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6장.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1,069/1,284)

1086장.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준비됐지?”

- 넵!

“들켜서 망신당하지 말고 똑바로 해.”

- 선배님 걱정 마십시오.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베테랑 요원이 확신에 차 대답했다.

“상대는 장태산이야.”

- 그래봤자 저에게는 애송이죠.

안경에 장착된 특수 카메라와 귀에 꽂은 초소형 인이어를 통해 대화가 오갔다.

‘이 자식 진짜 사고 치는 거 아냐?’

식당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멈춰 선 특수 차량.

3팀 소속 알파 조장 이대성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장비는 최고로 훌륭했다.

첩보 능력이 탁월한 영국 스파이 조직에서나 사용하던 최신 제품이다.

결코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알아챌 수 없다.

종업원 복장으로 갈아입은 3팀 소속 요원은 자부심이 넘쳐날 정도로 훌륭한 인재였다.

지금까지 수십 번을 활동해 왔지만 단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현장에서 뛰는 만큼 상황에 민감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모든 게 엉망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현 상황에 요원들이 위축됐다.

상부에서 매일 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다 들어줄 수가 없었다.

국정원 직원들도 기득권 세력의 무서움을 익히 잘 알았다.

특히 타락한 거대 언론사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손이 존재했다.

대한민국을 암중에서 조종하는 그 손의 주인.

일송회로 알려진 사조직이다.

모르는 것 빼고 다 안다고 자부하는 이대성도 그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금기시되는 조직 이름이 바로 일송회였다.

독재 시절에는 감히 누구도 외부에 나서지 않았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였다.

과거 문민정부 시절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팀 단위가 움직인 적이 있다.

새로 영입된 직원들이 불순 세력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사건으로 팀원들이 하나같이 죽거나 실종됐다.

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들 역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망가졌다.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되는가 하면 강도를 당해 목숨을 잃거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야말로 팀원들 모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수시로 내부에서 정보가 새나갔다.

그 사건 자체가 경고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이후부터는 정권이 바뀌어도 누구도 그들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이대성도 우연히 정보를 입수해 멋모르고 보고했다가 난감한 처지에 처했다.

죽고 싶어 환장한 새끼라는 말까지 차장한테 듣고 진탕 깨졌다.

블랙아웃 코드가 할당됐다.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극비 정보.

작금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와의 권력 투쟁에 일송회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는 만큼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눈앞에서 해체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 큐 싸인 넣어주셔야죠.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는 조금의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선배들은 알아서 몸을 사리는 장태산 사건에 그만큼 무지했다.

뭣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후배.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빠져나와.”

- 벽에다 마이크 하나 부착하는 것도 일입니까?

적외선 카메라를 비롯해 첨단 도청 장비가 가동되고 있는 차 안.

대기 중인 다른 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 대화 중인 장태산과 전직 야당 당 대표,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따낼 수만 있다면 보험용으로는 최고의 가치가 있었다.

- 어떻게든 되겠지.

결심을 굳힌 이대성.

“액션!”

영화 촬영처럼 큐 싸인이 떨어졌다.

저벅저벅.

후배가 움직였다.

비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본채와 떨어져 있는 별채로 향했다.

손에는 서비스로 지급될 음료수와 도토리묵이 담겨 있는 쟁반이 들렸다.

“어!!!”

그때 차 안에서 특수 카메라로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의 당황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왜? 무슨 일이야!”

바짝 긴장하고 있던 이대성이 물었다.

“여기 보십시오!”

손가락으로 화면 한쪽을 가리키는 직원.

“헛!”

이대성도 화면을 보고 신음을 터트렸다.

***

‘셰익스피어?’

김현재는 장태산이 뱉은 말의 의미를 찾았다.

김현재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데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모두 섭렵했을 정도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작품은 지식인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교양서적이었다.

‘설마 사느냐 죽느냐 이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담겨 있는 어록들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했다.

문제를 낸 선생님의 답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김현재는 장태산의 입술만 바라봤다.

볼수록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흘러 다니는 소문으로만 접했던 장태산.

시간이 갈수록 그에 대한 위명이 대단해졌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친구도 상대하지 못했던 재벌과 보수 언론들.

그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서 싸웠다.

뿐만 아니라 판판이 승리를 쟁취했다.

자수성가로 쌓아 놓은 재산이 수조가 넘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상당수 그룹들이 장태산의 말에 의해 움직였다.

청와대에 들어앉아 있는 권력자들을 상대로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는 장태산.

오바마는 물론 현재 출마 중인 힐러리와 트럼프와도 인연이 깊다고 전해졌다.

성향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꽤 소요됐다.

자칫 섣부른 만남으로 인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인생 친구이자 동지였던 주무형 전 대통령을 어처구니없이 보냈던 김현재.

상처가 있는 만큼 김현재는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친일파 수구 세력들이 승냥이 떼처럼 주변을 돌며 서성이는 걸 감지했다.

믿을 만한 자들 외에는 말도 함부로 섞지 않았다.

작은 꼬투리 하나만 잡혀도 엄청나게 부풀려 사건을 키우는 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배신자들도 속속 얼굴을 내놓으며 등장했다.

주무형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자 알량한 정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등에 비수를 꽂고 돌아선 자들도 많았다.

