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7장. 오빠!
“다니엘 장이 오고 있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각하.”
“왜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음.”
오바마는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하루가 다르게 선거 기류가 급변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존재가 생각보다 많았다.
SNS 중심으로 트럼프 리트윗 양이 힐러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운명을 걱정해 대통령으로서 모든 걸 지켜보며 정보를 수집해 듣고 있는 오바마.
상황이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무엇 때문에 오는 거야?’
그런 와중에 급작스럽게 미국을 향하고 있는 다니엘 장으로 인해 오바마의 인상은 더 굳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니엘 장의 파워가 만만치 않았다.
월가에서 마치 신처럼 추앙받는 로버트 라이언과도 돈독한 관계에 있었다.
그런 인물과 함께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다니엘 장.
힐러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 테러를 기획했던 오바마와 힐러리에게 신뢰가 남아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스라엘에서도 경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야훼바트?”
“네…….”
“둘이 만나기로 한 거 같군요.”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니엘 장의 또 다른 지원군이 이스라엘에도 있다.
미국 대통령도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존재.
연방준비은행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미국행을 결정했다.
그녀가 움직이는 동안은 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더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진다.
정보 위성뿐만 아니라 해외에 파견된 미국 항모와 군사기지에서 특급 경호 명령이 하달된다.
야훼바트가 타고 있는 비행기 주변으로 비행통제구역이 자동으로 펼쳐질 정도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오바마는 이제 와서 다니엘 장을 처리하지 못한 그날이 후회됐다.
아직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진작부터 레임덕 현상이 발생했다.
군부를 비롯해 여러 특수기관 등에는 이미 오바마의 명이 먹히지 않고 있었다.
미국 공무원들은 겉보기보다 더 보수적이고 눈치가 빨랐다.
정치적으로 위험 수위가 높은 일에 그들은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한마디로 다니엘 암살 기도는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됐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 이렇게까지 위험 요소가 될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지 못했다.
킹 메이커였다.
자신은 물론 천하의 볼품없는 사기꾼 트럼프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집니다.”
“FBI가 뒤통수를 때리다니……. 허허.”
오바마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믿고 있는 도끼에 발등이 제대로 찍혔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조직 FBI가 느닷없이 힐러리를 공격했다.
별것도 아닌 일이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국무부 장관이 받는 보고 내용을 개인 메일로 받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중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평소 같았다면 그냥 에피소드쯤으로 여길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론이 끼어들면서 일이 들불처럼 커졌다.
SNS에서는 대통령 자질론까지 언급됐다.
힐러리에 대한 조직적 음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껏 밝혀진 트럼프의 사기 행각과 비도덕적 행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힐러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대서특필됐다.
분명한 건 그 뒤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왜…….’
오바마와 러시아 차르는 세계 정상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잘 지냈다.
여러 번 국제무대에서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였지만 비밀 대화에서는 모든 걸 까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친구같이 지냈다.
그랬던 러시아 측도 은밀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차르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며 따졌지만 일단 모르는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물론 확실한 증거 같은 건 잡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해커들의 능력은 중국 측 해커들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뭔가 있어. 뭔가가.’
뒷목을 잡아채는 찝찝함이 계속 오바마를 괴롭혔다.
만약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고 승리한다면 이 위대한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정치적 신념도 없이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돌아가는 사기꾼 장사치 트럼프.
몇 년 전 한국에서도 그런 대통령이 나왔다.
자신 앞에서 거만한 자세로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마주하던 주무형 대통령.
오바마는 임기 내내 그를 철저하게 괴롭혔다.
단기간에 레임덕에 빠뜨리기도 했다.
주무형은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인물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이며 또 민족주의자였다.
그래서 오바마는 그를 더 강하게 쳐냈다.
약소국의 대통령 주제에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해 왔다.
알게 모르게 여러 차례 압력을 가했다.
보호무역 관련 법안을 이용해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북한과의 급격한 관계 개선 역시 미국으로서는 좋게 볼 수 없었다.
네오콘들이 행정부를 압박했다.
분단국인 한국에 팔아먹는 무기가 엄청났다.
주권국이라면 당연히 소유하고 있어야 할 전시작전통제권도 미군이 소유했다.
그걸 되찾아가려 했던 주무형.
당시 오바마 정부는 의도적으로 타락한 한국 기득권층을 자극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한 기득권의 정치 공작.
한국 기득권층이 주무형에 대해 정신적 고문을 가할 때 미국은 한발 물러나 지켜만 봤다.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미국의 정치적 이익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동맹을 맺은 관계였지만 미국에는 말 잘 듣는 사냥개가 더 필요했다.
그 점에서 장사치에 지나지 않았던 최병박은 최고의 파트너였다.
이미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수많은 범죄 혐의점이 포착됐다.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작업한 자금을 뒷주머니로 엄청나게 받아먹은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대통령이 될 때도 미국에 은밀히 허락을 구해 왔을 정도다.
한마디로 약점이 많은 자였다.
대통령 재임 시절 동안 미국에 유리한 여러 협정이 체결된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민자 사업을 통해 빼돌린 자금 규모는 천문학적이었다.
미국 정부는 약점 많은 최병박을 완벽하게 요리했다.
