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3장. 태풍이 몰아치다(2).
“지금 청와대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난리라고 합니다. 비서실장 주 하에 민정수석을 비롯해 핵심 비서관들이 모여 계속 회의 중입니다.”
리앤장의 이사실.
부친의 부재로 실권을 쥐게 된 손대균은 정보 담당자의 실시간 보고를 받았다.
피해갈 수 없는 권력 전쟁이 시작됐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휴전 상태가 산산이 깨졌다.
이제는 정체를 확실히 드러낸 회주로부터 공격 지시를 받은 조국 일보.
그들이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간 철저하게 감춰놓았던 자료가 방출됐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먼저 공격을 시작한 건 일본 쪽 한국 주제 신문사 지부장이다.
일송회와 뗄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관련된 지부장.
조근영과 주순자의 남편 사이의 불륜설을 슬슬 유포하며 군불을 지폈다.
처음에는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멍청한 주순자가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
아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자 일본에서 한 방 제대로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권력에 심취한 주순자는 내막을 알아채지 못했다.
눈이 돌아간 상태에서 울타리가 돼 줬던 조국 일보를 상대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주순자의 아킬레스건인 자녀의 대학 입시 문제까지 불거졌다.
이전보다 더 날뛸 게 빤한 주순자.
아무리 빨리 눈치채도 아차 싶겠지만 일송회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파장이 어디까지 가느냐는 것이지.’
손대균은 딸 문제로 인해 이미 손발이 묶인 입장이다.
그만큼 회주의 꼭두각시 노릇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처지다.
아직까지는 딸의 문제로 보복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회주에게 언제 소환될지 몰랐다.
그나마 가족 때문에 바짝 엎드려 살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리앤장의 힘으로 일송회를 힘껏 도왔다.
자신의 가진 힘으로는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악령의 나무 일송회.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대통령을 잡아 흔들었다.
손대균도 이 일로 인한 여파의 범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사님. 파장이 어디까지 튈지 모르겠습니다.”
정보 담당자도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자네 생각에는 어느 정도에서 멈출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조국 일보의 영향력은 예상외로 강력했다.
장로회에서 다음 대 대통령으로 여러 인물들이 언급됐다.
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주순자를 감옥에 넣자는 데까지 얘기가 진행됐다.
‘아직 세상이 변한 걸 몰라…….’
현재 조국 일보와 일송회는 민심의 향방을 읽어내지 못했다.
과거의 긴 세월 동안 자신들이 계획한 대로 또다시 움직여줄 거라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현재의 국민들은 몇 차례의 대통령을 번갈아 세우며 체득한 배움으로 깨어나고 있다.
또 단순한 정치적 논리로 세뇌시켜 주동하기에는 교육 수준이 너무 높았다.
IT 발달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손대균도 그 같은 변화에 놀라 몸을 사렸다.
부쩍 최근 들어 리앤장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느낄 정도다.
재벌과 기득권층만을 위해 움직이는 거대한 법조 사기업이라는 인상이 굳어졌다.
자칫 잘못하다가 역풍에 맞아 형체를 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권력에 취해 온 이들은 지금도 앞만 보고 달렸다.
“정보력을 풀 가동해 뭐든 알아내.”
“넵!”
“가봐.”
“쉬십시오.”
지시를 받은 정보원이 사라졌다.
“주순자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살기 위해서는 뭔 짓이라도 할 여자야.”
무지한 아낙네에 불과했다면 정치적 재능이 전무한 조근영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정치에 입문시킨 뒤 오랫동안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해온 주순자와 그 집안.
이번 사태로 진짜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도 남았을 것이다.
“며칠 뒤면 본격적인 태풍이 몰아치겠군…….”
리앤장 이사의 사무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
멀리서부터 비라도 몰고 오는 듯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상청에서 며칠 뒤 태풍이 상륙한다고 예보한 상태였다.
“태산아……. 난 널 믿는다.”
