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5장. 신 길동전(6).
“비비이이이이!!!”
루이스는 눈앞의 인물이 비비안임을 확인하고 미친 듯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아사신과의 전투는 언제 어디서 벌어져도 위험했다.
놈들의 전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졌다.
그리고 합류하는 숫자도 갈수록 늘었다.
게다가 아사신을 상대하기 위한 강한 기사들을 키워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육체와 강인한 정신력이 요구됐다.
신앙과 충성심도 빼놓지 않고 증명해야 했다.
중세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성전기사단의 훈련법은 유난히 달랐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기사들도 아사신과의 전투에서는 많은 피해를 봤다.
유럽을 지키는 일도 벅찼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아사신의 수법은 교묘해졌다.
급기야 흑마법이 놈들에게 제대로 전수됐다.
잠자던 고대 무구들까지 꺼내 그들을 상대해야 할 정도가 됐다.
오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일드 가문의 후계자이자 야훼의 성녀인 로리아나를 공격한 무식한 아사신.
기사단까지 농락하듯 이 자리에 초청하며 함정을 팠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눈앞이 캄캄했다.
이 자리에 오기 전 비비안이 주변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그 말끝에 본인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고 말했던 비비안.
안전 가옥에 두고 온 것이 화근이 됐다.
실력을 짐작할 수 없는 아사신 전사에게 붙잡혔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몰려왔다.
새카만 로브는 어둠과 파멸,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저자는 인간 같지도 않았다.
특수한 호흡법을 수련해 온 루이스는 분명하게 느꼈다.
놈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악마의 하수인이나 진배없었다.
철컥!
루이스가 먼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턱!
그때 에두아르가 재빨리 루이스를 붙잡았다.
“안 됩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에두아르.
“비비를 구해야 돼!”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콰드드드득!
그때 바닥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십 개의 물체.
방금 전 베어 넘겼던 아사신의 좀비들과 똑 닮았다.
그러나 또 달랐다.
새카만 안광이 깊게 파인 눈동자에서 쏟아져 나왔다.
“키키키키키키…….”
“크크크크크.”
놈들의 손에는 녹슨 방패와 검이 들려 있다.
중세시대 가장 참혹한 격전지였던 이곳 예루살렘.
그 당시에 사용했을 법한 녹슨 무기들을 놈들이 들고 있었다.
문제는 전혀 쓸모가 없어야 할 무기들이 진한 핏빛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검에 스치기만 해도 순간 독에 중독될 것 같았다.
캉! 캉! 캉!
기사 복장과 아랍 전사 복장을 한 자들이 뒤섞였다.
놈들은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무기로 방패를 두들겼다.
낡을 대로 낡은 무기들이지만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으으으…….”
귀를 파고드는 기이한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루이스를 비롯해 기사단원들의 인상이 잔뜩 찌푸렸다.
의식을 파고드는 악령의 웃음소리와 무기를 두들김으로써 퍼져 나오는 저주의 파장.
“성전기사단!!!”
“어찌 저런…….”
문제는 땅에서 튀어나온 아사신의 괴물들 틈에 중세 성전기사단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녹슨 갑옷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붉은 십자가.
성전기사단의 오래된 상징이자 징표였다.
기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신앙의 상징이던 성전기사단의 먼 선배들이 악령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
“모두들 정신 차려!!! 흑마법사가 만들어 낸 장난일 뿐이다!”
에두아르가 격하게 소리쳤다.
성기사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깨끗할 수 없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식육이 횡행했다.
성에 갇힌 채 포위당하면 당연히 식량 부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동물들 중에서도 쓰임이 오래가는 말이 가장 마지막에 죽임을 당한다.
그다음은 인간이다.
그때 제일 먼저 희생당하는 부류가 이교도들이다.
십자군과 아랍전사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전쟁에 따른 폭력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상황에 신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일을 자행하는 자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 부류의 죽은 자들이 악신의 부름에 응답했다.
“너희들은 나 무함마드 압둘 하리스의 제물로 선택됐다. 이 땅을 시작으로 모든 세상이 정화될 것이다. 새로이 주인으로 오실 그분을 경배하라! 천국과 같은 지옥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하!”
로브가 들썩거릴 정도로 광소를 터트리는 무함마드 압둘 하리스.
“…….”
그의 웃음소리에 모두들 창백하게 안색이 질렸다.
다만.
“지랄하고 있네.”
한 남자만이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 혀, 형님! 저 자식 엄청 세요!
귀신이 등 뒤에서 바짝 쫀 채 말했다.
한눈에 봐도 내가 지금껏 만났던 놈들과 차원이 다르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서 어쩌라고’다.
놈이 사용하는 흑마법이 제법인 건 인정하다.
아사신의 좀비들을 제물로 바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던 오래된 악령들을 깨웠다.
그에 악독한 지박령들이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이계 신전 기사들이 이 상황을 봤으면 환장했을 것 같다.
신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신들을 때려잡는 것만큼 효과가 큰 게 없다.
다만 이곳이 이계가 아니고 지구라는 게 문제다.
