 유명한 대화 중 한 대목이다.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것입니다.’라고 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완벽한 정치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좋은 말이다.

문제는.

- 누…… 누구세요?

귀신이 먼저 바짝 쫄았다.

내 바로 옆에 청색 관복을 착용한 정체불명의 신이 홀연히 모습을 나타냈다.

하얀 수염이 가슴팍까지 늘어뜨려졌다.

당상관이나 달 수 있는 쌍학흉배와 옥으로 만든 홀을 들고 있다.

금술이 달려 있는 익선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 평범치 않은 신선의 풍모라 하겠다.

눈에서는 남모를 정관이 번뜩였고 그 눈은 좌중을 훑고 있었다.

그가 내 입을 청하지도 않고 썼다.

- 갑자기 나타나 심기를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신선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앉아서 인사를 받기에는 그의 신분이 범상치 않아 보여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난 지금 엄연히 살아 있는 인간들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

누구십니까?

속으로 음성을 전했다.

- 천상림원(天上林院) 학신(學神) 정모라고 합니다.

이름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신이다.

‘천상림원’이라는 곳은 나도 처음 듣는다.

- ……그런데 학신이 닭다리 뜯는 곳에 왜 오셨죠?

나도 궁금했던 바를 귀신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하늘의 학신과 닭다리가 곁들어진 술자리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겁도 없는 쩌리 귀신.

학신 정모가 인자한 성품의 신이라는 걸 간파한 것 같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구절이군요.”

역시 대통령감이다.

쥐나 닭이었다면 절대 알아듣지 못했을 구절을 바로 알고 대꾸해 왔다.

“맞습니다.”

“……제가 학문이 짧아서 그런데 무슨 뜻입니까?”

양우석 의원이 나의 말끝에 끼어들며 물어왔다.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답하신 내용입니다. 크게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하라는 내용입니다.”

김현재 미래 대통령이 짧고 쉽게 풀어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양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게 그 말을 하신 이유가…….”

김현재 대표가 한층 심각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옆에 서 있는 신을 곁눈질했다.

셰익스피어 명언을 나누고 힘을 돋워주려 했는데 본의 아니게 대화의 방향이 틀어졌다.

학신 정모씨가 그냥 나타났을 리 없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이 자리에 강림했을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짐작하건대 지령을 내린 이가 높은 신인 것 같다.

내 입을 묻지도 않고 빌려 사용할 정도로 깡이 좋거나 레벨이 월등히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큰 물고기가 바다를 만나지 못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또 다시 내 입이 멋대로 열렸다.

“…….”

내 질문이 또 이어지자 김현재 미래 대통령이 안경 너머로 눈을 껌뻑였다.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그의 신중한 심성이 엿보였다.

나도 신에게 나를 내맡겼다.

이미 나의 손을 떠난 판이나 진배없었다.

예상하건대 태백산 신령님이 개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자리에 나를 회귀시켰던 한민족 수호신.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김현재가 눈빛을 바꾸고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 남자다.

내 기세가 바뀐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정치와 인생 레벨이 부족한 양우석 의원만이 여전히 눈을 껌벅이며 의아해했다.

짧게 오고 가는 말들에 담겨 있는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일국을 다스릴 자에게 내리는 하늘 신들의 가르침이 임하는 자리였다.

입은 내주었지만 나도 귀를 활짝 열고 귀를 기울였다.

“뻣뻣하면 한세상 살기 어려움을 깊이 아는 광대들이 무리 지어서 선비들의 관을 비웃는구나…….”

그리고 흘러나오는 구절.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말들이다.

“민의를 섬겨야 하는 정치하는 자들과 관료들은 뜨거운 열정은 하나 없이 녹봉이나 다투며 고상함 속에 비굴함으로 상관을 섬긴다네. 붉은 살구꽃이 핀 동산에서 술잔을 나누고 하루를 보내며 서책도 아니 보는구나.”

자못 나랏밥을 먹는 공무원들에 대한 질타가 담긴 듯한 말들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양우석 의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말 속 정치하는 이에 그도 포함됐다.

누가 보면 내가 김현재 미래 대통령을 훈계하는 것이라 생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어쩌겠는가, 어차피 벌어진 일.

입은 이미 내 것이 아닌 수준이 돼 있었다.

“배 삼킬 큰 고기가 큰 바다를 못 만나면 낚싯줄에 걸려 낚싯대에 올라가는 건 하늘이 정한 이치임을 그대는 아십니까?”

하늘이 내린 훈계에 이어 바로 질문이 따랐다.

말인즉은 충심과 열정이 넘쳐도 썩은 내 진동하는 곳에서 같이 놀면 결국은 사냥을 당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음…….”

김현재 대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풍자를 가장해 담은 깊은 뜻이 말들에 서려 있었다.

“홍진 가득한 세상에 사귈 벗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학신 정모씨는 작정한 듯 계속 나의 입을 빌려 썼다.

대신 정중한 말로 김현재에게 물었다.

“…….”

김현재는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각 계절마다 꽃피는 시절에 궁궐에서는 연회가 잦습니다. 득의의 시절에는 천하가 다 내 편인 것처럼 굴지요. 하지만…….”

느릿하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말투가 공간에 무겁게 흘렀다.

“천하를 움켜쥔 용이라 해도 고꾸라지면 개미가 역린을 침범해도 당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잘 알고 계시지요?”

“!!!”

이건 비수였다.

그것도 김현재 미래 대통령의 과거를 들쑤시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톱날이 달린 비수다.

떠난 주무형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뼈아픈 과거.

양우석 의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딱딱하게 굳는 게 보였다.

김현재의 아픈 곳을 내가 사정없이 쑤시고 있는 것으로 보일 터였다.

김현재 대표의 눈빛이 깊이를 알 수 없게 깊숙이 가라앉았다.

눈가에 드리우는 은은한 분노가 보였다.

과거를 생각하는 듯 그의 눈가에 회환과 분노가 알 수 없는 비율로 섞여 아른거렸다.

- 와아! 형님 이런 걸 두고 바로 촌철살인이라고 하는 거 맞죠?

멋모르는 귀신도 알아챌 정도다.

그럼에도 홀을 들고 서 있는 학신 정모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을 내주고 있는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내가 아픈 곳을 쑤시고 있는 행위자였다.

“아프군요……. 많이.”

잠시 후 김현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깊게 가라앉았던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회한과 분노가 차분히 가라앉은 후였다.

눈빛은 다른 의미로 더 이글거렸다.

정신 수양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힘없이 쓰러진다면 1년 뒤, 10년 뒤, 100년 뒤에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습니다.”

학신 정모씨의 뼈있는 가르침은 계속됐다.

“……맞습니다.”

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김현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존경스럽다.

보통 저 정도 수준의 정치인이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김현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파바밧.

그와 다시 그와 눈이 부딪쳤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깜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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