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6장. 돌아온 탕자(4).
“기사단이 아사단 비밀 아지트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결과는요?”
“기사단의 승리입니다.”
“다행이군요.”
홍해가 보이는 텔아비브의 보안건물.
야훼바트 로리아나가 최근 있었던 중요한 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제아무리 세상의 금융을 잡고 움직이는 원동체라 해도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었다.
인간들이란 본래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야훼도 그런 인간들의 제멋대로인 마음을 알기에 여러 계율을 내린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이들이 바로 종교에 집착해 이성을 망각해 버린 부류였다.
그들로 인해 세상의 평안을 위해 제정한 모든 율법과 윤리적 규칙들을 묵살해 버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아집과 오만이 인류의 평화를 무너트리는 것을 몰랐다.
그들 대부분은 악마의 계시를 받은 이들이다.
같은 인간의 탈을 썼지만 진실한 신들의 말에는 귀를 닫고 악마들의 속삭임에만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이단의 악마들은 신과 신의 말씀을 인간의 심리와 연결해 교묘하게 팔아 연명해 왔다.
밀과 함께 섞여 자라는 쭉정이 풀과 같았다.
뽑아내 죽이고 또 죽여도 언제 어디서든 다시 살아났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야훼를 모셔온 야훼바트와 이스라엘 민족도 그들 이단과 지금까지 싸워왔다.
악마의 지령을 받고 인류를 무너뜨리기 위해 임한 야만적인 자들과의 전쟁.
오직 사랑만을 전파하라는 신의 말씀 대신 증오와 분노로 죽음을 선물했다.
다양한 형태의 그들 무리 중 단연 최고봉에 앉은 악마의 자식이 바로 아사신이었다.
이제는 사라져야 할 명분이 뚜렷하고 그것만이 세상의 유일한 목적이건만 그들은 아직도 성전을 멈추지 않았다.
빛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온통 어둠으로 채우고 파괴해야 존재감이 확인되는 자들이었다.
급기야 고대 흑마법을 되살려 괴물들을 만들어 냈다.
인신공양을 통해 어둠의 힘을 부활시켰다.
아사신은 기사단뿐만 아니라 야훼바트도 노렸다.
평화를 옹호하는 야훼마저도 아사신에게는 섬멸해야 할 적이었다.
야훼도 그런 아사신을 벌레 정도로 여겼다.
기사단을 꾸리는 데 자금과 여러 혜택을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그나마 성전 기사단이 버텨주고 있어 야훼를 따르는 자들은 한발 물러날 수 있었다.
대리전의 성격.
중요한 보고 중의 하나였다.
“마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단계니까요.”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성스러운 고대 무기고를 개방하자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바트시여.”
보고하던 장로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성스러운 고대 무기고는 이미 솔로몬 대왕 시절에 폐쇄됐다.
야훼의 명령으로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무기고.
당시만 해도 횡행하던 마법이 그 이후 점점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마법 무구와 사용법은 교황이 득세하던 시절 조용히 거두어졌다.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인간들의 삶에 혼란을 줄 수 있었다.
마법 무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자는 신의 영역에 발을 담근 자와 같았다.
평범한 이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만큼 보이지 않는 지도자들이 협의해 봉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감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선두에 나서서 마법을 경계하던 장로들까지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흐음.”
로리아나의 인상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전사들을 선별해 놨습니다. 아사신 말고도 신들의 힘이 곳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장로가 언급한 말들은 평범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이는 잠자던 신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의미였다.
“허락합니다.”
로리아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적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한 이상 그대로 방치하면 그건 우매한 짓이었다.
악은 악으로써 멸하는 게 야훼의 법이었다.
악신에 한 번 걸려들어 영혼이 물들면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로지 죽음만이 가장 빠르게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멸하는 방법이었다.
수천 년 세월 동안 확고하게 자리 잡은 야훼의 정화 방식.
로리아나도 채찍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장로가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말씀하세요.”
“다니엘 장이 사용하는 전용기가 방금 한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어디를 향하죠?”
“LA입니다.”
“LA라면…….”
“장립이라는 중국 화교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장립이라…….”
로리아나는 다니엘을 떠올렸다.
요근래 조용하게 지내던 다니엘 장.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계속 엇갈렸다.
같이 보내자던 여름휴가도 함께하지 못했다.
세상은 하루하루 매일 전쟁 중이었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대립하며 IS가 아랍권을 어지럽혔다.
곳곳에서 피가 난무한 전쟁이 벌어지고 오갈 데 없는 난민이 속출했다.
유가를 비롯해 원재료와 환율이 거센 파도처럼 출렁였다.
금융을 조종하는 야훼바트가 그 어느 때보다 심력을 기울여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수천 년 동안 대립하며 서로의 피로 목욕물을 대신하던 두 집단.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파수꾼에 지나지 않은 선지자 문제로 가장 치열한 원수가 됐다.
오로지 한 분뿐인 신이 중심에서 밀리고 선지자가 신의 자리를 대신한 꼴이 돼 버렸다.
그런 그들을 신격화하면서 발생한 무수한 문제들.
그래서 야훼는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섬기지 말라 지상명령을 내렸다.
“준비할까요?”
야훼바트의 마음을 알고 장로가 현명한 제안을 했다.
“미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군요.”
로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런 다니엘 장의 미국행.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로리아나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바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장로가 고개를 조아렸다.
“물러가도 됩니다.”
스으윽.
장로가 뒷걸음으로 야훼바트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뭔가 이상해……. 야훼께서 무언가를 감추고 계셔.”
과거와 달리 야훼가 침묵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마치 로리아나만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고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 때문에 로리아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만.
‘다니엘…….’