혼란한 틈에도 어느 곳에서든 그 거대 태풍에 맞설 용맹한 청년이 떠올랐다.
이제는 감히 쉽사리 대응조차 할 수 없는 인사가 되어 버린 후배 장태산.
오늘따라 다 터놓고 술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
- 그 싸가지 아줌마 맞죠?
스마트폰을 통해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듣고 있던 귀신이 물었다.
귀신도 인정할 정도의 싸가지계 대모.
나에게 SOS를 날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현 사태가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는 걸 주순자가 이제 깨달은 것 같다.
- 뉴스 안 봤어?
“바빴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요즘 더 꼼꼼하게 전세계와 국내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내가 이미 겪고 온 미래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대조하며 신중하게 발을 떼고 있다.
- 장태산, 네 도움이 필요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껏 몸을 낮춘 주순자의 도움 요청.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시치미 떼는 연기가 수준급이다.
- ……조국 일보, 그 개새끼들이 나와 VIP를 공격했어! 이 변태 새끼들이 내 딸아이까지 물고 늘어지잖아! 아 씨발 짜증나!
욕이 참 찰지다.
자신도 결코 떳떳하지 않으면서 조국 일보를 상대로 시원하게 욕을 퍼부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조국 일보나 주순자나 나에게는 한색깔로 보였다.
- 흐흐흐. 아주 쌤통입니다!
귀신은 흐뭇하게 상황을 즐겼다.
나와 함께 뉴스를 정독해 온 귀신도 주순자가 처한 상황을 잘 알았다.
본인만 상황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챘지 권력층들은 이미 물갈이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버려질 권력의 냄새를 진작 맡았다.
“조국 일보요? 거기 독한 놈들인데……. 웬만하면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십시오. 같은 편이지 않습니까.”
- 같은 편? 무슨 소리야! 그 새끼들 VIP 만들 때 아주 쬐금 도와준 것밖에 없어. 사사건건 간섭하려 들고 청와대 상주 기자들은 룸살롱이랑 돈 봉투나 밝히고……. 아주 개 쌍놈의 새끼들이야. 국가를 위해서는 확 불질러버려야 하는데!
주순자가 단단히 화났다.
마음에 쏙쏙 드는 말들로 나의 귀를 시원하게 뚫어줬다.
“안타깝지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부탁, 냉정하게 거절했다.
- 장태산! 너 빽 좋잖아. 미국 측에 연락 좀 넣어줘. 아무리 조국 일보라고 해도 백악관 전화면 해결돼.
주순자가 처음 보는 저자세로 나왔다.
“거기 대통령 선거로 지금 정신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도와야 하죠?”
- 뭐라고? 지금 너 나 쌩 까는 거야? 나한테 도움받았던 거 다 잊었어?
주순자가 어이없다는 듯 큰소리로 나왔다.
본인이 한 짓은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나쁜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을 다 가졌다.
- 우리는 거래를 했습니다. 서로 만족스러운 거래였을 뿐입니다.
건네는 말에는 최대한 감정을 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주순자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더 엮였다가는 골치 아파진다.
- 나 도와주면 내가 너 뒤를 봐줄게. 아직 대통령 임기가 1년 이상 남았어. 필요한 거 말해. 이번 일 정리되면 빵빵하게 밀어줄게.
주순자는 아직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국 일보가 이런 식으로 대놓고 포문을 열었다면 이 건에 대해 끝장을 보겠다는 의미다.
치밀하고 더럽고 야비한 조국 일보다.
일송회의 나팔수와 같은 조국 일보가 공격 신호를 보냈으니 앞으로는 대규모 공격이 펼쳐질 것이다.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전에 제가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적당히 헤쳐 먹으라고 말입니다.”
- 뭐, 뭐라고? 야! 장태산! 너 나 무시하는 거야? 네가 내 도움을 받아 해결한 일이…….
“같이 삽자루 들고 땅 파서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십시오. 만약 저를 물고 늘어지면…… 자녀들의…….”
길게 말하지 않았다.