- 야훼가 긴급 채팅을 요청합니다!
야훼는 나와의 대화를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속이 바짝바짝 탈 거다.
아무리 야훼라 하더라도 신들이 정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여기서 뒤로 빼지 않고 내가 힘껏 일한다면 알아서 포인트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차단!
간단하게 대화 요청을 차단했다.
- 채팅 요청이 차단됐습니다.
이래봬도 나 레벨업 했다.
야훼 눈치 보며 쫄 군번 따위가 아니다.
더욱이 지금은 내가 갑이다.
스윽.
여유 있게 아공간을 열고 큼지막한 병 하나를 꺼냈다.
애꿎은 인연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싶지는 않았다.
“에두아르!”
친분 있는 기사를 불렀다.
나의 부름에 내 쪽을 바라보는 에두아르.
“무기에 뿌려.”
가볍게 그에게 병을 던졌다.
턱!
무의식적으로 날아오는 병을 잽싸게 잡아채는 에두아르.
“뭐지?”
그가 의아한지 물었다.
씨익 입가에 번지는 미소.
“좋은 거.”
길게 말해 봐야 의미 없다.
직접 경험해보면 안다.
“…….”
의구심에 가득찬 시선으로 날 지그시 바라보는 에두아르.
갈등하는 눈빛이다.
뽕!
하지만 잠시 주저할 뿐 이내 병을 열고 내용물을 무기에 뿌렸다.
파아아아아앗.
그 순간 에두아르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푸른빛.
지켜보고 있던 이들로 하여금 경외감이 들게 할 만한 신성한 빛.
“서, 성령의 오라!”
“!!!”
빛의 정체를 안 듯 기사들이 깜짝 놀랐다.
- 형님 귀한 거 아닙니까? 저런 건 막 뿌리면 안 되는데…….
귀신은 장사의 기본을 너무 몰랐다.
기본적으로 물건을 팔 때는 미끼로 광고 상품이 필요하다.
한번 맛을 보게 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성수의 마력이 그것이다.
성전기사단은 이제 내 주요 단골 고객이 될 것이다.
어차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이다.
아사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강하게 요구될 공격수단.
매일 밥 먹고 기도해 봐야 지구에서는 이제 성수 같은 신의 축복은 내려오지 않는다.
오직 나를 통해 단독 공급이 가능할 뿐이다.
이것저것 기사단에 팔아먹을 만한 장비 목록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공간에 처박혀만 있던 내가 만든 장비 종류들.
때를 잘 만나 재고 처리할 기회가 온 것 같다.
“뭣들 합니까. 다들 뿌리세요!”
바로 반응하는 성수 효과에 놀란 기사들을 보며 외쳤다.
그 틈에 루이스가 나를 쳐다봤다.
죽고 싶지 않으면 자존심 따위는 굽힐 것이다.
“루이스님!”
에두아르가 그에게 병을 넘겼다.
스르릇.
이제 애 아빠가 된 루이스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성수를 검에 뿌렸다.
“비싼 겁니다. 흘리지 않게 뿌리십시오.”
한 병을 더 꺼내 던지며 말했다.
- 길동 형님…… 다 계획이 있었던 겁니까?
귀신이 이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다.
너도 한 병 마셔볼래?
- ……제가 먹으면 바로 성불할 것 같은데요.
이럴 때는 또 눈치가 빨랐다.
“……크으.”
무함마드 압둘 하리스라는 자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기사단이 무기에 뿌리고 있는 성수가 자신과 상극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어떻게 저 물건이…….”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노려보는 놈.
눈빛이 개 살벌했다.
“너 어디서 약 팔다 온 놈이냐?”
“뭐, 뭐라고!”
“보아하니 멀쩡한 놈은 아닌 것 같고……. 약빨로 버텨왔네.”
“!!!”
놈이 막 던지는 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정품 써라. 짝퉁 좋아하면 한 방에 골로 간다.”
악신의 은총은 그야말로 달콤하기 그지없겠지만 그 대가가 만만치 않다.
아사신들에게 제대로 강한 놈이 붙은 거 같았다.
살아도 산 게 아닌 놈을 수하로 부렸다.
“감히…… 검은 성전의 수호자인 나에게…….”
일단 자존심이 상한 듯 놈이 이를 갈았다.
“무함마드야.”
처음 대면하는 그를 친근한 말투로 불렀다.
그리고.
“빨리 끝내자. 이러다 날 밝으면 우리 서로 귀찮잖아.”
스으윽.
아공간에 손을 뻗어 넣었다.
바로 손에 잡히는 지금 딱 쓰기에 적절한 무기.
날카로운 창이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빠져 나왔다.
“……넌 누구냐!”
이제야 나의 정체가 궁금해졌는지 질문을 하는 검은 성전의 수호자.
그런 그를 보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며 웃었다.
“내 얘기 못 들었어?”
씨익.
입가에 제대로 웃음꽃이 폈다.
“누가 나보고 그러더군……. 전문 퇴마사 장길동이라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