이름만 들어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남자의 환한 얼굴.
지금으로써는 오직 그만이 그녀의 위안이 되었다.
***
- 역시! 개똥밭에 굴러도 지구가 최곱니다!
자가용 비행기가 개똥이냐?
알 수 없는 신이 엮어버린 잡귀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동안 미뤄왔던 여러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다.
임성철 회장님을 직접 만나야 할 일이 생겼다.
장립의 영혼이 이계에 싸질러 놓은 온 설사똥.
드워프 신들에게 빌린 고금리 포인트는 공동의 문제였다.
- 형님. 달달한 아이스 와인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장립의 영혼이 내 옆에 발을 꼬고 건방지게 앉아 있다.
자가용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미국을 향해 날아갔다.
금발의 미녀 승무원이 상시 대기 중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미소를 짓는 그녀.
로버트 라이언이 얼마 전에 바꾼 최신형 기종은 기체가 작음에도 전에 사용하던 것보다 소음이 적고 편안했다.
말은 생략하고 눈빛과 미소로 그녀를 가까이 불렀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섹시하고 친절한 금발 미녀는 매력적인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훅 풍겨오는 진한 그녀의 향취와 타이트한 복장.
살짝 열린 옷깃 사이로 보이는 백옥 같은 살결.
- 좋습니다! 좋아요! 흐흐흐.
염치없는 귀신은 사정도 모르고 좋다고 난리다.
“아이스 와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잡귀가 요청한 아이스 와인을 부탁했다.
장립의 말이 아니었어도 나도 목이 말랐다.
- 흐흐. 형님. 이계 천상 연회장 안 가보셨죠?
멀어지는 승무원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잡귀가 뜬금없이 이계 연회장 이야기를 꺼냈다.
나와 임성철 회장에게 모든 짐을 던져버리고 개운해진 장립.
어느새 특유의 유쾌함이 되살아났다.
무릎 꿇고 엎드려 살려 달라던 애걸복걸 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 가봤다.
- 정말 죽입니다! 신이 된 인간들뿐만 아니라 엘프, 성녀들까지 모두 모입니다. 그중에서 누가 가장 매혹적인지 아십니까?
장립이 떡밥을 던졌다.
신경을 끄고 싶지만 궁금한 건 사실.
누군데?
승무원이 시선을 떼지 않고 보고 있어 표정 관리하며 와이파이 통신을 사용 중이다.
- 다크엘프 여신들입니다.
다크 엘프 여신?
들어는 봤지만 아직 눈으로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 그분들 악신으로 알려졌는데 아니더라고요.
악신이 아니야?
그럼 어느 쪽 계열인데?
- 중립신이라고 아십니까?
장립이 나보다 더 이계 신들의 상황을 잘 알았다.
중요한 정보였다.
어쩌면 신들이 이런 정보를 알아오기 위해 장립을 이계에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는 법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립신?
지구신들 중에서는 거의 그 존재가 전무한 중립신.
- 생각보다 많아요. 그곳에서는 과거부터 신들의 전쟁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특히 마신들과의 전쟁은…….
마신?
갑자기 튀어나온 마신이라는 말에 마음이 진동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알파닥!!!
- 마신에 대해서 아세요?
알파닥이 언젠가 무심코 던졌던 말이 마신이었다.
내가 이계 처음에 떨어져 차지했던 백작성도 마물이 차지하고 있던 곳이다.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 무엇이 신경을 끈질기게 자극했다.
- 그 마신들의 전쟁 때 주로 참전하는 종족이 바로 다크 엘프인데……. 중립으로 있다가 용병처럼 포인트 많이 주는 신들 편에 섭니다. 그런 다크 엘프 여신들은 한번 보면 뻑 갑니다!
몽롱하게 환상에 젖어드는 잡귀.
다크 엘프의 미모가 말처럼 쉽게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아이스 와인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금발 승무원이 말을 하다말고 윙크를 날렸다.
- 꿀꺽.
야! 잡귀! 다크 엘프가 가장 예쁘다며!
금세 태세전환 하는 잡귀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 그림의 떡이라니까요. 다크 엘프들이 얼마나 도도한지 몰라서 그러세요. 어지간한 신들은 말도 못 붙입니다.
그래?
호기심이 더욱 더 증폭됐다.
남자의 승부욕을 은근히 자극하는 얘기들이었다.
- 치파오 스타일의 블랙 가죽 치마와 가슴이 살짝 보이는 상체 갑옷을 걸치고 나타나는데…….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허벅지와 살짝 그을린 건강한 피부가……. 은은한 광채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폭포수같이 기다란 검은 머리칼과 짙은 암갈색 눈동자……. 한 번 보면 확 빠져든다니까요!
검은색 폭포수 머리칼? 건강한 피부…….
구체적인 설명에 서서히 머리에 그려지는 다크 엘프의 미인도.
- 퇴폐미의 끝판왕입니다. 엘프들의 성스러운 분위기와는 완전 달라요. 엘프들이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공부 잘하는 범생이 미녀 스타일이라면 다크 엘프는 클럽에서 마주친 적당히 취한 얼짱 섹시 누님 같다니까요.
잡귀의 묘사력이 대폭 늘었다.
확실히 와 닿는 다크 엘프의 인상들.
그래도 부족한 그 무엇.
- 형님…….
그때 장립의 영혼이 은근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끈적끈적한 눈빛은 덤이었다.
- 어렵게 구한 게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처음 보는 낯빛으로 음흉하게 씨익 웃는 저 못된 잡귀!
잠시 갈등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확인사살에 들어오는 장립 귀신.
- 쪼금만 생각해 주시면 동영상을…….
콜!!!
회귀의 전설 2부