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7장. 리더(Leader)(4). (1,042/1,284)

1057장. 리더(Leader)(4).

“오바마가 돌아갔다고?”

힐러리는 오바마를 두고 대통령이라 호칭하지 않았다.

그녀가 백악관 안주인일 때 오바마는 고작 작은 주의 주지사에 불과했다.

힐러리가 아니었다면 그게 오바마 경력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오바마를 발탁해 오늘의 자리까지 이끌어 준 장본인이 바로 힐러리였다.

오래전부터 구두로 계약되어 있었다.

8년 뒤, 남편의 스캔들이 잠잠해질 무렵 백악관의 주인 자리를 바꾸기로 약속했다.

물론 이 비밀은 그와 힐러리 두 사람만이 공유한 내용이다.

그런 이유로 국무장관 시절 힐러리는 대통령인 오바마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때가 많았다.

외부적으로 오바마가 결정하는 중요 정책에도 사실은 힐러리의 의사가 적극 반영됐다.

“대통령 전용기가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요즘 힐러리의 심기가 예민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힐러리는 생각에 잠겼다.

‘실패한 건가?’

다니엘 장을 만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거절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의외로 다니엘은 만남을 수락했다.

문제는 힐러리가 다니엘을 만나기 전 먼저 오바마가 선공을 취했다는 것이다.

힐러리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고 바로 돌아갔다면 오바마의 만남 목적은 실패했음을 의미했다.

“트럼프 쪽에서도 전용기를 띄웠습니다.”

“약삭빠른 인간이잖아.”

머저리에 바람둥이 푼수로 소문이 나 있지만 트럼프의 잔머리는 기가 막혔다.

일개 사업가 주제에 대통령인 오바마와 설전을 벌일 정도로 배짱이 넘쳤다.

그래서 그를 더 무시하고 싶었다.

예의도 염치도 없는 트럼프.

그는 처음부터 힐러리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트럼프가 만들어 놓은 진흙구덩이에 같이 빠져드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위협적으로 힐러리를 몰아오는 트럼프.

“사라 요한슨도 움직였습니다.”

“하아아아…….”

급기야 힐러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니엘과 만나기로 한 약속은 내일이다.

미리 LA로 향했다.

선거유세로 한창 바쁜 시간에 귀중한 시간을 쪼갰다.

이런저런 소식에 두통이 밀려왔다.

이스라엘을 수호하는 야훼바트도 다니엘 장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상황이 이 정도면 사라 요한슨 정도는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두통약 있지?”

“지금 드릴까요?”

“어.”

보좌관이 생수와 두통약을 건넸다.

꿀꺽.

바로 약을 삼키는 힐러리.

남편 때문에 한때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대학시절부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남편은 백악관에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

야심이 컸던 탓에 남편을 용서했지만 여자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두통약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버틸 수 없었던 시간들.

얼마 전부터 어렵게 끊었던 두통약을 다시 복용하게 됐다.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예민했던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보좌관이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해.”

효과가 빠른 진통제를 먹고 이마를 꾹꾹 짚는 힐러리.

약기운이 도는지 다소 느른한 표정으로 보좌관을 바라봤다.

“러시아 쪽도 다니엘 장과 연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잖아.”

다니엘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 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베리아 횡단 고속철도 같은 대형 인프라 사업에도 다니엘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 점은 이미 정보통에 의해 파악된 사실이다.

차르와 다니엘의 관계가 보통 사이가 아니다.

“모종의 작업이 진행 중일 수도 있다는 보고입니다.”

“모종의 작업이라…….”

남편 재임 시절부터 민주당은 러시아와 협력적이지 않았다.

오바마도 차르와 선을 긋고 있었다.

“러시아 비밀 정보팀이 가동 중이라고 하며 앞선 보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러시아만 그러는 게 아니잖아.”

세계 각국이 보이지 않게 암중에서 선거에 개입하고 있었다.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을 생각하면 다음 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촉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름의 그들 방식대로 후보들에게 힘을 보탰다.

IT가 발달하면서 중요해지고 있는 SNS 선거 운동 방식.

힐러리도 공을 들이는 부분이었다.

“다니엘이 러시아 요원과 만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요원? 확실해?”

“네.”

“누구?”

“그녀는…….”

***

- 도대체 누구를 만나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습니까? 화면에 뜬 T가 누굽니까?

귀신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했다.

굳이 T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았다.

부우우우우우우웅.

고배기량 자동차가 LA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오바마를 만나고 난 뒤 밀려왔던 스트레스가 T의 전화 앞에 사라졌다다.

귀신도 모르고 임성철 회장도 모르는 나의 인연.

귀신이 따라붙었다.

“내 생명의 은인.”

- 형님 생명의 은인요? 뭐, 슈퍼맨이라도 됩니까?

차원 이동까지 가능한 내 실력을 알고 있는 귀신이 못 믿겠다는 듯 물어왔다.

“후훗.”

구체적인 얘기를 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그녀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촤라라라라랏.

