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장. 리더(Leader)(3).
촤라라라라랏.
바람이 더 거세게 불어왔다.
곧 비바람이 몰아쳐 올 것처럼 먹구름이 해풍을 타고 육지로 밀려오는 게 보였다.
“각하. 바람이 거세집니다. 이만 돌아가시죠.”
비서실장 데니스가 오바마에게 다가왔다.
망부석이 된 듯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오바마.
다니엘이 자리를 뜬 지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오늘 장태산과의 만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일정이었다.
게다가 오후에는 중요한 회의가 잡혀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이다.
백악관 소속 경호원들도 대통령 덕분에 좋은 자리에서 바다를 실컷 구경하고 있었다.
후루룩.
속이 타는 듯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마셔 버리는 오바마.
‘뭔가 결단을 내리시려는 것 같은데…….’
부보좌관으로 시작해 비서실장까지 오른 데니스는 오바마가 어떤 결심을 했다는 걸 눈치 챘다.
지난 7년의 국정 운영 동안 오바마는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리고 한결같이 한 방향으로 선택해 왔다.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결정들도 많았다.
그때마다 오바마는 지금처럼 고심에 빠졌다.
최종 결정은 물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위대한 자리.
모든 것을 홀로 견뎌내야만 했다.
오바마는 보좌관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했지만 독배와 같은 선택은 홀로 결정했다.
“데니스.”
“네. 각하.”
“폭풍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항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장은 어떤 심정일까?”
“네?”
갑작스러운 오바마의 물음.
‘다니엘 장과 관련 있다!’
데니스는 오바마가 조금 전 자리를 뜬 다니엘과 관련한 문제로 고심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오바마 정권 창출의 핵심 인물이기에 알게 된 다니엘이라는 존재.
일개 한국인 청년에 불과한 다니엘의 파격적 행보에 대해 데니스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불과 몇 년 되지 않는 사이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IT업계에서 종종 탄생하는 신데렐라 같은 갑부가 아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세력들의 농간이 난무하는 금융계에서 탄생한 초대형 거부.
그가 가진 재산의 규모를 미국 행정부나 정보력도 정확하게 파악 못 하고 있었다.
월가의 신화인 로버트 라이언의 친구로만 알려져 있는 다니엘.
그가 최근 들어 부쩍 대통령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오바마 탄생의 1등 공신이면서 배척해야 하는 적으로 단정 지어진 다니엘 장.
믿을 수 없지만 힐러리 대신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것만으로도 배척의 이유는 충분했다.
“허리케인 같은 녀석이야.”
오바마가 장태산을 인정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 봐야 한국에서 탄생한 신흥 부자일 뿐입니다.”
데니스가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이 느끼는 권력의 세계에서 다니엘의 영향력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평소 사색을 즐기는 오바마가 그를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네도 속았군. 훗.”
오바마는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짧게 웃음을 흘렸다.
“각하. 하지만…….”
“데니스, 폭풍의 시작도 처음에는 그저 그런 작은 바람으로 시작하는 법이네. 뜨거운 수증기를 만나고 자신의 힘이 강해지면……. 그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되지.”
“…….”
데니스는 그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현자 같은 오바마의 말 속에 굵은 뼈가 박혀 있었다.
“문제는 그 폭풍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항구에 정박해야 할지, 목표를 향해 돛을 올려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거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오바마의 말에는 지금 그의 심중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니엘, 이 벌레 같은 자식이!’
모시고 있는 수장의 고민에 데니스는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멀리서 지켜보며 두 사람 사이의 기운이 다소 격하다는 건 알았다.
그 모습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다.
“각하는 위대한 미연방의 대통령이십니다! 항해를 결정하셨다면 그대로 출항하셔도 됩니다. 미연방의 항공모함은 그런 폭풍에 굴하지 않습니다!”
데니스가 뜨거운 마음을 담아 진심 어린 열변을 토했다.
자신이 모시는 수장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왔다.
고뇌에 찬 시간을 보내며 어렵게 결정된 정책들은 보답이라도 하듯 하나둘씩 꽃을 피웠다.
오바마 케어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 오바바의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본 사람이 데니스였다.
세계를 보호하는 경찰 노릇을 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국의 국익을 먼저 챙겨야 했다.
미국이 하는 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이 되었든 부수어 앞에서 치워버림이 옳았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역사였다.
더욱이 상대는 한 국가가 아닌 일개 개인에 불과했다.
다니엘의 역량이 아무리 강하다 하지만 그를 지탱하는 한국이라는 뿌리는 약했다.
러시아나 중국, 인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소국 한국의 돈 많은 신흥 재벌일 뿐이다.
그의 그런 행태는 미국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는다.
“힘들지만 선택해야지.”
오바마가 결심을 굳혔다.
결연한 표정이 온전히 드러났다.
“국방장관에게 연락하게. 오후 회의에 참석하라고 말이야.”
“넵! 각하!”
“그리고 한국 대사관에도 준비하라고 일러두게.”
“그 말씀은…….”
데니스가 말의 뜻을 알아챘다.
한국이 지금껏 중국 눈치의 눈치를 보느라 미뤄왔던 장거리 레이더를 장착한 요격 미사일 배치.
이 사안이 뜨거운 감자가 되리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한국 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국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결정을 미루어 왔던 오바마가 마음을 굳힌 것이다.
