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장. 리더(Leader)
“립……. 도대체 장태산 회장님의 정체가 뭔가요?”
장태산 회장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 남편이 아닌 장태산에게 제대로 한 상을 대접받은 서유나.
설거지를 끝내고 남편과 티타임을 가졌다.
쌍둥이는 웬일로 고맙게도 아직 취침 중이다.
어젯밤의 뜨거운 열기는 아침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소파에 앉은 남편의 팔에 기대어 앉는 서유나.
자리를 비운 장태산의 정체가 궁금해 물었다.
서유나는 이른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맛있는 요리를 맛보게 된 건 더없이 행복한 일이었지만 갑작스런 방문자에 크게 놀랐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미국 대통령이 찾아올 만큼 장태산은 거물이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서유나에게는 영화 속 일 같았다.
막상 장태산은 그런 미국 대통령을 전화 통화만으로 밖에 세워두었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 역시 눈앞의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리더.”
“네?”
“장 회장은 말 그대로 리더야.”
‘회사의 대표를 말하는 건가?’
서유나의 남편의 대답을 곱씹었다.
“암중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몇 명이 있는데 그 리더들 중 한 사람이야.”
“아!”
서유나는 자신의 상상을 벗어난 남편의 대답에 탄성을 터트렸다.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
그 말의 범위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나도 잘난 맛에 살아왔지만 장태산 회장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
남편의 겸손함이 묻어 있는 말에 서유나는 침묵했다.
남편 립은 언제나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엘자 회장조차 립에게 조심했었는데 막상 장태산 회장의 이름 앞에서는 한 수 물러났다.
“조심해야겠네요.”
“배신만 안 하면 돼.”
“배신요?”
“장 회장이 제일 싫어하는 게 배신이야.”
“립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우리 만날 때 한국에서 처음 만난 분 아니었어요?”
“낯 간지러운 말이지만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 그런 거야.”
셀프 칭찬을 하며 웃는 남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서유나가 지켜본 장립은 그녀의 눈에 충분히 영웅처럼 보였다.
“그런데…… 초련이가 누구예요?”
“응?”
“어제 장 회장님이 절 보고 ‘초련이 누님’이라고 분명히 그랬거든요.”
“그, 그래?”
임성철이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냥 흘리듯 내뱉은 말이라 아내가 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신도 알고 있죠.”
서유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추궁하듯 물었다.
“…….”
임성철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숨죽였다.
전생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서유나는 기억도 못 하는 그녀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그래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꿈에서 그 이름을 분명 들었어요.”
과거를 회상하듯 시선을 돌리는 서유나.
“초……련이라는 이름을?”
임성철은 서유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내에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네. 분명 당시 꿈속에서 누군가 날 초련이라 불렀어요. 얼마나 사랑스럽게 불렀는지……. 듬직한 남자였는데……. 날 목숨처럼 여겼다는 것만 어렴풋이 떠올라요.”
“음…….”
임성철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신만 전생에 대해 꿈을 꾼 게 아니었다.
‘장 회장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어.’
어물쩡 넘어갔지만 장태산은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렇게 엮여 있는 모두의 관계를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귀신 장립이 돌쇠라는 것도 알았다.
자신의 아내 또한 전생에 인연이 있던 사랑하는 여인 초련이었다.
그런 모두의 제반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장태산.
딸 시아가 처음 보는 장 회장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걸음마를 이제 배우기 시작한 딸이 새벽에 깨어나 어떻게 장태산을 찾아갈 수 있었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설마…….’
임성철은 머리에 그려지는 여러 가지 생각에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과거 유명한 역술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조건 옆에 있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라 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었고 묻지도 않았다.
역술가는 흘려듣는 자신에게 이어 말했다.
지금 옆에 있는 이들은 전생에서도 가장 가까이에서 관계했던 인연이며 업이라고.
“그리고…… 어제부터 이상한 게 느껴져요.”
“응???”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 말이에요. 당신과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거든요. 한참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제부터 다시 그래요. 마치 이 방에서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에요.”
다소 겁먹은 표정으로 두리번두리번 집안을 훑어보는 서유나.
“!!!”
임성철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내의 촉이 예사롭지 않았다.
장태산을 따라가지 않고 창가 소파에 늘어지게 몸을 누이고 있는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
- 헐.
자신을 알아채는 서유나의 영혼 안테나에 기겁하며 놀라는 장립.
슥슥.
임성철이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눈치 없는 귀신과 어쩔 수 없이 동행해야 하는 삶이 됐지만 분명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했다.
- 흐윽……. 한때는 나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더니……!
장립 귀신이 임성철 회장을 원망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큼큼.”
헛기침 몇 번으로 귀신의 눈길을 피하는 임성철 회장.
물론 귀신과 함께 뜨겁게 놀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 됐다.
- 집도 절도 없는 서러운 귀신 인생! 나 다시 노바 형님에게 돌아갈래!!!
***
“!!!”
오바마는 다니엘 장의 선전포고 에 충격을 받았다.
다니엘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트럼프를 뽑으려는 미국인들에 대해 그만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모습은 준엄한 심판자 같았다.
오바마는 다니엘의 모습에서 냉정한 눈을 가진 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처, 청구서는 말이 과하군.”
오바마는 한 번 더 그의 말에 저항했다.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
오늘 이후 언제 다시 다니엘을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미국 대통령의 초청에도 꿈쩍하지 않을 위인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내로라하는 리더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상태였다.
한국에 칩거 중인 다니엘은 세상 밖으로 자주 나오지 않았다.
가끔 러시아에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다니엘이 움직일 때 그를 만나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거물들이 움직이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대표적인 존재가 야훼바트.