2인승 로드스터형 슈퍼카를 타고 달리는 맛이 제법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LA 도심 풍경을 감상했다.

바쁠 이유가 없어 규정 속도로 달렸다.

나란히 주행하던 차에서 뭇 남녀들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순수 예약제로 1년에 20대만 한정 판매되는 명품 이탈리 슈퍼카 파가니.

태평양 바다 색감과 비슷한 파랑이 슈퍼카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며 촌스럽지 않은 감성을 자랑했다.

최고의 예술성을 추구한다는 이념이 그대로 차에 반영됐다.

슈퍼 모델 같은 날렵하고 매끄러운 차체 라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크지 않은 차체지만 12기통 7300CC 엔진음은 강력한 토크와 함께 온몸에 전달됐다.

페달을 시원하게 밟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았다.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차체가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하늘로 날 끌고 올라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 형님! 여자죠? 그것도 미인?

궁금한지 귀신이 계속 정체를 물어왔다.

“보면 알아.”

- 와아아! 속 터져 죽겠네. 그냥 알려 주시죠!

“너 계속 그렇게 징징대면 노바 형님한테 안 보낸다.”

한 방에 먹힐 강력한 협박을 날렸다.

- ……닥치고 있을게요.

귀신에게 확실하게 먹히는 협박 멘트 한마디에 장립이 꼬리를 말았다.

“저 차 뭐야?”

“파가니 아냐?”

“멋진데?”

“차에 타고 있는 남자도 괜찮은 것 같아.”

“모델인가?”

어느새 시내로 진입했다.

오가는 LA 미녀들이 차와 나를 번갈아보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승차감 기분 나쁘지 않았다.

한국과 달리 그들은 감정 표현에 자유로웠다.

부우우웅.

그렇게 시선을 즐기며 목적지로 이르렀다.

- 형님! 저 앞에 미녀 보이십니까? 휘이이. 주변을 압살합니다.

조용히 있던 귀신이 휘파람을 불었다.

나도 그녀를 보았다.

180cm 정도 되는 키에 날씬한 체형.

미녀는 아이보리색 가벼운 롱코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지나가는 여자들도 놀라서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 넘기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성였다.

끼이이익.

차를 세웠다.

주변의 시선을 끌고 있는 미녀가 날 봤다.

“타시겠습니까?”

미소를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 혀,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가에서 헌팅은 형님의 격조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런 미녀가 차만 보고 탈 리가…….

귀신이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기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길거리 헌팅.

“그럴까요?”

미녀가 날 보며 싱긋 웃었다.

딸깍.

조수석 문을 열고 의자에 앉는 그녀.

훅하고 그녀 특유의 체취가 풍겨왔다.

“어디로 모실까요?”

“오늘은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그럼…… 저만 믿으십시오.”

장난스러운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아아아앙.

바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좀 전과 달리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차체.

- 형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이건 빠, 빨라도 너무 빨라요!

***

쪼로로록.

무채색의 투명한 독주가 잔에 채워졌다.

향기도 거의 없었다.

애주가나 되어야 맡아진다는 주향은 그녀에게 아직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마시고 나면 뒤끝이 없었다.

독한 만큼 화끈했다.

겨울밤이 깊고 추운 러시아인에게는 필수 음료수 같은 존재.

보고 싶었던 남자가 앞에 있어 오늘따라 보드카가 더욱 더 매력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못 보던 사이에 더 아름다워졌는데?”

“보고 싶기는 했던 거야?”

“응.”

“그 거짓말 믿어 줄게.”

여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평소 같으면 저런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는 남자의 낭심을 걷어찼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목에 단도를 박거나.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평범한 대화에 불과했지만 가슴이 뛰었다.

요즘 들어 매일 긴장의 연속인 나날을 보냈다.

중요한 임무를 띠고 미국으로 날아왔다.

그 와중에 상부의 명령으로 다시 만남을 갖게 된 남자.

외모는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동양인답지 않게 강렬한 수컷 냄새가 맡아졌다.

눈빛은 더 깊고 섬세해졌다.

그런 그에게 오늘 밤 역시 빠져들게 빤했다.

푸시킨의 시를 닮은 남자의 눈빛이 뜨겁다.

목이 말랐다.

“다시 만난 우리를 위해 건배.”

여인이 먼저 잔을 들었다.

팅!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잔에 채워진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화끈함이 목젖을 타고 심장까지 전달됐다.

평소와 달리 빠르게 심장이 달아오르며 전신으로 기분 좋은 열기가 퍼졌다.

“보고 싶었어.”

알코올에 의지하며 여자가 먼저 고백했다.

용감한 슬라브 민족 여성답게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런 시간이 아니면 결코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하얗게 날을 새고 싶었다.

몇 번 안겨봤던 남자의 거칠고 부드러운 육체가 그리웠다.

“그 진심 믿어줄게.”

남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처음 그때처럼 그의 눈동자는 이글거렸다.

끓어오르는 욕망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다니엘…….”

“???”

“당신 지금…… 위험해.”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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