“퇴임하더라도 마음이 담긴 뜨거운 선물을 주고 가야지.”
순간 오바마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아!!!”
“동양 격언에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네. ‘적을 적의 손으로 제압하라’. 후후훗.”
***
“갔나?”
“간 것 같습니다.”
“쉽게 포기할 성격이 아닌 듯한데…….”
“그렇겠죠.”
“적당히 들어주지 그랬어.”
“안타깝게도 제 영역이 아닙니다.”
올 때처럼 소리도 없이 백악관의 주인과 경호원들이 떠났다.
잔뜩 숨을 죽이고 있던 주변 기운들이 되살아났다.
- 저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오바마 대통령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귀신도 그중 하나였다.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까?”
“어쩔 수 없습니다.”
“뜻이 확고하군.”
“그들이 선택한 미래입니다.”
“자네 힘이라면 바꿔 줄 수 있지 않나?”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피할 수 없는 업보입니다. 저기 귀신처럼 말입니다.”
- 잘나가다 거기서 제가 왜 나옵니까? 그리고 지금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겁니까? 귀신 서럽게…….
“업보라…….”
임성철 회장의 집 옥상 테라스에서 바람을 맞았다.
조금 전 사방을 살피던 경호원들이 모두 사라졌다.
오바마는 그냥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돌아갔지만 다시 나에게 경고를 줄 게 뻔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중국을 이용할 겁니다.”
“중국? 장 회장하고 중국하고 어떻게? 그리고 장 회장은 원래 중국을 싫어하잖아. 목숨 내걸고 싸울 정도인데.”
미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임성철 회장.
- 형님. 뭔가 다른 게 있죠?
귀신이 임성철 회장보다 눈치가 빨랐다.
“제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 설마 장 회장 때문에 대한민국을 공격한다는 말은 아니겠지?”
“…….”
침묵은 긍정의 표시다.
- 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나 뛰어난 인권가인데요.
귀신도 이 말은 믿지 않았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도덕과 양심은 무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렇군…….”
그룹을 이끌던 임성철 회장이 바로 말뜻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정보 확실합니까? 오바마 대통령 정도라면 죽어서 신이 될 정도로 선업을 쌓은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 분이 양심을 굳이 팔아서…….
인생 경험이 짧은 귀신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신이 될 수도 있겠지.”
귀신 말대로 오바마가 미국 국민들을 위해서 쌓은 카르마 포인트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 때문에 세계의 다른 국민들이 그만큼의 피해를 봤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냉정한 균형자인 카르마 추가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질지는 나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바마는 아직 살아 있는 존재다.
“냄새가 고약하겠군.”
“냄새뿐만 아니라 독성도 강합니다.”
“그럼 막아야 하지 않나?”
“막지 못합니다.”
“아직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지 않나?”
물론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
내가 힐러리를 지지하는 순간 오바마는 천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뒤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
미국민들은 이미 보이지 않게 상당수가 선을 버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축제를 벌이는 그들을 내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
중국의 위선적 가면 뒤에 감춰진 진면목을 확인할 때가 도래했다.
애써 외면했던 중국인들의 본성이 이번을 계기로 그 실체를 여실히 드러낼 것이다.
어차피 마주쳐야 할 본모습들이다.
미리 예방주사를 맞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강성해지는 만큼 중국은 주변 국가들에 못된 황제 국가가 되려고 발버둥을 친다.
과거 자신들이 누렸던 영화를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주변국이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가져다 바칠 것을 요구할 게 빤하다.
그 조공에는 대한민국 후손들이 먹고살아야 할 중요 기술들이 포함돼 있다.
아직 덜 뜨거울 때 손을 떼는 게 맞았다.
전 국민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한국을 무역 상대 흑자국으로 놔두지만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도울 일이 있나?”
임성철 회장은 현재 장립의 탈을 쓰고 사는 사람이다.
리장창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출산 핑계를 대 임성철 회장과 중국인들의 만남을 자제시켰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지능 있는 교란 작전이 필요했다.
몇 년을 바라보는 교묘한 한 수.
“당연히 도와주셔야죠.”
“바빠지겠군.”
“육아보다는 덜 힘들 겁니다.”
“그렇겠지. 쌍둥이들 보는 것보다 전에 그룹 경영할 때가 훨씬 수월했어.”
- 애 키우는 게 더 낫지 않나요? 귀여운 쌍둥이들만 보고 살아도 배가 안 고플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참맛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은 귀신.
“어머니가 위대하다라는 말이 그냥 존재하는 게 아냐.”
임성철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습니다.”
“장 회장이 어떻게 알아?”
“제 어머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아버지의 삶도 마찬가지야. 세상 살면서 쉬운 인생은 하나도 없는 법이라네.”
“인정합니다.”
- 저도 인정합니다. 가끔 인간의 몸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신도 할 만합니다. 특히 카르마 포인트 빵빵한 신은……. 흐흐흐흐흐.“
상황 파악 못 하고 음흉하게 웃는 장립 귀신.
뭘 상상하는지 머리에 훤히 그려졌다.
“며칠 더 있다 갈 거지?”
“아닙니다.”
“바빠?”
“아마도…….”
띠리리리리리리릿.
단순한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이번에는 또 누굽니까? 혹시…….
혹시 뭐?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