오바마보다 더 존경받으며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야훼의 성녀였다.
그녀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럼 어떤 말이 어울릴까요? 청구서도 나름 가장 순하게 표현한 건데요.”
다니엘 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는 분명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빛과 표정에서는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에 적대적이다!’
다니엘 장이 중국과 일본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보고는 이미 받았다.
구체적으로 일본과 관련된 사업이 거의 없었다.
홍콩에서는 목숨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핍박을 당했다.
한국인들 중에서도 유난히 예민하게 이웃 국가들을 경계했다.
수천 년 세월 동안 핍박당해온 민족적 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에 보이는 다니엘의 본심도 그들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다니엘에게서 미국에 대한 이해나 호감 같은 게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본심을 이제 알았다.
그동안 투자했던 모든 것들은 그의 또 다른 계획이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미국과 관련되어 있는 사업 라인이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을 콕 찍어 대통령으로 밀어붙였던 인물이다.
‘나 때문에?’
오바마를 물심양면 도와 대통령으로 세웠지만 이후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투자한 비용 대비 무리한 조건의 권력을 원한 적이 없던 다니엘.
그를 서운하게 했을 만한 일들을 떠올려봤다.
“혹시…… 정치적으로 내가 일본 편에 서서 그런가?”
오바마도 다니엘의 시선으로 보면 찔리는 면이 없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은 숙적처럼 서로를 보며 오랜 세월 으르렁거렸다.
과거 강제 합병을 당했던 한국이 일본을 좋게 볼 리 없었다.
일본 또한 자존심을 비롯해 여러 문제로 한국과의 긴장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본은 한국이 요구하는 강점기 시절 문제에 대해 절절히 사과하고 위안부를 비롯해 강제 동원 노동에 대한 배상을 허용하면 됐다.
양국 간 긴장 상태로 놔두는 것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절약이 된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문제는 또 달랐다.
과거 식민지 시절처럼 한국과 한국인을 발아래 때로 여기는 노회한 정치인들과 국민이 많았다.
거기에 한국에 의해 따라잡힌 반도체와 조선업 같은 제조업 문제로 일본 시민들의 기분이 상한 상태다.
영원한 2등 국민이 자신들보다 더 잘살게 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질투.
정치인들은 교묘하게 그걸 이용했다.
그리고 오바마도 일본 측 로비를 받고 그들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오바마는 북한과 한국의 합병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북한이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미래의 적인 중국과 통일 한국이 가까워지면 미국은 아주 골치가 아파진다.
또한 정치권에 로비력이 막강한 군산복합체들도 긴장 관계를 원했다.
한국과 일본에 팔아먹는 고가 무기가 장난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미국적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온 오바마.
“그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약소국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서러움인 것을 말입니다.”
가볍게 내뱉는 다니엘의 말에 뼈가 들어 있었다.
서운한 감정을 다니엘은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개인적 감정으로 세상에 폭탄을 던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아무리 내게 서운함이 있더라도 트럼프를 다음 대 대통령으로 밀어준다면 세상에 재앙이 될 것이야.”
오바마는 다시 한 번 트럼프만은 불가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각하.”
다니엘이 오바마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용히 불렀다.
“말하게.”
“한국이 언제까지 미국의 봉으로 살 것 같습니까?”
툭 내뱉는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다니엘의 속마음.
“난 한국과 한국민을 봉으로 여기지 않네.”
오바마가 즉각 반응하며 다니엘의 말을 부인했다.
“인격적으로 각하께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 앞에서도 그럴까요?”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내 재임 기간에는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국제사회 리더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야.”
두루뭉술 추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포장하는 오바마.
일단은 다니엘의 분노를 다스려야 했다.
그가 품고 있는 반감을 꺾어 트럼프 지지를 철회시켜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어쩌면 다니엘은 트럼프보다 더 위험한 자였다.
이제는 미국 대통령도 함부로 어찌할 수 없는 세계를 지배하는 암중 리더의 일원이 돼 버렸다.
최대한 협조를 구하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이 자리에서 당장 다니엘을 죽여 버릴 게 아니라면 말이다.
“후후훗.”
다니엘이 시니컬한 웃음을 터트렸다.
“8년의 세월을 지켜봤습니다. 각하도 지극히 일반적인 미국 대통령처럼 행동하더군요. 겉은 정의로운 위인인 척 행동하지만…… 본심은 오직 미국의 이익이 먼저였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책무였네.”
오바마의 양심이 제대로 찔렸다.
세상 사람들이 몰라야 할 국익을 위한 선택을 수없이 많이 했다.
물론 외세에 알려지면 비난받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게 바로 제가 확답을 드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둘 사이에 피를 걸고 맹약을 맺어도 국익 앞에서 그 약속은 무의미한 휴짓조각과 같을 게 아닙니까.”
“…….”
다니엘은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오바마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트럼프는 내가 지원하지 않아도 스스로 대통령 자리를 거머쥘 겁니다.”
“불가능해. 각종 여론 조사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의사를 모두 다 아십니까?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도 모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숫자로 통계 낼 수 있습니까?”
“그래도 지표라는 게 존재하네. 현명한 미국 시민들은 트럼프보다 힐러리를 더 지지하고 있네.”
오바마는 미국의 깨어 있는 양심을 믿었다.
선동가 트럼프 때문에 표가 많이 넘어갔지만 미연방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깨어 있는 시민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을 믿었다.
“확신합니까?”
“물론이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
오바마의 정곡을 찌르는 다니엘의 물음에 말문이 턱 막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은 두 눈을 부릅뜨고 오바마를 직시했다.
그리고.
“신은…… 미국을 버렸습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