악인들에게도 피붙이인 자식들은 그 무엇보다 귀한 법이다.
특히 악독한 주순자도 자식 사랑만큼은 유별났다.
- 나쁜 놈…….
주순자가 나한테 욕을 했다.
가볍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하죠.”
- …….
“그분에게 후지게 뒤처리하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믿어줬던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라고 충언을 올리세요.”
이 말만은 진심이다.
불명예를 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그분.
마지막까지 똥고집과 무지를 앞세워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게 사라진다.
최소한의 품격도 보이지 못했다.
다시 반복될 그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다.
- 너……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으드득.
주순자가 정신 못 차리고 애먼 상대한테 화풀이다.
전혀 두렵지 않았다.
여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올 그녀를 휩쓸 거대 태풍.
“오늘부터 저희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뚝.
쿨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관계를 정리했다.
- 푸하하하하!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귀신이 나의 하는 양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같이 웃고 싶지만 마음이 씁쓸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전 국민이 직접 뽑아 올린 대한민국의 수장.
그럴싸하게 겉모습을 포장했던 위선의 탈이 벗겨지고 드러난 거짓과 무능에 국민들은 치를 떨었다.
그녀로 인해 떨어진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유무형의 경쟁력.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들을 농락한 죗값을 충분히 치러야 한다.
띠리리리리리.
스마트폰이 울렸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다.
“장태산입니다.”
- 회장님 접니다.
공손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네. 의원님.”
- 실례지만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무척 조심스럽게 시간을 물어오는 양우석 국회의원.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약속 장소를 문자로 찍어 놓겠습니다.
양우석 의원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떨렸다.
만남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았다.
주순자에 대한 일로 야당 또한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알겠습니다.”
-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차분하게 통화를 끝냈다.
머릿속을 스치며 의문이 들었다.
평소 알아왔던 양우석 의원의 미팅 요청 스타일과 달랐다.
- 형님. 진짜 바쁜 거 인정합니다.
평소 고단한 나의 일과를 직접 봐온 귀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 사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 인정! 인정!
띠링.
문자가 도착했다.
양우석 의원이다.
장소는 북한산 송추 계곡에 위치한 펜션 식당.
뭔가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의중이 엿보였다.
- 송추 계곡하면 토종 백숙이 유명하지 않나요? 흐흐흐. 입맛이 도네요.
이제 백숙 맛도 아는지 귀신이 침을 흘렸다.
나는 백숙보다는 머릿속을 혼잡하게 떠다니는 의문 부호가 문제다.
“가보면 알겠지.”
우선 마음을 비웠다.
태풍이 상륙하기 전에 뭔가 대비를 하는 느낌이다.
“마저 달려볼까.”
다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 화면에 세계지도가 떴다.
지금도 활발하게 증식하고 있을 나의 자산.
딸깍.
흐뭇하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
“회장님.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만남 이후 나에게 더 깍듯해진 양우석 의원.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나타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백숙이 그리웠습니다. 오늘은 의원님이 쏘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이 식당은 백숙 말고도 도토리묵이 기가 막힙니다.”
양우석 의원이 가볍게 건넨 농담에 활짝 웃었다.
“백숙도 준비되어 있고 소주 한잔할까요?”
서울시 외곽에 딸려 있는 산장 형태의 식당은 별채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그곳에 준비된 먹음직스러운 토종닭 백숙.
막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저를요?”
“네!”
양우석 의원의 눈은 살짝 들떠 있었다.
“누구…….”
저벅저벅.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발자국소리.
“오셨나 봅니다!”
양우석 의원의 얼굴까지 밝아지며 활짝 웃었다.
- 형님, 누구를 소개하려고…….
귀신도 상황이 의아한지 물었다.
그때.
드르륵.
별채의 미닫이문이 열렸다.
“이거 제가 늦은 것 같습니다.”
활짝 웃으며 안으로 들어서는 중년의 남자.
“헛!”
그를 보는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2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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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