미국 월가 투자자들이 망해가는 해외 원자재 사업체를 떠넘기기도 했다.
착실하게 쌓아놨던 한국의 국부를 갈취하는 수준이었다.
한국은 대통령이 선두에 나서서 5년 동안 100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게 만들었다.
그랬던 한국이 요즘 들어 신경을 자꾸 거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
‘다니엘 장……!’
생각만으로 오바마의 인상이 험상궂게 구겨졌다.
미국으로 오고 있다.
“약속을 잡아줘요.”
“???”
“다니엘 장에게 조용히 만나고 싶다고 연락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다니엘 장……. 이번에는 반드시 결판을 내겠어!’
***
- 흐흐흐. 역시 아메리카 최고!!!
부우우우웅.
최고급 롤스로이스 리무진이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렸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장립이 밖을 보며 감탄에 젖었다.
“사기꾼 새끼…….”
장립을 보며 이를 갈았다.
- 사기꾼요? 제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치미를 뚝 떼는 잡귀!
“어떻게 나에게 그런…….”
차마 말이 튀어나오려다 말았다.
천하의 장태산이 하다하다 이제 잡귀에게 사기를 당했다.
- 전 사기 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런 동영상이 필요하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리무진은 운전석과 공간이 나뉘어져 있어 철저하게 방음이 됐다.
- 이계 천상계 죽이죠?
잡귀가 한 수 더 떠 시치미를 떼며 물어왔다.
아주 그냥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은근하게 나를 꼬실 때 보였던 눈빛과 속삭임은 분명 그것이었다.
앞뒤 없이 대놓고 다크 엘프의 미모를 칭찬하던 장립.
먼 곳에서 건너온 것이라 상당히 많은 포인트를 지불하고 구입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장립의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비행기 안에서 감상하던 그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내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영상이 재생됐다.
천상계가 먼저 보였다.
인간계와 확연히 다른 이계 천상계.
엄청난 크기의 세계수, 끝을 알 수 없는 높다란 산, 더없이 맑은 호수, 이름 모를 기화요초에 특이한 각종 천상계 동물까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인내심 있게 동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분위기 쫙 깔고 그 뒤에 갑자기 나타날 흐뭇한 장면을 고대했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였다.
어렵게 구했다는 천상계 동영상.
- 함부로 구할 수 없는 동영상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지 않습니까? 공기가 오염된 지구와 확실히 다른 이계 천상! 형님을 위해 제가 특별히 포인트 주고 구입했습니다.
“하아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기를 당한 것은 모두 내 욕망이 빌미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 때 유명했다는 용팔이.
그는 어둠의 비디오 동영상 판매상이었다고 했다.
장립은 딱 그 용팔이 같다.
이계에서 몇 년 놀더니 아주 뻔뻔해졌다.
끼이익.
차가 멈췄다.
- 형님! 어서 내리시죠. 우리 집안 새끼들 보고 싶습니다!
그냥 나가 새끼야!
귀신 주제에 차 문까지 열어주기를 바라는 잡귀.
- 그래도 리무진 아닙니까. 서비스는 확실히 챙겨야죠.
딸깍.
운전기사가 문을 열었다.
“목적지입니다.”
스윽.
밖으로 나왔다.
휘리리리링.
짠 냄새가 섞여 있는 태평양 바람이 훅 불어왔다.
“다니엘!!!”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편안한 옷차림의 임성철 회장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립!”
보는 이들이 많았다.
경호원과 운전기사가 우리를 지켜봤다.
“어서 오게! 하하하하.”
덥석 임성철 회장이 안겨왔다.
진심으로 날 반겨주었다.
- 우리 이렇게 완전체로 만나는 게 얼마 만인가요! 회장님!
와이파이가 작동되며 귀신도 덩달아 포옹에 합류했다.
2년 만에 만난 세 사람.
회귀 후 인생도 그사이 엄청 빠르게 흘러갔다.
“보고 싶었네!”
임성철 회장이 뜨거운 시선으로 날 봤다.
그동안 만나지 못하고 지냈다.
주변에 감시의 눈길이 너무 많았다.
되도록 비밀 메일을 통해 업무를 할당해 왔다.
임성철 회장은 충실히 나의 업무 지시를 따랐다.
투자 회사 몇 개를 운영하는 실세가 되었다.
중국과 관련된 파트를 주로 맡았다.
“행복해 보이는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임성철 회장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맑게 반짝였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의 사내가 세상 사는 진정한 맛을 이제야 경험하고 있었다.
- 회장님! 우리 장씨 집안 아이들은요?
장립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어서 오세요.”
쌍둥이를 낳고도 여전한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이 집의 안주인이 나타났다.
양손에 쌍둥이를 데리고 다가왔다.
- 오!!! 장손!!!
귀신이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덥석 안았다.
물론 진짜 안지는 못했다.
“빠빠……. 아빠빠.”
아직 돌도 안 되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시아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 같네.”
아장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시아를 보자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번졌다.
무릎을 접고 시아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사락.
가볍게 안겨오는 젖살 말랑말랑한 귀여운 꼬맹이.
품에 안긴 시아를 훌쩍 안아 올렸다.
“빠바! 빠빠빠!”
아직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는 꼬맹이가 내 뺨을 작은 손으로 만지며 옹알이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 오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