그들 하나하나를 가슴에 담았다.

자신도 언젠가 못지않게 당할 수 있기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조근영을 세운 이들의 정치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건 당연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미련은 양심의 문제와는 별개였다.

아무리 어리석은 정치력을 보여도 다시 쳐다봐 주는 한국인의 착하고 바보 같은 심성을 그늘은 너무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악마와 같은 양심 없는 자들은 그 사실을 잘도 이용했다.

“회장님 갑자기 셰익스피어는 왜…….”

다선 의원이 된 양우석이 주저하며 물었다.

누가 보아도 확실한 주종 관계로 보일 정도의 태도였다.

장주시 보궐선거에 투입되었던 정치 신인.

장태산 회장이 뒤에서 밀어준 덕에 당선됐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재선 또한 마찬가지.

장주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국제적 연구시설과 각종 기반.

국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지방 도시 하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했다.

그 일을 일개 개인에 불과한 장태산이 해냈다.

“좋은 말씀을 많이 남기고 간 인생 선배님이잖아요.”

‘나와 같은 부류군.’

김현재는 장태산의 말에서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성을 느꼈다.

배울 게 있다면 주저함 없이 인생 선배라 말할 수 있는 자세.

“어떤 말인지 듣고 싶군요.”

“그전에 오늘 만남을 위해 건배하고 싶습니다.”

“그럴까요?”

김현재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는 자신과 그런 점이 달랐다.

목표가 세워지면 거침없이 돌격하던 이제는 떠나버린 친구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중함까지 품고 있는 장태산 회장.

이것만으로도 그에게서 배울 게 많았다.

“대표님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양우석 의원이 판을 깔았다.

“거창한 말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좋은 만남……. 죽는 그날까지 변하지 않기를!”

김현재는 장태산에게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했다.

거짓 없는 눈빛이다.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인간군상들 속에서도 쉽게 대면할 수 없었던 안광.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이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빛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품어야 할 썩은 인물들도 많다.

고르고 골라도 안에서부터 썩어 나오는 알맹이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눈앞의 장태산은 달랐다.

같이 있다 보니 힘이 났다.

자신에게 바라는 게 전혀 없어 보인다.

나국찬 의원이 포섭하려 했지만 대차게 거절당했다.

김현재가 뜨거운 시선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그가 던진 선창.

장태산이 눈빛을 교환하며 씨익 웃는다.

그리고.

“위하여!”

그가 원하던 답을 들려줬다.

***

- 닭다리도 양보하더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귀신이 괜히 심통을 부렸다.

정치를 모르는 초짜 같으니라고.

- 제가 왜 정치를 모릅니까! 지금 셋이 모여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저분을 다음 대 대통령이라도 만들어주실 생각입니까?

아니.

전혀 개입할 의사가 없다.

내가 굴려야 할 판이 아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만들어 낸 자발적인 조직의 힘이다.

프랑스 혁명처럼 역사의 정신이 되는 것이다.

뒤에서 관조할 생각이다.

과거에도 나의 참여 같은 것 없이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불의에 맞섰다.

화산이 폭발하듯 응축되었던 힘이 폭발해야 악의 씨앗들이 불살라질 것이리라.

꿀꺽.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목젖을 타고 짜르르 넘어갔다.

“크.”

“흐음.”

참으려 해도 멋대로 흘러나오는 작은 신음들.

“안주가 식겠습니다. 드십시오.”

말과 함께 계륵을 뜯었다.

능이와 각종 재료가 넉넉하게 들어간 백숙 닭고기는 쫄깃하면서 구수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맛을 더했다.

“진짜 맛집입니다.”

“대표님 많이 드십시오.”

“하하. 양 의원님 다음에 밥 한 번 사겠습니다.”

“영광입니다.”

화기애애한 말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정치인 사이에 오가는 밥 한 번 사겠다는 말의 의미가 남다르게 들렸다.

예상보다 빠르게 양우석 의원이 성장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대통령이 될 김현재 대표는 의외로 인물난에 시달렸다.

쓸만한 자들 상당수가 청문회 관문을 건너지 못했다.

한 번 깨어나기 시작한 국민들의 엄중한 도덕적 잣대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럼 이제 들려주십시오.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 궁금합니다.”

술이 한 잔 돌자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워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 형님! 저도 궁금합니다.

귀신도 재촉했다.

미래의 김현재 대통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강력한 이유는 강력한 행동을 낳는다.’”

“강력한 이유는 강력한 행동을 낳는다…….”

미래 김현재 대통령이 나의 말을 곱씹었다.

그에게 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세상을 면밀히 바라보고 세세하게 알아가는 법입니다. 대표님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확신과 이유가 있습니까?”

직구를 날렸다.

무례할 수도 있는 물음이다.

전 대선주자가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는 하나였다.

대통령이 되어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국가를 완성하는 것.

“물론입니다. 전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요람으로 만들고 싶은 참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주저함도 없이 바로 튀어나오는 만족스러운 그의 답변.

이것저것 재지 않았다.

목소리에 담겨 있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저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가시밭길……. 옆에서 박수 치며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미 거짓이 없는 대화의 자리이기에 긴말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마주하는 눈빛에 온 마음을 담았다.

그 순간 입술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열렸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회귀의 전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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